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노동운동, 투쟁과 책임이 함께해야
<박재희 칼럼> 노동운동, 투쟁과 책임이 함께해야
  • 박재희 노무사
  • 승인 2019.07.01 10:21
  • 호수 12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는 노동운동을 말할 때 축구를 예로 들곤 한다. 축구에는 반칙이 있다. 그리고 반칙에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다. 상대방에게 공을 넘겨주는 것이 가장 흔하다. 반칙 정도가 심하면 경고를 받거나 퇴장당할 수 있다. 그래도 축구에는 반칙이 있어야 한다.

양 팀 다 반칙을 하지 않고 진행되는 축구는 상상하기 어렵다. 반칙은 축구 경기의 일부이고 필요할 때 활용돼야 한다. 다만 축구의 기본적인 규칙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도 이와 비슷하다. 노동운동은 기본적으로 법률을 준수하면서 행해지지만, 쟁의행위의 경우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속성상 사용자에게 경제적 손해를 입히게 된다. 다만 법률서 정한 절차를 거쳐 시작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면해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노동운동이 시작부터 끝까지 법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기는 어렵다.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닌 사항으로 쟁의행위를 하거나 근로를 해야 하는 시간에 대정부 투쟁에 나서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위법 사례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합법성 여부만으로 따지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기업의 인수·합병 여부는 단체교섭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인데, 현실적으로는 인수·합병 이후 고용조정이 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들은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사업장 이전 또한 마찬가지로 법률에 부합하지 않아도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다만 법률에 저촉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축구의 반칙과 같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내부적으로 징계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손해배상과 같은 민사책임이나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다. 징계나 민형사 책임의 정도를 정할 때는 노동운동의 특징과 취지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를 줘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축구경기서는 심판이 반칙으로 판정하면 선수들은 그에 따른다. 선수 본인은 가벼운 반칙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경고 처분이 있을 수도 있고, 정당한 수비라고 여겼는데 반칙 판정이 나기도 한다. 팀의 주축 선수가 퇴장이라도 당한다면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것이다. 거칠게 항의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우리 사회서 심판의 역할은 법원이 맡고 있다. 세 번의 재판 기회가 보장되고 형사 소송에는 경찰과 검찰이 개입하고 있다. 민주화가 진전된 우리 사회서 누명을 쓰고 처벌을 받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이나 사정에 따라서 잘못에 비해 너무 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그럴 만한 명분이 있었다는 것과 별개로 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감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투쟁의 명분이 살아날 수 있다.

최근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다. 국회 앞 집회서 경찰관 수십명을 폭행하고 국회 담장을 무너뜨린 것이 문제가 됐다. 다수의 조합원들이 행한 것이지만 위원장이 이를 주도한 책임을 크게 진 것이다. 

민주노총에선 위원장 구속을 노동탄압이라 주장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를 이유로 한 집회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은 노동조합의 대 국회 투쟁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불가피성과는 별개로 형사책임은 져야 한다. 물리적 충돌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는 과정서 참작돼야 할 것이지 형사책임이 조각될 사유는 아니다. 

민주노총에선 사법절차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그에 당당히 임하고 일정한 책임을 짐으로써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로서의 기개를 보여주기 바란다. 근로자들을 위하는 진심이 있다면 사법기관서도 이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