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오일머니 10조 쟁탈전

‘석유왕자’ 왔다 가니 재계가 들썩∼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한국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그리고 5대 기업 총수까지 모두 붙었다. ‘기회의 땅’ 사우디를 향한 세일즈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산이 깔렸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 기업에 10조원 규모의 파격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지난 26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해 파격적인 경제협력 보따리를 풀었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고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의 공식 직함은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이다. 

이유 있는 
극진 예우

그는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연로한 부친을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통해 우버 등 세계적인 혁신 기업의 사실상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첫 방한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관심이 쏠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분야서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사우디는 사우디 최초의 상용원전 사업의 입찰에 한국이 계속 참여해온 것을 환영했다. 

또 양국의 경제 협력 수준 및 교역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상호 투자를 확대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크다는 데 주목하고, 호혜적 투자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상호 투자 가능성을 적극 모색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사우디가 진행 중인 네옴(NEOM) 프로젝트, 홍해 프로젝트, 키디야(Qiddiya) 엔터테인먼트 신도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사우디 비전 2030’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지를 표명했다. 양측은 한-사우디 비전 2030 위원회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가 상호이익이 된다는 확신을 재확인했다. 

서울과 리야드에 비전 오피스(Vision Realization Office) 개설 등과 같은 노력을 통해 한-사우디 비전 2030 파트너십의 실현을 위한 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양국 협력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산업 분야로 다변화하고 확대해나가는 것에도 합의했다. 

사우디 왕세자 방한…이례적인 환대 왜?
정부·기업 MOU 10건…미래차·수소 협력

또 양측은 친환경 자동차, ICT(정보통신기술), 5G(세대) 등 미래지향형 첨단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기로 했다. 특히 사우디는 세계 시장 내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보장하고 대한민국의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요를 충족하며 공급 교란 상황으로 인한 부족분을 대체한다는 약속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내 투자, 특히 에너지·정유 및 석유화학 분야의 투자 추진에 대한 사우디 측 관심을 평가했다. 이러한 관심은 최근 사우디 아람코의 현대 오일뱅크 정유 공장 투자와 SABIC과 SK 간 석유화학 합작투자로 이어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현대 중공업의 라스 알 카이르 지역 킹 살만 조선소 건설 참여 등 사우디 비전 2030 내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기업의 기여를 언급하며, 사우디 내 한국의 투자 건수 증가 및 관련 파트너십을 평가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반 살만 사우디 왕세자

문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양측 간 합의 사항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해 한-사우디 간 공동위원회, 한-사우디 비전 2030 위원회 등 기존 고위급 소통 채널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기로 했다. 특히 올해 신설된 차관급 국방협력 위원회를 통해 국방 분야 협력도 더욱 증진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날 양국 정부는 총 83억달러(약 9조6000억원) 규모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수소차와 연료전지는 물론 수소생산·저장·운송 등 전 주기에 걸친 수소경제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친환경차, 수소에너지, 수소연료전지 등에서 중동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정부 간 MOU 외에도 양국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기업들도 계약과 MOU를 총 8건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10조 규모 계약
노리는 기업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에쓰오일을 통해 2024년까지 6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5조원을 들여 이날 준공 기념식을 진행한 에쓰오일의 복합석유화학시설에 이은 대규모 추가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에쓰오일은 울산시 온산공장서 가까운 부지 약 40만㎡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매입했다.

현대자동차는 아람코와 수소에너지 및 미래차 분야의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사가 국내에 수소충전소를 건설하고 사우디 내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아람코, 사우디 산업투자공사와 함께 사우디 내 선박엔진공장을 설립하는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총 4억2000만달러를 투자해 킹살만 조선소에 엔진공장을 세우게 된다.

SK가스는 사우디 석유화학기업인 APC의 자회사인 AGIC와 사우디 주바일에 프로필렌 등의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예상되는 합작투자 금액은 18억4000만달러다.

