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7000억 여야 ‘추경 게임’ 내막

밀고 당기고 버티고 ‘명분 싸움’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회 공전이 두 달 넘게 지속되는 와중에 추가 경정 예산안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추가 경정 예산안은 4월 말 국회에 제출됐으나 아직까지 심사 계획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에 국회 복귀와 추경 처리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자유한국당은 ‘총선용 예산’이라며 심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 식물 국회에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자유한국당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추가 경정 예산안이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여는 출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추가 경정 예산안(이하 추경)의 중점 투자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미세먼지 대응 등 국민안전에 투자되는 2조2000억원과 선제적 경기대응 및 민생경제 긴급지원을 위한 4조5000억원으로 규모가 총 6조7000억원에 달한다. 민생 추경 처리에 협조해달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어필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경제 폭망에 대한 반성’을 위해 경제 청문회부터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가당착
실효성 없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국회서 열린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제로페이, 탈원전 가속 예산 등 이 정권의 고집불통 정책들을 추경으로 더 확대시킨 것 같다”며 정부의 추경안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황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전 세계가 유례없는 고용 풍년인데 우리만 마이너스 성장”이라며 “경제가 위기에 빠진 원인은 이 정권의 좌파경제 폭정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며 정부의 경제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당의 말대로 한국의 경제 성장은 부진한 상황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계속해서 몰락하고 있고,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무역 분쟁이 격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경기 국면에는 정부가 빠르게 재정 확장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였던 벵트 홀름스트룀과 장티롤은 거시적 불확실성이 클 때는 국채라는 안전자산이 기업의 부담을 덜고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추경은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일각에선 지금부터 추경안을 심사해 통과시킨다 해도 경기부양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늦어질수록 하반기의 경기 반등이 더 어려워지는 건 필연적 결과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추경 처리를 일관적으로 거부하면서 총선용 예산에 이어 ‘경기 대응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맞서고 있다. 정부를 지탄하기 위해 경제 위기론을 꺼내면서 경제 위기에 가세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를 걱정하면서 추경을 거부하는 한국당의 모순에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두 달 넘게 공전…추경 카드 급부상
정상화 여는 출구? ‘그러다 말겠지’

한국당이 추경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적자 추경이 경기에 도움이 되는지 회의적이라는 입장과 제로페이 등 실효성 없는 추경, 총선용 추경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정부는 미세먼지 대응 추경서 경기대응, 국민안전 등으로 확대해 경기대응 예산을 전체 추경 규모의 3분의 2가 넘는 4조5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작은 추경 규모로 정부는 GDP 성장률을 0.1% 제고를 목표로 했지만, 현재는 성장률이 정부 목표치보다 한참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4조5000억원으로는 급변하는 경기하강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서도 확실한 경기부양을 위해 GDP의 0.5% 수준인 9조원 내지 10조원 투입을 정부에 권고했다.
 

▲ 국회 의안과 앞의 성과별 결산보고서

나 원내대표는 추경안 6조7000억원으론 국내총생산(GDP) 부양 효과가 0.03∼0.04%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무슨 경기부양을 할 수 있겠냐는 비관론을 내세웠다. 이번 추경이 경기 부양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나 원내대표의 의견에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예상한 경기부양 효과가 적으면 야당은 추경 규모 증액을 공격적으로 요구하고, 잘못된 예산을 꼬집고 나서야 한다. 그게 야당의 역할이자, 제1야당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야당이 경기가 회복되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거라면 비판하더라도 도와줄 건 도와주셔야 한다”며 “본인들이 얘기하는 것도 0.02%밖에 안 되더라도 그만큼이라도 되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4당 합심
정상화 신호?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심성 예산이라는 비판에 대해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을 때 경기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고, 추경을 아예 안 하게 되면 경제성장률이 상당히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인 건 사실로 보인다”며 추경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국가채무비율은 어떤가. 기획재정부는 2020년 예산안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고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0%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가채무비율은 미국 107%, 일본 238%, OECD 국가 평균은 113%에 육박하고, 유로존 국가는 60%를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국가별 산업구조와 경제구조가 저마다 다르고 인구구조도 달라질 수 있기에 정확한 국가채무비율은 이론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렵다.

