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금호·한진 3세’ 박세창-조원태 평행이론

아버지 잘 만나…다 차려진 밥상 ‘덥석’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은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두 가문의 장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인생마저 묘하게 묘하게 겹친다. 이렇듯 두 가문의 오버랩되는 운명 때문에 세간에서는 ‘평행이론설’도 회자되고 있다.
 

▲ 조현태 대한항공 회장과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경영일선서 물러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얼마 전 별세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두 사람 모두 운수업을 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았고, 칠순이 넘은 나이까지 그룹의 수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4형제라는 점도 일치한다. 그리고 자의반, 타의 반으로 경영권을 내려놓게 된 것까지 닮았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닮은 꼴

그래서인지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인생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일찌감치 후계가 결정된 터라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한 두 사람의 행보는 매우 흡사했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아버지 회사에 입사했고, 2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알짜 계열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적잖은 업적을 냈고 재계의 평가도 비슷하다. 심지어 하루 차로 퇴진한 아버지 때문에 갑작스레 경영 전면에 나서야 했던 예상치 못한 운명까지 서로를 닮았다.

두 사람은 일찍이 후계자로 지목됐다. 박 사장은 금호가의 계열분리 과정서, 조 회장은 한진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미래 항공업계를 이끌 3세 경영인으로 낙점됐다.


단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올해 각각 입사 17, 16년 차로 금호가와 한진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했다. 성장과 위기를 거듭한 회사서의 경영 수업은 그 자체만으로 탄탄한 기반이다.

박 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거푸 인수하며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라섰던 시기를 몸소 경험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 규모는 26조원으로 1946년 택시 회사로 시작한 이래 가장 성장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회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사들인 값을 치러야 했다. 계속 쌓여가는 빚에 인수한 회사를 도로 내놔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고, 그룹의 양대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워크아웃까지 몰아갔다. 재계 순위 7위를 찍은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는 산산조각 났다.

박 사장은 입사 8년 만에 회사의 극단을 모두 경험했다.

조 회장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외형 확장에 힘쓰던 한진그룹이 2000년대 들어서며 내실 경영에 중점을 둠으로써 사세 확장에 따른 리스크는 크게 경험하지 않았다.

일찍이 후계자로…입사 후 행보 판박이
흥망성쇠 모두 경험…자체로 경영 수업

하지만 한진해운의 파산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다. 한진해운은 세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국내 유일의 선사였다. 2008년 리먼사태 여파로 운임료가 호황기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등 해운업 불황이 시작됐고, 용선료로 인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한진해운은 10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한진해운은 지난 2017년 창립 40년 만에 간판을 내렸고 ‘수송보국’을 이루겠다던 할아버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꿈도 꺾였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 사장에 오른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이였다.

회사의 흥망을 두루 경험한 덕에 두 사람은 경영 전반의 이해도와 대처 능력에 있어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박 사장은 사장 취임 2개월 만에 그룹 내 정보기술(IT) 계열사 아시아나IDT를 상장시킨 데에 후한 점수를 받았다. 아시아나IDT는 상장 추진 때 만 해도 공모가(1만5000원)가 희망공모가(1만9330~2만4100원)를 크게 밑돌고 공모 주식수까지 줄여야 하는 굴욕을 맛봤다.
 

상장 철회의 기로에 몰렸지만 박 사장은 이를 강행했고 결국 아시아나IDT는 안정적으로 국내 증시에 입성했다. 지난해 11월 상장 이후 줄곧 상승세를 이어가며, 현재는 아시아나항공의 자금난에 적잖은 보탬이 되고 있다. 아시아나IDT는 올 초 아시아나항공에 5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조 회장의 경영 감각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2009년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를 탈피하자”며 선보인 역발상 전략은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조 회장은 당시 국내 여행객 수요 감소에 맞춰 미국과 아시아서 출발해 인천공항을 거쳐 제3국으로 가는 환승 수요를 공략했다. 그 결과 세계 항공사들이 대부분 적자를 내는 와중에 대한항공은 13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아버지 업고…
경영 감각 합격

조 회장이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2016년에는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이 1조1208억원에 달해, 창사 이래 최대였던 2010년 1조2357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델타항공과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V) 협정 체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업적은 아버지의 후광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입사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는데 오너 일가의 후광 효과로만 해석됐을 뿐 그들의 온전한 경영능력으로 평가받진 못했다.

