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여행지 ⑤중구생활사전시관

개항장 인천의 랜드마크, 대불호텔의 화려한 변신

▲ 대불호텔 자리에 개관한 중구생활사전시관

오랜 세월 공터로 있던 자리에 옛 주인이 돌아왔다. 1978년 철거된 대불호텔이 40년 만인 지난해 4월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 대불호텔의 모습을 재현해 꾸민 이곳은 대불호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관,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2관으로 구성돼 있다. 관람 동선은 1관을 지나면 자연스레 2관으로 이어진다.
 

▲ 대불호텔 객실을 재현한 공간

중구생활사전시관에서 먼저 할 일은 대불호텔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세월을 돌아보는 일이다. 흥했다 망하고, 다시 성했다 쇠하는 그 과정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했던 130여년 전의 개항장 인천과 많이 닮았다. 아니 우리가 살아내야 할 팍팍한 인생과도 많이 닮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역사는 1888년, 제물포항(인천항)에서 멀지 않은 일본 조계에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세워지며 시작됐다. 파란 눈의 이방인은 이곳을 호텔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렀다. 식사하고 잠을 자는 공간이지만, 초가로 지은 우리네 주막이나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여관과는 달랐다. 객실에는 침대가 놓이고 서양 음식이 제공됐다.

호텔 역사 한눈에

한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한 종업원의 맞춤 서비스는 대불호텔의 명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비망록>에서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셨다”며 투숙 경험을 남겼다. ‘깨끗하고 매혹적인 건물’이라 대불호텔을 극찬한 영국인 탐험가 새비지-랜도어 역시 <코리아 혹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현대적 말씨를 사용하는 종업원’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 당시 호텔 서비스를 보여주는 전시물

대불호텔의 객실료는 상등실 2원50전, 일반실 2원으로 다른 호텔이나 여관보다 비쌌지만, 인기가 좋아 11개 객실은 늘 만실이었다. 당시 한국인 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23전이었다. 
10여년간 호황을 누린 대불호텔은 189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놓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원래 경성(서울)까지는 우마차를 타고 12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기차를 이용하면 1시간40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서양인 왕래가 감소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 중구생활사전시관 1관에 전시된 ‘중화루’ 간판

일본인 무역상 호리 히사타로가 소유한 대불호텔은 뢰씨 일가를 비롯한 중국인들에게 넘어가, 베이징요리 전문점 ‘중화루’로 다시 태어났다. 호텔에서 중국집으로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중화루는 인천을 넘어 경성까지 이름을 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불호텔 경영에 악재로 작용한 경인선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하지만 40여년을 승승장구하던 중화루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60년대 들어 청관거리의 경기가 급격히 나빠진 것. 중화루 폐업 후 월세방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3층 벽돌 건물은 1978년, 지은 지 90년 만에 결국 철거되고 만다.
중구생활사전시관 1관에는 대불호텔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당시 호텔 객실과 연회장을 재현한 공간이 있고,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카메라와 회중시계 같은 진귀한 소품도 전시됐다. 1층 전시관의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마감해 대불호텔의 유구를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흥미롭다.
 

▲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은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공간이다. 당시 상류층 주택을 재현한 전시물부터 이발소, 다방, 극장까지 중구에 실재한 건물과 시설을 기반으로 꾸며, 전시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 인천개항박물관 외관

중구생활사전시관을 돌아본 뒤에는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도 찬찬히 걸어보자. 중구생활사전시관 옆으로 ‘조선은행’이라 이름 붙은 구 인천일본제1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7호)과 구 인천일본제18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50호), 구 인천일본제58은행지점(인천유형문화재 19호)이 나란히 자리한다. 청일전쟁 후 경제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한 이들 일본 은행 건물은 현재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본제18은행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일본제1은행은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운영된다.
 

▲ 인천아트플랫폼의 야외 전시물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하는 일본제18은행에서는 답동성당과 존스턴 별장처럼 현재 인천 중구에 있거나 과거에 있던 근대건축 모형이 전시돼, 개항 당시 인천의 모습을 상상하기 좋다. 부둣가 창고를 지역 예술인의 창작 공간으로 꾸민 인천아트플랫폼,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한중문화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 월미공원 내 한국전통정원에 재현된 안동하회마을의 양진당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
1978년 철거 후 새롭게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월미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한국전통정원이다. 월미공원 입구 왼쪽에 있는 한국전통정원에서는 창덕궁 부용지, 안동하회마을의 양진당, 담양 소쇄원, 함안의 국담원 등 우리나라 대표 전통 건축물을 재현했다. 
인천 앞바다와 영종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월미전망대와 월미문화관도 놓칠 수 없다. 공원 정문에서 1.4km 떨어진 월미전망대 앞 정상광장까지 걸어가거나 물범셔틀카를 이용하면 된다. 물범셔틀카 이용료는 왕복 어른 1500원, 어린이 800원(편도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이다.
 

