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학의 법률사무소 미스터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4.12 14:43:49
  • 호수 1214호
  • 댓글 0개

친구 잘 만나 방 얻고 사건 맡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퇴임 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행적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법무부 차관이던 시절 ‘별장 성접대·성폭력’ 의혹으로 사임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일요시사>는 김 전 차관의 중학교 친구이자 그가 변호사 활동을 하는 데 조언을 해준 A 변호사를 통해 ‘변호사 김학의’를 추적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김 전 차관은 2013년 3월15일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했다. 취임 6일 후인 21일 김 전 차관은 강원 원주시 소재 한 별장서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인물로 지목됐다. 당일 김 전 차관은 의혹을 부인하며 차관직서 사임했다. 경찰은 조사 끝에 김 전 차관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성접대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차관 사임
변호사 변신

김 전 차관은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후 변호사로 전직했다. 2015년 11월13일 서울지방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에 변호사 자격등록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서울변회는 등록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해 12월15일 서울변회는 상임이사회를 열어 김 전 차관에 대한 변호사 자격등록 부적격 및 입회 거부 의견을 최종확정, 이를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에 전달했다.

당시 서울변회는 “김 전 차관이 공직자로서 향응을 받은 점에 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 ‘혐의 없음’ 결론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정이 충분하다”며 “이는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인해 퇴직한 경우로 볼 수 있어 변호사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현저히 부적절하고 변호사법이 규정한 등록거부사유에 해당한다”고 입회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변협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변협은 2016년 1월25일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를 열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자격등록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한변협이 서울변회의 결정을 뒤집고 김 전 차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변회가 적용한 현행 변호사법이 아닌 2013년 김 전 차관이 퇴직할 당시의 변호사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서울변회로부터 입회 거부를 통지받자 김 전 차관이 반박하며 내세운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기존 변호사법 제8조 1항 4호는 ‘직무 관련성 있는 위법행위로 인해 형사 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이로 인해 퇴직한 자에 한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동법은 2014년 5월 ‘직무 관련성 있는 위법행위’ 부분이 삭제돼 지금에 이른다. 직무와 관련 없는 비위를 저지르거나 징계를 받아 퇴직한 판·검사도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자격요건이 강화된 것이다. 

대한변협은 자격요건이 강화되기 이전의 변호사법을 적용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을 허용했다. 김 전 차관이 받고 있는 혐의가 직무와 무관하다는 결론이다.

대치동 사무실
친구에게 빌려

변호사의 길이 열린 김 전 차관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빌딩 5층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그곳에는 B법률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A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률사무소다. 등기부에 따르면 A 변호사는 2016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이 빌딩 5층 전체에 대한 전세 계약을 맺었다.

A 변호사는 대형 로펌서 30년 동안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주로 기업M&A와 환경 쪽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A 변호사는 2013년 7월 말 대형 로펌을 나와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그러다 2015년 2월 대형 로펌서 함께 일한 변호사들과 또 다른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A 변호사는 그곳을 나와 2016년 1월 지금의 B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대한변협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자격등록을 허용한 시점도 2016년 1월이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변호사의 길이 열린 김 전 차관은 A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A 변호사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김 전 차관이)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변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자문을 구해서 얘기해줬다. 변호사는 내가 30년 이상 했으니 (김 전 차관에 비해)한참 선배”라고 말했다.

극비리 개업 대치동 사무실 방문해보니…
40년 지기 변호사 “불쌍해서 빌려줬다”

A 변호사는 1984년 9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변호사 활동을 해왔다. 반면 검사장을 지낸 김 전 차관은 검찰 고위직 출신이지만, 변호사 활동은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다. 김 전 차관은 A 변호사로부터 민사사건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형사사건을 주로 맡은 바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민사는 낯선 영역이다.

김 전 차관과 A 변호사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김 전 차관과 친구 사이라고 말한 A 변호사는 “중학교 3년을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는 다르지만, 내가 서울대 법대 75학번이고 김 전 차관은 76학번이다. 나보다 대학은 1년 후배고 시험은 3년 후배다. 그 일(성접대 파문)이 있기 전 1년에 한두 번은 만났던 사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김 전 차관의 직장 주소는 A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B 법률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한다. 직장 전화번호 역시 B 법률사무소와 동일하며 이메일 역시 B 법률사무소의 것이다. A 변호사는 <일요시사>를 통해 김 전 차관이 자신의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는 아니라고 밝혔다.

