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축구협회 ‘선거정보 유출’ 의혹

김병지는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입수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는 공정성이 생명이다.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면 선거의 신뢰도는 추락한다. 선거 규정을 촘촘하게 짜는 이유다. 특히 게임의 룰’(rule)은 모든 후보자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선거정보를 사전에 습득한 후보자는 길 찾기 게임서 혼자 지도를 갖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전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

대한축구협회(이하 대한축협)가 서울시축구협회(이하 서울축협) 회장 선거에 출마 선언한 김병지에게 문건을 유출한 정황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확인됐다. 김병지는 대한축협서 만든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문건을 선거권자에게 유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정 후보
특혜 논란

김병지는 지난달 6일, 언론을 통해 서울축협 회장 선거에 나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서 서울시 엘리트 축구와 생활축구의 상생을 위해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축구 행정가의 꿈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김병지가 선거일정이 공표되기도 전에 선거정보가 담긴 문건을 미리 받아봤고, 이를 축구인들에게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전선거운동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해당 문건이 대한축협 관계자를 통해 김병지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대한축협의 선거개입 논란도 함께 제기됐다.

대한축협은 시도축협 선거 개입을 제한하고 있다. 대한축협 정관 239항에 따르면 시·도축협을 포함한 대한축협의 임직원은 체육회의 회장 선거, 협회, 회원종목단체, ·도체육회 및 시·도종목단체 등 체육단체의 선거와 관련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위반할 경우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체육회에 요구할 수 있다.


김병지는 서울시축구협회 회장 선거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축구인들에게 보냈다. 김병지에게 문건을 받은 축구인 중에는 서울축협 회장 선거에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선거인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규정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문건 받아 선거권자에 유포해?

<일요시사>가 입수한 문건을 확인한 결과, 대한축협이 해당 문건을 만들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건 오른쪽 상단에는 부서: 기획감사팀’ ‘작성일: 2019. 3. 26’이라고 쓰여 있다. 문건에 기재된 기획감사팀은 대한축협 경영혁신실 산하 부서로, 대한축협 내 중요 부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한축협 내부서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문건을 만들었고, 이 문건이 김병지에게 전달된 것이다.

문건의 내용은 크게 선거인단 구성향후 일정으로 나뉜다. 문건에 따르면 선거인단은 서울시 규약에 따른 대의원 50명과 대한축협에 등록된 사람들 50명 등 100명으로 구성된다. 대의원은 자치구 축구협회의 장 25명과 등록팀의 단체군 대표 25명이다.

나머지 50명은 초···대학·일반·여성 지도자 10, 심판 10, 선수 10, 동호인 20명으로 정했다. 지도자, 심판, 선수, 동호인은 선거 20일 전 대한축협에 등록된 자를 대상으로 하며 사정에 따라 선거위원회가 별도로 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건에는 410회장 선거 공고를 시작으로 430·개표에 이르기까지의 선거일정도 일별로 기재돼있다.

대한축협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서울축협 관리위원회서 나눴던 회의 내용을 (대한축협)내부적으로 정리·보고하는 과정서(김병지에게 유출됐다)”고 밝혔다. 문건이 내부 보고용이었다는 입장이다. 문건 유출 경로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 특정후보(김병지)를 서울축협 회장으로 밀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어떻게?


그러면서 다른 후보자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관리위원회서 어떤 얘기가 나왔는지 물어봤을 것이라며 저희는 문서화된 문건이 김병지에게 가서 문제가 된 것이고, 다른 분들은 구두로 (회장 선거가)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 대한축구협회서 유출된 해당 문건

이 관계자는 다른 후보자들에게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대한축협의 생각은 그렇다고 언급했다.

김병지의 경우처럼 문건으로 유출됐든 구두로 전해졌든 관리위원회 회의 내용이 후보자들에게 공유됐을 것이라는 뉘앙스다. 대한축협 관계자는 문건 유출 경로 등에 대해서 대한축협과 서울시체육회, 관리위원회서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면서도 우리가 결정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체육회(이하 시체육회) 관계자들은 문건 유출에 대해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문건이 만들어진 과정, 유출 경로 등에 대해 대한축협으로부터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 상황이다. 관리위원회 회의서 사용되는 문서는 비공개 보안문서로 분류해 관리하고, 회의가 끝나면 회수하는 등 보안 유지에 만반을 기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시체육회 종목육성팀 관계자는 관리위원회서 서울축협 회장 선거 규정 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대한축협서 만든 문건이(새나간 것 같다)”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위해 45일 대한축협에 공문을 보냈고 유선으로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대한축협은 시체육회의 요청에 회신하지 않은 상태다(지난 19일 기준).

