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이 꺼내든 ‘신북풍’ 시나리오

또 꺼낸 음모론 레퍼토리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남북관계는 선거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단골 요인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를 ‘북풍’이라 일컬으며 선거서 북한을 제3의 변수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는 평화의 북풍으로 빠르게 물들었다. 이후 불어온 북한발 순풍은 지난 지방선거서 여당의 압승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은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했고 국민들은 평화 정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2020 총선서 북풍은 여당에게 ‘순풍’일지 ‘역풍’일지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하 국정원장), 김현경 MBC 북한전문기자의 비공개 회동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新)북풍’을 모의하려는 시도라며 공세에 나섰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신북풍은 남북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 기류에 기인한다. 과거의 북풍과 결이 다른 신북풍은 총선에 어떤 바람으로 불어올까.

양정철-서훈
만남 목적은?

최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만남을 두고 한국당이 거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국정원 관권선거 의혹 대책위 회의서 “대한민국 최고 정보권력자와 민주당 내 공천실세 총선전략가의 어두운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선거공작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며 “북풍 정치가 내년 선거서 또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고 신북풍의 기획설을 주장했다.

이혜훈 정보위원장(바른미래당 소속)은 “지금 대북 정세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국정원장이 여당의 총선 기획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네 시간 반 동안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환담이나 나누겠냐”며 둘의 만남은 신북풍을 계획하는 자리였을 것이라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작년 북미정상회담의 여세로 여당이 집권에 성공했기에 회담서 다음 총선의 신북풍을 기획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석한 김 기자는 “양 원장의 귀국 인사를 겸한 자리였고, 총선 이야기는 없었다”며 한국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양 원장은 “북한전문기자가 있는 자리서 북풍을 기획했다면 MBC가 희대의 특종을 했을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양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오랜 지인이다. 2년 만에 가진 사적인 자리에 기자가 동석했다. 현직 언론인이 있는 자리서 총선과 같은 부담스러운 얘기가 오고 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식사자리에 대북담당 기자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의심을 하는 것과 선거 전략을 일반 대중 식당서 논의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서 “언론을 무시하는 행위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이라며 “북풍은 한국당 전신들이 해왔지 않느냐”고 한국당에 역공을 가했다.

순풍으로?
역풍으로?

북풍은 한국당의 전신 정권들이 활용해왔던 변수다. 과거 보수 정당들은 국가 안보 불안을 증폭시켜 보수 진영을 결집했다. 군사 독재 시절엔 ‘북한의 위협’이라는 한반도의 ‘숙명’을 권력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안기부 등 분단 기득권 세력과 함께 국민 안보 불안을 극대화시켜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데 성공했다.
 

▲ 서훈 국가정보원장 ⓒ국회사진취재단

국정원 선거 개입 역시 한국당의 전신 정권서 벌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18대 대선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조작이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 조직 정점서 이 활동을 지시하고 범행 실행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한국당의 전신 정권들은 굵직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색깔론’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한국당의 신북풍에 대한 의혹 제기가 자신들의 과거를 잊은 무분별한 의혹 제기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남북관계 선거판 뒤집을 단골카드
내년 총선 멀었는데 군불때기 왜?

한국당의 신북풍 의혹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한국당은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을 6·12북미정상회담으로 꼽으며,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한국당의 전당대회와 같은 날짜에 열리는 것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형성되면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한국당 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서 “지난 지방선거 때 신북풍으로 재미를 본 정부 여당이 내년 총선서 신북풍을 계획한다면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며 신북풍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후 여야 정치권에선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이라며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한국당의 주장을 ‘과대망상’이라 비꼬았다. 바른미래당 김익환 의원은 “북미회담 날짜 정하는 데 한국당 전당대회의 일정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황당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당이 수구 냉전식 사고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초대형 평화 바람이 지난 지방선거서 여당 압승에 일조한 건 사실이나 북미정상회담은 양국이 조율해서 정한 날짜다. 미국이 자국의 이권과 무관한 일개 야당의 당 대표를 뽑는 선거를 위해 정상회담 일정을 맞춘다고 주장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 지나친 비약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계속 북풍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대망상"
확대 경계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 북한은 두려움과 분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엿보일 때마다 안보 정서는 선거 이성을 마비시켰고, 한국당의 전신들은 민심의 불안을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쿠데타 정권의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교묘하게 북풍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드셌던 북풍도 2000년 이후 힘을 잃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선 제2연평해전과 2차 북핵위기로 북풍이 일었으나 ‘노무현 바람’에 꺾였다. 이후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이라는 메가톤급 북풍이 불었으나, 그해 6·2지방선거서 당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북풍 효과는 갈수록 그 힘을 잃고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문재인정권 이후 한반도에 평화 기류가 흐르면서 한국당의 북풍은 자연스레 모습을 감추게 됐다. 문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자, 한국당이 더 이상 북풍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한국당의 과대망상은 정권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보수결집 포석으로 해석
내친김에 중도까지 포섭?

그렇다면 내년 총선서 신북풍의 영향력은 있을까. 순풍일까. 역풍일까. 아니면 잠잠한 미풍일까.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국민들은 평화 정책에 대한 회의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가 곧 경제’라며 ‘평화구축에 이은 경제 활성화’를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경기가 불황을 겪으면서 화해 기류에 기반을 둔 신북풍 역시 내년 선거서 힘이 빠질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자칫 북한 퍼주기로 비춰질 경우 신북풍은 여당에게 ‘역풍’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 영화 공작 포스터

정치권의 한 인사는 “역대 선거를 반추할 때 북한과의 관계가 일정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차기 총선서 북한 이슈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다양한 외부요인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고 피력했다. 범여권의 한 의원 측은 “현재 경기가 안 좋아 바닥 민심이 좋지 않지만,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경제 발전의 동력을 기대해볼 만한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순풍을 예상했다.

평화냐
경제냐

전경만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미관계가 악화일로의 급랭으로 치닫다가 선거가 임박할 즈음 급속한 화해모드로 전환한다면 여론의 분위기 또한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득표 유불리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시기 여부가 결정되는 등 국내 변수와 국외적 한반도 변수가 맞물린다면, 정부 여당에 좀 더 유리한 양상이 될 수 있다”고 가늠했다.

화해와 협력, 북미 외교관계에 따른 한반도 평화 정착은 신북풍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한국당은 과거 유물인 북풍서 벗어나 더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야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과거 북풍 흑역사

흑금성 사건은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중 하나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주)아자커뮤니케이션 측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박채서씨의 암호명으로, 안기부는 그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안기부 공작원이었던 박채서씨는 북한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사업을 성사시키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1998년 3월 안기부의 전 해외실장인 이대성씨가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이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당시 ‘이대성 파일’로 불린 이 정보는 안기부가 1996년부터 1997년 2월까지 중국 베이징서 이뤄진 국내 정치권과 북한 고위층 사이의 접촉을 취합한 기밀정보로, 대북공작원 흑금성의 활약상이 담겨 있었다.

이는 1997년 대선 당시 북한 관련 정보가 어떻게 선거와 정치에 이용됐는지를 드러내는 국가 1급 비밀이었다. 결국 이대성 파일서 공개된 흑금성이란 인물이 언론을 통해 박채서씨로 알려지면서 아자커뮤니케이션의 대북사업은 북측의 반발로 전면 중단됐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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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