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축구협회 ‘선거정보 유출’ 의혹

김병지는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입수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는 공정성이 생명이다.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면 선거의 신뢰도는 추락한다. 선거 규정을 촘촘하게 짜는 이유다. 특히 게임의 룰’(rule)은 모든 후보자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선거정보를 사전에 습득한 후보자는 길 찾기 게임서 혼자 지도를 갖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전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

대한축구협회(이하 대한축협)가 서울시축구협회(이하 서울축협) 회장 선거에 출마 선언한 김병지에게 문건을 유출한 정황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확인됐다. 김병지는 대한축협서 만든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문건을 선거권자에게 유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정 후보
특혜 논란

김병지는 지난달 6일, 언론을 통해 서울축협 회장 선거에 나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서 서울시 엘리트 축구와 생활축구의 상생을 위해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축구 행정가의 꿈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김병지가 선거일정이 공표되기도 전에 선거정보가 담긴 문건을 미리 받아봤고, 이를 축구인들에게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전선거운동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해당 문건이 대한축협 관계자를 통해 김병지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대한축협의 선거개입 논란도 함께 제기됐다.

대한축협은 시도축협 선거 개입을 제한하고 있다. 대한축협 정관 239항에 따르면 시·도축협을 포함한 대한축협의 임직원은 체육회의 회장 선거, 협회, 회원종목단체, ·도체육회 및 시·도종목단체 등 체육단체의 선거와 관련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위반할 경우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체육회에 요구할 수 있다.


김병지는 서울시축구협회 회장 선거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축구인들에게 보냈다. 김병지에게 문건을 받은 축구인 중에는 서울축협 회장 선거에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선거인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규정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문건 받아 선거권자에 유포해?

<일요시사>가 입수한 문건을 확인한 결과, 대한축협이 해당 문건을 만들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건 오른쪽 상단에는 부서: 기획감사팀’ ‘작성일: 2019. 3. 26’이라고 쓰여 있다. 문건에 기재된 기획감사팀은 대한축협 경영혁신실 산하 부서로, 대한축협 내 중요 부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한축협 내부서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문건을 만들었고, 이 문건이 김병지에게 전달된 것이다.

문건의 내용은 크게 선거인단 구성향후 일정으로 나뉜다. 문건에 따르면 선거인단은 서울시 규약에 따른 대의원 50명과 대한축협에 등록된 사람들 50명 등 100명으로 구성된다. 대의원은 자치구 축구협회의 장 25명과 등록팀의 단체군 대표 25명이다.

나머지 50명은 초···대학·일반·여성 지도자 10, 심판 10, 선수 10, 동호인 20명으로 정했다. 지도자, 심판, 선수, 동호인은 선거 20일 전 대한축협에 등록된 자를 대상으로 하며 사정에 따라 선거위원회가 별도로 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건에는 410회장 선거 공고를 시작으로 430·개표에 이르기까지의 선거일정도 일별로 기재돼있다.

대한축협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서울축협 관리위원회서 나눴던 회의 내용을 (대한축협)내부적으로 정리·보고하는 과정서(김병지에게 유출됐다)”고 밝혔다. 문건이 내부 보고용이었다는 입장이다. 문건 유출 경로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 특정후보(김병지)를 서울축협 회장으로 밀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어떻게?


그러면서 다른 후보자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관리위원회서 어떤 얘기가 나왔는지 물어봤을 것이라며 저희는 문서화된 문건이 김병지에게 가서 문제가 된 것이고, 다른 분들은 구두로 (회장 선거가)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 대한축구협회서 유출된 해당 문건

이 관계자는 다른 후보자들에게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대한축협의 생각은 그렇다고 언급했다.

김병지의 경우처럼 문건으로 유출됐든 구두로 전해졌든 관리위원회 회의 내용이 후보자들에게 공유됐을 것이라는 뉘앙스다. 대한축협 관계자는 문건 유출 경로 등에 대해서 대한축협과 서울시체육회, 관리위원회서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면서도 우리가 결정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체육회(이하 시체육회) 관계자들은 문건 유출에 대해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문건이 만들어진 과정, 유출 경로 등에 대해 대한축협으로부터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 상황이다. 관리위원회 회의서 사용되는 문서는 비공개 보안문서로 분류해 관리하고, 회의가 끝나면 회수하는 등 보안 유지에 만반을 기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시체육회 종목육성팀 관계자는 관리위원회서 서울축협 회장 선거 규정 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대한축협서 만든 문건이(새나간 것 같다)”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위해 45일 대한축협에 공문을 보냈고 유선으로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대한축협은 시체육회의 요청에 회신하지 않은 상태다(지난 19일 기준).

