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 북한 공개처형 실상

가족이 보는 앞서 ‘탕!’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북한정권은 마치 수수께끼 같다. 공산 진영 체제를 고수했던 소비에트가 몰락했고, 중국·베트남은 자본주의 국가로 길을 틀었다. 북한만 3대 째 세습·독재정치를 이어오며 완벽하게 당과 군부대를 장악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정권이 계속 유지 가능한 동력은 무엇일까. 북한 정권의 극악무도한 공개처형을 <일요시사>가 분석했다.
 

▲ 전환기정의워킹그룹

공개처형은 북한의 정권 유지 방법 중 하나다. 총살과 교수형 등 정권에 의해 살해된 시체는 토막난 채 소각되거나 암매장 된다. 가족들이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조차 불가한 ‘개죽음’이다. 잔혹함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개처형될 사람의 가족들은 처형에 참관하게 돼있다. 자신의 핏줄이 죽어가는 공간을 망연히 바라봐야 했던 주민들은 그렇게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공포정치

2014년에 북한 최고재판소의 박수종 원로참사는 <민족통신>과의 인터뷰서 ‘공개처형 제도가 있냐’는 질문에 “공개처형은 극히 드물지만, 피고인이 아주 악질적인 사람으로, 주변 인민들이 청원하면 심사해 집행한다”며 주민의 뜻에 따라 아주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5월에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서 북한대표단은 “극히 드문 경우에 피해자들과 주민들이 공개 사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에 그들의 의사를 신중히 고려해 공개 사형하는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일까.

전환기정의워킹그룹(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 이하 워킹그룹)서 발표한 <살해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 경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주장과 달리 공개처형의 원인은 다양했다.


4년 동안 탈북민 610명을 인터뷰한 결과 강도, 남한 영상물을 시청·성매매 알선·음란 영상물 시청 등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죄부터 국경을 넘다 잡힌 불법 월경 반국가 활동· 살인· 국가재산 횡령 같은 중범죄까지 모두 포함됐다. 연구에 참여한 탈북민들은 피고인들이 심각하게 다쳤거나,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고 반죽음 상태로 끌려 나오면서 종종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인륜적인 공개처형의 과정은 불공평했다. 워킹그룹의 보고서는 상당수 탈북민들이 피고인의 출신성분이나 사회적 계층 위치가 처벌 수위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하층민으로 분류된 피고인은 경미한 혐의라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안전원과 보위원들은 승진을 위해 낮은 성분에 속한 주민들에게 더 중한 혐의를 씌웠고 수사성과를 부풀리는 데 이용했다.

인류가 그토록 쟁취하고자 투쟁했던 ‘생명권’은 북에서 권력을 위해 소비되고 있었다.

워킹그룹은 북한의 공개처형 장소는 323건으로 강가와 강변·공터와 밭·시장 언덕·산비탈서 이뤄지는 것으로 발표했다. 공개처형을 참관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수백명 정도서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공개처형을 목격한 가장 어린 나이는 7세였다. 어린 자녀들을 포함, 주민들은 가족의 처형장면을 강제로 참관해야 했다.

성매매 해도 남한 영상물 봐도 처형
총살, 교수형…시체는 소각·암매장

설문 응답자의 83%가 북한서 살던 중 공개처형을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고, 53%는 북한당국의 강제로 한 번 이상 보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사형 집행의 재판은 대개 이뤄지지 않으며, 사형은 자의적으로 집행된다. 이 모든 것이 국제인권규범에 위반한 사항이다.

북한 정권의 독재와 무능은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정권에 의한 살해로 주민을 통제하고 행동을 억압했다. 유엔 회원국들은 지금까지 북한에 사형 적용 통계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사형 현황을 밝히는 것을 줄곧 거부해왔다.


2013년과 2014년에는 공개처형 참관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처형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전화기를 탐지해 임시 압수했다는 진술이 워킹그룹의 보고서에 수록 됐다. 국제사회가 인권 문제로 압박하는 데 북한 정권이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워킹 그룹 이영환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북한이 인권문제에 특히 더 예민한 이유는 “개방적이고 개선가능성이 있는 매력적인 지도자 이미지를 어필하고 정상 국가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실상이 알려지면 기대만큼 비판도 높아지므로 차단하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6월 말 개최될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발표된 워킹그룹의 보고서는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는 계기가 됐다.

<VOA>에 따르면, 지난 13일 미국 국무부는 워킹그룹의 최근 보고서와 관련해 북한 정권이 저지르는 심각한 인권 위반과 유린을 우려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과 별도로 북한에 인권 개선을 계속 촉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서 계속 벌어지는 인권 위반과 유린 행위를 조명하고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많은 조치를 취했다”고 답했다.
 

▲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실제 미국은 지난해 12월, 샘 브라운백 국무부 국제종교자유 담당 대사는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 정권을 압박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미국 국무부의 공개적인 비판에 지난 17일,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참혹한 인권 말살국, 인권 범죄국은 미국”이라며 겨냥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2005년 일본 언론이 북한 공개 처형 영상을 보도한 이후 북한의 공개 처형이 위축된 걸로 보인다"며 "국제적 감시와 압력이 김정일 정권에 미친 영향일 수 있는데,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 시대에 더 줄었는지 늘었는지 변함없는지 비교하려면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비공개 처형의 증감 비교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김이 두려운 것은
정권 따라가는 인권

국제 사회의 관심에도 문재인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 5월, 외신기자 대상 회견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테이블에 인권 문제를 올려놓는 것이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는 북한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북한 인권 자료집 발간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2016년 박근혜정부 때 출범한 통일부 소속기관인 ‘북한인권기록센터’는 1주년이 되던 시기에 간략한 업무 계획만을 내놓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의 향후 계획에는 ‘2018년부터 북한인권 실태보고서를 영어 등 국제기구 공용어로 발간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지금까지 어떤 보고서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 7일 ‘통일연구원’서 매해 발간하는 <북한인권백서2019>는 홈페이지에 게재된 이후 다시 내려가는 웃지 못할 헤프닝이 발생했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내용이 잘못 올라가서 다시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만간 다시 올라갈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연구원이 내린 <북한인권백서2019>는 통일연구원 홈페이지서만 내려갔을 뿐 ‘국가정책연구포털’ 사이트에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서 노골적으로 북한 주민 인권 문제에 쉬쉬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문정권의 ‘북한 눈치 보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압박 효과는?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서 열린 북한인권토론회서 북한자유연합의 수잰 숄티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듯이 북한 주민도 한국 국민”이라며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을 가장 열심히 보살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한국 대통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살해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 보고서는 전환기정의워킹그룹 홈페이지(http://www.tjwg.org)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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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