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설’ 한진 삼남매 세력 비교

49재도 안 끝났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한진그룹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경영권 승계작업이 아들인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에게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는 다소 반대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고 조 회장이 별세하기 전부터 삼남매에게 각각 물려줄 승계구도를 그려놓은 만큼 남매 간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사진 왼쪽부터)조원태 한진칼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한진그룹이 고 조 회장 별세 이후 삼남매 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앞서 장남 조원태 회장이 선친 장례식을 치른 지 8일 만인 지난달 24일 한진칼 회장에 선임되면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와 ‘합의’를 본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총수 지정 자료를 제때 내지 못하자 이 같은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총수 지정 연기
내분 일어났나?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올해 대기업집단의 ‘총수(동일인)’ 지정과 관련된 자료를 기한 내 제출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2019년 대기업집단의 지정 일자를 오는 15일로 연기했다. 

한진그룹 측은 “기존 동일인의 작고 후 차기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공식 소명했다.

한진은 지난 3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 명의의 공문을 공정위에 보내 이같이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한진으로부터 법적 마지노선인 오는 15일까지 자료 제출을 하겠다는 확답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사실상 경영권 노선 정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 관계자는 “자료 제출이 늦어진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의 내용은 모른다”며 “공정위에 제출할 서류 준비가 늦어져 못 내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한진칼의 우선주인 한진칼우는 가격제한폭(29.82%)까지 오른 5만7900원에 거래됐다. 대한항공 우선주 역시 29.81% 오른 2만7000원에 거래돼 상한가를 기록했다. 한진칼 등 한진그룹 계열사 종목도 상승했다.

한진그룹주는 한진그룹 삼남매 사이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급등했다.

49재(5월26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서 고 조 회장의 자녀들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자, 삼남매가 치열한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여긴 투자자들이 한진그룹주를 사들였다는 후문이다.

‘총수’ 지정 연기에…경영권 갈등 스멀스멀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예견됐던 남매의 난?

한진그룹의 지주사는 한진칼이다. 한진칼에 대해 고 조 회장은 17.84%, 조원태 회장은 2.34%, 조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31%, 조 전 대한항공 전무는 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는 고 조 회장이 남긴 17.84%의 지분 상속을 놓고 삼남매가 다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원태 회장이 지주사인 한진칼의 회장에 취임한 데 대해 자매가 반기를 들었다는 지적이다. 


고 조 회장의 한진칼 보유 지분가치는 약 3543억원으로 상속세율 50%를 감안하면, 상속세는 약 1771억원 수준이다. 상속세는 한진가의 삼남매가 보유한 지분가치와 비교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남매들이 5년에 걸쳐 분납을 하더라도 연간 340억원이 넘는 규모다.  
 

게다가 고 조 회장 일가가 보유한 한진칼 주식의 상당수가 담보로 묶여 있어 자금 조달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고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 등은 한진칼의 총 보유지분 28.93% 중 27%에 해당하는 7.75%를 금융권 및 국세청에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상속세 마련을 위해 유력한 방법으로 꼽힌 주식담보대출을 통한 추가자금 조달 가능 금액은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담보대출은 주식 평가가치의 50% 수준까지 가능하다.  

상속세 문제
그룹 잃을 수도

한진칼을 제외한 기타 계열사의 지분매각, 한진 등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매각을 통한 배당여력 및 배당금 확대 등이 상속세 납부를 위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상속세를 현물로 납부할 자금 여력이 없을 경우 주식매도가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2대 주주’로 올라 있는 강성부 펀드(KCGI)도 부담이다.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14.98%에 달한다. KCGI의 지분율은 최대 주주인 고 조 회장의 17.84%에 근접한 수치이다. 

