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말6초’ 개성공단 빛과 그림자

추락의 끝? 끝 모를 추락?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북의 문턱을 넘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3년3개월 만이다. 당시 입주 기업인들은 갑작스러운 폐쇄 통보에 닥치는 대로 짐을 챙겼다.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물품을 차량에 묶어 이동했던 장면은 결정적이었다. 이들은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재기를 꿈꿔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공장 재개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 개성공단 근로자들 ⓒ사진공동취재단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개성 땅을 밟게 됐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2016년 2월 폐쇄됐다. 개성공단 기업협회는 지난 정부 당시 세 차례, 현 정부 들어 여섯 차례 방북을 신청했다. 통일부는 지난 17일 “정부는 지난달 30일 개성공단 투자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을 승인했다”며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차원”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시작

입주 기업인들로 구성된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만시지탄이지만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대북제재와 무관한 기업인들의 공단 방문은 진즉 허용하는 것이 마땅했다”며 “그동안 미국을 지나치게 의식해 유보조치를 해왔던 것은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방문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3년 이상 방치된 공장 및 기계의 설비를 점검하고 보존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실질적 점검이 가능한 방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기업협회 홈페이지 회원 현황에 따르면 입주기업은 모두 128개로 이들의 현주소는 그리 밝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기중앙회)는 지난달 16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경영환경 및 향후전망 조사’를 실시했다. 입주기업 중 108개사가 대상이었다.


입주기업 86.2%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 76.9%는 ‘중단 이전 대비 악화’, 9.3%는 ‘사실상 폐업 상태’다. 이들은 경영상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영자금 부족을 꼽았다. 뒤이어 거래처 감소에 따른 주문량 부족과 설비 부족 등을 언급했다.

이들의 답은 지난해 중기중앙회가 실시한 ‘개성공단기업 최근 경영상황 조사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입주기업의 경영상 처한 어려움은 경영자금, 주문량, 설비자금 순이었다. 기업 상황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악화일로라는 해석이다.

8전9기 방북 승인, 재개 실마리?
개성공단기업, 경영 환경 악화

재입주 의사에 대해선 98.2%가 답했다. 세부적으로 무조건 재입주는 지난해 26.7%서 56.5%로 상승했다. 조건부 재입주(남북합의 등 재가동 조건 확인)는 69.3%서 41.7%로 하락했다. 이들 중 66.7%는 재가동 선결조건으로 ‘국가의 손실보장 근거규정 마련’을 제기했다.

입주기업들의 73.2%는 현 정부 임기 내 공단 재가동을 예상했다.

지난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당시 입주 기업들은 추산 피해 금액을 1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7861억원을 실제 피해액으로 산정, 피해자금 5500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기업 대부분이 경영상황 악화에 빠지면서 지원금의 의미는 희석됐다.

이들 기업은 개성공단 재개 시 지원금을 전부 상환해야 한다.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성공단의 완전한 가동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개성공단 재개 여부는 대북제재와 남북 및 북미 관계의 교착 등 다소 복잡한 상황에 얽혀 있다.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장관은 지난 18일 개성공단 기업들의 방북 승인에 대해 “가냘픈 희망과 같은 것들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 개성공단 풍경 ⓒ사진공동취재단

비대위는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공단 재개에 미국의 동의가 전적으로 필요한 만큼 설득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개성공단 기업협회는 다음 달 10∼15일 미국 하원에서 열리는 개성공단 설명회에 참석하게 된다.

정기섭 개성공단 기업협회장은 지난 21일 “비대위가 행사를 추진했고,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의 공식 초청을 받아 설명회를 열게 됐다”며 “협회 측에서 4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도 동참을 요청해 함께 참석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협회는 미국 현지 언론 인터뷰와 공단 관계자들과의 면담, 교포기업인 간담회 등도 진행할 방침이다.

대북제재, 전면 나서 미국 설득
교착국면 타개 기점 관전 포인트

공단 측의 적극적인 대미 활동은 대북제재와 맞닿아 있다. 미국의 제재 유지 원칙은 견고하다.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제재 유지는 미국의 대북 정책을 상징한다. 다만 정부의 방북 승인을 미뤄봤을 때, 한미 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통일부는 지난 17일 언론 브리핑서 “미국과 필요한 내용들을 공유했고, 미국도 우리 측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개성공단 기업협회는 방북 기업인의 규모와 공단 상황을 감안해 3개조를 편성, ‘한 조당 하루 이상 공단 점검’을 통일부에 요청했다. 정 회장은 지난 21일 “한꺼번에 전 기업이 다 들어가기는 어렵다”며 “3개 조 정도로 나누고 날짜를 달리해서 방북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개성공단 풍경 ⓒ사진공동취재단

협회 관계자는 지난 21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개성공단 중단 이후 첫 방문으로 (공장 설비 등에 대한) 정밀점검과 보존대책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이번에는 육안으로 보게 돼 정밀점검은 힘들 듯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방문이 정밀점검과 보존대책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이번 방문을 통해) 실무협의와 고위급회담 등 공장 재개를 위한 실마리가 생겼으면 한다”며 “현재 남북이 교착국면에 있지만 이번 방문을 계기로 그 국면이 타개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교착 타개

관계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당시 신한용 개성공단 기업협회장과 정기섭 협회 명예회장 등이 연락사무소에 방문했지만, 개성공단을 멀리서 바라만 봤을 뿐 실제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며 “어느 누구도 중단 이후 개성공단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기업인들에게 공장은 자식과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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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