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빙상 1번지’ 목동빙상장 입찰 특혜 의혹

조례·가산점 바꾸고…특정업체 밀어주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목동실내빙상장은 한국 빙상의 메카’ ‘빙상 1번지로 불릴 만큼 그 상징성이 크다. 오는 7월 목동빙상장의 위탁 운영업체가 바뀐다. 목동빙상장 운영권을 둘러싼 업체 간 쟁탈전이 빙상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이 과정서 운영업체 선정을 담당하는 서울시가 수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목동실내빙상장(이하 목동빙상장)은 국내 최초 국제규격의 빙상장으로 건립됐다. 19891031일 준공된 목동빙상장은 경기장 면적이 6018에 이르고 좌석수는 5000, 최대 수용인원은 7000명에 달한다. 각종 국제대회가 열리는 것은 물론 시민들의 여가 시설로도 사용된다.

목동빙상장
누구 손에?

목동빙상장은 198912월 개장 이후 초기 10년은 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센타서 무상으로 위탁받아 운영했다. 이후 1999년 한국동계스포츠센타가 수의계약을 통해 위탁 운영한 이래, 2016년까지 줄곧 재계약이 이뤄졌다. 그러다 2017년 공개모집서 서울특별시체육회(이하 서울시체육회)가 위탁 운영업체로 선정됐다. 위탁 운영기간은 올해 말까지였다.

하지만 서울시체육회가 목동빙상장을 운영하는 과정서 유태욱 소장의 갑질 의혹, 부실 운영 등 각종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시는 목동실내빙상장 관리·운영 사무 위·수탁 협약서수탁자가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다수의 민원을 야기하는 등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돼 사업 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인권침해, 회계부정, 부당노동행위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를 들어 서울시체육회와의 목동빙상장 위·수탁협약을 6개월(630) 조기 해지하기로 했다.

서울시의회는 체육단체 비위근절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통해 목동빙상장의 경영 상황을 꼬집었다.


결의안에는 최근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체육계 미투 운동에도 불구하고 2014년 성추행 의혹과 불법스포츠 도박으로 코치직을 내려놓은 코치가 빙상장을 대관해 강습하도록 허가하는 등 (서울시체육회의) 경영 윤리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담겼다. 또 목동빙상장 소장(유태욱) 채용 과정서 불거진 의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울시체육회가 불명예스럽게 목동빙상장 운영서 밀려나면서 다음 위탁 운영업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새로운 위탁 운영업체는 오는 71일부터 2022630일까지 3년간 목동빙상장의 운영과 관리를 맡는다. 세부적으로는 경기장 사용허가, 매점 등 승인된 재임대 시설 관리·운영, 공공체육시설 목적에 반하지 않는 수익사업 권한 등을 갖게 된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이하 서울시 사업소)는 지난 1308기 민간위탁 체육시설 목동실내빙상장 수탁기관 재선정 추진계획’(이하 목동빙상장 재선정 계획)을 시작으로 새 운영업체 찾기에 나섰다.

논란 많은 서울시체육회 
운영권 6개월 조기 해지

이후 425일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공고문을 포함한 목동실내빙상장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이하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이 게시됐다.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에 따르면 수탁자선정심의위원회(이하 수탁자위원회)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협상 절차를 통해 서울시와 협약을 체결한다.

심사는 입찰참가 업체의 제안설명(PPT)과 평가위원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뤄진다. 제안서 평가는 정량평가 30%, 정성평가 70% 등 총 100점 만점으로 구성된다. 정량평가는 담당공무원이, 정성평가는 수탁자위원회에서 맡는다. 수탁자위원회가 운영업체 선정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수탁자위원회 구성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사업소는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서 수탁자위원회 구성의 근거로 서울특별시립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17(수탁자 선정기준)서울특별시립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10(위원회 구성·운영)를 들고 있다.


