박원순-조원진 ‘광화문 쟁탈전’ 내막

누구의 것?…서울 한복판서 ‘천막전쟁’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지난 6월25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우리공화당 천막 3개를 강제 철거했다. 우리공화당은 크게 반발하며, 철거 이후 6시간 만에 10여개의 천막을 재설치했다. 같은 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경호 협조로 우리공화당이 천막을 임시로 옮긴 사이 서울시는 대형 화분 80여개를 광화문광장에 설치했다. 이후 우리공화당이 다시 천막 설치를 예고하면서 서울시와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은 지난 5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당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진상 규명을 이유로 광화문광장에 3개의 천막을 기습 설치했다. 서울시는 이에 시와 사전 협의 없는 무단점유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공화당에 5월11·16일, 6월7일 총 3번에 걸쳐 자진 철거를 요구하는 계고장을 보냈다.

시 vs 당
갈등 끝은?

공화당은 서울시의 원상복구 명령에 대해 지난 5월14일 철거 절차를 멈춰달라며 집행정지 및 행정심판청구를 신청했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필요성이 긴급하지 않다’며 공화당에 기각 결정이 내렸다.

공화당은 무단점거 이후 서울시에 5월14~16일 3번에 걸쳐 광장 사용 허가 신청서를 냈지만 시는 이를 반려했다.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위한 공간이기에 공화당의 정치적 목적이 서울시 조례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계속되는 공화당의 버티기에 서울시는 지난 6월25일 새벽 5시12분경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서울시가 천막 강제 철거 작업에 나선 건 이례적인 일이다. 철거에 투입된 1000여명의 서울시 직원 및 용역 직원들과 400여명의 공화당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대치하면서 광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몸싸움과 비명, 욕설이 난무했고 경찰 추산 3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공화당 천막은 오전 6시40분쯤 완전히 철거됐고, 서울시는 오전 9시10분 행정대집행 종료를 선언했다. 광화문에 불법 농성 천막이 설치된 지 47일째 되는 날로 철거 비용에만 2억원의 혈세가 쓰였다.

공화당과 서울시의 힘겨루기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철거 6시간 뒤인 오후 12시30분께 공화당은 보란 듯이 500명의 당원들을 투입해 천막 9개동과 그늘막 1개동을 다시 불법 설치했다.

현장에는 서울시 직원과 경찰들이 투입돼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경찰들에겐 천막 설치를 막을 권한이 없다. 또 서울시 직원이 적법한 절차 없이 천막 설치를 막는 것은 공권력 과잉진압의 구실이 될 수 있다.

서울시-우리공화당 계속되는 대립
서울 시민만 ‘봉’ 혈세낭비 불가피

천막이 새로 설치됐기에 서울시는 이전과 같이 계고서를 발송하는 등의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서울시의 행정력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화당의 폭력적 행태에 시민들은 인내의 한계를 봤다”며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인한 경찰의 경호 협조 요청에 천막을 500m 떨어진 파이낸스센터 앞으로 임시 이전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서울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로 떠난 오후 2시부터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좌우측 160m 구간에 3m 간격으로 대형 화분 80여개를 설치했다.


세금 낭비라는 지적에도 불구, 서울시가 공화당의 천막 재설치를 막고자 고육책을 꺼내든 것이다.

이에 질세라 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는 지난 2일 “공화당 지도부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이번 주 내로 광화문광장에 천막 당사를 재설치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과 서울시의 극한 대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서울 시민들의 피해는 더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 박원순 서울시장

조 공동대표는 “지난 6년간 광화문광장에는 녹색당을 비롯해 성남시, 4·16가족협의회, 촛불단체 등이 수없이 천막을 설치했지만 단 한 번도 강제 철거한 역사가 없었다”며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는 것은 2017년 3월 돌아가신 다섯 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정당한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가 있었던 날, 헌법재판소서 대규모 탄핵반대 집회가 열렸다.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방어선으로 돌진하면서 경찰과 언론 관계자들이 다수 다쳤고 5명의 집회 참여자가 숨졌다. 사망자에는 급성 심장 이상으로 숨진 김(66)씨, 이(73)씨 그리고 신원 미상자 1명이 포함됐다.

이래저래
세금만 줄줄

아울러 탄핵반대 집회자였던 정씨가 불법으로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수차례 들이받아 대형 스피커가 떨어지면서 반대 집회자였던 김(72)씨를 내려쳤고, 김씨는 그 자리서 숨졌다. 또 다른 김(72)씨는 집회 현장서 병원으로 실려가 입원 한 달 후에 사망했다.

