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항공 재벌’ 박삼구, 영욕의 30년 풀스토리
‘추락한 항공 재벌’ 박삼구, 영욕의 30년 풀스토리
  • 박창민 기자
  • 승인 2019.04.22 16:46
  • 호수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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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설립 31년 만에 금호아시아나그룹서 분리된다. 대기업서 중견기업으로 전락할 전망이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무리한 사세 확장과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 간 분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그야말로 영욕의 30년이 막을 내렸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여러분이 그렇듯이 제게도 아시아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곳서 여러 유능한 임직원과 함께 미래와 희망을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시아나 임직원 여러분, 이제 저는 아시아나를 떠나 보냅니다. 여러분들은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만, 고생한 시간을 보내게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막을 내리다

금호산업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 공평동 본사서 이사회를 열고 채권단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3.47%(6868만8063주)를 매각하기로 한다는 수정 자구안을 의결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금호고속은 금호산업 지분의  45.3%를 보유하면서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금까지 키워냈던 운송사업 중에서도 핵심인 아시아나항공을 떠나 보내게 됐다. 이는 한때 재계 7위까지 차지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사실상 중견그룹으로 추락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1945년 광주서 태어난 박 전 회장은 창업주인 고 박인천씨의 5남3녀 중 삼남이다. 박 회장은 아버지가 택시 두 대로 일으킨 금호타이어(옛 삼양타이어)에 1967년 입사했으며, 1980년 당시 나이 35세에 금호실업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200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으며 2002년 둘째 형인 고 박정구 회장에 이어 금호아시아나 회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은 IMF 경제 위기 이후 거의 매년 1000억원대의 순적자를 기록했고, 박 전 회장은 2002년 제4대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호타이어 중국 톈진 공장을 일본 브릿지스톤에 매각하고, 금호타이어의 지분 50%를 군인공제회에 넘기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은 그룹의 재건을 위해 외형 확장에 주력했다. 특히 대우건설·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는 박 전 회장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최악수였다. 그룹 해체와 유동성 위기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은 2005년 6조4000억원에 대우건설 인수를 강행하며 투자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때 금호아시아나는 3조5000억원가량의 ‘빚’을 냈다. 특히 재무적 투자자들과는 약정한 가격대로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인 ‘풋백옵션’ 계약을 맺고 자금을 지원받았다. 금호아시아나는 투자자들에게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밑돌면 그 가격에 주식을 되사들이기로 약정했다. 

당시 시장 예상가보다 2조원 이상 높은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과 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막대한 금액을 차입하며 ‘승자의 저주’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터지자 ‘마법’ 같던 풋백옵션이 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풋백옵션의 약정일은 다가오는데 대우건설의 주가는 1만2000원대에 머물렀다. 금호아시아나는 4조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해야 할 처지가 됐다. 결국 2009년 6월 인수 3년 만에 대우건설을 되팔겠다고 밝혔다.

대우건설 매각이 지연되면서 2009년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다른 계열사도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했으며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신청하는 등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형제 간의 우애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빚 경영, 형제의 난, 미투…
재계 7위서 60위권 밖으로

대우건설·대한통운의 인수 책임을 둘러싸고 박 전 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2009년 말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결국 2010년 법정관리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 형제 간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이자 박 전 회장이 동생을 대표이사직서 해임했고,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퇴진하는 등 강수를 뒀다. 2015년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을 필두로 8개 계열사가 그룹에서 계열 분리됐고, 현재까지 독자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박 전 회장은 박찬구 회장과 ‘금호’ 상표권 분쟁 등 10건이 넘는 송사를 벌였다. 현재까지 민·형사상 소송은 진행 중이다. 경영서 한발 물러났던 박 전 회장은 2010년 채권단의 요구로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복귀 직후 대우건설과 금호렌터카를 팔았고, 2011년 대한통운까지 매각해야 했다. 금호타이어도 자금난에 빠져 산업은행으로 넘어갔고, 결국 지난해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됐다. 

이 가운데 박 전 회장은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오너 리스크’가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7월 ‘기내식 공급 대란’을 겪었고, 기내식 납품을 맡게 된 업체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협력업체에 대한 ‘쥐어짜기’ 논란이 일었다.

또 박 전 회장은 여성 승무원들을 행사에 강제로 동원하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두 사건은 형사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오너 리스크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실적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룹 연간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대표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1월 시세가 2000억원으로 알려진 인천국제공항의 격납고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했다. 항공사 운영에 필수인 격납고까지 담보로 잡아야 할 만큼 다급한 유동성 위기였다.

절정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달 22일 ‘한정’ 의견의 감사보고서를 받으면서 주식거래가 중지된 사건이다. 나흘 만에 ‘적정’ 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며 관리종목 지정 해제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했지만 부실경영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졌다. 

수정된 최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은 282억원으로 전년대비 -88.5%를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1959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부채는 수정 전보다 1400억원이나 늘었다. 

‘회계꼼수’로 수백억원의 부실을 숨기려고 했다는 비판은 분식회계 의혹으로 번졌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이 현재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떨어질 경우, 지난해 말 기준 1조1328억원에 달하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을 즉시 상환해야 할 상황도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 금호산업의 주주총회서 박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의결될 예정이었다. 당시 총회는 박 회장의 부실경영 책임을 묻는 청문회 성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가 박 전 회장이 31.%의 주식을 보유한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끝?

이에 따라 박 전 회장은 주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2개 계열사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재계에선 사실상 그룹 재건에 실패한 박 전 회장의 ‘불명예 퇴진’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