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칸의 남자’ 봉준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6.03 10:17:20
  • 호수 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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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만에 일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봉준호 감독이 칸국제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최초로 100년 역사상 최고의 쾌거다. 단편영화로 일찍이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던 봉 감독은 떡잎부터 달랐다. 
 

▲ <기생충>으로 ‘칸의 남자’가 된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저녁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서 진행된 폐막식서 올해 수상 결과를 발표했다. 

독특한 감독
위대한 배우

봉 감독의 <기생충>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장피에르 다르덴과 뤼크 다르덴의 <영 아메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 등 21개 작품 가운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결정됐다”며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기생충>이라고 발표했다. 

봉 감독은 수상자로 호명되자 자신의 페르소나이자 <기생충>의 주연 배우인 송강호와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프랑스의 대배우 카트린 드뇌브에게 트로피를 받은 봉 감독은 “메르시(Merci·감사합니다)”라고 짧게 프랑스어로 인사한 뒤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큰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은 저와 함께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스태프와 제작·투자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찍지 못했을 영화다.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배우 송강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송강호는 “배우로서 인내심과 슬기로움, 그리고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 분들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며 한국 배우들에게 수상의 공을 돌렸다.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봉 감독은 “저는 12세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질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고 수상 소감을 마쳤다.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고급 저택에 사는 부유한 가족, 두 가족을 통해 빈부격차로 양극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 계층·계급 갈등, 부유층의 허영과 위선·무관심, 개인주의와 공동체 의식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서 <기생충>에 대해 “재밌고 유머러스하며 따뜻한 영화”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그는 수상작 선정에 대해 “우리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유로 수상작을 결정하지 않는다. 감독이 누구고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영화 그 자체로만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2000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첫 진출한 이후 19년 만에 거둔 쾌거다. 아시아 국가로선 일본과 중국, 이란, 태국에 이어 다섯 번째 영예, 아시아 영화로선 아홉 번째 수상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맞이한 경사라 더 의미가 깊다.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상 수상 영예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영화는 칸영화제와 그다지 인연이 없었다.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정도였다. 


칸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었던 것과는 달랐다. 베를린영화제는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에 은곰상을, 베니스영화제는 1987년 <씨받이>(감독 임권택)의 배우 강수연에게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여했다.

칸영화제와 한국영화의 본격적인 인연은 2000년에 시작됐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후 한국영화는 칸의 단골손님이 됐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두 편이 초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04년 <올드보이>(감독 박찬욱)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감독 홍상수) 두 편이 경쟁부문에 초대됐다. 2007년엔 <밀양>(감독 이창동)과 <숨>(감독 김기덕)이, 2010년엔 <시>(감독 이창동)와 <하녀>(감독 임상수), 2012년엔 <돈의 맛>(감독 임상수)과 <다른 나라에서>(감독 홍상수)가 나란히 경쟁부문 초대장을 받았다. 

2016년에도 <아가씨>(감독 박찬욱)와 <그후>(감독 홍상수)가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2017년에는 <옥자>를 포함해 16편이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16전17기인 셈이다.

2002년 <취화선>이 칸영화제서 감독상(임권택)을 받으면서 수상의 물꼬가 텄다. 2004년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 2007년 <밀양>의 배우 전도연이 최우수여자배우상, 2009년 <박쥐>(감독 박찬욱)가 심사위원상, 2010년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2010년 <하하하>(감독 홍상수), 2011년 <아리랑>(감독 김기덕)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각각 수상했다. 

지난해까지 경쟁부분 상 중에서 받지 못한 상은 황금종려상과 최우수남자배우상뿐이었다. 단편부문에선 문병곤 감독이 2013년 <셰이프>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 감독은 그동안 칸영화제의 주요 초대객 중 한 명이었다. 2008년 옴니버스영화 <도쿄!>와 2009년 <마더>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다. 2011년엔 신진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보고 싶다”

2017년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 제작 영화 <옥자>가 경쟁부문에 처음 올랐으나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라는 넷플릭스의 사업 방식에 프랑스 영화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영화제 초반 “극장서 상영되지 않을 영화에 상을 줄 수 없다”고 공언하면서 일찌감치 수상권서 멀어졌다.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세계적 보편성을 지녔음을 공인받았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더구나 칸영화제를 안방처럼 드나드는 세계적 감독들을 물리치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더욱 가치가 빛난다. 장르영화에 상 주기를 꺼리는 칸영화제의 기존 관성을 뚫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받았다는 것도 수상의 의미를 높인다.

수상 소식에 각계각층의 축전도 이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도 봉 감독을 축하했다.

영진위는 “<기생충>의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물론이고, 영화의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성취를 위해 영화인들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한국영화가 태동한 지 100년을 맞이한 해에 얻은 결과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며 “축적된 한국영화 역사 100년의 저력이 그 바탕이며 한국영화를 열정적으로 아끼는 국민의 성원이 함께 이룬 성과”라고 덧붙였다.