경찰은 김씨가 경찰차벽 인근으로 시위대가 몰리는 바람에 참가자들 사이서 짓눌린 것으로 추정했다.

2014년 4월14일 박근혜정부는 서울시에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건 관련 지원 협조를 요청하며 유족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서울시는 같은 해 7월14일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에 협조하며 광화문광장에 천막 5개동 설치를 먼저 지원하고 나섰다.

범국민적인 지지 속 설치된 세월호 천막과 기습 설치된 공화당의 천막은 시작부터 달랐다. 2015년부터 청와대의 개입이 드러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파행으로 가족대책위의 농성은 장기화됐으나 서울시와의 협의로 농성장을 축소하는 등 재정비에 나섰다. 세월호 천막은 총 14개동을 뒀다. 그중 3동은 가족대책위가 서울시와 협의 없이 임의로 설치해 약 1800여만원의 변상금과 600만원의 전기요금을 물게 됐다.

세월호 천막은 이후 2019년 3월14일 완전히 철거됐다.

녹색당은 2016년 3월24일부터 4월12일까지 20대 국회의원 출마 선거사무소를 설치해 8만원의 변상금을 내야 했다.

녹색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선거 사무소 사용으로 서울시와 잡음은 있었지만, 시민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서울시와 위치 조정을 했고 녹색당은 평화로웠다”며 공화당의 최근 태도와는 다름을 강조했다.


누군 되고
누군 안 되고

이 관계자는 “광장은 아고라인데, 행정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공간으로 사용되는 건 괜찮다고 본다”는 개인적 견해도 덧붙이며 공화당의 폭력적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임을 짚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공화당의 형평성 논란에 대해 “불법으로 천막을 설치했을 때 대상자에 계고장을 일주일 내로 모두 보냈고, 변상금을 빠짐없이 부과했다”고 말했다.

‘무단점용 기간이 47일 이상이어도 불법 철거를 진행한 전례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울시 관계자는 “알다시피 지나가는 시민들하고 멱살잡이하고 싸움하고 욕설하고…. 세월호는 변상만 청구하고 공화당은 왜 철거하냐는 형평성 논리를 세울 수 있지만, 공화당은 광화문을 거의 ‘요새화’시킨 데다 노상방뇨에 흡연, 휘발유 소지 등 시민들의 민원이 엄청 많았다”고 반박했다.
 

불법 철거를 진행하는 구체적 기준은 없지만 서울 시민들에게 가는 피해가 크고 민원이 빗발쳐 강제 철거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공화당 천막 주변에선 그동안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통, 휘발유통 등과 같은 인화물질이 반입돼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컸다. 


지난 5월13일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이순신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 공화당 당원들이 ‘농성장을 몰래 찍는다’고 오해해 시비가 붙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같은 달 31일에는 천막 앞을 촬영하려던 유튜브 방송 진행자와 공화당 당원들이 몸싸움을 벌여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공화당의 불법 천막 농성으로 지난달 16일 진행됐던 U-20 월드컵 결승전의 광화문광장 거리 응원이 무산되기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천막이 설치된 5월10일부터 6월19일까지 시에 접수된 시민 민원은 205건에 달했다. 통행 방해가 140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행 20건, 욕설 14건이 뒤따랐다.

몸싸움에 욕설 난무
수십명 부상자 속출

주요 민원 피해 사례로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욕설하고 소리를 질러 지나가지 못하고 있다” “버스를 타려니까 무섭게 가로막고 있어서 지나갈 수가 없다” “천막서 저녁에 술을 먹고 화단 옆에 담배꽁초를 버리며 욕설을 해서 피해다녀야 한다” 등이 있었다.

이에 공화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원은 조작된 엉터리”라며 “서울시에 3·10태극기참사 진상 규명을 해달라며 전화했는데 서울시가 그걸 민원으로 착각한 경우도 있었다”며 반박했다.

욕설과 폭행 민원에 대해서는 “좌파들이 대표님한테 쌍욕을 하고 지나가지. 우리가 왜 지나가는 행인한테 욕을 하냐”며 “우리 당원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고 폭행할 수 있는 사람들도 없고 좋은 일 하러 나와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발생한 6월25일 불법 천막 철거에 대해서는 “덩치 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하냐”며 “일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수 뿌리고 한 건 있지만, 당원 중 강압적으로 밀쳐지고 맞은 사람이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화당은 박 시장 등이 공화당 천막을 강제철거하는 과정서 용역 깡패와 경찰을 동원했다며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한 바 있다.
 

