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수 ‘은파교회 살생부’ 미스터리

목사님만 아는 내용이 저주 편지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살생부에는 죽이고 살릴 이름이 담긴다. 일반적으로 살생부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전유물로 사용됐다. 지방의 대형교회 장로들이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자신과 가족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는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살생부가 집으로 배달된 것이다.
 

▲ 여수 은파교회 장로들이 받은 편지들

20117월 말8월 초경 여수 은파교회 소속 4명의 장로에게 각각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우편보다는 이메일, 이메일보다는 스마트폰 메시지가 훨씬 보편화된 시기였다.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이 적힌 전형적인 편지봉투에 250원짜리 우표가 붙어 있는 평범한 편지였다.

컴퓨터로
타이핑한

날씨가 몹시 더웠습니다.” 서정호 아름다운교회 장로는 편지를 받던 때를 떠올렸다. “기분이 몹시 이상했습니다.” 편지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도 설명했다. “내용을 보고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혼났습니다.” 서정호 장로는 8년 전 편지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몸서리쳤다.

서정호 장로는 편지봉투와 편지를 복사한 종이를 내보였다. 손때가 잔뜩 묻은 원본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받았던 편지봉투와 편지를 8년 넘게 보관 중이었다. 언젠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 벌을 주겠다는 일념이 엿보였다.

편지봉투의 수신인과 발신인을 적는 부분에는 컴퓨터로 타이핑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장로들이 받은 편지의 보내는 사람에는 은파교회 사망추진위원’ ‘은파교회 사망 추진위원회’ ‘은파장사추진위원’ ‘은파사망추진위원’ ‘은파교회 장사추진위원등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정호 장로는 사망(死亡)이나 장사(葬事) 같은 죽음과 관계된 말로 만든 단어를 보내는 사람으로 한 것부터가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받는 사람에는 장로 4명의 주소와 우편번호가 정확히 기재돼있었다. 서정호 장로 외에 서모 장로, 김모 장로, 박모 장로 등 당시 은파교회에 다니고 있던 장로 4명이 23일 간격으로 각각 23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편지봉투서 수신인과 발신인을 처리한 것처럼 컴퓨터로 타이핑한 종이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성돼있었는데 편지 어디서도 직접 쓴 손글씨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11년 장로 4명 편지 받아
자신과 가족 죽음 등 음해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는데 일단 제목부터가 살생부였다. 장로와 가족의 이름을 써놓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는지 적혀 있었다. 밤길을 조심하라는 등의 당부(?)도 포함됐다. 서정호 장로는 편지에는 나와 가족들을 향한 저주와 악의가 가득했다고 표현했다.

○○(이름) 2015.7.19. 이전 사망(공갈 협박 무고 타교회로 도망가라). 부인 2018.8.25. 이전(지병 및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서종호(서정호의 오타로 보임) 2013.7.17. 이전 사망. 지병으로 사망. 부인 권사 2018.8.15. 이전 사망. 교통사고 및 지병으로 병원생활. (초등학교 옆 당초 은파교회 건축 후 교회 이관 약속할 것. 한 자녀 이혼 또한 자녀 결혼 못 함)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이름에 오타 있음) 2015.4.5. 이전 사망. 돌산에서 교통사고 사망. 부인 권사 2014.3.12. 이전 사망. 지병으로 사망. 황금 알기를 돌가치(같이) 타교회로 도망가라. 교회 분열대역제(). 고목사 수십억 꼭 발표할 것. 또 안○○ 장로 것 꼭 수사 후 발표(당신이 교회 장부 경찰서 유출).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 2017.2.17. 이전 사망. 부인 권사 2019.4.17. 이전 사망. 협박 및 공갈 자녀 타교회로 도망(부인 지병으로 사망하고 딸도 결혼 전 사망). 은파교회 사망 추진위원회 일동. 은파교회 장사추진위원회 일동.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이름 틀리고
맞춤법 안 맞고

편지는 장로와 그 가족들에 대한 개별 정보, 공통 내용(언제 어디서~부인부터)으로 구성됐다. 이름이나 맞춤법 등 군데군데 오타가 보였다. 서정호 장로에 따르면 일부 편지봉투에는 이름을 틀리게 적은 것도 있다. 그는 이런 오기된 이름이나 틀린 맞춤법 모두가 의도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지를 받은 몇몇 장로는 당시 은파교회서 시무장로를 맡고 있었다. 장로는 개신교 교회서 목사를 도와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평신도 중 최고의 직급이다. 시무장로는 재정·감사 등 교회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한다. 은파교회는 등록 교인 수가 3000여명에 이르는 여수 지역의 대형교회. 누가 이 교회 장로들에게 저주의 편지를 보낸 걸까.
 

▲ 여수 은파교회 고만호 목사

몇몇 장로들은 고만호 은파교회 담임목사를 의심했다. 고 목사에게만 말한 정보가 편지에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한 장로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들어온, 평생 좌우명처럼 삼았던 말을 고 목사에게 한 적이 있다그 말을 한 다음 날 그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도착했다고 말했다.