봉 감독의 수상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도 빨리 영화를 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기생충>이 지난 1년 제작된 모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며 “매우 영예로운 일”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어 “무엇보다 열두 살 시절부터 꿔온 꿈을 차곡차곡 쌓아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선 봉준호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우리의 일상서 출발해 그 일상의 역동성과 소중함을 보여준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삶에서 찾은 이야기들이 참 대단하다. 이번 영화 <기생충>도 너무 궁금하고 빨리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추기경)도 봉 감독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염 추기경은 “(수상 소식에) 국민 모두 기쁨과 자긍심을 느꼈다”며 봉 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 관계자 모두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밝혔다. 이어 “특히 영화 <기생충>을 제작하는 동안 표준근로계약을 지켰다는 감독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며 “영화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의 노동 환경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 역시 봉 감독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여당과 바른미래당은 봉 감독이 ‘주52시간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영화제서 최고상을 수상했다”며 “봉 감독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높은 수준의 감성으로 해석했고, 이번 수상으로 한국영화계의 경사를 이뤘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봉 감독의 수상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주52시간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영화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불편함을 봉 감독이 감내했기 때문이다. 좋은 제작과정이 훌륭한 영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했다.


배우 출신인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축하인사를 전했다. 오 원내대표는 “2019년이 한국영화가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문화 예술이 세계문화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뜻깊은 수상을 하게 됐다”며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과 저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송강호, 이선균 배우, 모든 관계자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금의환향’
영화계 경사

바른미래당 채이배 정책위의장은 “영화계 노동현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장시간 노동에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영화 <기생충>은 근로기준법 등을 지키며 만든 작품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제작 환경이 한 걸음 나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봉 감독은 <기생충> 촬영 시 노동 사각지대에 있는 스탭들과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생충>은 스탭들의 표준근로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완성된 작품임이 알려져 팬들의 더욱 큰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봉 감독은 “<기생충>만 유별난 건 아니고 2~3년 전부터 영화 스탭들의 급여나 그런 건 정상적으로 정리가 됐다”며 “영화인들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 칸 영화제

봉 감독은 열악한 근무 조건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영화 스텝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처우 개선에 노력했다. 이 같은 인식과 실천에 의해 영화 <기생충>은 스텝 모두가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는 등의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영화를 촬영했다. 이번 봉 감독의 수상은 그동안 ‘근로기준법 등을 준수하면 제대로 된 작품을 찍을 수 없다’는 사용자 논리가 횡행하던 한국 영화계 세태를 보기 좋게 날려버린 쾌거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1969년 9월14일 대구 출생으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교수인 봉상균씨,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인 박소영씨다. 형인 준수씨는 서울대 교수, 누나인 지희씨는 패션디자이너이자 국제문화협회 이사로 지식인과 예술가 집안의 출신인 셈이다. 아내는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정선영씨고, 아들 봉효민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감독이 됐다.

봉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아카데미서 1년 동안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학보 <연세춘추>에 시사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봉 감독은 습작 시절부터 일찌감치 충무로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는데, 1994년 제작한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 <지리멸렬>은 영화 애호가들 사이서 화제를 일으켰다. 이들 작품은 1994년 밴쿠버와 홍콩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위대한 배우 없으면 못 찍었을 것”
충무로 잔칫집 분위기…각계서 축전

봉 감독은 31세였던 2000년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로 입봉했다. 사라진 개를 둘러싼 일대 소동극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들춘 이 영화는 홍콩 국제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봉 감독은 여러 인터뷰서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의 기호에 대해 절실히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봉 감독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03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였다. <살인의 추억>은 그해 최대 흥행을 거두고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 면에서 특히 호평을 받았다. 이후 <괴물>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당시 대한민국 역대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다.

2009년에는 스릴러 영화 <마더>로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2013년 제작한 SF 영화 <설국열차>는 167개국에 판매돼 역대 한국영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 <옥자>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전 세계 190개국을 통해 <옥자>를 공개했다. 그는 이 영화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국제비평가연맹상과 디렉터스 컷 시상식 감독상, 국제환경미디어협회상 작품상 수상, PETA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쳤다. 

봉 감독은 지난 10년간 정부 차원서 관리했던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봉 감독은 이명박·박근혜정권 당시 감시와 배제의 타깃이었다.  

당시 국정원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82명 중 60명이 영화인이었는데, 봉 감독을 포함해 이창동, 박찬욱, 문성근, 권해효, 문소리, 김민선, 유준상 등이 망라됐다. 정권 초기부터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대중적인 파급력이 높은 영화를 집중 단속하려고 했던 결과였다.

이·박 시절
블랙리스트에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보고서에는 이명박·박근혜정권서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지목한 상업영화 15편의 목록과 그 이유가 나온다. 봉 감독의 작품으로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가 포함돼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서도 호평받은 이 작품들을 두고 블랙리스트에서는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며 국민 의식을 좌경화”(<괴물>)한다거나 “공무원·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살인의 추억>)한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설국열차>)고 단정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수상작

▲황금종려상-봉준호 <기생충>
▲심사위원대상-마티 디옵 <아틀란틱스>
▲심사위원상-라즈 리 <레 미제라블>, 클레버 멘돈사 필로 <바쿠라우>
▲남우주연상-안토니오 반데라스 <페인 앤 글로리>
▲감독상-장 피에르·뤼크 다르덴 <영 아메드>
▲여우주연상-에밀리 비샴 <리틀 조>
▲각본상-셀린 시아마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특별심사위원언급상-엘리아 술레이만 <잇 머스트 비 헤븐>
▲황금카메라상-세사르 디아스 <누에스트라 마드레스>
▲단편 황금종려상-바실리스 케카토스 <더 디스턴스 비트윈 어스 앤 더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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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