서울시는 공화당에 행정대집행 2억원과 변상금 220만원을 청구할 예정이다. 박 시장은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조 공동대표의 월급 가압류를 신청하고 끝까지 받아낼 생각”이라며 “철거 과정서 보인 폭력적 행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로 참여한 모든 사람을 특정해 형사고발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공동대표는 이에 “코메디다. 서울시 수돗물에 문제가 있으면 서울 시장한테 월급 가압류 하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행정대집행은 ▲자진 철거 요구▲계고서 송달 ▲대집행영장송달 ▲대집행 ▲비용청구 절차로 이뤄진다.

촛불엔 변상금
형평성 논란?

서울시는 이번 강제 천막 철거에서 대집행까지 절차를 모두 적법히 지켰다. 따라서 행정대집행 제5조·6조에 근거해 집행 대상인 공화당에 행정집행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행정대집행법상 서울시가 보낸 계고장서 철거명령의 철거 의무자는 당 대표 개인이 아닌 당이므로, 조 공동대표 개인에게 비용을 징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우리공화당 천막 국민들 의견은?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우리공화당의 광화문광장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공화당의 광화문광장 천막 처리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시민에 불편을 주는 불법 천막이므로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해야 한다’는 응답이 62.7%로 집계됐다.

‘형평성을 고려해 우리공화당의 주장이 펼쳐지도록 그대로 둬야 한다’는 응답은 26.2%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철거 94.1%·유지 2.8%), 진보층(철거 84.4%·유지 8.2%), 무당층(철거 54.0%·유지 22.8%), 중도층(철거 62.4%·유지 27.6%)서 ‘철거해야 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차지했다.

