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베트남 수출’ 보트 스캔들

한 배에 사공은 두 명 ‘누가 훔쳤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베트남 국영기업과 거래하던 한 중소업체의 일감이 뚝 끊겼다. 만들지도 않은 상품이 업체의 로고를 달고 수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뢰가 깨졌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눈 뜨고 코 베였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서 수주받은 물량을 다른 업체 대표가 가로챘다는 것이다.
 

▲ 베트남 국영기업과 거래하던 한 소형보트 업체의 일감이 끊겨 논란이 되고 있다.

물품 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망가진 신뢰는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해외 업체와의 거래서 문제가 생기면 국가 이미지도 타격을 입는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에 앞서 공인된 기관의 검증을 거쳐 발급된 문서를 주고받는 이유다.

중간에 슬쩍∼
가로채기 의혹

경남 김해 소재의 소형보트 제조업체인 송연부산보트(이하 송연보트)2017년 날벼락을 맞았다. 현지 에이전시 ‘P를 통해 베트남 국영조선소에 소형보트 4대를 납품한 직후였다. 송연보트 로고(SBB)가 붙은 보트가 4대 더 베트남에 들어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P에이전시는 송연보트를 향해 이중계약을 한 것이냐고 펄펄 뛰었다. 하지만 당시 송연보트는 추가 물량을 만들던 중이었다. 완성되지도 않은 보트가 베트남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송연보트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송연보트 관계자는 “국가 망신입니다, 망신” “눈 뜨고 코 베였습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연보트가 베트남 국영조선소에 납품하기로 한 보트는 총 10. 그중 4대는 송연보트서 제작됐지만 나머지 4대는 전혀 다른 업체를 통해 베트남에 수출됐다.


사건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연보트는 선박 임대·수리, 선박 구성품 제조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베트남 국영조선소와의 거래는 수년 전에 시작됐다. 송연보트가 수출한 보트를 P에이전시가 베트남 국영조선소에 납품하는 구조다.

2013년 송연보트는 P에이전시로부터 물품 제작 요청을 받았다. 베트남 정부서 세관감시용으로 사용할 소형보트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송연보트는 기동성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관감시정 제작에 뛰어들었다.

송연보트는 배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송연보트 관계자는 선박 제조 업체를 찾는 과정서 길바닥에 버린 돈만 해도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 과정서 삐끗하는 등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다.

베트남 국영조선소에 납품 물품
업체도 모르게 또 다른 보트가?

그러다 선박 제조업체 A사의 관계자를 알게 되면서 제작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송연보트는 A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보트 만들기에 돌입했다. 20175월 송연보트가 설계한 보트 도면은 P에이전시와 베트남 국영조선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모델명, 이른바 보트의 이름인 ‘RIB-550DX’를 상표 출원해 등록까지 마쳤다. 이 모델명은 베트남에도 등록됐으며 검증도 진행했다. 송연보트는 RIB-550DX 보트를 포함한 2가지 제품에 대해 한국선급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

한국선급은 선급업무를 진행하는 선급단체로 해상서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고 조선, 해운 및 해양에 관한 기술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우리나라 유일의 선박 검사대행 기관이기도 하다.
 

▲ ‘550DX-006’ 송면보트는 ‘550DZ-004’까지 납품했다.

RIB-550DX 보트는 제조 성능, 도면, 사용원재료, 스피드 검사 등을 받았다. 한국선급 관계자가 직접 제작 현장에 나와 재료를 낱개로 체크하는 등의 방식으로 검증이 이뤄졌다. RIB-550DX 보트는 해당 검사를 모두 통과해 한국선급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송연보트 관계자는 “RIB-550DX 보트는 소형선박 부분에서는 최초로 한국선급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서 국내서 만든 보트를 베트남 국영조선소에 납품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전했다.

P에이전시와 물품공급 계약을 맺은 송연보트는 우선 4대를 먼저 베트남으로 수출했다. 베트남서도 RIB-550DX 보트에 대한 성능 검사가 추가로 이뤄졌다. 송연보트 관계자에 따르면 베트남 군과 세관 관계자가 RIB-550DX 보트의 성능에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제작에 검증 
상표 출원까지

이 과정서 베트남의 또 다른 에이전시 ‘J가 송연보트에 접촉해왔다. 자신들도 송연보트로부터 RIB-550DX 보트를 공급받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송연보트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P에이전시와의 관계를 고려, J에이전시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J에이전시는 RIB-550DX 보트를 직접 제작하고 있던 송연보트의 하청업체 A사에도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시 업무 차 A업체에 와있던 D업체의 오모 대표가 J에이전시와의 통화에 관여했다는 점이다.

영어에 서툰 A업체 관계자를 대신해 J에이전시와 통화를 진행한 오 대표는 이후 수상한 행보를 보였다고 한다. A업체는 물론 송연보트에 알리지 않은 채 J에이전시와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

오 대표는 20175‘New Project’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J에이전시 관계자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오 대표의 회사인 D업체에 대한 소개, 오 대표의 경력 등이 담겼다. 이메일은 오 대표가 J에이전시 관계자에게 필요한 보트의 종류와 크기, 대수 등을 묻는 것으로 끝났다.