다른 후보도
받아 봤다?

또 다른 시체육회 관계자는 우리도 언론보도를 통해 문건 유출 사실을 알게 됐다사건 이후 관리위원회를 부정하고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문건 유출에 대해 알게 된 일부 축구인들이 시체육회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축구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건 유출 이후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회의 등은 현재 올스톱 상태다.

시체육회의 종목단체인 서울축협은 9개월째 회장 자리가 공석이다. 지난해 7월 최재익 전 회장과 집행부가 각종 송사에 휘말려 자리서 물러난 뒤 현재까지 보궐선거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체육회는 지난해 112712차 이사회서 서울축협을 관리단체로 지정하는 안을 가결했다.
 

시체육회는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서울축협의 정상화를 꾀했다. 서울축협 관리위원회는 축구인 출신 관리위원장, 대한축협 추천 인사인 부위원장·변호사, 대한축협 인사 2, 시체육회 인사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

관리위원회의 시급한 과제는 9개월째 공석인 서울축협 회장을 비롯해 집행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시체육회에 따르면 약 10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선거 일정이나 규정 등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전반적인 사항이 다뤄졌다. 이런 상황서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문건 유포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축구인들은 시체육회에 진정서를 내고 항의했다. 이들은 “서울축협 회장 선거를 진행할 권한이 없는 대한축협이 특정후보(김병지)를 당선시키기 위해 문건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 축구인들에게는 선거 관련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진정인들은 대한축구협회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서울시축구협회 불법 회장 선거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 불공정하고 불법적으로 선거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축구협회 관리위원회 위원 전원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관리위원으로 활동 중인 대한축협 인사 3명을 즉각 해임하고 대한축협 차원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축협, 유출 경로 파악 중이라면서
시체육회 사실확인 요구 묵묵부답

하지만 문건 유출에 대한 조치는 서울축협 회장 선거 관련 규정이 정비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축협은 2016년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간의 통합 과정서 잡음이 발생하면서 회장 선거규정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시체육회 관계자는 관리위원회서 회장 선거 관련 규정에 대해 논의하던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서울축협 회장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축구인 A씨는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대한축협이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A씨는 문건 유출에 대해서는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 축구인들 사이서 돌아다니는 문서를 보고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됐다그 이전에 문건을 접하거나 그에 대한 내용을 들은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대한축구협회

그러면서 나를 포함해 여러 축구인들은 그 문건을 보고 대한축협서 조직적으로 김병지를 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축협을 통해 특정후보에게 문건이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마디 사과의 말도 없다 문건을 유출한 사람이든 받은 사람이든 대한축협 차원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축구인 B씨는 김병지가 문건 유출에 앞서 또 다른 사전선거운동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322일 서울 효창운동장 회의실서 초등학교 감독들을 모아놓고 경기도의회의 한 도의원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는 것. B씨는 이 자리서 지도자 처우 개선 등의 말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혹
초등 지도자도?

B씨는 당시 회의실에 있던 초등학교 감독들은 초등연맹서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라며 김병지의 사전선거운동 의혹에 대해 대한축협과 시체육회의 명백한 조사와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이후 서울축협 회장 선거가 투명하게 치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병지 입장은? 
문건 받은 것 맞다

김병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문건을 받았고 유포한 사실에 대해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문건을 어디에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병지는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선거법 위반을 얘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변 축구인들에게 선거 일정 나왔습니다라는 문구를 달아 메시지로 문건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거에 관련된 문건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걸 악의적으로 이용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선거 일정 알려주면서 보내줬다”
“어디서 받았냐고? 말하기 곤란”

그는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다른 분들도 (문건을)다 받아본 것으로 알고 있다제가 관련 내용을 알기 전에 그분들도 먼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322일 효창운동장 회의실에서 있던 일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지도자들의 궁금증, 현재 초·중학교 체제의 어려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맞다저는 ()의원을 소개시켜주고 빠졌다. 그 자리에서 저를 찍어 달라거나 하는 등의 말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초등학교 지도자들이 그 의원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주선해준 것이라며 축구 발전을 위해서 한 일인데 주변서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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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