서울시 사업소는 해당 조례를 근거로 수탁자위원회는 행정1부시장·행정국장·관광체육국장·체육시설관리사업소장 내부인사 4명과 시의원·공인회계사·전문체육인·생활체육전문인·마케팅전문연구원 등 외부인사 8명을 더해 총 12명으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지난 425일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서 해당 조례의 조항이 ‘처음’ 등장했다는 점이다. 지난 425일 이전 서울시 정보소통광장 등에서 확인 가능한 목동빙상장 관련 문건에서는 해당 조례의 조항을 확인할 수 없다.

130일 목동빙상장 재선정 계획, 212일 제8기 목동실내빙상장 민간위탁비 산출을 위한 원가조사 용역 추진계획에는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9조를 근거로 적격자 심의위원회에서 수탁기관을 선정한다고 명시돼있다.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적격자 심의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1명을 포함해 69명으로 구성하되 위원장은 외부위원 중에 호선한다. 또 심의위원회 위원 임명과 위촉은 시장이 하도록 돼있다. 다시 말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심의위원회 구성의 주체가 된다.

그동안 일관되게 적용돼온 조례가 지난 425일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목동실내빙상장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서 갑자기 변경된 것이다. 한 빙상 관계자는 입찰 과정서 심의위원이 이렇게 노출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심의위원들에 대한) 사전 접촉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뚱맞은
조례 조항

변경된 조례를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서울특별시립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 제10조에 따르면 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은 행정부시장으로 하고, 심의위원은 서울시장이 임명 또는 위촉하는 사람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사업소는 지난 51일 서울시의회 의장에게 목동빙상장의 관리·운영 제안업체의 제안서 적정성 등을 심의할 시의원 추천을 의뢰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서울시는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 선정 관련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거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시 감사위원회 안전감사담당관 일상감사팀(이하 서울시 일상감사팀)은 지난 314민간위탁사업 일상감사 의견 공통기준을 내놨다.

서울시 민간위탁 사업에 따라 수탁시설 내부서 발생할 수 있는 성추행·폭언·횡령 등의 비위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려는 의도다. 서울시 일상감사팀은 민간위탁 선정 시 비위행위를 저지른 수탁기관 내부 종사자에 대한 배제·통제 장치가 미흡하다고 봤다.
 

▲ 서울시청

일상감사는 수탁자를 공모하는 신규 민간위탁 사업과 재위탁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일상감사에서는 수탁자 모집공고 시 평가요소와 배점, 선정방법과 적격자 심의위원회 구성 등 민간위탁 사업과 관련된 부분을 폭넓게 살핀다. 특히 수탁자의 성희롱·폭언·비위행위와 관련해서는 자격제한과 함께 예방대책을 평가항목으로 추가하라고 권고했다.

정량 평가서 전체 배점(2030)50% 이상을 성희롱·폭언·횡령 등 비위행위와 관련해 수탁기관 소속 대표와 임직원의 민·형사 책임 전력 등을 평가하는 식이다. 정성 평가에서도 전체 배점(6070)10% 이상의 수준으로 수탁기관 내부 임·직원의 성희롱 예방·인권·청렴도에 관한 대책을 평가항목으로 마련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기준은 결재일부터 시행한다고도 밝혔다.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 선정 건은 수탁자를 공개모집하는 재위탁 사업에 해당한다. 절차대로 하면 일상감사가 이뤄진 후 그 결과가 반영된 공고가 나왔어야 한다.

시 권고
무시했나?

하지만 지난 51일 게시된 목동실내빙상장 관리·위탁 운영기관 공개모집제안안내서에는 일상감사팀이 제시한 의견이 반영돼있지 않다. 서울시가 일상감사 없이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 선정 과정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가산점 부여표가 임의로 변경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서울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 관리지침에는 서울시 협상에 의한 계약 시 가산점 세부내역이라고 해서 가산점 부여표가 명시돼있다. 가산점 부여표에 따라 입찰에 참가한 업체는 -716.6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 제안안내서에는 가산점 부여 점수가 -64점으로 변경돼있다.

70점 만점의 정성 평가 배점 범위도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시는 제안서평가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6(평가점수 산정)에 평가항목별 점수의 최저점을 배점의 60% 이상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점 배점항목의 최저점은 6점이라는 뜻이다. 즉 해당 평가항목의 배점 범위는 610점이 된다.

