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세버스 연합회장 비리 의혹

정부 손 놓은 사이 ‘제 것처럼’ 사유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세버스연합회 내부가 시끄럽다. 지난해 선출된 회장의 직무도 정지됐다. 해당 회장은 업무상 횡령, 직원 채용·승진 등 백화점 수준의 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 부처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전세버스연합회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곪아버렸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16개 시·도 조합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각 조합서 선출한 이사장들이 연합회의 의사 결정을 주도한다. 1년 예산은 1011억원가량으로, 전국 전세버스 사업자로부터 차량 1대당 1800원의 회비를 받아 충당한다.

9표만 얻으면
연합회 장악

전국전세버스조합연합회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199712월 국토교통부의 허가를 받아 공제사업을 시작했다. 연합회 회원인 16개 시·도 조합에 가입한 전세버스 차량을 대상으로 사고 피해보상 보험 사업을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42000여대의 차량이 가입된 상태로 연간 보험료는 800~900억원에 이른다. 19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지난해 1219일 연합회는 11대 회장 선거를 치렀다. 선거는 시·도 조합 이사장 16명의 투표로 이뤄졌다. 이날 선거에선 9표를 얻은 이병철 경북조합 이사장이 7표에 그친 안영식 경기조합 이사장을 누르고 연합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이 회장은 2013, 2016년에 이어 3번째 선거서도 회장으로 뽑혔다.

연합회 회장은 연합회는 물론 공제조합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공제조합 인사관리 규정에 따르면 연합회 회장은 공제조합 직원의 임면·승진·전보·휴직·직위해제·복직·퇴직 등 총괄적인 인사권을 갖는다. 이 회장은 공제조합의 인사권자이면서 운영위원장, 자문위원장도 맡고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11대 회장 선거 직후 연합회 선거관리위원회서 이 회장의 당선이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연합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회장이 선거 운동 과정서 시·도 조합 이사장들에게 금품을 주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연합회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따를 수 없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안영식 이사장이 제기한 이 회장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에선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법원은 이 회장이 연합회 회장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판단, 그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 회장이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실형 확정 판결을 받은 점, 선거 과정서 선거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점 등을 들어 연합회와의 신뢰 관계가 훼손됐다고 봤다.
 

▲ 국토교통부

이후 연합회와 공제조합 내부서 이 회장에 대한 여러 의혹이 쏟아졌다.

한 공제조합 관계자는 이 회장이 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한 6년 동안 공제조합 내부가 말 그대로 완전히 망가졌다현재 공제조합의 적자는 160억원에 이른다. 자정능력도 완전히 상실돼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채용·승진 인사 의혹= 지난해 10월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국회 정론관서 공제조합의 친인척, 자녀 특혜승진, 인사 갑질 전횡 규탄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512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연합회와 공제조합에 대한 정기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국토부는 부적절한 신규채용 절차를 지적하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지시했지만, 공제조합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토부서 관련자에 대한 징계로 해임을 권고했지만, 공제조합은 자체 운영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경고로 낮추기까지 했다. 당시 공제조합 운영위원장은 이 회장이었다.

모든 인사권
연합회장 손에


공제조합은 인사관리 규정을 통해 직원 공개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공제조합 인사관리 규정 12조에 따르면 공채의 경우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 및 신체검사 등의 전형을 통과해야 한다. 특별채용의 경우에도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치도록 돼있다. 3급 이상은 45, 4급 이하는 35세로 연령 제한(11)도 있다.

하지만 시·도 조합 이사장의 딸·아들·손녀·조카, 지방 시청 공무원의 딸, 지역 파출소장의 아들, 전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채용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연령 제한에 걸려 지원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서 공제조합에 입사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회장 당선됐지만 직무정지
온갖 비리 의혹 터져나와

공제조합 관계자는 “2016년 국토부 자체 감사 처분 요구서가 공제조합으로 전달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해 기자회견 때까지 내부에서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동안 이 회장은 무소불위의 인사권을 쥐고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 회장에 동조하던 시·도 조합 이사장들에게는 공제조합이 신의 직장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정 승진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225일 공제조합은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그런데 승진소요 최저연수에 미달된 직원 5명의 직급이 올라간 것으로 드러났다.

공제조합은 노조와 2년에 한 번씩 단체협약을 맺는다. 지난해 단체협약서 4급 대리 승진소요 최저연수는 6년으로 정해졌다. 대졸 직원이 6년간 근무하면 자동적으로 대리로 승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승진한 5명은 최저 근무연수가 510개월, 52개월, 411개월, 410개월, 26개월 등으로 6년에 미치지 못했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이번에 승진한 직원 중 일부는 부정 채용 의혹을 받던 사람들이라고 폭로했다.

