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은닉재산 ‘322억+α’ 미스터리

  • 김정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01 11:04:08
  • 호수 1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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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푼도 아니고…어디에 짱박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도피행각이 선명해질 분위기다. 이목은 정태수 회장 일가의 은닉재산에 쏠리고 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정 전 회장의 체납액 징수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정당국은 추적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 정보근씨 ⓒsbs

해외도피 21년 만에 정한근씨가 강제 송환됐다. 한근씨는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한근씨는 지난 22일 송환 직후 정 전 회장의 부고를 전했다. 한근씨는 검찰 조사서 “부친의 건강이 위독해져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더 이상 연명이 어려운 상태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한근씨로부터 정 전 회장의 사망증명서와 유골함을 확인했다.

도피 21년
부친 사망

정 전 회장의 사망 소식과 함께 세금 추징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동시에 한보가의 ‘해외 은닉재산’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 전 회장은 고액·상습체납자 부동의 1위로 체납액은 2225억2700만원에 달한다. 그의 사망이 최종 확인될 경우, 체납의 상속은 자식들이 지게 된다. 다만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게 되면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체납액 징수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간 까닭이다.

그러나 은닉재산의 경우 상속인들의 상속 포기와 관계가 없다. 다만 은닉재산을 찾아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이들의 해외 은닉재산은 332억원이다.


한근씨는 한보그룹 자회사 동아시아가스㈜의 운영자였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한근씨는 지난 1997년 11월 동아시아가스 임직원과 공모해 회삿돈을 빼돌렸다. 이들은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한 루시아석유㈜의 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스위스 소재 은행의 차명계좌에 예치했다. 한근씨는 1998년 6월 해당 혐의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해외로 도주했다.

은닉 자산이 점쳐지는 장소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두 곳으로 정 전 회장이 해외 도피 과정서 거친 국가다. 정 전 회장은 이곳서 도피자금 사용 흔적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5월 지병 치료를 이유로 출국금지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당시 정 전 회장은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정 전 회장은 강원도 소재 학교법인 정수학원 산하 대학교의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정 전 회장은 정수학원의 설립자였고, 당시 해당 대학교의 이사장이었다.

체납 징수 여부…은닉재산에 달려
카자흐·키르기스가 유력 후보지?

그는 집행정지를 승인받고 일본 출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목적지는 달랐다. 정 전 회장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향했고, 이후 카자흐스탄에 둥지를 틀었다.

카자흐스탄서 대학교 교비를 재차 건드렸던 그는 셋째 아들 보근씨와 그의 부인 김씨, 측근 송씨가 역할을 맡은 것으로 짐작된다. 

김씨는 대학의 부학장(2007년 7월13일∼2007년 10월4일)에 이어 2007년 10월5일부터 학장을 지냈다. 송씨는 정수학원의 사무국장(2004년 7월1일∼11월30일)과 대학의 기획실장을 겸직했다. 송씨는 2007년 8월27일 대학의 해외유학생 유치지사장으로 임용됐고, 2007년 10월5일부터 대학 기획실장을 겸했다. 송씨는 동아시아가스 사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이들은 1심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형사1단독 이유형 판사는 2010년 5월13일 업무상 횡령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송씨와 보근씨는 각각 징역 8월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한보 은마아파트

2011년 항소심서도 김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송씨와 보근씨에 대해선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2013년 상고심서 김씨는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보근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카자흐스탄서 간호사 4명을 고용했다. 개인 간호 업무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은 간호사들의 독촉이 있자 김씨와 당시 학장이었던 윤씨에게 대학 교비로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김씨와 윤씨는 간호사 4명을 대학의 교직원이나 계약직, 일용직 직원으로 허위 채용했다. 김씨와 윤씨는 2007년 7월31일부터 2008년 2월15일까지 총 16회에 걸쳐 4200여만원의 교비를 급여명목으로 간호사들에게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국내-해외
도피 지원

정 전 회장은 대학 내 기관 산하에 기구를 설치, 도피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김씨와 윤씨에게 국제교류센터 산하 해외유치지사 설립을 지시했다. 국제교류센터는 외국 대학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설치된 기관이다.

김씨는 2007년 7월23일 ‘카자흐스탄 내 대학과의 협약’을 명목으로 개인 계좌에 교비 2000만원을 송금받았다. 김씨는 이 돈을 다시 동생 명의 계좌로 전액 송금, 미화 2만달러로 환전해 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 김씨는 2007년 8월17일 같은 방법과 명목으로 920여만원을 정 전 회장에게 보냈다.

