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 지각변동> ‘꽃놀이패 쥔’ 애경그룹 막전막후

두 날개 장착하고 더 높이 비상할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항공업계의 새로운 서막이 열리게 될까. 제주항공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애경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애경그룹이 인수에 성공한다면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를 모두 손에 쥔 국내 최대 항공사업자가 된다. 걸림돌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자본 확충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분석이다.
 

애경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가 화제다. 후보로 꼽혔던 여러 대기업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손사래를 친 가운데 애경그룹은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 인수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그룹 측은 “검토 단계”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목이 쏠리는 배경에는 애경그룹의 ‘제주항공 성장사’가 있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정상에 올려놨다. 이어 제주항공은 영업이익 기준 국내 항공업계 2위를 기록했다. LCC 선두주자를 키워낸 애경그룹의 대형항공사(FSC) 인수 여부는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저비용항공
대형항공사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 4월 장고 끝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33.47%)은 지난 4월15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지분 매각을 공식화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오면서 유력한 인수 후보군들이 선별됐다. SK와 한화, 신세계, CJ, 애경그룹 등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후보들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은 7조원이 넘는 부채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815%(부채 6조1680억원·자본 7569억원)서 올해 1분기 부채비율은 1144%(부채 8조6471억원·자본 7561억원)로 껑충 뛰었다.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지난해 649%(부채 7조979억원·자본 1조931억원)서 올해 1분기 895%(부채 9조7031억원·자본 1조841억원)로 상승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보도자료를 통해 “(부채비율은)올해부터 운용리스 회계기준이 변경된 데 따른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은 1분기 대비 400~500%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의 설명은 올해 1월1일부터 적용된 신규 회계기준(IFRS16)을 기반으로 한다. 신규 회계기준은 금융리스를 비롯해 운용리스도 부채로 인식한다.


금융리스란 항공기 할부금을 매달 낸 뒤 계약이 종료되면 소유권을 항공사가 갖는 것이다. 운용리스란 항공기 리스회사에 매달 리스료를 지급하고, 계약 기간 종료 시 항공기를 리스회사에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운용리스 비중이 높다. 운용리스 항공기가 절반을 넘는다.

매물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출사표 
만만치 않은 부채, 실적도 하락세

산업은행은 지난 4월 자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영구전환사채 5000억원, 신용한도 8000억원, 보증한도 3000억원 등으로 총 1조6000억원이다. 자본 확충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상반기 부채 비율은 600% 안팎서 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SK와 한화, CJ 그룹 등은 직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전했다. 이들과 함께 후보로 언급됐던 호반건설 역시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확실히 사지 않는다”고 밝혔다.
 

▲ 애경 장영신 회장

항공업계의 판도 변화 역시 아시아나항공의 매력을 떨어트렸다. 기존 대형항공사 중심의 항공업계는 LCC 중심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여객은 1억1753만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전년도 대비 7.5% 늘어난 수치다.

괄목할 만한 건 LCC의 활약이다. 항공사별로 따져봤을 때 국적 대형항공사가 지난해 대비 4.7% 증가에 그친 반면, LCC는 23.5% 증가했다. LCC의 수송분담률은 지난 2014년 11.5%서 지난해 29.2%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른바 ‘가성비’를 찾는 소비자들이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실적서도 LCC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1012억원으로 전체 2위였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282억원에 그쳤다. 아시아나항공은 진에어(629억원)와 티웨이항공(478억원)에도 뒤졌다. 대한항공은 6402억원으로 1위를 기록, 대형항공사의 자존심을 지켰다.


시장 매물
부채 가득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각각 13조202억원과 7조1833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각각 당기순손실 1856억원과 1958억원을 기록했다.

제주항공은 당기순이익 708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진에어(444억원), 티웨이항공(378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에어부산과 이스타항공도 별도기준 각각 202억원과 39억원을 기록했다. 에어서울은 별도기준 22억원의 손실을 봤다.

LCC는 2003년 티웨이항공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9개 항공사가 있다. 2005년 제주항공에 이어 2007년 이스타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부산이 등장했고, 2008년엔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가 출범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서울이 2015년 탄생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플라이강원,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항공 3곳에 대해 신규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했다. 최근 LCC 업계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초특가’ 상품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제주항공을 소유하고 있는 애경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명실상부 국내 최대 항공사업자로 우뚝 서게 된다. 또한 여러 그룹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과 제주항공을 LCC 업계 1위로 만들어놓은 애경그룹의 경영능력이 교차하면서 그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애경그룹에게 제주항공은 각별하다. 제주항공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그룹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제주항공이 처음부터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던 것은 아니다. 제주항공은 지난 2005년 1월25일 애경그룹과 제주특별자치도의 공동 설립으로 탄생했다. 출범 초기 제주항공에 대한 기대는 ‘긍정 반, 부정 반’이었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성장과 실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장 지속
수익 탄탄

제주항공은 취항 첫해였던 지난 2006년 별도기준 11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어 2007∼2015년까지 389억원, 545억원, 878억원, 1575억원, 2577억원, 3411억원, 4323억원, 5106억원, 6080억원으로 꾸준히 매출액을 늘렸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결기준 매출액은 7476억원, 9963억원으로 상승하다 지난해 1조2593억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제주항공의 영업이익은 2006~2010년까지 별도기준 115억원, 78억원, 212억원, 272억원, 60억원의 손실을 이어가다가 2011년 138억원을 시작으로 흑자 전환됐다. 이후 2012년부터 21억원, 151억원, 295억원, 514억원을 달성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결기준 영입이익은 586억원에 이어 1013억원, 1012억으로 ‘1000억 영업이익’의 고지를 2년 연속 밟았다.

