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수 ‘은파교회 살생부’ 미스터리

목사님만 아는 내용이 저주 편지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살생부에는 죽이고 살릴 이름이 담긴다. 일반적으로 살생부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전유물로 사용됐다. 지방의 대형교회 장로들이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자신과 가족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는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살생부가 집으로 배달된 것이다.
 

▲ 여수 은파교회 장로들이 받은 편지들

20117월 말8월 초경 여수 은파교회 소속 4명의 장로에게 각각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우편보다는 이메일, 이메일보다는 스마트폰 메시지가 훨씬 보편화된 시기였다.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이 적힌 전형적인 편지봉투에 250원짜리 우표가 붙어 있는 평범한 편지였다.

컴퓨터로
타이핑한

날씨가 몹시 더웠습니다.” 서정호 아름다운교회 장로는 편지를 받던 때를 떠올렸다. “기분이 몹시 이상했습니다.” 편지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도 설명했다. “내용을 보고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혼났습니다.” 서정호 장로는 8년 전 편지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몸서리쳤다.

서정호 장로는 편지봉투와 편지를 복사한 종이를 내보였다. 손때가 잔뜩 묻은 원본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받았던 편지봉투와 편지를 8년 넘게 보관 중이었다. 언젠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 벌을 주겠다는 일념이 엿보였다.

편지봉투의 수신인과 발신인을 적는 부분에는 컴퓨터로 타이핑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장로들이 받은 편지의 보내는 사람에는 은파교회 사망추진위원’ ‘은파교회 사망 추진위원회’ ‘은파장사추진위원’ ‘은파사망추진위원’ ‘은파교회 장사추진위원등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정호 장로는 사망(死亡)이나 장사(葬事) 같은 죽음과 관계된 말로 만든 단어를 보내는 사람으로 한 것부터가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받는 사람에는 장로 4명의 주소와 우편번호가 정확히 기재돼있었다. 서정호 장로 외에 서모 장로, 김모 장로, 박모 장로 등 당시 은파교회에 다니고 있던 장로 4명이 23일 간격으로 각각 23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편지봉투서 수신인과 발신인을 처리한 것처럼 컴퓨터로 타이핑한 종이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성돼있었는데 편지 어디서도 직접 쓴 손글씨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11년 장로 4명 편지 받아
자신과 가족 죽음 등 음해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는데 일단 제목부터가 살생부였다. 장로와 가족의 이름을 써놓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는지 적혀 있었다. 밤길을 조심하라는 등의 당부(?)도 포함됐다. 서정호 장로는 편지에는 나와 가족들을 향한 저주와 악의가 가득했다고 표현했다.

○○(이름) 2015.7.19. 이전 사망(공갈 협박 무고 타교회로 도망가라). 부인 2018.8.25. 이전(지병 및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서종호(서정호의 오타로 보임) 2013.7.17. 이전 사망. 지병으로 사망. 부인 권사 2018.8.15. 이전 사망. 교통사고 및 지병으로 병원생활. (초등학교 옆 당초 은파교회 건축 후 교회 이관 약속할 것. 한 자녀 이혼 또한 자녀 결혼 못 함)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이름에 오타 있음) 2015.4.5. 이전 사망. 돌산에서 교통사고 사망. 부인 권사 2014.3.12. 이전 사망. 지병으로 사망. 황금 알기를 돌가치(같이) 타교회로 도망가라. 교회 분열대역제(). 고목사 수십억 꼭 발표할 것. 또 안○○ 장로 것 꼭 수사 후 발표(당신이 교회 장부 경찰서 유출).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 2017.2.17. 이전 사망. 부인 권사 2019.4.17. 이전 사망. 협박 및 공갈 자녀 타교회로 도망(부인 지병으로 사망하고 딸도 결혼 전 사망). 은파교회 사망 추진위원회 일동. 은파교회 장사추진위원회 일동. 언제 어디서 행동 조심. 차 운전 조심. 밤길 조심. 가족 전체 꼭 집에만 있어라. 그리고 일 년 이내 당신 운명. 부인부터.

이름 틀리고
맞춤법 안 맞고

편지는 장로와 그 가족들에 대한 개별 정보, 공통 내용(언제 어디서~부인부터)으로 구성됐다. 이름이나 맞춤법 등 군데군데 오타가 보였다. 서정호 장로에 따르면 일부 편지봉투에는 이름을 틀리게 적은 것도 있다. 그는 이런 오기된 이름이나 틀린 맞춤법 모두가 의도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지를 받은 몇몇 장로는 당시 은파교회서 시무장로를 맡고 있었다. 장로는 개신교 교회서 목사를 도와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평신도 중 최고의 직급이다. 시무장로는 재정·감사 등 교회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한다. 은파교회는 등록 교인 수가 3000여명에 이르는 여수 지역의 대형교회. 누가 이 교회 장로들에게 저주의 편지를 보낸 걸까.
 

▲ 여수 은파교회 고만호 목사

몇몇 장로들은 고만호 은파교회 담임목사를 의심했다. 고 목사에게만 말한 정보가 편지에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한 장로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들어온, 평생 좌우명처럼 삼았던 말을 고 목사에게 한 적이 있다그 말을 한 다음 날 그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도착했다고 말했다.

