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부터 구독’ 지금은 유튜브 시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5.20 10:56:53
  • 호수 12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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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먹방’, 어른은 ‘벗방’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유튜브의 고공행진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는 신문, TV, 라디오 등 기존 미디어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해 조사한 초등학생 장래희망 조사결과 ‘유튜버’는 5위에 올랐다. 정치인, 연예인 등을 비롯해 각종 기관서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요시사>가 유튜브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봤다.
 

▲ 강남스타일 ⓒ유튜브

유튜브의 탄생은 불과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튜브 창업자는 2005년 2월 페이팔서 근무했던 체드 헐리, 스티브 첸, 자웨드 카림이다. 이들 셋은 “자유로운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취지로 유튜브를 탄생시켰다. 유튜브의 뜻은 ‘모든 사람들의 TV’라는 의미다. 

1년 만에 
점유율 껑충

같은 해 4월24일 ‘Me at the zoo'라는 제목으로 한 남성이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동물원 앞에서 코끼리의 코를 칭찬하는 18초짜리 영상을 업로드하는데 이 영상이 바로 유튜브 최초의 영상이다.

2006년 10월 구글은 적자였던 유튜브를 인수하는 모험를 감행했다. 직원 67명의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한화 1조9811억9000만원)에 인수한 것. 2년 뒤인 2008년 유튜브는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에 이어 19번째로 한국에 상륙했다.

한국에 들어온 유튜브는 국내 동영상 시장에 큰 위협이 됐다. 2007년까지 업계 2위를 유지했던 엠엔캐스트는 2009년 4월 서비스를 중단했고, 이어 1년 뒤인 2010년 4월엔 네이버 비디오 서비스도 중단했다. 경쟁사였던 동영상 공유서비스가 주춤하는 사이 유튜브는 ‘글로벌 플랫폼’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008년 당시에만 해도 판도라TV, 다음 TV팟 등 국내 동영상 플랫폼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 실명인증을 하지 않으면 동영상에 댓글을 달 수가 없다. 이에 사용자들이 실명인증이 필요없는 유튜브에 몰리면서, 이듬해 유튜브의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은 30%까지 성장했다. 불과 2%에 불과했던 유튜브의 점유율이 폭발적으로 뛴 것이다.

앞서 2006년 9월 채널을 개설한 ‘기타신동’ 정성하씨가 올린 연주 동영상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씨의 아버지는 매주 두세 개씩 아들의 영상을 올렸는데, 이 채널은 2011년을 기준으로 구독자가 33만명에 이르고 조회 수가 2억200만건을 넘겼다. 정씨가 연주한 ‘All you need is love’의 존 레논의 부인 오노오쿄가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았다는 일화도 있다. 정씨가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연주 콘텐츠만 1100여곡이 넘으며 구독자도 570만명을 거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제 어디서나 영상 시청
싸이·BTS 등 월드스타로

유튜브는 2010년 3월부터 지금까지 국내 동영상 공유 서비스 부문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유튜브가 시장진입을 늦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배경엔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점이 꼽힌다. 망 사용료란 인터넷 기업이 통신사 망을 통해 동영상 등 콘텐츠를 전송한 대가로 지급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매년 네이버는 700억, 카카오는 300억원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느라 글로벌 IT업체와 기울어진 운동장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사업자는 국내서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면서도 우월한 협상력을 내세워 망 사용료를 피해갔다.
 

▲ 유명 유튜버 대도서관

자주 보는 콘텐츠를 이용자와 가까운 위치에 저장하는 ‘캐시서버’ 구축 비용도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전가해왔다.


구글은 유튜브의 고화질 영상으로 국내 동영상 트래픽 점유율이 86%에 달하지만 단 한 푼의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제한 없이 고화질 영상을 제공한다. 국내 업체가 고화질 영상을 제공하려면 막대한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유튜브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인 2006년 이용자들이 직접 영상을 올리는 ‘네이버 비디오’를 서비스하며, 다양한 콘텐츠 기반으로 성장을 해오다 망 사용료 부담에 2010년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용자들이 고화질의 영상을 올리면 콘텐츠의 질을 올라가지만 트래픽도 같이 올라가면서 수익성이 점차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화질로
간편하게

결국 동영상 전쟁서 네이버가 패배하고 유튜브가 승리했다. 

전문가들은 유튜브에 날개를 단 것은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 상승곡선에 따라 맞물렸다고 분석한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스마트폰 보급률이 2011년 27.0% 2012년 57.5%를 기록하며 국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통해 고화질 영상을 시간,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간편하게 재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음악이나 동영상을 다운로드 방식이 아닌 재생을 하는 스트리밍 형태로 소지 트렌드가 바뀌면서 유튜브 시장은 점점 커졌다. 특히 한국은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IT강국으로 스트리밍 산업의 발전 또한 유난히 빨랐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짧은 시간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컬처에 유튜브가 잘 맞아 떨어졌다.