J에이전시와 오 대표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업체 관계자는 수차례에 걸쳐 이에 대해 말했다고 한다. 이미 송연보트가 보트를 납품하고 있는 베트남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을 공략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오 대표는 J에이전시를 통해 4대의 소형보트를 베트남에 수출했다. 이 사실은 베트남서 오 대표가 납품한 보트의 성능 검사를 하는 과정서 드러났다. 보트에 들어간 한 부품의 색이 앞서 들어온 송연보트의 보트와 다른 것을 의아하게 여긴 관계자들이 이를 지적하면서였다. 베트남서 부품의 색이 다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똑같은 보트라고 생각할 만큼 외형도 흡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트를 직접 제작한 A업체 관계자는 배는 수제품이기 때문에 길이나 폭 등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다하지만 프레임이나 의자 배치, 부품의 사용 등이 송연보트서 제작한 보트와 거의 똑같다고 설명했다. 송연보트 로고(SBB)는 명판, 핸들, 보트 겉면 등에 박힌 채였다.
 

▲ 위조된 로고

문제의 보트 명판에는 6번째 보트를 뜻하는 550DX-006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송연보트에서는 50DX-004까지만 납품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006이 튀어나온 것이다. 더구나 A업체 관계자가 명판에 모델명을 새기는 과정서 대시(-)를 두 번 적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부분도 똑같았다. 송연보트의 흔적이 가득하나 송연보트가 만들지는 않은 물품이 베트남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선급은
“발급 안 했다”

사실을 알게 된 P에이전시는 송연보트에 강하게 항의했다. 송연보트가 자신들 외에 J에이전시와도 물품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황당하기는 송연보트도 마찬가지였다. 송연보트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반박했고, 그와 관련된 증거를 P에이전시에 제공했다.

그러자 P에이전시는 오 대표가 공급한 보트에 대한 문서를 몇 가지 입수해 송연보트에 보냈다. 한국선급서 발급했다는 ‘Statement for Speed trial RIB’, 송연보트서 D업체에 발급했다는 품질보증서 등이다. P에이전시는 해당 문서에 대한 진위 여부를 물었다.

그 결과 오 대표가 J에이전시에 제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Statement for Speed trial RIB 문서가 한국선급에서 발급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선급은 송연보트의 선급증서 위조 문의에 대해 우리 선급서 발행한 선급증서가 아니다라고 회신했다.

해당 문서의 시리얼넘버는 NVS-ST-0022-2017, 송연보트가 실제 한국선급서 받은 증서(NVS-ST-0001-2017)와 비교해 시리얼넘버만 두 자리 다를 뿐 모든 내용은 동일하다. 송연보트는 오 대표가 해당 문서를 위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우리도 피해자라며 법무팀을 가동해 이 사건에 대한 법적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품질보증서도 도마에 올랐다. 품질보증서는 물품 공급업체서 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P에이전시가 보내온 품질보증서를 보면 송연보트가 오 대표의 D업체에 발급한 것으로 돼있다. 송연보트의 회사 직인까지 찍힌 상태였다. 송연보트는 해당 품질보증서를 발급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 대표를 본 것도 한 번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송연보트 관계자는 오 대표는 우리 보트를 유사하게 흉내 내서 복제품을 만든 것도 모자라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베트남에 보트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송연보트의 제품이라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송연보트는 베트남으로 보트를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 송연보트 관계자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베트남과의 거래가 재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발급한 적 없는 문서 등장
“현지 에이전시가 조작했다?”

송연보트 관계자는 오 대표의 행위로 우리 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는 박살 났고 베트남 에이전시와의 신뢰도 깨졌다하청을 맡았던 A업체도 제작 물량이 끊기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해당 의혹에 대해 “저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송연보트의 자작극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오 대표는 “RIB-500DX 보트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배라며 우리가 납품한 보트는 송연보트와 길이나 폭이 전부 다르다고 항변했다. 오히려 그는 송연보트가 작은 업체들을 상대로 이런 일을 벌여 돈을 뜯어내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서 기각 처분이 나왔고 일부는 법적 공방 중이라고 했다. 전체 수출 금액은 16000만원 정도였다”며 이런 내용이 기삿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송연보트는 오 대표를 상표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위반, 사서명위조, 위조 사서명행사,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D업체를 상대로도 상표법위반,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위반으로 고소했다.

부산지검은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오 대표가 J에이전시로부터 작업정 제작을 의뢰받으면서 송연보트 명의로 된 품질보증서와 원산지 증명서도 함께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 과정서 오 대표는 J에이전시의 요구를 거절하고 D업체 명의의 품질보증서와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했다. 다시 말해 오 대표는 문제가 된 송연보트 명의의 품질보증서와 원산지 증명서는 J에이전시서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오 대표가 J에이전시에 발송한 이메일에 D업체 명의로 작성된 품질보증서, 상업송장, 포장명세서 파일이 첨부된 사실을 근거로 오 대표의 주장을 인정했다. 오 대표 역시 조사 과정서 경찰이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갔다고 강조했다.

법정 공방
결과는?

송연보트는 검찰의 판단이 아쉽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기관서 발행하는 선급증서를 위조한 점이나 원산지 증명서에 모델명 RIB-550DX를 기재한 점과 보트에 부착하는 명판과 보트 외부에 부착한 제작 업체명을 가짜로 만들어 부착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오 대표의 혐의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통상적으로 베트남 국영기업과 거래할 때는 관련 문서의 원본을 제출해야 하는데, 수사기관서 (오 대표의) 이메일 내역만 확인한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송연보트 관계자는 이 사건은 근시안적으로 보면 한 업체가 다른 업체의 뒤통수를 때린 일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멀리 보면 우리 선박업계에 큰 타격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우리 선박업체들이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활동반경을 넓혀가던 상황에 오 대표의 행위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