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비상’ OCI그룹의 플랜B

발판 놓다가 발목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OCI가 전문경영인체제로 돌입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이우현 전 사장은 부회장에 머물렀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승계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회사의 몰락을 이유로 들었다. 이 부회장은 최대주주자리까지 내준 상태다. 짊어진 수백억원 상속세의 짐도 무겁기만 하다.
 

석유화학·태양광 기업 OCI의 백우석 부회장이 회장에, 이우현 사장이 부회장에 올랐다. 전문 경영인과 오너 경영인이 호흡을 맞춰 경영하는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OCI는 지난 3월26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백우석 부회장을 회장에, 이우현 사장을 부회장에 각각 승진시키는 한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김택중 사장을 최고경영자(CEO)에 신규 선임했다. 

CEO 체제?
업계도 의아

이번 OCI의 인사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는 단계적인 승진이지만, OCI는 이수영 전 회장 별세 후 2년여간 회장직을 공석으로 비워뒀고 어느 정도 때가 되면 이우현 부회장이 이 자리에 오를 것으로 판단한 이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그간 OCI의 기업설명회나 주주총회에 모습을 드러냈고 회사의 경영 성과와 향후 목표들을 직접 발표하는 등 ‘오너 경영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이 부회장의 경영 카리스마가 주주와 업계서 인정받고 있었던 터였다. 

지난달 1일 공시된 OCI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우현 부회장은 사장일 당시 백우석 전 부회장보다 연봉이 높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총 15억9600만원을 수령했으며 백 회장은 같은 기간 14억9800만원을 지급받았다. 이 부회장과 백 회장의 상여금은 8억3700만원으로 동일했지만 급여와 기타 근로소득이 상이한 결과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기본급서 자녀학자금 2000만원을 수령했고 기타 근로소득을 포함한 업무용 차량지원 관련 금액서 백 회장보다 7500만원가량을 더 수령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장이 부회장보다 연봉이 1억원가량 높은 모양새가 됐다.

OCI그룹에서는 모두의 예상의 뒤엎고 전문 경영인인 백우석 부회장이 회장 자리에 앉게 됐다. OCI에 따르면 백 회장은 OCI의 전신인 동양제철화학서부터 44년간 근무하며 이회림 명예회장, 이수영 회장, 이우현 부회장 등 오너 일가를 지근거리서 보좌해왔던 인물이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회장 자리에 오르지 못한 이유로 지분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고 이수영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지분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상속세 납부를 위해 증여받은 주식의 일부를 처분하면서 개인 최대주주 자리를 이화영 유니드 대표이사 회장에게 내준 상태다. 이화영 회장은 이수영 전 회장의 막냇동생이다.

이우현, 바로 회장?…예상 깨고 부회장
최대주주 내주고…지분 문제 의식했나?

지난해 연말 기준 이 회장의 지분율은 5.43%로 이 부회장(5.04%)보다 0.39%포인트 많은 상태다.  

또 이회림 창업주의 차남인 이복영 이테크건설·삼광글라스 회장 또한 5.02%의 OCI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과의 격차는 불과 0.02%포인트다.  업계에선 이러한 상황서 곧바로 회장직에 오르는 것은 지분 문제상 시장서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대물림을 위해 준비한 넥솔론의 실패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다. 


동양제철화학(현 OCI)은 2007년 7월 일관체제 구축을 위해 넥솔론을 설립했고, 2008년 9월 전북 익산에 공장을 완공하고 OCI가 공급하는 폴리실리콘을 원재료로 본격적으로 태양광 발전용 잉곳·웨이퍼 생산에 들어갔다.

설립의 주체는 OCI 오너 3세이자 고 이 회장의 2남1녀 중 두 아들인 이우현 부회장과 이우정 전 넥솔론 사장이었다. 이 부회장과 이 전 사장이 초기 자본금(110억원)을 전액 출자, 각각 지분의 50.0%(101만주)를 소유했다.
 

▲ 이우현 OCI 회장

당시 이 부회장의 나이는 40세로 2005년 OCI 전무로 입사한 이래 사업총괄 부사장(CMO)을 맡아 경영승계 단계를 속도감 있게 밟아나가던 시기다. 반면 넥솔론 출자 전 이 부회장이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라고 해봐야 OCI가 거의 전부였고, 지분도 1% 남짓이었다.