기재부의 일부 관료들은 40% 혹은 45%를 적정 국가채무비율로 보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40%까지도 괜찮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통일 변수와 저출산 등 경제를 움직일 변수가 한국과 외국이 달라 수치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단순히 국가채무 숫자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채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한국당은 수치만으로 추경안을 반대할 게 아니라 정부가 국채 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한 후 추경안에 대해 지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경기는 늘 변동이 있기에 추경은 필요한 요소다. 비단 이번 정부뿐 아니라, 지난 정부서도 본 예산을 설정 후 매해 추경을 해왔다. 본 예산이 편성되고 실제 예측했던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경기는 흘러왔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개 10조원 내외로 추경하는 형태가 반복됐다.

민생용?
총선용?

지난 2009년 지방선거를 앞둔 이명박정부는 28조4000억이라는 역대 최대 추경을 편성했다. 또 총선을 앞둔 지난 2015년 박근혜정부는 11조6000억원으로 지금 두 배 규모의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여야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경기 하락 리스크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경제의 어려움을 정치 공방용으로만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당은 한 정권의 단기적 시안보다 국가의 미래적 시안을 중요시 할 필요가 있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추경을 보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들이 있고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들도 있고 중소상인들에 대한 지원들도 있다”며 “그야말로 경기 활력과 수출을 위한 예산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한국당의 총선용 추경에 대한 주장을 반박했다.
 

추경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대량 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한 경우 편성할 수 있다. 나 원내대표는 “불순한 추경예산을 말끔히 걷어내겠다”며 삭감해야 될 대표적인 예산으로 제로페이(76억원)와 탈원전 예산 등을 거론하며 ‘독소 예산’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국당이 지적하고 나선 제로페이와 탈원전 예산 외에도 생애주기별 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한 청년 추가 고용장려금 2883억과 실업자 증가와 구직활동 증가 추세에 대응한 실업급여 8214억원이 편성돼있다. 또 저소득층과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보강을 위한 1238억도 추가로 편성됐다.

먼저 굽히긴 싫고…
무조건 밀고 막고∼

민생과 동떨어진 추경안이라면 한국당은 국회 파행을 이끌어갈 것이 아니라, 본 예산 심사 때 실효성과 필요성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이제 한국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야 사이에 아무리 다툼이 있다 해도 국회 내에서 싸워야 한다”며 “당리당략을 버리고 민생을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한국당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서 한국당과 절충점을 찾았지만, 한국당이 추경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한 경제실정 청문회를 요구하면서 또다시 협상에 난항을 겪게 됐다. 한국당은 경제 악화의 배경에 문재인정부의 정책 실패가 있다고 주장하며 원인 파악과 더불어 추경의 필요성을 따지려면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상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합의 불발 시 국회 단독소집을 포함한 결단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미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번 주말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바미당 단독으로 역할을 하겠다”며 “단독소집을 포함해 국회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행동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미당 의원 28명만으로는 국회 임시국회 소집 요건인 재적의원 4분의 1을 충족할 수 없지만, 국회 정상화를 원하는 다른 정당과 연대를 하겠다는 걸로 해석된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는 국민 모두의 바람이라 야당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한 의지를 보였다.

무엇이 문제?
대화 급선무

한국당의 연이은 ‘경제 청문회’ 요구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당과의 국회 정상화 합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추경 논의를 앞두고 한국당이 대비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국회 정상화가 이뤄지면 가장 먼저 다뤄질 이슈는 결국 추경”이라며 “한국당이 추경 언급을 시작한 것 자체가 국회 정상화 신호”라고 말했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지난 추경 보니…

2009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생안정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28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국회에 요청한 바 있다. 2013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입결손 충당과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국회에 요청했고, 이 추경은 제출된 바로 다음 날 상정됐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2017년엔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45일이 걸렸고, 지난해 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이 통과되는 데도 역시 45일이 걸렸다. 두 해 평균 약 7조원대 추경으로, 이명박·박근혜정권 때의 추경예산에 비하면 훨씬 소규모라 할 수 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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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