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이 뽑은 블랙기업 리스트

“이 회사 믿고 거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한 인터넷 사이트엔 네티즌들이 작성한 ‘블랙기업 리스트’가 올라와 있다. 이곳에서 ‘블랙기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일부 기업들의 정보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블랙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부당한 처우를 해도 소수 직원들의 일은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블랙기업에 대한 정보, 경험담, 사실 등을 공유하는 공간이 생기자 네티즌들, 특히 취업 준비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일요시사>에서는 이 리스트에 올라온 기업들을 정리해봤다.
 

블랙기업이란 기업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을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불법·편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하면 고객에게까지 그 피해를 전가하는 악덕기업을 말한다.

폭언과 욕설
영화화되기도

한국의 경우 청년 고용률이 떨어지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로 인해 고용시장서 근로자의 입지가 줄어들어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던지는 비정규직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회사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강요하고 있고, 이 과정서 성추행이나 괴롭힘 등의 인권 침해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직장 문제로 인한 자살 사건도 잊을 만하면 반복되고 있다.

[경동택배]  

2015년 3월17일 경동합동택배의 갑질행위가 밝혀졌다. 본사 직원이 영업소 소장에게 3.5톤 화물차의 출고 강요, 지게차 강매, 해외물류 강요 등을 일삼고, 영업소 매상이 적으면 본사에서 정신교육 및 반성문을 쓰게 하는 갑질을 한 것. 또한 간선택배 화물차 기사에게 영업소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반드시 지키라고 협박한 뒤, 지정한 도착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대형화물차 기사에게 엄청난 벌금을 물렸다. 


[금호아시아나]

하청업체에게 과도한 할당량을 요구해 대표를 자살하게 만들거나 자사 승무원을 기쁨조로 만드는 등의 만행이 드러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인 금호고속의 승무원들에게도 과도한 업무를 부과하고, 승무원들 연수 때 폭언과 욕설, 구타, 기합을 주는 등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았다. 

[내일투어] 

여행사 중 가장 악질적인 기업으로 유명하다. 주말에 나와서 근무를 한 직원에게는 반차를 주는데 이것을 사실상 못 쓰게 한다. 해외 출장을 갈 경우에도 자신의 연차를 써야 하며 1분만 지각해도 연차서 차감된다. 또 직원의 실수로 여행사에 손실이 발생했다면 이를 사비로 메꿔야 한다. 또한 이러한 악질적인 행태는 언론에 몇 번 공개되기도 했다. 
 

[선진네트웍스] 

자사 승무원 전원을 계약직으로 고용. 휴식시간에 비해 운행시간이 상당히 빡빡하다 보니 그만큼 난폭운전으로 악명이 높다.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랜드] 


계열사의 근로환경에 대한 내용이 <카트>와 <송곳> 등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랜드 외식사업부는 알바생들에게 근무시간 초과분을 인정하지 않는 일명 ‘꺾기’를 자행했고, 1개월 이상 근무 시 지급해야 하는 1일 연차휴가나 연차수당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4시간마다 30분씩 주어지도록 보장된 휴식시간도 주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 및 정직원에 대한 임금체불에 이어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미지급 사실도 드러났다.

야근 종용에 임금체불…부당행위까지
직원들 정신병에 스스로 목숨 끊기도

[인벤] 

야근 및 철야 강요, 휴일 출근 강요, 임원들의 갑질, 술자리 강요 등이 팽배하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직원들의 게임에 대한 열정에 따른 당연한 대가라 여긴다. 직원들의 업무능력은 제대로 보지 않고 술자리 등에서 사장이나 임원들에게 잘 보인 직원들만 승진시킨다. 시작은 메갈리아와 관련된 단순한 의혹이었다가 블랙기업 논란으로 번진 케이스다.

[태화관광] 

태화관광, 태화공항리무진은 2016년 10월13일 울산고속도로 기점인 언양분기점서 난폭운전으로 18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버스계의 경동택배’라고도 불린다. 버스기사에게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지키도록 협박했으며, 도착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30만원가량의 벌금을 물게 했다. 심지어는 교통사고,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운전기사를 채용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하이브로] 

예전부터 근무와 관련해 악평이 자자한 회사다. 야근, 갑질, 부당해고 등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직원들이 바뀌었으며 지금도 비슷한 상황. 회사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서 하이브로를 검색해보면 온갖 악평들이 줄줄이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홍기획] 

롯데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대홍기획은 ‘수평적 문화’를 자랑해 ‘2018 한국PR대상’서 사내 커뮤니케이션 부문 최우수상까지 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대홍기획의 상무급 임원 A씨가 ‘빼빼로를 안 챙겨줬다’는 황당한 이유로 직원들에게 횡포를 부린 사건이 밝혀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A씨는 팀장급 부하직원 4명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왜 나한테 아무도 빼빼로 과자를 챙겨주지 않았냐”며 30분간 고성을 질렀다. 심지어 직원들을 향해 빼빼로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이른바 ‘빼빼로 갑질’로 불린 이 사건으로 인해 대홍기획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사내 문화’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대웅제약] 


지난해 윤재승 대웅제약 전 회장의 ‘폭언 녹취록’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녹취록에는 윤 전 회장이 업무 보고를 한 직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건이 터진 이후 대웅제약 직원들은 윤 전 회장의 이와 같은 폭언은 일상이었으며,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윤 전 회장은 언론에 입장문을 보내 “저의 언행과 관련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논란을 인정했다. 

[하이마트] 

롯데 하이마트도 ‘갑질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이마트는 파견 직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는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일부 파견 직원들은 무보수 야근, 모욕적인 폭언, 무리한 판매 강요 등으로 힘겨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고 입을 모았다. 또 하이마트의 일부 지점장들이 실적이 부진한 직원을 상대로 폭언을 퍼부었다는 소식도 전해져 공분을 샀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당 지점장은 폭언과 욕설을 내뱉고 협력 업체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과 휴무일을 임의로 조정하며 실적을 압박했다고 한다.

기업 책임 묻지 않는 대한민국
전문가 “정부 차원 논의 필요”

[신한카드] 


신한카드가 협렵업체 콜센터 상담원의 인격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한 매체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상담원들을 관리했다. 메신저 대화 내용은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그다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등 자리 비움과 복귀 알림이 주를 이뤘다. 이 과정서 관리자는 상담원들에게 “왜 자주 화장실을 가냐” “그만 좀 가라” “너무 왔다갔다 하는 것 아니냐”며 압박을 가했다.
 

상담원들은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게다가 상담원들은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휴가에도 제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보도 이후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언론에 공개
온라인 공분

블랙기업이 사회 문제화로 떠오른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노동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경제적 차원서만 논의될 뿐, 기업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블랙기업이 얼마나,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지조차 아직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전문가는 “블랙기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블랙컨슈머’처럼 우리 사회 전반서 보편적인 단어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블랙기업의 사례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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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