승승장구하다…
승계 위한 한방

이런 당시 정황에 비춰보면 넥솔론은 후계 승계를 위해 준비된 계열사라고 볼 수 있다. 넥솔론의 성장세에 따라 향후 OCI 지분 확대 및 부친의 지분증여나 상속 등에 대비한 재원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어서다.

처음 넥솔론의 성장은 폭발적이었다. 설립 3년 만인 2010년 매출(연결기준) 4510억원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도 매년 흑자가 이어지며 456억원에 달했다. 재무적투자자(FI)들이 앞다퉈 찾아올 정도였다. 이듬해 10월 증시 상장은 예정된 수순으로 생각됐다. 

FI 자금 유치 등으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상장 직후 이 부회장의 넥솔론 보유지분은 19.42%(1733만3320주)나 됐다. 동생 이 전 사장도 19.62%(1750만6650주)를 갖고 있었다. 형제 지분이 도합 39.04%(3483만9970주)에 달했다.

상장 당시 넥솔론에 매겨진 몸값은 주당 4000원(상장공모가·액면가 500원)이었다.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도 693억원으로 평가됐다. 또 상장 직후 넥솔론의 주가가 6060원까지 뛰자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1050억원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넥솔론이 상장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세계 태양광 시장은 장기 불황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이 지속된 결과다. 중국 저가 태양광업체들의 난립도 한몫했다.

글로벌 침체
갑자기 폭망

OCI의 매출은 상장 첫 해인 2011년 5880억원을 찍은 뒤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며 2016년에는 155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영업이익 또한 2011년 적자로 돌아섰고 이후 많게는 1001억원서 적게는 226억원까지 한 해 평균 56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속적인 설비투자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외부에서 끌어다 썼기 때문에 차입금 부담도 적지 않았다. 2009년 1150억원 수준이던 총차입금은 2011년 말 585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후로도 차입금은 줄지 않아 2015년 말에도 5120억에 달했다.


저조한 영업수익성에 차입금 부담마저 컷던 탓에 순익은 2015년(2650억원)을 제외하고, 2011∼2016년 동안 적게는 241억원에서 많게는  4015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이어졌다.
 

▲ 넥슬론

이 부회장이 넥솔론 상장 전 출자한 자금은 87억원이다. 여기에 넥솔론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012년 10월(553억원)과 2014년 3월(143억원)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101억원을 추가 출자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2월 OCI 지분 0.4%(9만4500주)를 블록딜을 통해 191억원(주당 20만2500원)을 받고 매각하기도 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 넥솔론 추가 출자자금 용도로 풀이된다.

승계 위해 설립한 넥솔론…결국 공중분해
상속세 절반 납부했지만 아직 수백억 남아

후계 승계를 위해 OCI 지분을 늘려도 모자랄 시기에 넥솔론을 건사하느라 얼마 되지 않는 지분마저 내다 팔아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4월 고 이수영 회장의 지분상속(10.92% 중 5.62%) 직전, 이 부회장의 지분이 고작 0.5%(12만251주)에 불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의 노력에도 넥솔론의 결손금은 계속 불어 2014년 말에는 자본총계가 -3750억원에 달했다. 이어 2016년 말 완전자본잠식(-508억원) 상태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됐다.


2014년 8월 법정관리 이후 진행해왔던 회생절차마저 실패했다. 2015년 말부터 총 3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유찰됐다. 급기야 지난 2017년 4월 전액 자본금 자본잠식으로 유가증권시장서 상장폐지됐다. 이로써 OCI는 139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 태양광 발전.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넥손론은 재무개선 중인 2015년 2월 이 부회장과 이 전 사장 양대주주를 대상으로 무상감자를 실시했다. 이 부회장은 소유지분 17.75%(2564만5008주) 중 97%에 대해 무상소각을 당했다. 이어 잔여지분 0.59%(83만1168주)도 FI의 담보권 실행으로 사라졌다. 

이 부회장이 넥솔론에 집어넣은 자금은 총 188억원이다. 이 중 지분매각을 통해 회수한 자금이라고 해봤자 2013년 1월 14.13% 중 0.26%(32만2580주) 매각을 통한 5억4100만원이 전부다.

갈 길 멀었다 
뼈아픈 기억

이 부회장이 단기간에 OCI 최대주주의 지위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상속지분의 일부를 팔아 절반가량을 납부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최장 4년간 해마다 100억원씩 상속세를 물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마저도 보유하고 있는 재원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  OCI 주식을 담보로 빚을 내 충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게 넥솔론의 실패는 여러모로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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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