서정호 장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그 시기에 집안에 자녀와 관련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크게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고 목사에게 털어놓으면서 기도를 부탁했다그런데 그 내용이 편지에 적혀 있어 놀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받은 편지를 들고 고 목사를 찾아가 이런 짓을 한 사람을 반드시 찾겠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로는 편지가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서정호 장로 등은 편지를 증거로 발신인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경찰도 편지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단순 협박이라고 보기엔 장로 개개인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고 저주의 수위도 높아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에도 불구하고 발신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서정호 장로에 따르면 경찰은 발신인을 확인하기 위해 편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편지에는 장로들 외의 다른 지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편지봉투 소인에 찍힌 우체국에는 공교롭게도 CCTV가 없었다. 해당 우체국은 은파교회와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지역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CCTV 없는
먼 우체국

저주의 편지를 받은 4명의 장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은파교회가 새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서 발생한 비리를 고발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사건은 교회 건축을 맡은 건축업자가 낸 헌금이 감쪽같이 사라진 일에서 시작됐다.

은파교회는 2007~2009년 사이 새 교회를 건축했다. 공사비는 교인들의 헌금 등으로 충당됐다. 문제는 공사를 하게 된 건축업자 A씨가 2년여 동안 건축헌금 명목으로 은파교회에 납부한 돈이 당시 건축위원장이었던 안모 장로에 의해 증발했다는 점이다. A씨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건축헌금 명목으로 9차례에 걸쳐 안 장로에게 준 돈은 21000만원에 이른다.

이런 사실은 은파교회 소속 노모 장로가 A씨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알게 됐다. 노 장로는 서정호 장로에게 안 장로의 횡령 사실을 알렸고, 서정호 장로는 은파교회 재정부장 등을 통해 사실을 확인한 후 고 목사에게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가 없자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안 장로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안 장로의 계좌와 안 장로 아내의 계좌에 현금으로 1000만원, 1000만원, 2000만원 등을 입금하는 식으로 총 21000만원을 줬다. 또 현금으로 40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이 돈은 안 장로 개인 채무를 변제하거나 안 장로의 아들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쓰였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20126월 안 장로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과수에 보냈는데 지문 없어
건축비리 고발 시점과 비슷해

횡령 혐의로 실형을 받은 안 장로는 은파교회서 출교 조치를 당했지만 현재는 다시 돌아와 시무장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파교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안 장로는 다른 것도 아니고 교회 헌금을 가지고 장난쳤다그런데도 다시 시무장로로 복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의아해했다.

이후 서정호 장로 등은 교회 건축비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과정서 교회 건축비가 3배 이상 부풀려진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은파교회 재정 감사였던 서정호 장로는 최초 건축비는 67억원 상당이었는데 고발 당시 교회 장부를 확인해보니 건축비는 215억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서정호 장로 등은 건축위원장이었던 안 장로·고만호 담임목사 등을 업무상 배임, 사문서 변조, 변조 사문서 행사, 재물손괴,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특히 고 목사는 당시 교회 사무장이었던 홍모씨에게 교회 건축공사와 관련된 계약서와 지출결의서, 금전출납부 등을 파쇄하도록 지시해 재물손괴 및 증거인멸의 혐의를 받았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2009724일 고 목사가 관련 서류를 불에 태우도록 홍씨에게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교회와 교인들의 안정을 위해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서류를 파쇄했다는 고 목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했다.

한 은파교회 교인에 따르면 고 목사는 교인들 앞에서 교회 건축공사 관련 서류 등 회계장부를 법궤에 비유하면서 법궤가 세속에 나올 수 있는가. 태워버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법궤는 하나님의 법, 곧 십계명을 새긴 돌판이 보관된 궤를 말한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 외에도 만나(하나님이 내려준 양식)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모세의 형)의 싹이 난 지팡이 등이 보관돼있다고 전해진다.

비리 고발에
앙심 품었나?

서장호 장로는 은파교회의 새 성전은 교인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 건축비가 3배 이상 부풀려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인들의 불신이 높아졌다. 교회의 재정 감사로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고 목사 등을 고발했지만 법의 심판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파교회 설립자로서 교회 정상화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돌아온 건 저주가 가득 담긴 편지뿐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초 제보자 입 막기 정황? “잠깐 멀리 떠나 있어라”

건축헌금 횡령 의혹과 건축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던 무렵, 최초 제보자로 알려진 노모 장로에게 고만호 목사가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 장로의 입을 막기 위해 1억원을 지급했다는 의혹이다.

실제 당시 은파교회 재정부장이었던 김모 장로는 고 목사의 지시로 노 장로에게 돈을 집행했다고 말했다. 새벽 기도를 하던 중 고 목사에게 교회 강단 뒤편 작은 방으로 불려가 노 장로에게 1억원을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명목은 선교비였다. 노 장로에게 여수 지역을 떠나 선교활동을 하라는 명목으로 1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노 장로 역시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파송 선교비로 받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노 장로는 선교사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선교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설사 자격이 됐다 해도 1억원씩 선교비를 주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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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