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 시장 현주소

이용료 오르고
내장객 줄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펴낸 <레저백서 2019>와 유원골프재단이 발간한 <한국 골프산업백서>를 보면 한국 골프 시장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다. 골퍼들의 움직임과 니즈가 어떻게 흘러가고 변화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레저백서 2019>는 매년 발간하는 책으로 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았다. 신국판형, 511쪽에 이르는 이 책에는 특히 골프산업이 본문과 부표를 포함해 244쪽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일본의 통계자료를 함께 수록해 골프업계의 경영지침서로 평가받고 있다.

유원골프재단이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한국 골프산업백서>는 필드 골프는 물론 스크린골프와 프로골프대회, 골프용품, 각종 시설, 유통 등 골프와 관련된 모든 산업군의 시장규모와 가치를 분석했다. 두 기관이 내놓은 자료들만 봐도 한국 골프 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골프장  방문객
8년 만에 감소

한국 프로 골퍼들이 세계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거두면서 미국, 일본과 달리 늘어나기만 하던 국내 골프장 내장객이 8년 만에 감소 추세를 나타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소장 서천범)가 펴낸 <레저백서 2019>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장 내장객은 3584만6000명으로 집계돼 2017년 3625만2000명보다 1.1% 줄었다. 국내 내장객이 줄어든 것은 2011년 이후 8년 만이다. <레저백서 2019>에 따르면 골프인구는 2017년 이래 2년째 감소하고 있다.


2007년 2000만명을 돌파한 국내 내장객 수는 이후 줄곧 늘어났다. 2010년 수도권 이외 지역 회원제 골프장에 감면해주던 개별소비세가 환원되면서 내장객은 잠시 줄었지만, 그해뿐이었다. 2011년 2600만명을 넘어섰고 이후에도 해마다 3~8%씩 늘어나는 증가세는 이어졌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젊은 층의 골프 기피 등이 겹쳐 골프장을 찾는 사람이 꾸준히 감소한 미국,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는 골프에 대한 30~40대의 관심이 높고 골프장이 지속해서 늘어났으며, 스크린 골프의 확산이 필드 수요로 이어진 덕이었다고 레저산업연구소는 분석했다.

골퍼들 움직임과 니즈 변화
2017년 이어 두 번째 백서 발간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골프 열기가 한풀 꺾인 것은 골프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골프장 이용료 상승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린피와 각종 부대비용이 많이 드는 회원제 골프장 내장객이 많이 줄어든 것이 전체 내장객 감소를 이끌었다. 회원제 골프장 내장객은 2017년 1618만9000명에서 지난해 1475만명으로 무려 8.9% 줄었다. 회원제 내장객은 2015년 1775만명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그나마 대중제 골프장 내장객이 2017년 1831만명에서 1931만명으로 5.4% 증가해 전제 내장객의 감소세를 완화했다.

골프장의 혼잡도 지표인 홀당 이용객도 줄었다. 회원제 골프장의 홀당 이용객은 지난해 3684명으로 2017년보다 3.5% 감소했다. 대중제 골프장도 3905명으로 2.4% 줄어들었다.

서천범 소장은 “골프붐이 진정되는 데다 입장료를 3~4% 대폭 인상해 홀당 이용객 수 감소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개장하는 골프장이 올해와 내년에 30개소에 달하면서 전체 이용객 수는 소폭 증가에 그칠 것이나, 수익성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인력, 비용 등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중제 골프장
8년간 17% 인상

골프 대중화라는 말과 역행이라도 하듯 대중제 골프장의 이용료는 계속 인상되고 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의 대중화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다.

<레저백서 2019>에 따르면 대중제 골프장의 주중 이용료(입장료+캐디피+카트피)는 올해 17만9200원으로 8년 전인 2011년보다 무려 17.4%, 토요일 입장료는 13.8%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골프장 이용료 상승률은 2011~2019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10.9%를 크게 상회한 것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는 골프장 이용료가 인상된 것은 골프장 수에 비해 골프 인구가 많은 골프의 ‘초과수요 현상’이 지속되면서 골프장들이 이에 편승해 이용료를 인상시켜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골프장 이용료 중에서 가장 많이 인상된 것은 캐디피였다. 팀당 캐디피는 2011년 9만6400원에서 올해는 12만원으로 무려 24.7%, 회원제는 23.0% 인상되었다. 팀당 캐디피가 2013년부터 일부 고급 골프장을 중심으로 10만원에서 12만원으로 인상되면서 전체 골프장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캐디피는 골프장의 수입이 아니기 때문에 인상이 빨랐다. 현재 가장 비싼 캐디피를 받는 곳은 대중제인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으로 팀당 14만원이다.

골프장의 주 수입원인 그린피도 8년 전보다 크게 올랐다. 대중골프장의 주중 입장료는 8년 전보다 16.9%, 토요일은 12.6% 올랐다. 회원제 골프장 역시 비회원 주중 입장료는 8년 전보다 7.2%, 토요일은 7.6% 올랐다.

