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이 꺼내든 ‘신북풍’ 시나리오

또 꺼낸 음모론 레퍼토리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남북관계는 선거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단골 요인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를 ‘북풍’이라 일컬으며 선거서 북한을 제3의 변수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는 평화의 북풍으로 빠르게 물들었다. 이후 불어온 북한발 순풍은 지난 지방선거서 여당의 압승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은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했고 국민들은 평화 정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2020 총선서 북풍은 여당에게 ‘순풍’일지 ‘역풍’일지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하 국정원장), 김현경 MBC 북한전문기자의 비공개 회동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新)북풍’을 모의하려는 시도라며 공세에 나섰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신북풍은 남북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 기류에 기인한다. 과거의 북풍과 결이 다른 신북풍은 총선에 어떤 바람으로 불어올까.

양정철-서훈
만남 목적은?

최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만남을 두고 한국당이 거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국정원 관권선거 의혹 대책위 회의서 “대한민국 최고 정보권력자와 민주당 내 공천실세 총선전략가의 어두운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선거공작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며 “북풍 정치가 내년 선거서 또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고 신북풍의 기획설을 주장했다.

이혜훈 정보위원장(바른미래당 소속)은 “지금 대북 정세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국정원장이 여당의 총선 기획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네 시간 반 동안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환담이나 나누겠냐”며 둘의 만남은 신북풍을 계획하는 자리였을 것이라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작년 북미정상회담의 여세로 여당이 집권에 성공했기에 회담서 다음 총선의 신북풍을 기획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석한 김 기자는 “양 원장의 귀국 인사를 겸한 자리였고, 총선 이야기는 없었다”며 한국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양 원장은 “북한전문기자가 있는 자리서 북풍을 기획했다면 MBC가 희대의 특종을 했을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양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오랜 지인이다. 2년 만에 가진 사적인 자리에 기자가 동석했다. 현직 언론인이 있는 자리서 총선과 같은 부담스러운 얘기가 오고 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식사자리에 대북담당 기자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의심을 하는 것과 선거 전략을 일반 대중 식당서 논의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서 “언론을 무시하는 행위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이라며 “북풍은 한국당 전신들이 해왔지 않느냐”고 한국당에 역공을 가했다.

순풍으로?
역풍으로?

북풍은 한국당의 전신 정권들이 활용해왔던 변수다. 과거 보수 정당들은 국가 안보 불안을 증폭시켜 보수 진영을 결집했다. 군사 독재 시절엔 ‘북한의 위협’이라는 한반도의 ‘숙명’을 권력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안기부 등 분단 기득권 세력과 함께 국민 안보 불안을 극대화시켜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데 성공했다.
 

▲ 서훈 국가정보원장 ⓒ국회사진취재단

국정원 선거 개입 역시 한국당의 전신 정권서 벌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18대 대선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조작이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 조직 정점서 이 활동을 지시하고 범행 실행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한국당의 전신 정권들은 굵직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색깔론’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한국당의 신북풍에 대한 의혹 제기가 자신들의 과거를 잊은 무분별한 의혹 제기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남북관계 선거판 뒤집을 단골카드
내년 총선 멀었는데 군불때기 왜?

한국당의 신북풍 의혹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한국당은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을 6·12북미정상회담으로 꼽으며,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한국당의 전당대회와 같은 날짜에 열리는 것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형성되면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한국당 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서 “지난 지방선거 때 신북풍으로 재미를 본 정부 여당이 내년 총선서 신북풍을 계획한다면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며 신북풍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후 여야 정치권에선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이라며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한국당의 주장을 ‘과대망상’이라 비꼬았다. 바른미래당 김익환 의원은 “북미회담 날짜 정하는 데 한국당 전당대회의 일정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황당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당이 수구 냉전식 사고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초대형 평화 바람이 지난 지방선거서 여당 압승에 일조한 건 사실이나 북미정상회담은 양국이 조율해서 정한 날짜다. 미국이 자국의 이권과 무관한 일개 야당의 당 대표를 뽑는 선거를 위해 정상회담 일정을 맞춘다고 주장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 지나친 비약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계속 북풍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대망상"
확대 경계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 북한은 두려움과 분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엿보일 때마다 안보 정서는 선거 이성을 마비시켰고, 한국당의 전신들은 민심의 불안을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쿠데타 정권의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교묘하게 북풍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드셌던 북풍도 2000년 이후 힘을 잃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선 제2연평해전과 2차 북핵위기로 북풍이 일었으나 ‘노무현 바람’에 꺾였다. 이후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이라는 메가톤급 북풍이 불었으나, 그해 6·2지방선거서 당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북풍 효과는 갈수록 그 힘을 잃고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문재인정권 이후 한반도에 평화 기류가 흐르면서 한국당의 북풍은 자연스레 모습을 감추게 됐다. 문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자, 한국당이 더 이상 북풍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한국당의 과대망상은 정권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보수결집 포석으로 해석
내친김에 중도까지 포섭?

그렇다면 내년 총선서 신북풍의 영향력은 있을까. 순풍일까. 역풍일까. 아니면 잠잠한 미풍일까.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국민들은 평화 정책에 대한 회의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가 곧 경제’라며 ‘평화구축에 이은 경제 활성화’를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경기가 불황을 겪으면서 화해 기류에 기반을 둔 신북풍 역시 내년 선거서 힘이 빠질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자칫 북한 퍼주기로 비춰질 경우 신북풍은 여당에게 ‘역풍’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 영화 공작 포스터

정치권의 한 인사는 “역대 선거를 반추할 때 북한과의 관계가 일정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차기 총선서 북한 이슈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다양한 외부요인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고 피력했다. 범여권의 한 의원 측은 “현재 경기가 안 좋아 바닥 민심이 좋지 않지만,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경제 발전의 동력을 기대해볼 만한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순풍을 예상했다.

평화냐
경제냐

전경만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미관계가 악화일로의 급랭으로 치닫다가 선거가 임박할 즈음 급속한 화해모드로 전환한다면 여론의 분위기 또한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득표 유불리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시기 여부가 결정되는 등 국내 변수와 국외적 한반도 변수가 맞물린다면, 정부 여당에 좀 더 유리한 양상이 될 수 있다”고 가늠했다.

화해와 협력, 북미 외교관계에 따른 한반도 평화 정착은 신북풍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한국당은 과거 유물인 북풍서 벗어나 더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야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과거 북풍 흑역사

흑금성 사건은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중 하나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주)아자커뮤니케이션 측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박채서씨의 암호명으로, 안기부는 그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안기부 공작원이었던 박채서씨는 북한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사업을 성사시키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1998년 3월 안기부의 전 해외실장인 이대성씨가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이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당시 ‘이대성 파일’로 불린 이 정보는 안기부가 1996년부터 1997년 2월까지 중국 베이징서 이뤄진 국내 정치권과 북한 고위층 사이의 접촉을 취합한 기밀정보로, 대북공작원 흑금성의 활약상이 담겨 있었다.

이는 1997년 대선 당시 북한 관련 정보가 어떻게 선거와 정치에 이용됐는지를 드러내는 국가 1급 비밀이었다. 결국 이대성 파일서 공개된 흑금성이란 인물이 언론을 통해 박채서씨로 알려지면서 아자커뮤니케이션의 대북사업은 북측의 반발로 전면 중단됐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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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