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5개월…흔들리는 ‘신학철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구광모 체제가 시작된 가운데 LG화학을 둘러싼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LG화학을 이끌고 있는 신학철 부회장은 선임과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 회장은 ‘깜짝 인사’로 신 부회장을 영입, 조직에 새로운 분위기를 주문했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신학철호는 순항할 수 있을까.
 

▲ 신학철 LG화학 부사장

구광모 LG그룹 대표이사 회장은 5월 구본무 전 회장의 타계로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구 회장은 이번 달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다. 구 회장은 큰 이탈 없이 ‘4세 경영시대’를 열면서 조직을 정비했다. 구 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은 긍정적이다. LG그룹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인 동시에 그의 겸손한 성품도 주목을 받고 있어서다.

4세 경영
궤도 안착

구 회장은 자신의 호칭을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달라”고 할 만큼 권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구 회장은 별도의 취임식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선임될 당시 이사회 회의서 “그동안 LG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발전시키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서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구 회장이 강조한 변화는 곧 드러났다.

구 회장은 LG화학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신학철 전 3M 수석부회장을 영입했다. LG화학의 외부 인재 수혈은 이례적이다. 1947년 LG화학 창립 이후 외부 CEO를 영입한 것은 최초다.

3M은 화학전문 글로벌 기업이다. 충북 괴산 출신의 신 부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한국3M을 시작으로 2011년 3M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그는 3M 평사원으로 시작해 한국인 최초로 미국 본사 해외 사업을 총괄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신 부회장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서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됐다. 신 부회장에 대한 관심은 당연했으며 LG화학의 첫 외부 인사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동시에 피어났다.

신 부회장은 부임 이후 조직 개편에 나섰는데 핵심은 ‘첨단소재’였다. LG화학은 지난 4월1일 기존 4개 사업본부(기초소재·전지·정보전자소재·생명과학) 및 1개 사업부문(재료사업부문)을 ‘석유화학’ ‘전지’ ‘첨단소재’ ‘생명과학’의 4개 사업본부 체제로 바꿨다.

신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소재 분야서도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며 이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라며 “첨단소재사업본부를 석유화학, 전지 사업에 이어 제3의 성장축으로 적극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학철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구광모 회장 첫 외부 CEO 깜짝 영입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환경부 소속)은 지난 4월17일 “대기오염물질 측정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황산화물 등을 속여 배출한 여수 산단 지역 기업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광주·전남 지역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 13곳을 조사한 결과, 여수 산단 지역의 다수 기업들이 4곳의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 배출농도를 조작했다.

해당 측정대행업체는 측정을 의뢰한 235곳의 배출 사업장에 대해 지난 2015년부터 4년간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축소, 조작하거나 실제 측정하지 않은 채 허위 성적서를 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LG화학은 이들과 공모한 사업장(LG화학 여수화치공장) 중 한 곳이었다.

미세먼지는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요 핵심 이슈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의 대책마련 강구는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그대로 반영한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에도 미세먼지는 재해로 분류돼 대책 예산으로 편성돼 관련 예산만 1조5000억원에 이른다.


LG화학이 시대와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까닭이다.
 

LG화학 여수화치공장은 측정대행업체와 공모, 지난 2016년 11월11일경 시설서 채취한 시료의 염화비닐 실측값이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하자 결과값을 조작했다.

해당 사업장은 지난 2016년 7월29일경부터 지난해 11월26일경까지 총 149건의 측정값을 조작해 측정기록부를 거짓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지난 2017년 1월3일경에는 채취 시료의 먼지 실측값을 조작해 그해 상반기 기본배출부과금을 면탈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세먼지
결과 조작

환경부는 “측정대행업체와 공모관계가 입증된 대기배출사업장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이들을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 송치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은 환경부 발표 직후 공식 사과문을 냈다. 신 부회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며 “이번 사태는 LG화학의 경영이념과 또 저의 경영철학과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해당 사안을 인지한 즉시 모든 저감 조치를 취해 현재는 법적 기준치 및 지역사회와 약속한 배출량을 지키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련 생산시설을 폐쇄하기로 했다”며 “지역주민과 관계자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공신력 있는 기관의 위해성·건강 영향 평가를 지역사회와 함께 투명하게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부회장이 생산시설 폐쇄라는 강수를 뒀지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으로도 최근 어수선한 분위기다. 핵심 쟁점은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여부’다.

신 부회장은 지난 4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과감한 투자와 집념으로 이뤄낸 결실”이라며 “이번 소송은 경쟁사의 부당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해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고, 정당한 경쟁을 통한 건전한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집안싸움
소송 불사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경력채용을 통해 자사 인력 70여명을 데려갔고, 이들이 핵심기술 등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핵심기술이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자료가 있고, SK이노베이션에 내용증명을 통해 자제 요청과 경고를 했지만 영업비밀이 계속 유출된 점 등을 종합해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조사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업계 안팎에선 직원들의 처우와 기업문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고급인력으로 통하는 배터리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회사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가운데 LG화학 내에서는 처우에 대한 볼멘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단적인 예로 SK이노베이션의 인센티브는 LG화학보다 높다. 해외 기업 역시 배터리 인력 영입에 적극적이다. 중국이 ‘파격 조건’을 제시하며 국내 인력의 스카우트에 나서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선 이들의 소송전을 ‘집안싸움’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배터리 시장서 국내 동종업계 간에 벌어지는 소모전이 우려된다는 시선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지난달 7일 ‘2019년 1분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을 발표했다. 1위는 CATL(중국), 2위는 파나소닉(일본), 3위는 BYD(중국)이었다. 이들의 1분기 점유율은 각각 23.8%, 22.9%, 15.3%로 전체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LG화학은 4위(10.6%), 삼성SDI는 6위(3.0%), SK이노베이션은 9위(1.9%)를 기록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점유율을 전부 합산해도 1위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배출조작 이어 소송전…시작부터 삐걱
공정위 조사·부진 실적 ‘설상가상’


한편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서 열린 기자간담회서 소송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지금은 배터리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이라며, “현재 중국은 물론 유럽도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키우는 등 글로벌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서 우리가 좀 더 집중해서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런 측면에선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3월 부당 내부거래 혐의와 관련 LG그룹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까지 LG그룹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했던 물류계열사 ‘판토스’와 그룹 내 계열사 간 거래에 주목했다.

2017년 기준 판토스의 전체 매출 중 LG전자와 LG화학의 거래액은 절반을 넘었다. 또한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은 70%까지 매년 증가했다.

한편 총수 일가는 지난해 말 판토스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재벌 개혁 전담 조직인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지난 3월19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와 LG광화문빌딩 등에 조사관들을 보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LG전자와 LG화학을 비롯한 계열사들은 해당 건물에 모여 있다.

공정위 조사
실적도 부진


LG화학의 저조한 1분기 영업실적도 간과하기 어렵다. LG화학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조6390만원과 2753억원이었다. 매출액은 지난해 1분기(6조5535만원)에 비해 소폭 상승했지만 영업이익(6508억원)은 절반 이상 떨어졌다. LG화학의 라이벌 기업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3조7218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2956억원으로 LG화학을 앞섰다. 영업이익률 역시 롯데케미칼이 7.9%를 기록한 반면 LG화학은 4.1%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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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