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4월 국회 미리 가보니…

시간만 때우다…‘안 봐도 비디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4월 국회도 전철을 밟게 될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여야의 대치구도는 점입가경이다. 여야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매번 충돌하고 있다. 여야는 정국경색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 애꿎은 법안들만 켜켜이 쌓이고 있는 꼴이다. 정쟁에 따른 여론의 비판은 오히려 체념으로 귀결되는 형국이다.
 

여야는 4월 임시국회 첫날부터 격돌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와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임명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이들의 임명을 강하게 반대했다.

대결구도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서 “당의 반대와 국민여론은 무시해도 된다고 하는 독선과 오만, 불통 정권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며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바미당 손학규 대표 역시 이날 최고위원회의서 “이렇게 국회를 무시하고 어떻게 정국을, 정치를 이끌어나갈지 걱정”이라며 “국회 청문회를 왜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두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야당에선 즉각 반발하며 정국마비를 예고했다.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정권과 여당이 부르짖던 민생 우선과 협치란 말은 하나의 레토릭(수사)에 불과했음이 명확해졌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미당 김정화 대변인은 “국회와 야당, 국민의 비판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한심한 정부”라고 꼬집었다.

범진보진영으로 꼽히는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도 대동소이했다.


평화당 홍성문 대변인은 “오기 인사 ‘끝판왕’의 진면목”이라며 “후퇴할 줄 모르는 코드 인사는 후회로 끝날 것”이라고 일갈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제기된 지적과 확인되지 않은 의혹으로 해당 부서 장관으로서 결정적 하자가 있거나 직무 수행에 부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이 열 번째가 됐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철저한 인사검증 시스템 보안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반발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오늘부터 4월 임시국회가 열리게 된다”며 “산불 후속조치와 민생경제 입법 등 꼭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굉장히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 강행이 ‘국정포기선언’이라는 정치 공세에 동의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작부터 삐걱…출구 없는 대결
정쟁이 장악한 국회, 앞날 깜깜

여야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상황서 국민 여론 역시 팽팽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5일 조사해 8일 발표한 ‘청와대의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관 인사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찬성’이 45.8%,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되지 않았으므로)반대’가 43.3%를 기록했다. ‘모름/무응답’은 10.9%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문 대통령의 장관 임명 강행에 따라 국회를 둘러싼 전운은 한층 짙어졌다. 지난 1월 임시국회와 2월 임시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지난 1월에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2월에는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망언이 부상했다. 여야는 연일 설전을 주고받았다.

3월 임시국회에선 다행히 9차례의 본회의가 열렸지만 이른바 민생·개혁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는 ‘조두순 법’ 등 갈등의 소지가 적은 비쟁점법안을 처리하는 수준에 그쳤다.
 

▲ 임시의정원 100주년 기념식서 발언하는 문희상 국회의장 ⓒ사진공동취재단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서 열린 ‘국회의장-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서 “여기 계신 다섯 분을 포함해 국회 대표단이 중국 상해로 가서 임시의정원의 모습을 재연하는 행사가 있다”며 “독립지사의 위대한 혼을 일깨우는 작업을 하고, 돌아올 땐 의기투합해서 멋진 국회를 해보자고 합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일하는 국회’에 대해 공감대를 표했지만 여야 간 기싸움은 쉽게 해소되지 못했다.

홍 원내대표는 “정쟁은 정쟁대로 하더라도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 경제 활성화 법안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산불 복구 대책에 대해선 “예비비로 할 수 있는 것은 예비비로 하고, 그것으로 안 되면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에도 포함해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나 원내대표는 장관 후보자의 임명 강행을 전면 비판했다.

켜켜이 쌓인 법안들
나 몰라라 서로 싸움만?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4월 국회가 3월 국회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가장 최선의 길은 여야 간 빅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역시 “4월 국회도 빈손 국회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20대 국회서 우리가 도대체 어떤 개혁을 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여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쟁점 법안들의 통과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4월 국회의 최대 쟁점 법안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추경 등이 꼽힌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지난 3월 국회서 매듭짓지 못한 채 이번 4월 국회로 넘어왔다. 여야는 탄력근로제의 기간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과 바미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안에 따라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 원내대책회의 갖는 자유한국당

반면 한국당은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1년 확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과 산불 피해 지역 복구, 민생경제 지원 등을 위해 추경안을 편성할 전망이다.

한국당은 추경안 분리 제출을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 의장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서 “이번 추경이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기’ 등 총선을 위한 선심용 추경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분리 추경을 제안했다. 그는 “재해 추경과 비재해 추경을 별도로 제출해주면 재해 관련 추경은 여야 간 합의가 매우 원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8일 “(추경안을)4월 하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투명


4월 국회가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면서 정국에 먹구름이 낀 모양새다. 올해 정국이 정쟁을 기반으로 둔 만큼 산적한 민생·개혁 법안은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 정상운영은 요원하다. 오히려 (여기에)익숙해져 있는 분위기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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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