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학의 법률사무소 미스터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4.12 14:43:49
  • 호수 12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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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잘 만나 방 얻고 사건 맡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퇴임 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행적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법무부 차관이던 시절 ‘별장 성접대·성폭력’ 의혹으로 사임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일요시사>는 김 전 차관의 중학교 친구이자 그가 변호사 활동을 하는 데 조언을 해준 A 변호사를 통해 ‘변호사 김학의’를 추적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김 전 차관은 2013년 3월15일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했다. 취임 6일 후인 21일 김 전 차관은 강원 원주시 소재 한 별장서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인물로 지목됐다. 당일 김 전 차관은 의혹을 부인하며 차관직서 사임했다. 경찰은 조사 끝에 김 전 차관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성접대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차관 사임
변호사 변신

김 전 차관은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후 변호사로 전직했다. 2015년 11월13일 서울지방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에 변호사 자격등록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서울변회는 등록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해 12월15일 서울변회는 상임이사회를 열어 김 전 차관에 대한 변호사 자격등록 부적격 및 입회 거부 의견을 최종확정, 이를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에 전달했다.

당시 서울변회는 “김 전 차관이 공직자로서 향응을 받은 점에 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 ‘혐의 없음’ 결론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정이 충분하다”며 “이는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인해 퇴직한 경우로 볼 수 있어 변호사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현저히 부적절하고 변호사법이 규정한 등록거부사유에 해당한다”고 입회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변협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변협은 2016년 1월25일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를 열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자격등록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한변협이 서울변회의 결정을 뒤집고 김 전 차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변회가 적용한 현행 변호사법이 아닌 2013년 김 전 차관이 퇴직할 당시의 변호사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서울변회로부터 입회 거부를 통지받자 김 전 차관이 반박하며 내세운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기존 변호사법 제8조 1항 4호는 ‘직무 관련성 있는 위법행위로 인해 형사 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이로 인해 퇴직한 자에 한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동법은 2014년 5월 ‘직무 관련성 있는 위법행위’ 부분이 삭제돼 지금에 이른다. 직무와 관련 없는 비위를 저지르거나 징계를 받아 퇴직한 판·검사도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자격요건이 강화된 것이다. 

대한변협은 자격요건이 강화되기 이전의 변호사법을 적용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을 허용했다. 김 전 차관이 받고 있는 혐의가 직무와 무관하다는 결론이다.

대치동 사무실
친구에게 빌려

변호사의 길이 열린 김 전 차관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빌딩 5층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그곳에는 B법률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A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률사무소다. 등기부에 따르면 A 변호사는 2016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이 빌딩 5층 전체에 대한 전세 계약을 맺었다.

A 변호사는 대형 로펌서 30년 동안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주로 기업M&A와 환경 쪽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A 변호사는 2013년 7월 말 대형 로펌을 나와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그러다 2015년 2월 대형 로펌서 함께 일한 변호사들과 또 다른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A 변호사는 그곳을 나와 2016년 1월 지금의 B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대한변협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자격등록을 허용한 시점도 2016년 1월이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변호사의 길이 열린 김 전 차관은 A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A 변호사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김 전 차관이)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변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자문을 구해서 얘기해줬다. 변호사는 내가 30년 이상 했으니 (김 전 차관에 비해)한참 선배”라고 말했다.

극비리 개업 대치동 사무실 방문해보니…
40년 지기 변호사 “불쌍해서 빌려줬다”

A 변호사는 1984년 9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변호사 활동을 해왔다. 반면 검사장을 지낸 김 전 차관은 검찰 고위직 출신이지만, 변호사 활동은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다. 김 전 차관은 A 변호사로부터 민사사건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형사사건을 주로 맡은 바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민사는 낯선 영역이다.

김 전 차관과 A 변호사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김 전 차관과 친구 사이라고 말한 A 변호사는 “중학교 3년을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는 다르지만, 내가 서울대 법대 75학번이고 김 전 차관은 76학번이다. 나보다 대학은 1년 후배고 시험은 3년 후배다. 그 일(성접대 파문)이 있기 전 1년에 한두 번은 만났던 사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김 전 차관의 직장 주소는 A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B 법률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한다. 직장 전화번호 역시 B 법률사무소와 동일하며 이메일 역시 B 법률사무소의 것이다. A 변호사는 <일요시사>를 통해 김 전 차관이 자신의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는 아니라고 밝혔다.