다만 조직 문화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선 아들이 아버지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0대 젊은 경영인답게 변화와 소통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하다는 게 장점이다. 권위와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두 아버지와는 대조적이다.

박 사장은 아시아나IDT 사장 취임 당시 취임사를 생략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일일이 이메일을 보냈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은 것이다. 근무복장도 자율화시켰다. 이는 현재 그룹 전체로 확대되는 추세다.

앞서 그룹 전략경영본부에 재직할 당시에는 그룹의 문화 개선을 위해 직원들을 상대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룹 내 분위기가 다소 유연해진 데는 박 사장의 공이 컸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조 회장 역시 격식이나 의전을 배제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수습사원 수료식이나 현장직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인 ‘엑셀런스 시상식’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임직원들과의 스킨십을 더욱 늘리는 등 가족들의 오명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조 회장은 올 초 신년사서도 임직원과의 소통을 중점에 뒀다. 조 회장은 “임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겠다”며 “성과에 대해서 정당하게 보상하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두 사람은 최근 혹독한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그룹을 경영하게 됐지만 굵직한 현안과 고민들이 쌓여 있어 부담이 큰 상태다. 

혹독한 신고식
“갈 길 멀었다”

조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노리는 KCGI 등으로부터 대한항공을 지켜야 한다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박 사장은 정든 아시아나항공을 떠나보내고 그룹을 재건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 13일 재계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조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두고 행동주의 펀드와 정면 승부를 벌이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 KCGI가 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15.98%까지 확보한 게 조 회장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선친인 고 조양호 전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며 지분 정리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칼 지분은 조양호 전 회장이 17.84%를 보유, 조 회장(2.34%)·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2.31%)·조현민 한진칼 전무(2.30%)가 각각 3% 미만의 지분을 들고 있다. 

‘물컵 갑질’로 지탄을 받은 조현민 전무를 1년2개월여 만에 경영일선에 복귀시킨 것도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한 조 회장의 결단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자칫 형제간 다툼 등이 일어날 경우 KCGI에 승기를 뺏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조 전무는 꾸준히 그룹 경영 복귀 의사를 내비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부터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을 기획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등 그룹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이에 따른 후폭풍 역시 조 회장이 감당해야 한다는 평가다.

조 전무의 때이른 경영 복귀 소식에 업계·소비자들은 연이어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대한항공 노조와 조종사 노조, 진에어 노조 등도 잇달아 성명을 내고 그의 복귀에 우려를 표명했다. 진에어의 경우 국적이 미국인 조 전무가 등기이사로 올라가 있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상태다. 고객들 역시 조 전무의 복귀에 쓴소리를 건네고 있다. 

업적은 아직 글쎄∼경영능력 의문?
혹독한 데뷔전…굵직한 현안들 산적

조 회장은 상속세 재원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안고 있다. 조양호 전 회장이 남긴 주식의 상속세는 약 2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칼, 대한항공, 한진 등 주요 계열사의 상속일 전후 각 2개월의 주식 평균 종가를 집계한 결과다. 

박 사장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한항공과 국내 항공업계를 양분하던 아시아나항공을 다른 기업에 넘겨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지난해 9월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인 아시아나IDT 대표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혔다. 그간 그룹서 큰 그림만 그려온 터라 핵심 계열사에서 성과를 내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이 지난 3월 경영서 완전히 손을 뗀 만큼 향후 그룹의 재건 작업은 박 사장이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사장은 박 전 회장과 함께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의 지분 50.7%를 보유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경영 성과를 다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은 박 사장의 숙제다. 아시아나항공이 ‘통매각’될 경우 박 사장은 금호고속 또는 금호산업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그간 운수·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적이 없는 만큼 새로운 데뷔 무대를 치러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박 사장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차장으로 입사해 금호타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에서 일해왔다.  

업계에서는 박 사장이 이를 계기로 경영 수업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금호고속·산업 등에서 바로 사장 역할을 수행하기 쉽지 않은 만큼 건설·운수업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빨랐나?
빨리 성과 내야…

재계 한 관계자는 “3세 경영인인 조원태 회장과 박세창 사장 모두 그동안 뚜렷한 경영 성과를 내거나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다”며 “조 회장은 최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정신이 없지만, 박 사장은 일단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마무리한 뒤 움직일 수 있어 시간이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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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