“사무실 공간이 두세 개 비어서 거기를 빌려줬다. 빈방이 있어서 (김 전 차관에게) 전대했다. 빌려준 것이다. 내 사무실에 소속된 변호사가 아니다. 사업자등록도 다르다. 완전히 독립돼있다.”

같은 주소
같은 이메일

A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B 법률사무소의 이메일 주소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합동법률사무소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합동법률사무소의 변호사들은 서로 간에 업무 협조도 거의 없을 정도로 따로 움직이지만, 같은 법률사무소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전 법률사무소에 있을 때도 우리 후배들과 별도의 일을 했지만, 같은 이메일 주소를 썼다. 그런 의미로 (김 전 차관이 B 법률사무소) 이메일 주소를 쓰는 일을 내가 허락했을 것이다. (이메일 사용을) 막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

B 법률사무소와 김 전 차관의 전문분야는 다르다. B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은 환경과 관련된 사건을 수임했다. A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검찰 출신인 김 전 차관은 형사사건을 전문분야로 한다. 

“나는 형사사건을 거의 안 한다. 여기(B 법률사무소)에 있는 사람들도 기본업무가 다 환경 쪽이다. 일반형사사건은 수임할 일도 없고, 능력도 없다. 검찰청에 다니지도 않는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출신이니 업무적으로 겹치지 않는다.”

하청 받아 사건 변호
전화, 이메일도 동일


<일요시사>는 김 전 차관이 변호한 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판결문을 열람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민사상고, 형사 제1심 단독공판, 형사항소공판 등의 사건을 주로 맡아 변호했다. 이 중에는 B 법률사무소 변호사들과 함께 맡은 사건도 있다. 김 전 차관과 A 변호사가 함께 변호사로 이름을 올린 사건도 확인됐다. A 변호사는 김 전 차관과 동업을 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바로 옆에 있으니 어쩌다 일을 같이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변호사가 일을 하다 보면 친구에게 하청을 주기도 한다. (김 전 차관은) B 법률사무소 소속이 아니다. 내가 고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준비서면에 이름을 쓰면 개인 법률사무소니까 변호사 이름을 쭉 쓰지 않나. 그때 B 법률사무소의 명칭을 쓰는 것이다. 명칭을 쓰는 것은 법률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김 전 차관은 성접대 의혹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 전 차관이 사무실에)나온 적은 거의 없다.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디 일이 있겠나? 누가 일을 줘야 할 것 아닌가. 김 전 차관이 검사장과 차관을 했다고 사람들이 일을 주겠나? 딱하다.”

A 변호사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친구 김학의’를 도와준 것일 뿐 ‘변호사 김학의’와 같이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내어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전 차관 주변인에 대한 취재가 그 주변인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친구 김학의
딱해 보여서”


그는 “(김 전 차관에게)사무실을 빌려줬더니 주변서 괜히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을 많이 하더라. 난 중학교 친한 친구여서 빌려준 것이다. 세상 인심이 이렇구나(라고 느꼈다). 무슨 한센인 보듯이 한다. (김 전 차관은)엄청난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인데, 조금 기다렸다가 진실이 드러나고 (취재)하면 되는 건데, 드러나기 전에 죽여놓고 보자는 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조차 싫어할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친구가 보기에 민망스럽고 불쌍해 보인다. 친구에게 방 빌려주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지금 (기자가)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주변서 걱정하는 게 기우가 아니었네’라는 생각이 든다”며 “나한테까지 관심을 가지다니 말이다. 기자님이라면 부모와 친구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 곁도 안 내주고 도망 다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학의 반격 왜?

‘별장 성접대·성폭력’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자신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전날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고소장에서 김 전 차관은 해당 여성이 2013년 검찰·경찰 수사 당시 자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차관은 이들 여성을 아예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김 전 차관은 2007년 4월과 이듬해 3월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에서 여성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한 여성이 문제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으나, 역시 무혐의로 끝났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같은 혐의로 두 차례 수사를 받아 혐의 입증이 어려운 점을 간파한 김 전 차관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라 분석한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을 일단 보류한 점도 맞대응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