“사무실 공간이 두세 개 비어서 거기를 빌려줬다. 빈방이 있어서 (김 전 차관에게) 전대했다. 빌려준 것이다. 내 사무실에 소속된 변호사가 아니다. 사업자등록도 다르다. 완전히 독립돼있다.”

같은 주소
같은 이메일

A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B 법률사무소의 이메일 주소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합동법률사무소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합동법률사무소의 변호사들은 서로 간에 업무 협조도 거의 없을 정도로 따로 움직이지만, 같은 법률사무소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전 법률사무소에 있을 때도 우리 후배들과 별도의 일을 했지만, 같은 이메일 주소를 썼다. 그런 의미로 (김 전 차관이 B 법률사무소) 이메일 주소를 쓰는 일을 내가 허락했을 것이다. (이메일 사용을) 막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

B 법률사무소와 김 전 차관의 전문분야는 다르다. B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은 환경과 관련된 사건을 수임했다. A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검찰 출신인 김 전 차관은 형사사건을 전문분야로 한다. 

“나는 형사사건을 거의 안 한다. 여기(B 법률사무소)에 있는 사람들도 기본업무가 다 환경 쪽이다. 일반형사사건은 수임할 일도 없고, 능력도 없다. 검찰청에 다니지도 않는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출신이니 업무적으로 겹치지 않는다.”

하청 받아 사건 변호
전화, 이메일도 동일


<일요시사>는 김 전 차관이 변호한 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판결문을 열람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민사상고, 형사 제1심 단독공판, 형사항소공판 등의 사건을 주로 맡아 변호했다. 이 중에는 B 법률사무소 변호사들과 함께 맡은 사건도 있다. 김 전 차관과 A 변호사가 함께 변호사로 이름을 올린 사건도 확인됐다. A 변호사는 김 전 차관과 동업을 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바로 옆에 있으니 어쩌다 일을 같이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변호사가 일을 하다 보면 친구에게 하청을 주기도 한다. (김 전 차관은) B 법률사무소 소속이 아니다. 내가 고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준비서면에 이름을 쓰면 개인 법률사무소니까 변호사 이름을 쭉 쓰지 않나. 그때 B 법률사무소의 명칭을 쓰는 것이다. 명칭을 쓰는 것은 법률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김 전 차관은 성접대 의혹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 전 차관이 사무실에)나온 적은 거의 없다.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디 일이 있겠나? 누가 일을 줘야 할 것 아닌가. 김 전 차관이 검사장과 차관을 했다고 사람들이 일을 주겠나? 딱하다.”

A 변호사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친구 김학의’를 도와준 것일 뿐 ‘변호사 김학의’와 같이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내어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전 차관 주변인에 대한 취재가 그 주변인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친구 김학의
딱해 보여서”


그는 “(김 전 차관에게)사무실을 빌려줬더니 주변서 괜히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을 많이 하더라. 난 중학교 친한 친구여서 빌려준 것이다. 세상 인심이 이렇구나(라고 느꼈다). 무슨 한센인 보듯이 한다. (김 전 차관은)엄청난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인데, 조금 기다렸다가 진실이 드러나고 (취재)하면 되는 건데, 드러나기 전에 죽여놓고 보자는 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조차 싫어할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친구가 보기에 민망스럽고 불쌍해 보인다. 친구에게 방 빌려주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지금 (기자가)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주변서 걱정하는 게 기우가 아니었네’라는 생각이 든다”며 “나한테까지 관심을 가지다니 말이다. 기자님이라면 부모와 친구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 곁도 안 내주고 도망 다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학의 반격 왜?

‘별장 성접대·성폭력’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자신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전날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고소장에서 김 전 차관은 해당 여성이 2013년 검찰·경찰 수사 당시 자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차관은 이들 여성을 아예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김 전 차관은 2007년 4월과 이듬해 3월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에서 여성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한 여성이 문제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으나, 역시 무혐의로 끝났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같은 혐의로 두 차례 수사를 받아 혐의 입증이 어려운 점을 간파한 김 전 차관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라 분석한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을 일단 보류한 점도 맞대응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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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