골퍼들의 원성이 높은 카트피도 많이 올랐다. 대중골프장의 팀당 카트피는 2011년 7만3900원에서 올해는 8만1700원으로 10.6%, 회원제는 8.7% 인상되었다. 팀당 카트피가 9만원 이상인 대중골프장이 2011년 2개소에서 올해는 56개소 급증했고, 회원제 골프장도 같은 기간에 18개소에서 95개소로 크게 늘어났다. 현재 팀당 카트피가 12만원인 곳은 곤지암, 제이드팰리스CC 회원제 2개소이다.

이처럼 회원제보다는 대중제 골프장의 입장료 상승률이 높은 것은 신규 개장하는 대중제 골프장들이 대부분 고급스러움을 추구해왔고,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한 골프장들이 입장료를 거의 인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골프장의 입장료를 비교해보면 한국 대중골프장의 2018년 주중 입장료는 2006년보다 20.7% 상승한 반면, 일본 회원제 골프장의 주중 입장료는 2017년 5454엔으로 2006년보다 26.3% 하락했다. 한국 골프장은 골프붐으로 입장료가 계속 인상되었지만, 일본 골프장은 버블이 붕괴된 1992년 이후 골프장 공급과잉으로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서천범 소장은 “골프장 홀당 이용객 수가 이미 감소하고 있는 데다 골프장 이용료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골퍼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골프장 경영실적도 악화시킬 것”이라면서 “미국, 일본 골프장처럼 이용객 수가 급감하면서 골프장 산업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골프장 이용료 인상분 중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캐디피에 대한 골퍼들의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캐디 없이 라운드가 가능한 골프장은 91곳으로 늘어나 4년 만에 거의 2배로 늘어났다. 2015년에만 해도 캐디를 동반하지 않고 라운드 가능한 골프장은 51개에 불과했다.

캐디 없이 라운드
가능 골프장  91곳


국내에서 캐디 없이 골프를 칠 수 있는 골프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예 캐디가 없는 ‘노캐디’ 골프장과 골퍼가 캐디 없는 라운드를 선택할 수 있는 ‘캐디 선택제’ 골프장이다. 노캐디 골프장은 48개, 캐디 선택제를 병행하는 골프장은 43개로 집계됐다.

노캐디 골프장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는 골프장별로 캐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졌고, 캐디피에 부담을 줄여 저렴하게 골프를 치고 싶어 하는 골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분석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300개 이상의 골프장에선 캐디를 동반하지 않으면 라운드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캐디피는 골프장마다 다르게 적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선 18홀 기준 평균 12만원이다. 18홀 라운드 기준 그린피가 10만원 미만의 골프장에서 라운드할 경우 1인당 캐디피가 전체 이용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캐디피는 점점 상승해 최근 수도권의 일부 골프장에선 13만원까지 높아졌다. 이 때문에 캐디가 골프 대중화의 걸림돌이라는 따가운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에 캐디를 동반하지 않고도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그 대안으로 ‘마샬캐디’ 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골프 경험이 풍부한 50대 이상의 퇴직자들이 주로 맡는 마샬캐디는 남여주CC, 벨라스톤CC, 아세코밸리CC 3개 골프장이 시행 중이다.

마샬캐디는 전동 카트 운전과 남은 거리 알려주기 등 원활한 경기 진행을 이끌고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공을 닦아주거나 그린 경사를 읽어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캐디피는 절반 가까운 7만원을 받는다.


서천범 소장은 “벨라스톤 CC는 마샬캐디 도입 이후 내장객 증가로 수입이 늘어났다”면서 “골프장과 골퍼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지난 5월15일 유원골프재단이 발간한 <한국 골프산업백서>에 따르면 한국 골프 시장은 지난 2년간 1조6538억원이 증가해 연간 7%씩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발간된 이 백서에서는 필드 골프는 물론 스크린골프와 프로골프대회, 골프용품, 각종 시설, 유통 등 골프와 관련된 모든 산업군의 시장규모와 가치를 분석했다.

국내 골프시장
규모 12조 넘어

직접 플레이하거나 관람하는 갤러리와 TV 시청자들을 ‘본원시장’, 골프용품과 골프장운영, 시설관리 등을 ‘파생시장’으로 구분했다. 본원시장은 전체의 39.8  %인 4조9409억원, 파생시장은 60.2%인 7조4619억원을 차지했다. 본원시장 중에서는 관람시장(19억원)에 비해 참여시장(4조9390억원)이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참여시장에서는 필드 골프가 2조8382억원(57.4%)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스크린골프는 1조2819억원(25.9%), 실외연습장과 실내연습장이 각각 6344억원(12.8%), 1003억원(2%) 규모다. 필드 골프와 더불어 스크린골프의 비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파생시장은 골프용품이 5조4194억원(72.6%)으로 가장 컸고, 이 가운데 유통 분야가 무려 3조5200억원으로 65%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설운영시장 7949억원(10.7%), 골프관광시장 5761억원(7.7%), 골프시설개발시장이 3300억원(4.4%)으로 뒤를 이었다.

골프연습장 이용자 20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비 지출 행태는 필드 골프의 경우 ‘연간 6~  10회’이용한다는 응답이 22.7%로 가장 많았다. 스크린연습장은 ‘연간 31회 이상 방문했다’는 응답이 39.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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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