한편 ‘그대로 둬야 한다’는 응답은 한국당 지지층(철거 25.2%·유지 59.5%)서 10명 중 6명에 달했고, 보수층(철거 41.2% ·유지 45.6%)에서는 팽팽하게 엇갈렸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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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개편안이 시행되는 것은 아직 1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수사관, 지휘부와 일선 검사들은 물론 퇴직 검사들까지 나서서 검찰청 폐지에 반대 중이다. 특히 공소청장을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개혁안에 대해 위헌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대선 기간부터 말이 나왔던 검찰개혁안이 발표됐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고 검찰개혁안에 대해 쉬쉬하던 검찰 내부에서는 이제야 조직을 지키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수사관, 검사, 퇴직 검사, 지휘부 등 모든 관계자들이 검찰 해체가 ‘위헌’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등 늦게나마 조직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위헌” 목소리 지난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의견을 모았다. 다만 시행 시기는 세부 방안 확정 등을 위해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당정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건의한 조직 개편안을 중심으로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듣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마련한 정부 조직 개편방안을 추진했다”며 “개편 방안 중 검찰개혁을 가장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완성은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며 “그간 검찰의 견제받지 않은 권한의 남용과 공정성 훼손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정은 검찰 수사·기소를 분리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각각 신설하며,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두기로 확정했다. 한 위원장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의 제기와 유지, 영장 청구 등을 수행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공소청을 신설하는 한편, 부패·경제 범죄 등 중대 범죄에 대한 수사를 수행하기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중수청을 신설하겠다”고 설명했다. 헌법의 검찰총장 임명 조항과 관련해 ‘공소청장이 검찰총장이 되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정은 구체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개혁추진단을 구성해 당정대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은 “오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의원 입법을 통해 조속히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추석 이전에 개편안을 시행하기 위해 이달 말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며 “정부 조직 개편에 특별히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잘못 인정하지만 폐지는 절대…”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지난 9일 야권에 ‘3대 개혁(검찰·사법·언론)’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검찰, 사법,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곳”이라면서 “3대 개혁은 비정상적인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시대에 맞게 고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며 “절대 독점을 해소함으로써 권력기관은 스스로 절대 부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개혁은 타이밍”이라며 “추석 귀향길 뉴스에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해체되는 검찰개혁안이 발표되자, 검찰 구성원은 이제야 뭉쳐 반발하는 분위기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검찰청 폐지’를 토대로 한 정부 조직법 개편안을 두고 “검찰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지난 8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전날 정부여당이 내놓은 정부 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헌법에 명시돼있는 검찰이 법률에 의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에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서 세부적인 방향이 진행될 것인데, 그 세부적인 방향은 국민들 입장에서 설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반성’을 앞세우면서도 ‘강제 개명’ ‘국민 입장’ 등 뼈 있는 표현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희 검찰도 입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검찰 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검찰 수사관들은 전국 검찰 수사관회의를 열어 달라고 대검찰청에 요청하고 있다. 이대로 사라지나 수사관 A씨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현재 검찰 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내 친구들에게, 내 친척들에게, 내 이웃사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정말 우려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 자신을 8년 차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그는 “저희는 노조(노동조합)도 없고 직장협의회도 없다”며 “검찰이 해체되면 도대체 1년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저는 수사가 하고 싶어 수사관이 됐는데, 앞으로 수사할 수도 없이 제가 8년간 소중히 여겨온 검찰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빼앗겨야 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대검 운영지원과에 조속히 전국수사관회의를 열어줄 것을 요구한다”며 “저희 검찰 수사관들을 위한 논의를, 검찰 조직의 방향을 위한 논의를, 형사법체계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검찰 구성원들끼리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하자 서울고검·대구지검 등 소속 검찰 수사관 수백명이 2022년 4월 검찰수사관회의를 열고 우려 입장을 밝혔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일부 검사들은 ‘원대 복귀’ 희망 의사를 특검 지휘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건진법사 게이트와 통일교 수사팀장을 맡은 부장검사 2명이 팀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특검보에게 “전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다만 특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에 대해 “정식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며 “내심의 의사는 모르지만 아직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퇴직 검사들도 검찰청 폐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퇴직 검사 및 검찰공무원 모임인 검찰동우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여당은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시 살릴 방법은? 이들은 “검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해체 위기까지 맞이하게 된 데 대해 국민 앞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는 것을 넘어 개혁 대상이 된 현실은 검찰 구성원의 과오에서 비롯됐음을 통감하며 국민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권한을 조정하고 조직을 개편하려는 입법부의 결단을 존중하며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에 동참할 것”이라면서도 “개혁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성급한 개혁은 위헌 논란을 야기해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게 할 위험이 크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1948년 제헌 헌법은 수많은 직위 중 유독 검찰총장을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명시했고 이 원칙은 70년 넘는 헌정사 동안 굳건히 지켜져 왔다. 검찰청과 그 책임자인 검찰총장이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닌 헌법적 차원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는 헌법적 기관임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헌법이 인정한 기관의 명칭을 법률로 변경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며 법체계의 위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법률로 헌법상의 법원을 재판소로 바꾸거나 국무총리를 부통령으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은 위헌적 논란을 감수하며 명칭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개혁의 핵심은 명칭이 아닌, 검찰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며 “개혁의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주길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청 폐지 위헌 주장은 헌법 89조16호에서 비롯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공소청장’을 헌법 제89조 제16호의 ‘검찰총장’으로 본다”는 공소청 법안 규정을 두고, “헌법상의 기관을 헌법 하위의 법률로써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89조 16항 발목 잡나 “규정 넣으면 실질 갖출 수도” 그는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라고 하는 조직의 수장이고 검찰청은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는 조직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조직의 명칭만 바꾸는 것도 위헌이고 명칭을 그대로 두고 내용을 바꾸는 것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법 제89조 제16호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로 ‘검찰총장·합동참모의장·각군 참모총장·국립대학교총장·대사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관리자의 임명’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노태우정부에서도 합동참모본부를 국방참모본부로, 합동참모의장을 국방참모의장으로 각각 변경하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같은 헌법 89조에 따른 위헌 지적이 나오자 명칭 변경을 포기한 선례도 있다. 2010년에도 군 지휘구조 개편을 통해 합동참모본부를 합동군사령부로, 합동참모의장을 합동군사령관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위헌 가능성이 있어 개정안을 발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찰청 폐지 역시 검찰총장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헌법상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란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인데 이를 없애거나 두지 않는 건 ‘위헌적 입법 부작위’라는 취지다. 공소청 설치법에서 공소청장을 ‘헌법상 검찰총장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은 하위 법률로 헌법에서 정한 사항을 무력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검찰청 폐지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검찰동인회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나오자 당정은 ‘검찰청이 헌법기관이 아니라 폐지하면 위헌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검찰총장을 헌법상 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검사는 개개인 독립된 행정관청이고, 검찰총장은 그 집합체의 장일 뿐 조직법상 직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총장 명시 헌법 위반? 헌법상 검찰총장이 명시돼있더라도 공석으로 임명하지 않은 채 충분히 신설 공소청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공소청장을 임명하면 검찰총장은 헌법 조문상에서만 존재하게 두고 법적 지위는 없어진 게 되는 것”이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헌법 92조), 국가원로자문회의(헌법 90조) 등 헌법상 사문화된 기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공소청 법안이 준비되면 공소청장 임명에 관한 규정에 ‘헌법 89조 16조의 검찰총장 임명 방식을 준용한다’는 규정을 넣으면 실질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법 역시 법적 미비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 등으로 명시해 근거를 마련했다는 게 근거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