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금…’ 진짜 보좌관이 본 드라마 <보좌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6.24 09:46:00
  • 호수 1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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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과 맞먹는다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회는 의원 300명으로 구성된다. 의원은 국민들의 투표로 뽑힌다. 의원은 국민들을 대신해 국회서 정치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회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일요시사>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국회는 지금’이라는 제하의 연속기획을 준비했다.
 

▲ ⓒJTBC 보좌관 포스터

내가 하는 일이 드라마에 나온다면?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지난 14일 방영을 시작했다.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드라마는 첫 회 4.4%로 JTBC 드라마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어디까지

이 드라마는 국회서 벌어지는 보좌관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리얼 정치 플레이어들의 위험한 도박. 권력의 정점을 향한 슈퍼 보좌관 장태준의 치열한 생존기’라고 소개됐다.

장태준(이정재)은 극중 송희섭(김갑수) 의원실의 유능한 수석 보좌관으로 등장한다. 중진 국회의원인 송희섭은 닳고 닳은 ‘정치꾼’이다. 드라마 1, 2화는 장태준이 송희섭 밑에서 겪는 어려움과 기지를 잘 풀어냈다.

과연 현실서도 장태준과 같은 능력을 보이는 보좌관이 있을까. 이 의문에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야당 소속 의원실 A 보좌관은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의원과 붙어 다니며 함께 여러 가지를 상의하는 모습이나, 의원실서 하급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부분은 상당 부분 현실과 일치한다”면서도 “다만 드라마다 보니 개인의 능력이 많이 부풀려졌다. 인간미도 있으면서 능력까지 갖춘 완벽한 보좌관, 그런 보좌관은 현실 국회엔 없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실 B 보좌관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캐릭터가 너무 사기적이다. 이정재가 연기를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 장태준이 모시는 중진 의원과 맞먹는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캐릭터에 대한 평가도 장태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주인공인 강선영(신민아)이 대표적이다. 극중 강선영은 변호사 출신의 여초비(여성·초선·비례대표) 의원이다.

여당 의원실 C 비서관은 “능력 있고 당당하고 예쁘고, 딱 꿈속에서 등장할 법한 여성 의원”이라며 “장태준과 연애도 한다. 현역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연애는 신문 1면 감이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데 저렇게 당당한 사람이 있을까.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야당 의원실 D 비서관은 딱 잘라 “강선영처럼 하면 공천 못 받는다”고 말했다.

드라마에는 또 다른 사기급 캐릭터가 등장한다. 장태준 밑에서 일하는 6급 비서인 윤혜원(이엘리야)이다. 윤혜원은 장태준이 지시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송희섭의 일정을 확인하러 기자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장태준의 연락을 받은 윤혜원은 순식간에 일정표를 변경해 위기로부터 벗어난다. 외국어 능력도 출중하다. 


최고 시청률, 국회서 인기↑
임원희 싱크로율 가장 높아

D 비서관은 “저런 비서가 있으면 추천 좀 해달라”며 “그 정도 능력이면 영입 후보 0순위다. 모셔가기 위해 전쟁도 날 판이다. 그런데도 비서라는 점이 드라마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실제 비서는 드라마서처럼 만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윤혜원처럼 일하는 비서가 흔하지는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A 보좌관은 “드라마서 그 사람(윤혜원)이 독일어를 순식간에 번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 나와 함께 일했던 인턴이 그랬다. 내가 봤을 때는 드라마서 그렇게 부풀린 것 같지 않다. 거기다 설정상 기자 출신 아닌가. 기자 출신이면 번역이나 갑자기 뭔가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현실과 가장 일치하는 캐릭터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국회 보좌진들은 현실 보좌관과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캐릭터로 고석만(임원희)을 꼽았다. 야당 의원실 E 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말투며 행동이며 많이 봤던 모습이다. 자세가 구부정하고 피곤에 절어 있는 모습이 현실과 유사하다. 뭔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글맞고 허점이 많아 보이지만, 일은 잘 처리하는 모습도 현실 보좌관과 비슷하다. 우리 의원실 보좌관님을 보는 느낌이었다.”

고석만을 연기한 배우 임원희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일일 보좌관으로 일하며 실제 보좌관의 삶을 체험했다. 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임원희씨가 드라마 <보좌관>에 캐스팅돼 보좌관 수업을 받고 싶다고 했다. 왜 심상정 의원실이냐고 물었더니 ‘일 많은 의원실’을 택했다고 하더라. 이를 어쩌나”라고 적었다. 

대체로 캐릭터의 능력에 대해서는 부풀려진 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지만, 설정이나 장치는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보좌진들의 중론이다.

대표적으로 국정감사(이하 국감) 때의 모습이다. 드라마 2화에서는 국감장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관계부처·언론사 사람들이 총출동해 각 상임위 회의실을 메우고, 각종 자료가 산더미처럼 복도에 쌓여 있는 모습은 실제 국감 때의 그것과 똑같다.

드라마서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감은 시작도 못하고 파행됐다. 현실서 국감은 여러 정치적 논리로 파행되기 일쑤인데 현실 반영이 제대로 된 것이다.

국감 증인을 두고 상임위가 신경전을 보이는 모습도 현실과 닮아 있다. 극중 장태준이 있는 법사위와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이 겹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두고 캐릭터들이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실제 국감서도 조금 더 화제성 있는 증인을 데려오기 위해 각 상임위 간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의도 보좌관과 지역구 보좌관이 서로 갈등을 벌이는 모습도 현실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다.

현실일까


드라마 3화에서는 지역구 보좌관인 오원식(정웅인)이 등장했다. 장태준과 오원식은 모시고 있는 의원의 지역구 공천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다. 쉽게 말해 의원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기 위해 상대방을 제쳐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정치권에선 보좌관 두 명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C 비서관은 “의원실에도 라인이 있다. 어떤 보좌관에게 줄을 대느냐에 따라 우리 수명도 결정된다. 라인의 꼭대기에 있는 보좌관들은 의원의 눈에 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갑수 병원행 왜?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서 대한당 원내대표이자 4선 국회의원인 송희섭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김갑수씨가 기흉 판정을 받았다. 

소속사 에프이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8일 기흉으로 서울 모처의 병원에 입원했다가 촬영 일정으로 하루 만에 퇴원했다.

소속사는 “드라마 촬영 중이라 수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일단 치료는 드라마가 끝난 이후로 미뤄둔 상태”라며 “증세가 심각한 편은 아니어서 일상생활 및 촬영에는 무리가 없다”고 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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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