GS는 아람코와 석유 및 가스, 석유 화학 등 에너지사업뿐 아니라 건설, 무역 등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 (사진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효성은 탄소섬유 공장 설립 검토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효성과 아람코는 탄소섬유 생산 기술 개발과 적용에 협력해 향후 사우디아라비아나 국내 등에 탄소섬유 공장을 신·증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그 외 효성이 개발한 첨단신소재 폴리케톤, PPDH 등의 화학분야와 ESS, 송·배전 그리드 등 전력분야서도 상호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재계 총수들도 접촉면을 넓히는 데 적극적이었다. 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은 지난 26일 밤 서울 한남동서 깜짝 회동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청와대 만찬을 가졌던 직후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 5명은 이날 오후 7시45분쯤 삼성의 영빈관 격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 도착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대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었다. 대기업 총수들이 이곳에 한꺼번에 모인 건 9년 전인 2010년 7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9년 만에…
총수들 집결

빈 살만 왕세자가 승지원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후 8시45분쯤. 왕세자가 도착하기 수십분 이전부터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 인력과 경찰이 승지원 주변을 정리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사우디 왕실 소속 취재진 역시 승지원에 입장하지 못했다.  

사우디 왕세자와 5대 기업 오너는 승지원서 약 15분간 티타임을 가졌다. 앞서 청와대 오찬에선 짧은 대화밖에 나누지 못한 탓에 따로 마련된 자리라고 전해진다. 티타임이 끝나고 오후 9시20분을 전후해 정 수석부회장, 최 회장, 구 대표, 신 회장 등 4대 기업 총수의 의전 차량이 먼저 승지원 안으로 들어가 이들을 태우고 나왔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들 오너 4명이 나간 뒤 승지원의 주인 격인 이재용 부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 둘이서만 단독 면담을 했다고 한다. 

빈 살만 왕세자와 이 부회장은 사우디가 현재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스마트 시티 사업인 ‘네옴(NEOM) 프로젝트’ 등을 놓고 약 1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스마트시티 및 경제자유구역을 골자로 한 네옴 프로젝트의 규모는 5000억달러(약 600조원)다.

재계 관계자는 “경호 문제도 있고 과거 승지원이 해외 귀빈들을 모시는 영빈관으로 사용됐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승지원서 대기업 총수들이 모인 건 2010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만찬 이후 처음이다. 당시 사의를 표명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뒤를 이을 전경련 회장을 추대할 목적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을 승지원에 초청했다.

당시 만찬에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그로부터 9년 뒤 세대교체가 이뤄진 5대 기업 리더가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나기 위해 삼성 승지원에 모였고, 이 모임을 이재용 부회장이 주재한 성격이 짙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5대 그룹 총수 총출동…한밤 중 회동 내용은?
재산 1246조7375억…세계 1위보다 9배 많아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 기업과 손을 잡은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1970년대 중동 건설 과정서 쌓은 한-사우디 관계를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수소경제·ICT 분야 협력이 가시화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양국은 원자력 기술·안전 분야서도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재계에선 빈 살만 왕세자의 대규모 경제협력 약속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영업이익 규모만 285조원(2018년 기준)인 ‘큰손’ 아람코의 직접투자뿐 아니라, 중동 등 신시장 개척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아람코와 협력하기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봉쇄로 사우디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높아졌고, 비전 2030을 통해 사우디가 국가적 투자계획을 내놓고 있어 다양한 사업이 가능한 기회”라고 말했다. 
 

한 무역학과 교수는 “중동 비즈니스엔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며 “사우디 안팎의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실질적 상호 이득을 끌어낼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리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문과 함께 그의 재산 규모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국내서 이름을 알린 맨체스터 시티 FC의 구단주 ‘만수르’보다 35배 많은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의 재산 규모는 8500억파운드, 한화로 1246조7375억원. 

2019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1위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1310억달러보다 약 9배 가까이 많다. 

상상도 못할 재산
만수르보다 35배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의 재산은 사우디의 사생활 보호법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왕가의 재산과 분리하기 힘들어 억만장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재산가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을 쥐고 있는 그가 한국의 주요 기업체와 회동을 가지며 관심을 표한 이번 방한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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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