조원태 회장이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 동생인 조현민 전 전무의 협조를 얻지 못해 아버지의 지분을 모두 물려받지 못하면, 경영권을 방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고 조양호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서 두 자매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강성부 펀드에 맞선 한진가의 경영권 확보는 쉽지않다”면서 “최악의 경우 ‘남매의 난’ 끝에 그룹 전체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진칼 회장에 오른 조원태 회장이 곧바로 대한항공 회장에도 취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사회 개최가 지연되고 있는 것도 남매 간 갈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족끼리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회사를) 이끌어나가라’고 유언했던 고 조 회장의 49재도 끝나지 않은 상황서 외부에 갈등 조짐이 엿보이게 한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룹 내부에서는 총수 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아니라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고 조 회장이 타계 전부터 조원태 회장에게 대한항공과 그룹 전반의 경영을, 조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호텔을 물려주기 위한 구상을 그려왔고, 삼남매 역시 이 같은 승계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조원태 회장은 2003년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 영업기획담당 차장으로 입사한 뒤, 2004년부터 대한항공서 근무해왔다. 2008년에는 항공사 핵심 부서인 여객사업본부 부본부장을 맡으며 그룹 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7년 1월에는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고, 올해 4월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조원태 회장은 사회적 물의를 빚어 경영 일선서 물러난 조현아·현민 자매와 달리, 큰 논란 없이 그룹 승계를 위한 행보를 밟아왔다. 특히 2017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것은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된 것과 다름없다.


내부에서는…
정해진 길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우 호텔 계열사를 물려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미국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부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로 그룹 호텔사업을 이끌었다.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담당한 부문도 기내서비스와 호텔사업 부문이다. 

조 전 부사장 역시 항공업보다는 호텔업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칼호텔네트웍크 사장으로 경영 복귀를 시도한 적이 있지만, 동생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논란이 불거지면서 무산됐다. 

조현민 전 전무는 광고, 마케팅에 특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인 LG애드(현 HS애드)서 광고 업무를 맡았다. 2007년 대한항공 광고부 과장으로 입사한 후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광고·IMC 팀장을 거쳐 2014년 전무로 승진했다. 계열사인 진에어서도 마케팅본부를 이끌었다. 

조 전 전무가 어떤 계열사를 물려받을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마케팅 비중이 높은 한진관광을 이끌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진그룹 세 모녀의 갑질과 전횡으로 실추된 한진그룹의 이미지는 이번 ‘경영권 분쟁설’로 인해 또다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은 수년째 이어진 ‘오너가 리스크’ 속에서도 좋은 실적을 내고 있었다. 지난해 매출은 12조60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 조 회장의 별세 이후에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내부 결속과 기업 이미지 제고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여론은 극도로 부정적이다.  

“승계구도 정해놨다”
사측 가능성 일축

대한항공은 지난 2월 ‘한진그룹 비전 2030’을 발표하며 구태를 털어내고 재도약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진그룹 비전 2030엔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 주주 중시 정책 확대뿐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 부동산 매각·개발 및 계열사 간 통합을 포함하는 사업구조 선진화 방안도 포함됐다.

오너가 갑질 논란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경영혁신방안에 대한 성실한 이행으로 회복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 조짐으로 주주들의 기대감은 떨어지게 됐다.  

당장 진에어도 문제다. 진에어는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 부사장이 등기임원을 지냈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토교통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의 제재가 길어지면서 진에어는 최근 중국 운수권 배분전서 소외돼 내부 동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경쟁 LCC들은 지속적인 신규 노선 취항을 통해 외형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진에어는 지난 8월부터 국토부의 제재에 따라 신규 취항과 기재 도입이 중단돼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그 와중에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라는 악재가 추가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조원태 체제 출범을 맞아 이미지 쇄신과 내실 다지기를 위해 경영혁신안을 순조롭게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오너 리스크가 다시 발생했다”면서 “한진일가의 끊이지 않는 잡음은 기업 이미지 실추뿐 아니라, 실적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늦어졌을 뿐”
소문들 일축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대해 그룹 측은 지난 9일 “관련 서류 제출이 늦어진 것일 뿐”이라며 갈등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이날 “오는 15일 안에 관련서류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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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