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방송인의 강의, 대학교수의 강의
<박재희 칼럼> 방송인의 강의, 대학교수의 강의
  • 박창민 기자
  • 승인 2019.06.17 10:14
  • 호수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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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방송인의 강연료가 논란이 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방송인은 시간당 수백만원의 강연료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그 정도 강연료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 지나치게 고액이라는 평가도 있다. 강연료는 협의해 정하는 것이지만 세금으로 충당하는 강연료로는 과도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 같은 논란을 보면서 문득 다른 유명인들의 강연료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경영전략 분야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는 시간당 10만달러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1만달러 안팎이라고 한다. 국내서는 혜민스님이나 김미경 강사가 시간당 500만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제 막 강사로 입문한 이들은 시간당 30만∼50만원, 상당한 경력과 인지도가 있는 프로강사들은 시간당 최대 150만원까지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교수들은 얼마의 강의료를 받을 수 있을까? 국립대학에 소속된 교수는 시간당 30만원, 사립대학에 재직하는 교수는 시간당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서 그렇게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당 30만원은 초보 강사들의 강의료에 불과하다. 시간당 100만원은 일반적으로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교수가 수십년간 쌓은 지식을 제공하는 대가로는 부족할 수 있다. 만약 한국 대학교수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돼 강연자로 나서더라도, 대학을 떠나지 않는 한 강의료 상한선은 시간당 100만원인 셈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는 강의뿐 아니라 자문, 평가, 심의 등도 상한선 규제를 받으므로 지식을 제공하는 거의 대부분의 행위에 대한 보수규제가 있는 셈이다. 

법률에 의한 강의료 등의 규제는 단지 교수의 강의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재화나 용역에 쓸 수 있는 금액에 상한선을 두면, 당연히 그 이내서 구할 수 있는 재화나 용역을 쓰게 된다. 강의료가 100만원으로 제한돼있으면, 강의의 질을 따지기에 앞서 100만원 이하로 제공될 강의료를 수용해줄 강사를 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교수가 적은 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식을 제공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학 내외를 불문하고 다같이 적게 받아도 납득이 안 될 텐데, 대학에 소속돼있다는 이유로 교수만 적은 보수를 준다면 기분이 상해서라도 강의나 자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유능한 대학교수의 식견과 통찰이 관련 연구자나 산업계에 전달되는 길은 좁아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지식만 제공될 공산이 크고 지식의 유통을 막아 사회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특히 대도시가 아닌 지역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교수들은 대개 특별시, 광역시 지역에 많이 몰려 있고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강의를 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강연료 상한선으로 인해 적절한 대가를 지급하기 어렵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는 교통비와 숙박비를 따로 줄 수 있게 돼있지만, 이는 실비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의 강의료 상한 규제는 강연료를 빙자한 금품수수를 막고자 하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문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역 간 연구환경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향후 강의료 상한 규제를 완화해 부작용을 감소시켜야 한다. 

유명 가수가 무대에 노래 3곡을 부르면 수백만원의 보상이 주어지고, 논란이 있을지언정 방송인의 90분 강의에 1000만원대의 강연료가 책정됐다. 오랜 기간 학문을 갈고 닦아 학계, 산업계 또는 일반 대중에게 초대를 받은 교수의 강의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재평가해 지식의 유통과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