김씨는 2007년 9월20일 ‘협약 및 해외 유학생 유치’ 명목으로 자신의 명의 계좌에 교비 1250여만원을 송금받았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김씨는 이튿날 자금을 또 다른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뒤, 보근씨의 개인 사무를 수행하는 A씨에게 송금하는 방법으로 개인적 용도에 사용했다. 김씨는 같은 방법을 이용, 2008년 1월4일 ‘학술교류협정 및 홍보활동’의 명목으로 1000만원을 타냈다.

송씨는 2007년 10월1일 ‘해외유학생 유치’ 명목으로 교비 995만원을 자신 명의의 계좌에 송금받았다. 송씨는 즉시 김씨 명의 계좌로 전액을 송금했다. 김씨는 이를 생활비 등 개인적 용도로 소비했다. 김씨는 같은 방법으로 3000만원을 더 챙겼다. 명목은 ‘국제교류협력’(1000만원)과 ‘해외지사 사무실 개소 비용’(2000만원)이었다. 각각 2007년 11월9일과 2008년 3월7일이었다.

학교 이용
자금 마련

2008년 1월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범죄인 인도 청구 협정’을 맺었다. 정 전 회장은 2008년 4월 카자흐스탄 인근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키르기스스탄은 한국과 범죄인 인도 청구 협정을 맺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키르기스스탄서도 대학교를 통해 도피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보근씨가 개인적 용도를 위해 마련한 자금과 정 전 회장의 도피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김씨와 송씨는 보근씨의 개인적 용도에 사용할 자금을 교비로 마련했다. 김씨 등은 2008년 4월22일 ‘해외유치지사 운영’ 등의 명목으로 송씨 계좌로 교비 5000만원을 송금받았다.

송씨는 전액 현금으로 인출한 뒤 수차례에 걸쳐 보근씨의 개인 사무를 수행하는 B씨 명의 계좌로 송금했다. B씨는 다시 보근씨의 지시에 따라 해당 자금을 현금과 수표로 인출해 보근씨에게 전달했다. 송씨는 이 과정서 600만원을 학교에 반환했다. 결국 4400만원이 보근씨의 개인적 용도에 쓰였다.
 

▲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사남 정한근씨

<매일경제>서 입수한 키르기스스탄 법무부 발급 ‘법인 국가등록증명서’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2008년 3월18일 ‘정수’라는 이름의 유한회사를 세웠다. 회사 대표는 송씨였다.

교비로 자금 마련, 해외 활동 주목
검, 다각도 수사…관계자 조사 착수

키르기스스탄서 정 전 회장에게 월급을 받으며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한 측근은 정수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현지 비서실’과 ‘해외유학생 유치지사’였다. 측근은 정수가 금광 관련 정보 수집과 고위급 만남 주선 등을 맡았다고 했다. 한때 정 전 회장과 금광산업에 대한 소문이 돈 적 있다. 정 전 회장이 금광산업으로 재기를 꿈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수는 해외유학생 유치지사 역할을 한 것으로 비춰진다. 정 전 회장이 교비를 빼돌렸던 대학교는 2008년 3월20일 키르기스스탄의 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두 대학은 협정식서 ‘교수 및 학생교류’를 약속했다.

현재 두 대학의 국외협정과 국제교류는 현재진행형이다. 이후 정 전 회장은 2010년 7월 에콰도르로 넘어갔다. 검찰이 확보한 정 전 회장의 위조여권에 그 기록이 있다. 

한편 검찰은 한근씨의 고교 동창이자 캐나다 시민권자인 유씨를 눈여겨보고 있다. 한근씨는 유씨의 도움으로 해외 영주권을 순차적으로 획득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예세민 부장검사는 지난 26일 한근씨의 해외 도피를 도운 혐의로 유씨를 소환 조사했다. 유씨는 한근씨를 중앙아메리카 국가 벨리즈의 시민권자로 위장시켰다. 한근씨는 그 덕에 캐나다 영주권(2007년)을 시작으로 미국 영주권(2008년), 미국 시민권(2011년)을 차례로 따냈다.

여기? 저기?
흔적 추적

유씨는 한근씨에게 단순히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상정보도 제공해줬는데 해외 은닉재산 가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검찰은 유씨가 신분세탁 외에 한근씨의 현지 도피생활에 도움을 준 사실이 더 있는지 추가로 확인할 방침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보 은닉재산 끝까지 추적”

김현준 신임 국세청장은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서 “정 전 회장의 은닉재산을 추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청장은 “정 전 회장이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체납액 징수는 가능한 것이냐”는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김 청장은 “그분들이 해외에 주로 있다”며 “국내 재산을 철저히 환수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 청장은 “한근씨도 체납액이 300억원에 달하고 가산세를 포함하면 굉장한 액수를 탈세했다”는 같은 당 김정우 의원의 질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국내 유관기관과 공조하고, 해외 과세 당국과 협조 체제를 가동해 체납액 징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이날 청문회서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 생활을 하는 고액 체납자는 국민에게 박탈감을 야기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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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