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진채화의 거장’ 박생광

인생 그대로 자연 그대로 예술 그대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구미술관이 색채의 마술사로 불렸던 고 박생광의 회고전을 연다. 대구미술관은 매년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환기의 전시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 해질녘, Sunset, 1979, 수묵채색, Ink&Color on paper, 137x140cm

박생광 작가는 진채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1980년대 단색조의 모노크롬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때, 박생광은 민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 이미지들을 단청의 강렬한 빛깔로 그려내 한국 화단을 놀라게 했다.

독자적 화풍

그는 1980년대 초반 민화와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전통적 이미지를 화폭에 담았다. 오방색을 사용한 강렬한 색채와 수묵, 채색을 혼합한 독창적 기법으로 한국 화단에 새로운 바람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생애 말까지 여러 걸작을 쏟아내며 한국 채색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생광의 작업세계는 크게 유학 시기, 모색 시기, 실험 시기, 독창적 화풍 정립 시기로 나뉜다. 이번 전시는 박생광이 독창적인 화풍을 찾기 위해 분투하며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시기부터 그대로 화풍전개 시기까지 총 162점의 작품을 조명한다.

그대로는 박생광의 한국식 호다. 인생 그대로, 자연 그대로, 예술 그대로라는 본연의 삶을 체험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대로 화풍은 박생광만의 독자적인 채색화풍을 일컫는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박생광의 드로잉이 다수 소개된다. 박생광의 탐구정신과 조형 감각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생전 에피소드, 작품세계 등을 담은 미술계 인터뷰 영상도 상영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김환기 이어 대규모 회고전
전통 이미지, 강렬한 색채로

전시는 박생광이 집중해서 그렸던 소재와 주제별로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토속적인 한국성과 무속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작업을 재조명하고 그가 정립하고자 했던 한국 정체성이 담긴 회화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민화에서 찾은 소재에서는 자연 속 소재인 동물, , 식물을 그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꽃과 여인, 민족성에서는 그가 주로 그렸던 모란, 이브2, 단군 등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민족성의 연구주제를 담은 섹션에서는 청담대사, 토함산 해돋이 등 불교, 민속적 소재인 탈, 한국 전통적 소재들을 주제로 한 작품과 피리 부는 노인이라는 뜻의 노적도를 만날 수 있다.

노적도는 박생광이 후두암 선고를 받고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 속 노인은 작가 자신이다. 투병 중에도 대작의 역사 인물화를 그린 박생광은 삶의 모든 한을 내려놓겠다는 의미로 작품 속에 자신을 해학적으로 담아냈다.
 

▲ 토함산 해돋이, 1980년대, Ink&Color on paper, 74.5x76cm

무속성서 민족성 찾기에서는 박생광의 1980년대 대표 작업인 무속 시리즈 중 13점을 공개한다. 박생광은 기층민의 삶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무속신앙에 집중해 굿, 무당, 부적 등의 요소를 화면에 담았다. 이 시리즈를 통해 그랑 팔레 르 살롱-85’에 초대되는 등 게르니카를 완성한 피카소에 비견되며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풍경과 드로잉을 주제로 한 전시장에서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그린 풍경과 유물, , 동물을 소재로 한 드로잉을 대거 전시한다. 관람객들은 풍경 드로잉을 통해 박생광의 화풍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미공개 드로잉

전시를 기획한 김혜진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생광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있어 재해석할 필요가 있는 의미 있는 작가라며 전시와 더불어 대구 오페라하우스와의 렉처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박생광의 삶과 작업세계를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1020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박생광은?]

▲ 1904년 경남 진주 출생
▲ 1923(20교토시립 회화 전문학교 입학 
▲ 1932
(29도쿄 긴자도호에서 개인전, 대상에 대한 치밀하고도 사실적인 묘사 방식은 이후 화풍에 많은 영향을 미침
▲ 1945(42귀국
▲ 1954(51한라산을 그린 <녹담만설> 제작
▲ 1958(55) <월벽> 제작, <월야>와 같은 실험적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서 초기 추상적인 느낌을 동반하고 있음. 강하게 나누어진 흑색 선면과 백자처럼 상징화된 달의 주제표현이 눈에 띔
▲ 1967(64) <여의주> 제작. <한라산>과 함께 이 시기 대표적인 특징을 엿볼 수 있음
▲ 1978(75)이때부터 진정한 민족적 소재를 찾아 나서게 됨.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해 민족사에 대한 서적을 탐독함
▲ 1985(82대표작 <전봉준> 완성. <역사의 줄기> 등을 제작
▲ 향년 82
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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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