지난 2012년 가수 싸이는 유튜브를 통해 월드스타로 도약했다. 6집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이 공개된 지 불과 52일 만에 조회 수 대박을 터뜨리는가 하면 유튜브 뮤직비디오 사상 최단기간에 1억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기세를 탄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싱글차트서 7주 연속 2위, 유튜브 조회수 32억뷰를 넘어서며 기네스북까지 오르며 싸이를 월드스타로서 인기를 누리게 됐다. 
 

이에 대해 영국 BBC와 미국 음악전문지 <빌보드 매거진> 등은 “유튜브의 절대 강자로 거듭났다”는 등의 찬사를 쏟아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조회수 2억9000만뷰), 제니의 ‘솔로’(3억뷰) 등 아이돌그룹이 유튜브를 통해 국위선양을 했다.

얼마나 버나
수억원 훌쩍

아이들 그룹 뿐 아니라 핑크퐁의 동요 컨텐츠 '아기상어(Baby Shark)'는 26억뷰를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아기 상어는 올해 초 빌보드 32위에 진입한 바 있다.

유튜브는 기성 가수들을 해외로 보내고 새로운 스타를 키워냈다. 밀레니엄 세대는 TV의 정제된 방송 스타일에 식상함을 느끼고 유튜브에 열광했다. 일반인들은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영상을 업로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음악을 비롯해 게임, 먹방 등 다양한 콘텐츠로 유튜브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유튜버들의 인기르 가늠하는 척도는 구독자 수다.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면 재생횟수가 1회가 되고, 유튜브의 계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싸이 계정의 ‘구독’ 버튼을 누르면 싸이의 구독자수는 1명이 된다. 구독자가 되면 구독한 계정에서 영상이 업로드 될 때마다 실시간으로 알림이 오게 된다.  


미국의 유튜브 분석 사이트인 소셜블레이드에 따르면 한국 유튜브 채널 중 광고수익 1위 채널은 아동 채널인 ‘보람튜브 토이리뷰’로 월 160만달러(약 19억원)로 추정됐다. 2위 업체 역시 보람튜브와 같은 계열의 ‘보람튜브 브이로그’로 150만 달러(17억8000만 원)로 추산됐다.

보람튜브 운영업체는 매달 최소 37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셈으로, 매출이 연 370억원이 넘는 중소기업 수준이다. 

보람튜브를 비롯해 어썸하은(구독자 350만)은 11세 소녀가 음악에 맞춰 댄스를 추고, 서은이야기(구독자 340만)는 5세 서은이가 놀이 공간 체험, 장난감·간식 리뷰를 한다. 

대기업 사장보다 잘 버는 파워 유튜버
‘기타 신동’ 정성하 33만명으로 스타트

음식을 먹는 방송도 인기가 많다. 광주 농촌 출싱의 형제가 먹방을 하는 떵깨떵(구독자 330만)은 순박하고 친근한 방송으로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먹방인 만큼 언어가 필요 없어 동남아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사람이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평가를 하는 ‘영국남자 조쉬(구독자 310만)’도 주목 받는 유튜브 중 하나다. 음식 리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한국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쉬는 유튜브 인기에 힘입어 채널A의 새 예능 <영국남자>에 출연해 한국 문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지난 19일 첫방송이 편성됐다.  
 

▲ 유튜버 순위

게임, 독서 등 다양한 컨텐츠를 보여주는 보겸TV(320만)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도티TV(252만)는 마인크래프트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게임을 주로 다룬다.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튜버 도티는 유튜브 채널 운영 외에도 방송출연, 강연 등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게임전문 유튜버로는 ‘방송계의 유재석’이라고 평가받는 대도서관(180만)이 있다. 대도서관은 지난해 10월, 한 방송에 출연해 “1년 수입이 17억원 정도 된다”고 밝혀 누리꾼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2013년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를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랜선라이프-크레이터가 사는법>서 진행자로 나서며 유튜버를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장벽 낮지만
콘텐츠 중요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서 “유튜브 진입 장벽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 성공한다고 보긴 어렵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이어 “파워 유튜버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자생적으로 만들어가며 성장해서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유한국당 유튜브 지령
1인 1편 영상 제작하라고?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내년 4월 총선을 대비해 소속 의원 전원에게 유튜브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기성 언론 환경서 불리하다는 판단을 한 한국당은 당의 주력 스피커를 유튜브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3일 한국당 홍보국은 소속 의원실에 공문을 보내 “2020년 총선을 겨냥한 차별화된 홍보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친숙한 이미지로 당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며 유튜브 영상 제작 콘테스트 개최 소식도 전했다. 

한국당은 의원 114명에게 ‘유튜브 계정을 개설하고 1인 1편 이상의 영상을 제작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했다. 이달 말까지 의원이 직접 출연하거나 제작에 참여한 영상을 의원 개별 유튜브 계정에 올린 뒤 당에 증빙자료를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국민이 TV 프로그램보다 유튜브 방송을 더 많이 보는 상황”이라며 “의원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서 전 당원이 유튜브를 정책홍보 등에 활용토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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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