업무상 횡령 의혹= 이 회장은 과거 업무상 횡령 혐의로 실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2013419일부터 201549일까지 8차례에 걸쳐 연합회의 운영자금 11700만원을 업무상 횡령한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지난 131일 확정됐다. 공제조합 상무와 경영관리본부장도 벌금 3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 측은 횡령금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모두 변제했다고 주장했지만, 직무정지 판결을 내린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횡령금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이상 이를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봐야 하고,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이 회장이 횡령금을 전부 변제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당시 대구지검서 수사 중이던 업무상 횡령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서 선임한 변호사 비용을 연합회 돈으로 지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공제조합 내부 관계자는 이 회장은 연합회 통장서 20155월과 8, 10월 등 총 4차례에 걸쳐 6600만원을 가지급금 명목으로 현금 인출해 변호사 두 명에게 수임료로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돈을 임시총회 승인사항인 것처럼 회계를 조작해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3월 임시총회서 보고한 ‘2015년 연합회 세입·세출 결산 보고서에는 변호사 비용 6600만원이 201410월 임시총회 결의 사항에 따른 연합회 회장 환급금인 것처럼 기재돼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610월 연합회 이사 3명이 부부동반으로 78일간 호주여행을 간 비용 1800만원도 연합회 돈으로 부당하게 집행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대구·경남·충북조합 이사장 부부는 20161020일부터 27일까지 호주여행을 떠났다. 당초 이들의 여행비는 여행사를 소유한 충남조합 이사장이 무상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하지만 공제조합 내부 관계자의 말은 달랐다. 그는 나중에서야 6명의 호주여행 일체 비용 1800만원이 연합회 자금으로 대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이뿐만 아니라 세 이사장 부부의 여행은 이 회장이 연합회와 공제조합을 장악하기 위해 진행한 일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정관개정
회유 정황

연합회 장악 시도?= 공제조합 이사장들의 부부동반 호주여행은 이 회장이 연합회 정관을 변경하려던 시기와 겹친다. 이 회장은 2016년 임기가 2번으로 제한된 연합회 정관 규정을 폐지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횟수에 제한 없이 연합회 회장직을 맡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 한 것이다.

연합회 정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임시총회 참석 인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16명의 이사장이 모두 참석할 경우 11명이 찬성해야 정관개정이 가능한 셈이다. 앞서 두 차례의 정관개정 임시총회는 성원 미달로 무산됐다.

2018년에도 친인척 채용 도마에
감사 처분도 무시 ‘마음대로’

하지만 20161028일 제주도의 한 호텔서 진행한 임시총회서 정관개정 안건이 통과됐다. 당시 호주여행을 갔던 세 이사장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대기 중이던 연합회 직원이 건네준 제주행 비행기표를 받고 제주도로 떠났다. 그리고 정관개정 임시총회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부부동반 호주여행을 떠났던 이사장 가운데 한 명은 “20169월 초순경 이 회장 등 몇몇 이사장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그때 제주총회서 정관개정 통과에 협조해주면 사옥 임차보증금을 최우선으로 지원 협력하겠다’ ‘(나를) 차차기 연합회장 선거 단일후보로 지원하겠다등의 내부 협의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정관변경에 대해 조건부 인가를 내줬다. 국토부는 연합회 임시총회서 의결한 회장의 무제한 연임 규정을 2회로 한정하도록 했다. 3번까지만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임 중인 회장의 연임에 대해서는 기존 임기를 포함해 산정하는 등 구체적인 경과 규정으로 조치하고 정관을 다시 변경해 제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연합회는 국토부의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당시 국토부에서 조건부 인가를 내준 이후 정관개정과 관계된 임시총회가 열리지 않았다절차대로라면 이미 두 번 연임한 이 회장은 11대 회장 선거에 출마 자격이 없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11대 회장 선거를 치르기 전 몇몇 이사장들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연합회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연합회 회장으로 당선된 자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당선을 무효로 해야 한다등의 선거관리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됐다.

관리·감독 부실= 연합회의 공제조합의 관리·감독은 국토부서 맡고 있다. 국토부는 3년마다 연합회와 공제조합에 대한 정기 종합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공제조합 인사 문제로 인한 기자회견서 노조는 국토부의 제제 처분은 그때뿐이었고, 철저한 감시체계가 작동되지도 않았으며, 지속적인 관리·감독도 수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연합회와 공제조합서 불거진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운영 상황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빠른 시일 내에 사업부서 차원서 연합회와 공제조합에 대한 점검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제조합 이사장 자리가 국토부 인사의 낙하산으로 채워지면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지난 2005년 공제조합 이사장이 국토부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적이 있다.

당시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공제조합 2대 이사장 신모씨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을 지냈고, 3대 이사장 윤모씨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4대 이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공항운영센터장을 지낸 박모씨 등 초대 이사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건교부(현 국토부) 간부 출신이 맡았다.

국토부는?
“권한 적다”

이후 5대 이사장 신모씨는 국토부 토지재정과·공항환경과 근무 이력이 있고, 6대 이사장 유모씨는 국토부 공항환경담당관 출신이다. 7대 이사장 정모씨는 국토부 항공보안담당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8대 이사장 유모씨는 국토부 항공정책과장 출신으로 알려졌다. 공제조합 이사장은 현재 공석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병철 회장의 해명 “마음고생이 심하다”

이병철 전세버스연합회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여러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이 회장은 업무상 횡령과 관련해서는 이미 법적 처벌을 받았다. 그게 전부다. 그 이후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몇 년 전 일을 가지고 나를 계속 음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러 의혹에 적극적으로 반박

또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도 조합서 직원을 채용하면 본부에선 승인만 해주는 구조라며 과거에는 알음알음 채용하는 게 관례처럼 돼있었다. 현재 공제조합에 있는 직원 70~80%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2016년 국토부 감사 이후 지적사항을 받아들여서 현재는 제대로 채용절차를 밟고 있다.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의혹이 불거지는 것에 대해서는 연합회 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인데, 일부 시·도 조합 이사장들이 (회장직을)직업적으로, 영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하도 여기저기서 투서나 고소·고발이 많이 진행돼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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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