제주항공은 2006년 별도기준 14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후 2007∼2010년까지 매년 92억원, 288억원, 333억원, 111억원의 손실을 이어가다 2011년 168억원으로 흑자 전환됐다. 이후 2012∼2015년까지 52억원, 193억원, 320억원, 471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529억원, 777억원, 708억원이었다.
 


애경그룹은 인수합병(M&A) 주관사로 삼성증권을 선정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증권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결정 이후 자문사 후보로 언급된 바 있다. 당시 삼성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거론됐다.

애경그룹의 제주항공 성장사는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의 정성평가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4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핵심 정성평가 항목으로 ‘경영 성공 경험 유무’ ‘타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 창출 여부’ ‘인수 후보 기업의 산업 노하우와 항공산업 연계 여부’ 등을 꼽았다.

전체 2위, 제주항공 성장 경험 
자본 확충 어떻게? 업계 주목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를 선정할 때 경영 성공 경험과 그룹 내 시너지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이르면 오는 7월 입찰 등에 착수할 예정이다.

애경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국내 항공업의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룹은 인수에 성공할 경우 제주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자회사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을 모두 소유한 대형 항공사로 거듭나게 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40대의 여객기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총 83대(여객기 70대 및 화물기 13대)를,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은 각각 여객기 25대와 7대를 갖고 있다. 애경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면 그룹은 150여대의 비행기를 갖추게 된다.


관건은 애경그룹의 ‘자금 확보 능력’인데 역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부담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따르면 애경그룹의 공정자산은 5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애경그룹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보유한 연결기준 유동자산은 1조3833억원이다. 이 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550억원에 그친다.
 

▲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아시아나항공의 매각가는 1조원서 최대 2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AK홀딩스의 유동성 자산 대부분을 투입시켜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재무적투자자(FI)의 유치가 언급되는 배경이다.

재무적투자자란 기업이 인수합병을 하거나 대형 개발사업 등에 참여할 때 부족한 자금을 조달해주는 투자자를 말한다. 이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배당금이나 원리금 형태로 수익을 가져간다. 사모펀드가 재무적투자자의 대표적인 예다.

일각에선 사모펀드의 개입을 우려하고 있다.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대부분 해외서 자금을 조달받게 되는데 결국 외국 자금이 유입된다.

자금 관건
방법 모색

물론 현행법(항공사업법 제9조 1항과 항공안전법 제10조 등)에 따라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외국법인, 외국정부 또는 이들이 자기 주식이나 지분을 절반 이상 소유하거나 그 사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 외국인이 법인 등기사항증명서상의 대표자거나 임원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법인은 항공면허를 받을 수 없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이 국적 항공사인 만큼 외국 자금 유입에 따른 비판 여론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사모펀드의 경우 투자회수를 위해 긴축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습기 살균제 파문 이후…사정 칼날 피한 애경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재수사가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검찰은 지난 2016년 애경산업을 수사한 바 있다.

그러나 애경 가습기 원료인 CMIT·MIT의 유해성 여부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수사가 중단됐다. 이후 원료의 유해성이 인정되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검찰은 지난 4월12일 오전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를 다시 불러 조사했다. 애경은 2002∼2011년까지 CMIT·MIT 원료로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판매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사위인 안 전 대표는 1995년부터 2017년 7월까지 애경산업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3월29일 안 전 대표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데 이어 지난달 1일 영장을 다시 기각했다.

유해성 여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안용찬 전 대표 영장 잇달아 기각

애경 측은 ‘SK케미칼로부터 완제품을 공급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점과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제3자의 생명·신체·재산에 손해를 끼친 사고가 발생하면, SK케미칼이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제조물 책임계약을 강조했다.

반면 검찰은 처음 제품 출시 당시 애경과 SK가 공동 안전성 검증을 협의한 정황을 확보했고, 애경이 SK로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넘겨 받아 원료물질의 흡입 독성을 미리 알 수 있었다는 정황 역시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종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 유형에 따른 독성 및 위해성 차이, 그로 인한 형사 책임 유무 및 정도에 관한 다툼 여지, 흡입 독성 실험을 포함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 및 수사 진행 경과,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의 범위와 내용을 고려하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안 전 대표를 비롯해 애경산업 전직 임원 2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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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