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행보’ 황교안의 한계

권위는 벗었지만 그다지 친숙하진…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파격적 행보로 청년과 여성층을 공략하고 나섰다. 청년 작가와 함께 에세이집을 출간해 청년들에게 다가가고, 워킹맘 당원들을 일일 키즈카페에 초청하는 등 외연 확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낡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본격적으로 중도층을 겨냥한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 대표는 ‘색’이 뚜렷한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 그가 가진 한계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기독교’와 ‘공안’은 황 대표의 핵심 키워드다. 황 대표는 제23회 사법시험을 합격한 후, 검찰서 ‘공안통’으로 경력을 쌓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그의 정치 행태 근간에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두 키워드는 황 대표에게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실

'공안검사'와 '독실한 기독교인'은 보수 대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한 동시에 황 대표의 한계점이기 때문이다. 당 내부 상황마저 녹록지 않다. 내년 총선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승리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황 대표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성과다. 한국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황 대표의 고민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보수진영 대권주자의 기반을 다지며 당의 결속을 끌어냈다. 하지만 장외투쟁 국면서 터져나온 ‘막말’ 논란을 진화하는 데 실패하면서 중도층 확장엔 한계를 보였다는 평도 함께 듣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황 대표는 외연 확장을 위해 여성과 청년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는 눈치다.

실제 지난 5일 이후 황 대표의 일정 대부분은 여성과 청년 관련 행사로 채워졌다. 황 대표는 지난 5일에 ‘국회와 함께하는 여성가족포럼’과 ‘황교안×2040 미래 찾기 토크콘서트’에 연달아 참석해 여성과 청년에 대한 포용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를 다 끝내도 청년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중도층은)오라고 끌어들여 봐야 오지 않는다. 스며들어 가는 노력이 우선”이라며 중도층을 공략하고자 하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당이 주최한 일일 키즈카페에서는 육아와 보육 정책의 부족함을 꼬집고, 워킹맘들의 고충을 달래기도 했다. 이날 황 대표는 ‘국민 할배’로 등극했다는 평을 들으며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황 대표의 적극적 구애에도 여성과 청년 등 중도층은 크게 동요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인의 일시적 ‘이벤트’에 속을 순진한 유권자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과 여성이 다가갈 수 있도록 당 전체의 ‘이미지 변신’ 작업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한국당이 젋은 피 수혈로 이미지 쇄신을 꾀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96년 15대 총선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과감한 물갈이 공천으로 원내 1당을 차지했다.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서 “나는 개혁성과 참신성에 공천의 주요 기준을 뒀고, 이에 따라 개혁 지향적인 참신한 젊은 인재들을 대거 영입, 공천 물갈이를 단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는 지난 5월 경북 영천 은해사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타 참석자들과 달리 합장을 하지 않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대한불교조계종은 “개인 신앙을 우선하려면 공당 대표 자격은 내려놓으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보수 극우 성향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의 종교에 대한 자유를 억압하고 강요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종교 갈등으로 번지자 황대표는 “제가 미숙하고 잘 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서민 속으로’ 이미지 변신
진정한 포용력 지속이 관건

황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야간 신학대에 다녔고, 어릴 때부터 다녔던 목동 성일교회에선 전도사를 지냈다. 현재는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 교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성소수자를 아우르기 위해 차별 금지 법안에 찬성할 수 있을까. 이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섣부르게 황 대표의 정체성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면, 그를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 지지층들이 대거 이탈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확고한 황 대표의 종교관이 자칫 보수 기독교의 편향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기독교인으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으로 종교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선 불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주요 사찰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합장하고 참배하는 모습을 보였고, 불교계 인사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여러 종교를 포용하는 데 성공했다.

황 대표가 보수 교회세력을 거스르는 행보를 보이긴 어렵더라도, 타 종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필수적인 대목으로 보인다.

한국당 정용기 의원의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낫다’ 발언과 한국당 한선교 의원의 ‘걸레질’ 발언,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에 대한 민경욱 의원의 ‘천렵질’ 발언 등 한국당의 막말 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황 대표는 정 의원의 막말이 부적절했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막말로 한국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황 대표는 “항상 국민 눈높이서 생각해 심사일언해달라”며 의원들의 막말을 저지하고 나섰다.

이에 당 내부 강경파 사이에선 황 대표가 여권과 언론의 ‘막말 프레임’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친박(친 박근혜)계 홍문종 의원은 TBS서 “황 대표께서 심심하면 사과를 하시고, 또 우리 보수우익의 가치라든가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랄까, 이런 분들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다”고 말하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후 홍 의원은 집회현장서 한국당 탈당 후 대한애국당(이하 애국당) 입당을 시사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자리서 홍 의원은 “곧 한국당 평당원 수천명과 탈당 선언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애국당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당내에서는 홍 의원의 탈당 시사 발언 후 계파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한국당 내부에서는 지도부가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는 제왕적 당 대표제, 제왕적 원내대표제를 운영하고 있다”며 당 지도부를 겨냥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이 바라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하루 종일 지역구서 주민들과 악수하고 다니는 것인가. 아니면 국회는 올스톱시켜놓고 이미지 정치, 말싸움에만 매몰된 것인가”라며 당 지도부의 최근 행보에 각을 세웠다.

내분?


당원들의 엇박자로 내분이 전개되면서 황 대표의 국민대통합 시도 이전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막말 정치와 식물 국회로는 중도 민심을 얻기 어렵다. 콘크리트 지지층 30%로 내년 총선서 승기를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황 대표가 모를 리 없다. 중도를 껴안고자 하는 황 대표가 어디까지 포용력을 넓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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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