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신구 공천룰 비교

뚜껑 열어보니 ‘그저 그렇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공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정치를 해야 정치가 살아나고, 그렇지 않으면 정치가 잘 되지 않는다(其人存則政擧, 其人亡則政息)고 했다. 정치서 ‘사람’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최근 민주당은 새로운 공천 룰을 도입해 정치 개혁을 하고자 했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인물 개혁이다. 그러려면 정당의 공천 과정을 개혁해야 하며 이는 공정한 공천 룰의 마련으로 시작된다. 지난 20대 공천 룰과 달라진 점을 <일요시사>가 집중 분석했다. 
 

▲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성 및 정치 신인 우대 등을 골자로 하는 공천 룰 재정비에 나섰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국회서 현역의원 경선 및 전략공천 최소화 등의 내용이 담긴 제21대 총선 공천심사 및 경선 룰을 발표했다. 내년 총선서 여성·청년·신인 등의 참여에 가산점을 부여해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줄이고자 했다. 현역 의원은 경선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으나 공천 룰이 공개됐을 때 실상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평이 나왔다.

여성·청년↑

민주당은 공천 기조를 ‘객관적인 상향식 공천’과 ‘예측 가능한 시스템 공천’으로 정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총선 공천에 대해 “전략공천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절차에 따라 추진하겠다”며 “어떤 경우에도 사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하지 않도록 시스템 공천을 반드시 실현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천 룰은 ▲경선 방식 ▲권리당원 규정 ▲정치 신인·여성·청년·장애인 참정 확대를 위한 가산점 항목 신설 ▲음주운전·성범죄·병역 비리 등 후보자 도덕성 검증 기준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경선은 ‘국민참여방식’으로 본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투표를 통해 당내 경선을 치르게 된다. 경선엔 ‘권리당원 50%, 국민안심번호 선거인단 50%’를 적용한다. 권리당원의 선거권 행사를 위한 권리행사 시행일은 2020년 2월1일로 정했으며, 이에 따라 2019년 8월1일 이전에 입당한 권리당원 가운데 2019년 2월1일서 2020년 1월31일까지 1년간 당비를 6회 이상 납부한 당원에게 선거권이 부여된다.


여기에 여성·청년·장애인 지원자에 대한 가산점이 소폭 상승했다. 여성의 정치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공천심사 때 여성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최고 25%까지 줄 수 있도록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성 정치인에 대한 가산점 부여가 여성할당제 같은 제도보다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 강훈식 전략기획위원장은 “여성 후보자가 공천자로 결정되도록 인센티브를 준 것으로, 최대한 여성 공천이 많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만약 여성 공천이 30%까지 포함이 되지 않으면 보완해 나갈지에 대해 추가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청년 지원 가산점 주목
도덕성 검증 기준 강화

청년 지원자 가산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지난 20대 총선서 예비후보에 등록했지만 경선에도 나서지 못했던 청년들이 허다했다. 민주당은 청년을 포함해 장애인·당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에 대해서도 가산 범위를 현행 10∼20%서 10∼25%로 높였다.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에는 중도 사퇴해 보궐선거를 치르면 감산점을 10%서 30%로 대폭 강화하는 등 현역 기초단체장들의 총선 출마를 사실상 원천봉쇄했다. 윤 사무총장은 “되도록 출마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경선에 대거 도전할 경우 기초단체장들의 대규모 공백상태가 발생할 것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또, 현역의원은 경선 원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단수 후보 선정 기준은 지난 선거보다 강화했다. 후보자 평가 시 하위 20%를 받은 의원들에게는 10% 감산했던 것을 20%로 확대했다.

이외에도 도덕성 검증 기준이 추가됐다. 음주운전·성범죄·병역비리 등 공직선거후보자 자격 및 도덕성 기준이 강화돼 음주운전은 선거일 전 15년 이내 3회 이상, 최근 10년 이내 2회 이상 적발된 경우 부적격 처리한다. 특히 ‘윤창호법’이 시행된 지난해 이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경우에는 내년 총선 공천서 아예 배제된다.
 


이는 최근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과 국민 정서에 맞는 측면을 보완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윤 사무총장 역시 “지금까지 후보자 자격심사위에선 주로 사법적 판단이 이뤄진 경우에 대해서만 심사했으나,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 수준이 높아진 데 맞춰 사법처리와 관계없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행동이 있을 경우에도 심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현역 의원은 경선…불리?
“사실상 더 유리” 평가도

무엇보다 이번 공천룰의 ‘뜨거운 감자’는 신인 정치인에 대한 가산점 추가 항목이다. 민주당은 신인 정치인에게 10∼20%의 가산점을 주겠다는 항목을 추가했지만, 사실상 현역에게 더 유리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대 총선에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만 당 후보를 뽑았다. 이와 달리, 21대 경선서 ‘권리당원 50%, 국민안심번호 선거인단 50%’를 적용했다.

당비를 일정 기간 낸 권리당원의 투표가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반 국민에게 의향을 물어 반영하는 것이다.

‘권리당원 50%+안심번호 50%’룰이 신인에게 불리하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 윤 사무총장은 “당원을 상대로 자신을 알리는 선거운동을 하고, 1년 전에 미리 룰을 확정해 당원 모집 기회도 주어지게 돼서 오히려 신인에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권리당원에 대한 명부는 현역 의원들만 갖고 있다. 현역 의원은 해당 지역 권리당원이 누군지 알기에 친분을 쌓기도 한다. 또, 권리당원 명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해당 지역위원회에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저촉될 수 있기에 이들이 신인 도전자에게 명부를 내어줄 가능성은 낮다.

경선 때가 되면 현역 의원만이 권리당원에게 직접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민주당 원외 관계자는 “룰을 딱 보는 순간 현역이 유리하구나 생각했다”며 “정치 신인 가산점이 있다지만, 뒤집기 힘든 구조다. 사실상 ‘알아서 하라’고 한 셈”이라고 언급했다.

구관이 명관?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소장은 “명부를 개방하든지 아니면 해당 지역 당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서 신인들의 정책설명회라도 최소한 마련해야 한다”며 “이런 조치가 없으면 겉으로는 상향식 공천으로 보여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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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