다른 후보도
받아 봤다?

또 다른 시체육회 관계자는 우리도 언론보도를 통해 문건 유출 사실을 알게 됐다사건 이후 관리위원회를 부정하고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문건 유출에 대해 알게 된 일부 축구인들이 시체육회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축구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건 유출 이후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회의 등은 현재 올스톱 상태다.

시체육회의 종목단체인 서울축협은 9개월째 회장 자리가 공석이다. 지난해 7월 최재익 전 회장과 집행부가 각종 송사에 휘말려 자리서 물러난 뒤 현재까지 보궐선거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체육회는 지난해 112712차 이사회서 서울축협을 관리단체로 지정하는 안을 가결했다.
 

시체육회는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서울축협의 정상화를 꾀했다. 서울축협 관리위원회는 축구인 출신 관리위원장, 대한축협 추천 인사인 부위원장·변호사, 대한축협 인사 2, 시체육회 인사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

관리위원회의 시급한 과제는 9개월째 공석인 서울축협 회장을 비롯해 집행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시체육회에 따르면 약 10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선거 일정이나 규정 등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전반적인 사항이 다뤄졌다. 이런 상황서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문건 유포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축구인들은 시체육회에 진정서를 내고 항의했다. 이들은 “서울축협 회장 선거를 진행할 권한이 없는 대한축협이 특정후보(김병지)를 당선시키기 위해 문건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 축구인들에게는 선거 관련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진정인들은 대한축구협회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서울시축구협회 불법 회장 선거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 불공정하고 불법적으로 선거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축구협회 관리위원회 위원 전원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관리위원으로 활동 중인 대한축협 인사 3명을 즉각 해임하고 대한축협 차원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축협, 유출 경로 파악 중이라면서
시체육회 사실확인 요구 묵묵부답

하지만 문건 유출에 대한 조치는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규정이 정비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축협은 2016년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간의 통합 과정서 잡음이 발생하면서 회장 선거규정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시체육회 관계자는 관리위원회서 회장 선거 관련 규정에 대해 논의하던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서울축협 회장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축구인 A씨는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대한축협이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A씨는 문건 유출에 대해서는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 축구인들 사이서 돌아다니는 문서를 보고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됐다그 이전에 문건을 접하거나 그에 대한 내용을 들은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대한축구협회

그러면서 나를 포함해 여러 축구인들은 그 문건을 보고 대한축협서 조직적으로 김병지를 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축협을 통해 특정후보에게 문건이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마디 사과의 말도 없다 문건을 유출한 사람이든 받은 사람이든 대한축협 차원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축구인 B씨는 김병지가 문건 유출에 앞서 또 다른 사전선거운동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322일 서울 효창운동장 회의실서 초등학교 감독들을 모아놓고 경기도의회의 한 도의원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는 것. B씨는 이 자리서 지도자 처우 개선 등의 말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혹
초등 지도자도?

B씨는 당시 회의실에 있던 초등학교 감독들은 초등연맹서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라며 김병지의 사전선거운동 의혹에 대해 대한축협과 시체육회의 명백한 조사와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이후 서울축협 회장 선거가 투명하게 치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병지 입장은? 
문건 받은 것 맞다

김병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문건을 받았고 유포한 사실에 대해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문건을 어디에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병지는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선거법 위반을 얘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변 축구인들에게 선거 일정 나왔습니다라는 문구를 달아 메시지로 문건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거에 관련된 문건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걸 악의적으로 이용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선거 일정 알려주면서 보내줬다”
“어디서 받았냐고? 말하기 곤란”

그는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다른 분들도 (문건을)다 받아본 것으로 알고 있다제가 관련 내용을 알기 전에 그분들도 먼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322일 효창운동장 회의실에서 있던 일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지도자들의 궁금증, 현재 초·중학교 체제의 어려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맞다저는 ()의원을 소개시켜주고 빠졌다. 그 자리에서 저를 찍어 달라거나 하는 등의 말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초등학교 지도자들이 그 의원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주선해준 것이라며 축구 발전을 위해서 한 일인데 주변서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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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