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찍는’ 카톡의 민낯

“그냥 대화한 건데…” 까딱 잘못했다간 쇠고랑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죽이고 살릴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명부를 뜻하는 살생부’. 왕권시대에는 살생부가 뜨면 궁궐에 피바람이 불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에서는 살생부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돈다. 최근 카카오톡이 현대판 살생부로 급부상했다.
 

▲ 경희대학교 벚꽃 핀 전경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A씨는 최근 10년 넘게 알고 지낸 지인 B씨와 다툼을 벌였다. B씨를 포함한 친구들과 여행 일정을 짜던 중 호텔을 예약하는 문제로 갈등이 생긴 것이다. 곧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다툼이 길어졌다.

그러던 중 B씨가 그동안 자신과 나눈 카카오톡(이하 카톡) 대화 내용을 친구들에게 공개했다. 카톡에는 A씨가 B씨에게 주변 친구들에 대해 험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씨 역시 B씨와의 카톡 내용을 친구들에게 캡처해 돌렸다.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씩 싸움에 합세했다. 카톡을 통해 지난 대화가 전부 드러나면서 관계는 순식간에 끝장났다. A씨는 현재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사생활 침해?

카톡의 월간 실사용자(MAU)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300만명이 넘는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거의 대다수가 카톡을 이용하는 셈이다. 수차례에 걸쳐 텔레그램 등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카톡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하다.

인터넷 이용자라면 카톡 대화방 캡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카톡 대화 내용을 개그 소재로 올리거나 고민 상담,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자료 등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하는 이용자가 많아졌다.


이용자들은 카톡 대화방에 대해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화방서 온갖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대화 내용이 제3자나 불특정다수에게 유출될 가능성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최근 가수 정준영 사건을 보고 많은 이용자들이 뜨끔했을 듯하다. 대화 내용이 어떻든 간에 특정 경로를 통해 타인에게 유출될 수 있고, 경찰·검찰서 범죄의 증거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 ▲▲ 정준영 카톡 대화방

버닝썬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빅뱅의 전 멤버인 승리(본명 이승현)와 정준영 등 8명이 참여한 카톡 단체 대화방이 공개됐다. 승리가 성접대를 알선하고 정준영이 성관계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정황이 담긴 카톡 대화방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폭발했다.

이들의 카톡 대화 내용은 정준영이 휴대전화 수리를 맡기면서 유출됐고, 공익제보에 이어 수사까지 이어졌다. 누리꾼들의 관심은 단체방에 함께 있던 8명의 신원에 쏠렸다. 경찰 수사에 의해 하나둘 8명의 신원이 밝혀졌고,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퇴출운동까지 벌였다.

그룹 FT아일랜드의 최종훈, 하이라이트의 용준형 등이 거론됐고, 대화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자 소속사는 이들과의 전속계약을 해지하는 등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정준영의 휴대전화 속 카톡 대화방 공개로 다른 연예인들의 사생활도 낱낱이 드러났다.

정준영의 휴대전화 카톡 메시지를 통해 KBS 예능프로그램 <12>에 출연 중이던 배우 차태현, 개그맨 김준호의 내기골프 정황이 발견되면서 출연진 하차는 물론 프로그램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 정준영 카톡 단체 채팅방

카톡 대화방서 거론된 인물 가운데 연예계를 떠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정준영의 휴대전화가 살생부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정준영 휴대전화의 카톡 내용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자 제보의 적법 여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타인의 비밀을 무단으로 유출한 불법이라는 의견과 공익신고기 때문에 제보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갈렸다.

법조계는 대체적으로 공익을 위한 신고라면 위법성이 면책된다고 보고 있다.

정준영 카톡 공개로 주변 연예인들 불똥
법원, 단톡방 공연성 인정…일반인들도 주의보

카톡 대화 내용 유출에 대한 논란은 20152016년 대학가 온라인 성폭력 논란이 한참 불거질 때 수면 위로 올라온 바 있다. 먼저 국민대서 논란이 시작됐고 이어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유사한 내용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20152월 국민대의 한 학과 남학생 32명이 만든 카톡 대화방서 여학생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담패설이 오간 사실이 드러났다. 카톡 대화 내용 중에는 여학생들을 일본군 위안부에 비유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뒤이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홍익대 등에서 카톡 대화방 사건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대화 내용 중에는 학과 여학생에 대한 외모 평가나 성적인 발언이 포함돼있었다. 대학가서 카톡 대화방 문제가 연달아 불거지자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성의 요람이자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가서 온라인 성희롱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부고발 등을 통해 알려지고 공론화되는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면서도 카톡 대화방 내용을 외부로 유출하는 것이 적법한지, 또 카톡 대화방서 나눈 대화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은 분분한 상황이다.

쟁점은 공연성 여부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연성이 있어야 한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체 대화방의 경우 1명에게 말했다 해도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공연성이 인정된다.
 

국민대서 카톡 대화방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학교는 학생 2명에게 무기정학, 4명에게 근신 처분을 내렸다. 학생들은 학교의 처벌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학생들의 행동이 모욕죄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채팅방 멤버가 전원 남학생으로만 구성됐지만 가해 학생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학생이 있어 대화 내용이 언제든 외부로 유출될 위험성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단체 대화방은 외부에 폐쇄적이면서도 열린 공간이고, 또 공개적인 비방이 이뤄졌기 때문에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된다고 봤다. 즉 사람이 많이 모인 카톡 대화방서 성적 발언을 한 내용이 유출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공적인 공간?

정준영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불거지는 여러 사건·사고의 증거로 카톡 대화 내용이 거론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서도 카톡 경계령이 내려졌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단체 대화방을 없앤다거나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로 옮기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체 대화방을 유지해야 할 경우에는 영상 공유 금지’ ‘지라시 유포 금지등의 규칙을 만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카톡 이용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해도, 카톡 대화 내용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대화방은 여전히 은밀한 공간이다. 불법 촬영 영상물을 돌려보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담긴 내용을 퍼나르는 일은 법적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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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