▲ 신포국제시장의 명물, 닭강정

신포국제시장은 19세기 말 푸성귀전에서 비롯됐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배추와 무, 양파 등 각종 채소를 팔던 자리에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된 것. 개항 이후 인천항으로 들어온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서울에 화신백화점이 있다면 인천에는 신포시장이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번성했다. 
신포시장으로 불리던 이곳은 2010년 3월에 문화관광시장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신포국제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포국제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는 먹거리에 있다. 그중에서도 닭강정이 명물. 양념치킨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에 처음 선보였으니, 그 매콤한 맛을 지켜온 시간은 어느덧 40년에 가깝다. 최근 젊은 고객의 입맛을 고려해 순한 카레 맛 닭강정을 내놓은 게 변화라면 변화다.
 

▲ G타워 전망대에서 본 송도센트럴파크

송도센트럴파크는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송도국제도시에 자리한다. 서해 바닷물을 끌어와 만든 해수로를 중심으로 테라스정원, 산책정원, 꽃사슴정원, 조각정원 등을 조성했다. 테마 정원은 해수로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통해 모두 연결된다. 송도센트럴파크는 국내 최초의 해수 공원답게 도심에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미니 보트와 카약을 타고 토끼섬과 연인섬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니 보트와 카약은 이스트보트하우스에서, 수상 택시는 웨스트보트하우스에서 출발한다.
 

▲ 요즘은 꽃게가 제철이다.

국가어항 ‘소래포구’

소래포구는 수도권을 대표하는 어항이다.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접근성이 좋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2017년 해양수산부 고시를 통해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소래포구의 매력은 우리 바다가 키운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싱싱한 활어, 젓갈, 건어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요즘은 토실토실 살이 오른 주꾸미와 주홍빛 알을 가득 품은 꽃게가 제철이다. 싱싱한 바다의 맛을 마음껏 즐기고, 소래철교를 걸으며 포구의 낭만에 빠져도 좋다.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를 벗 삼아 걷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코끝에 와닿는 바다 냄새는 도심 생활에 찌든 가슴을 말끔히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중구생활사전시관→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월미공원→신포국제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중구생활사전시관→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월미공원→신포국제시장
둘째 날: 송도센트럴파크→인천시티투어→소래포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중구 문화관광 www.icjg.go.kr/tour
- 중구생활사전시관 http://jlhm.icjgss.or.kr
-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www.icjgss.or.kr/architecture
- 인천개항박물관 www.icjgss.or.kr/open_port
- 월미공원(인천의공원) http://park.incheon.go.kr
- 신포국제시장 http://sinpomarket.com
- 인천시설공단 www.insiseol.or.kr 

문의 전화 
- 인천역관광안내소 032)777-1330
- 인천종합관광안내소 032)832-3031
- 중구청 문화관광과 관광팀 032)760-6478
- 중구생활사전시관 032)766-2202
-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032)760-7549
- 인천개항박물관 032)760-7508
- 월미공원 032)765-4133
- 신포국제시장지원센터 032)764-0415
- 인천시설공단 032)456-2070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1호선 인천역 3번 출구, 중구청 방면 도보 5분. 
*문의: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자가운전
인천대로 인천 IC→인천항사거리에서 수인사거리 방면 우회전→수인사거리에서 중구청 방면 좌회전→인천역→중구생활사전시관 

숙박 정보
- 센트로호텔: 중구 연안부두로43번길, 032)887-0490, http://blog.naver.com/hotelcentro
- 바이킹호텔: 중구 연안부두로55번길, 032)887-1539
- 제이모텔: 중구 연안부두로21번길, 032) 888-7711
- 올림포스호텔: 중구 제물량로, 032)762-5181, http://olymposhotel.co.kr

식당 정보
- 공화춘(중화요리): 중구 차이나타운로, 032)765-0571, www. gonghwachun.co.kr
- 신승반점(중화요리):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032)762-9467
- 인천집(삼치구이): 중구 우현로67번길, 032)764-6401
- 통큰밴댕이(밴댕이회): 중구 연안부두로, 032) 884-3979, https://blog.naver.com/tongkn3979

주변 볼거리
송월동동화마을, 차이나타운, 북성포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