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 ‘노무현의 23인’ 현주소

그로부터 10년 뒤 그의 사람들은 지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깊은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소탈하고 강직한 모습으로 정파를 초월하고자 했던 그에게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23주년 창간을 기념해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23인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 ▲▲ 문재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서 짧은 유서를 남기고 국민의 곁을 떠났다.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시민 노무현’은 국민이 함께하는 민주주의 세상을 꿈꿨다. 다음의 23인은 노 전 대통령이 이룩하고자 했던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1953년생. 경남 거제 출신으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서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호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엔 민정수석으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우직히 해냈다. 2004년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정계를 떠났으나, 도중에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귀국해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다. 2005년에는 다시 청와대에 복귀해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30년 지기의 곁을 지켰다.

[이낙연]


1952년생. 전남 영광 출신으로 현 국무총리다. 2000년 고향인 함평·영광서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4년엔 전라남도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대변인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 고통, 각성 등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그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정태호]

1963년생. 경남 사천 출신으로 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비서관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선거대책본부서 ‘150대 핵심공약’을 집필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서 정무기획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대변인을 역임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희상]

1945년생.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현 국회의장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을 지내며 ‘친노(친 노무현)계의 큰형’으로 통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다시는 비겁한 침묵으로 반칙과 특권에 희생되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고 패배가 아닐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해찬]

1952년생. 충남 청양 출신으로 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참여정부 당시 국무총리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1987년 6월 항쟁 무렵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2002년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고 후에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에 동참해 ‘노무현-이해찬 공동정부’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때의 인연으로 ‘친노의 좌장’이라 불린다.


[임종석]

1966년생. 전남 장흥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의 전 비서실장이다. 임종석은 대표적인 ‘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임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어른이 되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인태]

1963년생. 충북 제천 출신으로 현 국회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국회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유 총장은 1987년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때 함께 술 마시고 잤는데,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 변호사 같지 않아서 나와 같은 ‘류’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10년 이상 노 전 대통령과 정치인생을 함께한 것도 그의 인간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탈·강직 모습으로 정파 초월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 타파

[정세균]

1950년생. 전북 진안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떠나가셨을 땐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나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며 “점차 대통령님이 원하시던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남은 저희들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노무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 (사진 왼쪽부터)박주현·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갑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현]

1963년생. 전북 군산 출신으로 현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서 참여혁신수석을 맡았다. 박 의원이 국민참여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할 때 노 전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며 내정 사실을 통보해 친노 인사가 됐다. 박 의원은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성격이 노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해서 ‘여자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현미]

1962년생. 전북 정읍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국토교통부장관이다. 2002년 대선 정국 때는 노 전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서 부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후에는 청와대에 입성해 대통령비서실서 국내 언론을 담당했다. 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에 대한 철학과 각론이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김두관]

1959년생. 경남 남해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의원에게 경남선거대책본부장을 맡겼다. 이후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면서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다.


[전해철]

1962년생. 전남 목포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설립했던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노 전 대통령을 모시고 보좌한 데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며 본인이 친노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철희]

1964년생. 경북 영일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엔 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선거특별본부 간사를 맡았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보수의 정체성을 일깨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최근 <노무현과 바보들>의 시사회를 열었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1964년생. 대구 달성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캠프인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종민]

1964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의원이 기자였을 때 쓴 기사를 눈 여겨봤다고 한다. 이후 김 의원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한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며, 참여정부 임기 만료까지 청와대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했다. 김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따라 ‘함께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김병준]

1954년생. 경북 고령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을 구체화했다. 또 대통령의 정책실장으로서 ‘참여정부의 정책 좌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원조 친노였던 김 위원장은 보수의 길을 걷게 되고 친노계 인물들과는 멀어졌다.

[서갑원]

1962년생. 전남 순천 출신으로 1992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비서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참여정부 때는 태통령비서실서 의전비서관, 정무1비서관을 지내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현재는 신한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김경수]

1967년생. 경남 고성 출신으로 현 경남도지사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거쳤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다. 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지사는 “봉하마을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최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1심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 (사진 왼쪽부터)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유시민]

1959년생. 경북 월성 출신으로 현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2013년 2월 정계 은퇴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당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이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모두 국회 노동위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유 이사장은 독일 유학 기간 중 잠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 경제 지식을 공유하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이후 유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며 대표적인 친노 인사가 됐다.

[안희정]

1965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36·37대 충청남도지사를 맡았다. 절친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 ‘좌 희정-우 광재’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았다.

안 전 지사는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었으나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에서 제명됐다. 검찰이 안 전 지사에 대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은 불명예로 막을 내렸다.
 

▲ ▲▲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요시사>가 노무현 사람들 23명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사진공동취재단

[이광재]

1965년생.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전 강원도지사다. 노 전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일한 보좌관이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대법원서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강원도지사직을 상실했다. 현재는 정무직서 물러난 상태로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명숙]

1944년생. 평양 출신으로 참여정부서 환경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유한 한 전 총리를 후계자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재직 중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전직 국무총리 중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양정철]

1964년생. 서울 출생으로 현 민주연구원 원장이다. 노 전 대통령을 통해 언론개혁을 이루고자 했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을 퇴임부터 서거할 때까지 보좌했고, 장례위원회 실무를 주관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치렀다. 이후 노무현 재단의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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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