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 ‘노무현의 23인’ 현주소

그로부터 10년 뒤 그의 사람들은 지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깊은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소탈하고 강직한 모습으로 정파를 초월하고자 했던 그에게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23주년 창간을 기념해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23인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 ▲▲ 문재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서 짧은 유서를 남기고 국민의 곁을 떠났다.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시민 노무현’은 국민이 함께하는 민주주의 세상을 꿈꿨다. 다음의 23인은 노 전 대통령이 이룩하고자 했던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1953년생. 경남 거제 출신으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서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호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엔 민정수석으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우직히 해냈다. 2004년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정계를 떠났으나, 도중에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귀국해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다. 2005년에는 다시 청와대에 복귀해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30년 지기의 곁을 지켰다.

[이낙연]


1952년생. 전남 영광 출신으로 현 국무총리다. 2000년 고향인 함평·영광서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4년엔 전라남도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대변인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 고통, 각성 등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그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정태호]

1963년생. 경남 사천 출신으로 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비서관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선거대책본부서 ‘150대 핵심공약’을 집필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서 정무기획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대변인을 역임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희상]

1945년생.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현 국회의장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을 지내며 ‘친노(친 노무현)계의 큰형’으로 통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다시는 비겁한 침묵으로 반칙과 특권에 희생되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고 패배가 아닐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해찬]

1952년생. 충남 청양 출신으로 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참여정부 당시 국무총리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1987년 6월 항쟁 무렵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2002년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고 후에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에 동참해 ‘노무현-이해찬 공동정부’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때의 인연으로 ‘친노의 좌장’이라 불린다.


[임종석]

1966년생. 전남 장흥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의 전 비서실장이다. 임종석은 대표적인 ‘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임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어른이 되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인태]

1963년생. 충북 제천 출신으로 현 국회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국회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유 총장은 1987년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때 함께 술 마시고 잤는데,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 변호사 같지 않아서 나와 같은 ‘류’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10년 이상 노 전 대통령과 정치인생을 함께한 것도 그의 인간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탈·강직 모습으로 정파 초월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 타파

[정세균]

1950년생. 전북 진안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떠나가셨을 땐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나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며 “점차 대통령님이 원하시던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남은 저희들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노무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 (사진 왼쪽부터)박주현·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갑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현]

1963년생. 전북 군산 출신으로 현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서 참여혁신수석을 맡았다. 박 의원이 국민참여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할 때 노 전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며 내정 사실을 통보해 친노 인사가 됐다. 박 의원은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성격이 노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해서 ‘여자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현미]

1962년생. 전북 정읍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국토교통부장관이다. 2002년 대선 정국 때는 노 전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서 부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후에는 청와대에 입성해 대통령비서실서 국내 언론을 담당했다. 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에 대한 철학과 각론이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김두관]

1959년생. 경남 남해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의원에게 경남선거대책본부장을 맡겼다. 이후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면서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다.


[전해철]

1962년생. 전남 목포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설립했던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노 전 대통령을 모시고 보좌한 데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며 본인이 친노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철희]

1964년생. 경북 영일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엔 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선거특별본부 간사를 맡았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보수의 정체성을 일깨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최근 <노무현과 바보들>의 시사회를 열었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1964년생. 대구 달성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캠프인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종민]

1964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의원이 기자였을 때 쓴 기사를 눈 여겨봤다고 한다. 이후 김 의원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한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며, 참여정부 임기 만료까지 청와대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했다. 김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따라 ‘함께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김병준]

1954년생. 경북 고령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을 구체화했다. 또 대통령의 정책실장으로서 ‘참여정부의 정책 좌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원조 친노였던 김 위원장은 보수의 길을 걷게 되고 친노계 인물들과는 멀어졌다.

[서갑원]

1962년생. 전남 순천 출신으로 1992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비서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참여정부 때는 태통령비서실서 의전비서관, 정무1비서관을 지내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현재는 신한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김경수]

1967년생. 경남 고성 출신으로 현 경남도지사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거쳤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다. 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지사는 “봉하마을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최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1심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 (사진 왼쪽부터)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유시민]

1959년생. 경북 월성 출신으로 현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2013년 2월 정계 은퇴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당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이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모두 국회 노동위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유 이사장은 독일 유학 기간 중 잠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 경제 지식을 공유하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이후 유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며 대표적인 친노 인사가 됐다.

[안희정]

1965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36·37대 충청남도지사를 맡았다. 절친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 ‘좌 희정-우 광재’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았다.

안 전 지사는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었으나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에서 제명됐다. 검찰이 안 전 지사에 대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은 불명예로 막을 내렸다.
 

▲ ▲▲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요시사>가 노무현 사람들 23명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사진공동취재단

[이광재]

1965년생.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전 강원도지사다. 노 전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일한 보좌관이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대법원서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강원도지사직을 상실했다. 현재는 정무직서 물러난 상태로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명숙]

1944년생. 평양 출신으로 참여정부서 환경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유한 한 전 총리를 후계자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재직 중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전직 국무총리 중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양정철]

1964년생. 서울 출생으로 현 민주연구원 원장이다. 노 전 대통령을 통해 언론개혁을 이루고자 했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을 퇴임부터 서거할 때까지 보좌했고, 장례위원회 실무를 주관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치렀다. 이후 노무현 재단의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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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