서정호 장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그 시기에 집안에 자녀와 관련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크게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고 목사에게 털어놓으면서 기도를 부탁했다그런데 그 내용이 편지에 적혀 있어 놀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받은 편지를 들고 고 목사를 찾아가 이런 짓을 한 사람을 반드시 찾겠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로는 편지가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서정호 장로 등은 편지를 증거로 발신인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경찰도 편지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단순 협박이라고 보기엔 장로 개개인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고 저주의 수위도 높아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에도 불구하고 발신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서정호 장로에 따르면 경찰은 발신인을 확인하기 위해 편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편지에는 장로들 외의 다른 지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편지봉투 소인에 찍힌 우체국에는 공교롭게도 CCTV가 없었다. 해당 우체국은 은파교회와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지역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CCTV 없는
먼 우체국

저주의 편지를 받은 4명의 장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은파교회가 새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서 발생한 비리를 고발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사건은 교회 건축을 맡은 건축업자가 낸 헌금이 감쪽같이 사라진 일에서 시작됐다.


은파교회는 2007~2009년 사이 새 교회를 건축했다. 공사비는 교인들의 헌금 등으로 충당됐다. 문제는 공사를 하게 된 건축업자 A씨가 2년여 동안 건축헌금 명목으로 은파교회에 납부한 돈이 당시 건축위원장이었던 안모 장로에 의해 증발했다는 점이다. A씨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건축헌금 명목으로 9차례에 걸쳐 안 장로에게 준 돈은 21000만원에 이른다.

이런 사실은 은파교회 소속 노모 장로가 A씨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알게 됐다. 노 장로는 서정호 장로에게 안 장로의 횡령 사실을 알렸고, 서정호 장로는 은파교회 재정부장 등을 통해 사실을 확인한 후 고 목사에게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가 없자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안 장로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안 장로의 계좌와 안 장로 아내의 계좌에 현금으로 1000만원, 1000만원, 2000만원 등을 입금하는 식으로 총 21000만원을 줬다. 또 현금으로 40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이 돈은 안 장로 개인 채무를 변제하거나 안 장로의 아들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쓰였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20126월 안 장로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과수에 보냈는데 지문 없어
건축비리 고발 시점과 비슷해

횡령 혐의로 실형을 받은 안 장로는 은파교회서 출교 조치를 당했지만 현재는 다시 돌아와 시무장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파교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안 장로는 다른 것도 아니고 교회 헌금을 가지고 장난쳤다그런데도 다시 시무장로로 복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의아해했다.

이후 서정호 장로 등은 교회 건축비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과정서 교회 건축비가 3배 이상 부풀려진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은파교회 재정 감사였던 서정호 장로는 최초 건축비는 67억원 상당이었는데 고발 당시 교회 장부를 확인해보니 건축비는 215억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서정호 장로 등은 건축위원장이었던 안 장로·고만호 담임목사 등을 업무상 배임, 사문서 변조, 변조 사문서 행사, 재물손괴,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특히 고 목사는 당시 교회 사무장이었던 홍모씨에게 교회 건축공사와 관련된 계약서와 지출결의서, 금전출납부 등을 파쇄하도록 지시해 재물손괴 및 증거인멸의 혐의를 받았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2009724일 고 목사가 관련 서류를 불에 태우도록 홍씨에게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교회와 교인들의 안정을 위해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서류를 파쇄했다는 고 목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했다.

한 은파교회 교인에 따르면 고 목사는 교인들 앞에서 교회 건축공사 관련 서류 등 회계장부를 법궤에 비유하면서 법궤가 세속에 나올 수 있는가. 태워버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법궤는 하나님의 법, 곧 십계명을 새긴 돌판이 보관된 궤를 말한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 외에도 만나(하나님이 내려준 양식)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모세의 형)의 싹이 난 지팡이 등이 보관돼있다고 전해진다.

비리 고발에
앙심 품었나?

서장호 장로는 은파교회의 새 성전은 교인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 건축비가 3배 이상 부풀려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인들의 불신이 높아졌다. 교회의 재정 감사로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고 목사 등을 고발했지만 법의 심판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파교회 설립자로서 교회 정상화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돌아온 건 저주가 가득 담긴 편지뿐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초 제보자 입 막기 정황? “잠깐 멀리 떠나 있어라”

건축헌금 횡령 의혹과 건축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던 무렵, 최초 제보자로 알려진 노모 장로에게 고만호 목사가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 장로의 입을 막기 위해 1억원을 지급했다는 의혹이다.

실제 당시 은파교회 재정부장이었던 김모 장로는 고 목사의 지시로 노 장로에게 돈을 집행했다고 말했다. 새벽 기도를 하던 중 고 목사에게 교회 강단 뒤편 작은 방으로 불려가 노 장로에게 1억원을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명목은 선교비였다. 노 장로에게 여수 지역을 떠나 선교활동을 하라는 명목으로 1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노 장로 역시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파송 선교비로 받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노 장로는 선교사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선교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설사 자격이 됐다 해도 1억원씩 선교비를 주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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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