하지만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 제안안내서에는 평가항목에 대한 배점 범위가 210점으로 돼있다. ····5개 등급으로 구분해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한 빙상관계자는 실제 입찰서 12위 업체간 점수 차이는 채 1점도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배점의 범위가 넓어지면 심의위원의 의도가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사업소가 내놓은 신규수탁자 선정계획이나 제안안내서는 일부 빙상인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일각에선 서울시가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조례나 가산점 부분을 손본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한 빙상관계자는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 선정 관련 공고는 누더기라고 비판하며 이것저것을 손보는 과정서 특정업체 맞춤형 공고로 변질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부 빙상인들 사이에서는 해당 특정업체가 한국동계스포츠센타를 의미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해당 업체의 이름이 나오는 등 조짐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424일 서울시의회 제286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3차 회의서 한국동계스포츠센타가 언급됐다. 더불어민주당 황규복 시의원의 질의에 주용태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이 답변하는 과정서 나왔다. 주 국장은 한국동계스포츠센타는 빙상 경기연맹과 아이스하키협회가 50%씩 출자해 만든 법인이라고 부연했다.

황 의원이 한국동계스포츠센타만 입찰에 들어올 경우 협약이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자 주 국장은 두 차례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이뤄질 수 있다고 답변했다.

취재 들어가자 돌연 취소 공고 
“보완해서 재공고 하겠다”

일부 빙상인들은 주 국장의 답변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빙상관계자는 한국동계스포츠센타는 20173월 이후 어떠한 공식 활동이 없고 지난해 8월에는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동계스포츠센타의 역사는 목동빙상장과 그 궤를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서울시체육회로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한국동계스포츠센타는 28년 동안 목동빙상장을 위탁 운영·관리했다. 공교로운 점은 한국동계스포츠센타의 마지막 사장이 지난해까지 목동빙상장서 소장으로 활동한 유태욱씨라는 점이다.

유 소장은 여전히 한국동계스포츠센타의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515일 기준). 서울시체육회가 목동빙상장 위탁 운영업체로 선정된 이후 유 소장이 그 자리에 오는 과정서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목동빙상장의 운영권은 2017년 서울시체육회로 넘어갔지만 한국동계스포츠센타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있던 셈이다.
 

지난해 목동빙상장은 소장 채용 비리, 폭언 의혹, 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강매 의혹 등 온갖 논란에 휩싸였다. 유 소장은 지난해 8월 소장 업무서 배제 조치됐고 서울시는 특정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유 소장을 비롯한 임직원 4명이 징계처분을 받았고 서울시체육회의 목동빙상장 위·수탁 협약은 조기 해지됐다.

한 빙상관계자는 유 소장은 서울시체육회가 목동빙상장 운영권을 잃는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유 소장은 갑질 및 회계부정 의혹으로 직위해제, 해고조치는 물론 수사 의뢰까지 돼있다그가 여전히 등기이사로 있는 한국동계스포츠센타를 위탁 운영업체로 선정하기 위해 서울시가 공고를 뜯어고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수탁기관 대표나 임직원의 적정성 판단등의 평가 항목을 수탁자 선정과정에 반영하라는 서울시 일상감사팀의 권고를 실제 평가항목 등에 반영하지 않은 게 한국동계스포츠센타에 간접이익을 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서울시 사업소 목동사업과 목동운동장관리팀 관계자는 지난 14<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특정업체를 지원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서울시 사업소는 다음날인 15목동실내빙상장 관리·위탁 운영기관 공개모집 공고의 취소 공고를 게시했다. 제안 안내서 사항 등을 수정, 보완해 추후 재공고하겠다는 것이다.

특혜 주려다
결국 실패?

또 다른 목동운동장관리팀 관계자는 회의 과정서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됐다. 제안 안내서의 가산점 배점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 절차를 거쳐 취소 공고를 내게 됐다일련의 과정을 거쳐 재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5월 안에는 재공고가 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일련의 과정은 일상감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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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