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원 이사장의 수상한 행보

믿으라더니…뒤통수치고 줄행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난달, 기숙학원 안성탑클래스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강사들의 임금과 적립금 지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심지어 학원생 매매를 통한 소개비 챙기기 의혹도 일었다. 이 모든 사건에는 이사장이 연루돼있었다. 강사들에 따르면 대표는 허수아비일 뿐 이사장이 실질적인 권한과 실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안성탑클래스학원 ⓒ홈페이지

안성탑클래스 학원에 근무했던 강사 A씨는 “안성탑클래스 기숙학원서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 적립금 횡령, 학원생 매매를 통한 ‘소개비’ 챙기기 등 온갖 부정행위와 위법행위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온갖 부정행위

적립금이란 기본적으로 강사들의 비수기 급여를 보전하기 위한 의도서 만들어진 ‘적금’과 같은 것이다. 시내 재수종합반이든 시외 재수기숙학원 종합반이든 재수종합반 강사들은 11월 수능이 끝나고 당해 12월 및 다음 해 1~2월 초순까지는 자신이 상근하는 학원서의 소득이 전무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강사들은 소득의 일부를 학원 측에 맡겨두었다가 당해 12월 급여일에 맞춰 지급받는 것이 관례였다. 비수기를 버텨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적립금은 통상 월마다 강사가 수업한 총 수업 시수에 시수당 임금을 곱한 총 강의금액의 10%를 적립금으로 떼어놓는다.

그런데 학원 측은 이 같은 용도의 적립금을 고용계약서에 퇴직금을 대체하는 것으로 명기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강사 개인의 적립금을 착복하고 횡령해왔다. 강사들은 사실상 월급서 떼어 모아온 적립금을 퇴직금 명목으로 수령해왔고, 학원 측은 퇴직금을 지급한 것처럼 국세청을 속여온 것이다.


학원 측은 법을 위반하고서도 처벌받지 않는 데 ‘적립금’을 악용해왔다는 결론이 나온다. 

강사들은 고용계약서상의 내용만 믿고 자신 몫의 퇴직금을 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조항을 알고 고용노동부에 고소하거나 민사 소송을 감행하는 강사도 있었다. 학원 측은 이런 경우에는 적립금과 퇴직금을 모두 지급했다.  

A씨에 따르면 안성탑클래스 본원의 이모 대표이사는 매형으로 알려진 김모 이사장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실제 현장서 모든 권한과 실력을 행사한 이는 김 이사장이다. 안성탑클래스 본원이 처음 삼죽면에 개원했을 때 대지와 건물의 소유주는 김 이사장이었다.  

김 이사장은 체불된 임금의 지불을 요구하는 강사들에게 매번 학원 경영상의 어려움을 들어 임금의 지급을 미뤄왔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학원이 폐원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강사와 직원들은 임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전임강사들과 시간강사들의 경우 길게는 6개월, 짧게는 1개월의 급여를 지급받지 못했다. 경리과장의 말에 따르면, 학원식당 및 환경미화 직원과 생활담당교사들을 비롯한 약 30여명을 상회한 전 직원의 체불임금 총액은 약 4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학원 운영의 전반을 책임지며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김 이사장은 체불된 임금의 지급을 요구하는 강사들에게 “자신만 믿어라” “절대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직원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A씨는 “8년간 매년 매출 50억서 70억 정도를 올린 우량한 학원이었다. 죽산으로 학원을 옮긴 뒤에도 2년간 최소한 20억서 30억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김 이사장과 이사들이 말하는 ‘재정상의 위기’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사들 임금·적립금 4억 넘게 체불 
“나만 믿어” 약속했는데 폐업 후 잠수

김 이사장은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면서 “나도 그만두면 그만이다. 나를 오라는 데가 여러 곳”이라는 위협성 발언으로 강사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윽박을 지르거나 고성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체당금이 있지 않느냐”와 같은 무책임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안성탑클래스 측은 퇴직금 미지급을 항의하고 고용노동부 등에 진정하거나 고발하는 강사에게만 선별적으로 퇴직금을 지급하는 행태도 보였다. 

안성탑클래스 본원은 학원을 정리하며 재원 중인 학원생들을 타 재수기숙학원으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서 흔히 학원가의 관행이라 불리는 소개비를 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됐다. 
 

▲ ▲▲ 안성탑클래스학원 ⓒ안성탑클래스학원 홈페이지

소개비는 학생 1인당 1개월 수강료에서 길게는 2∼3개월 수강료를 지불하는 것이 통례. 재수기숙학원의 1개월 수강료는 대략 280만원 정도이며 기타 교재비 등의 부대비용을 감안한다면 300만원에 육박한다.

김 이사장은 지난 3월3일 학원에 재원 중이던 재수생 30여명을 광주초월면 소재 모학원으로 이동시켰다. 학원생 이동에 대한 통지는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 공지됐으며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학원생들은 이사장의 설득에 학원을 옮기게 됐다. 

이 과정서 김 이사장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으며, 옮겨가는 학원과 어떤 이면계약도 하지 않았음을 학생들에게 피력했다. 강사와 직원들에게는 자신의 노력으로 파산은 막았으며, 재원생들 역시 더 좋은 교육 환경이 갖춰진 브랜드 학원으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넘긴 대가로 1100만원의 계약금을 선지급받았고, 1개월 후 나머지 금액에 대한 소개비를 수령하기로 돼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이에 김 이사장은 “1100만원은 계약금이 아니라 사적으로 빌린 돈이며 학원의 밀린 전기요금을 갚는 데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강사는 “만에 하나라도 소개비 명목의 돈을 1개월 후 받게 될 시에 그 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혹시 그런 돈이 있다면 밀린 급여를 지급하는 데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 것”이라고 통지했다. 

대다수의 강사들은 이사장의 부도덕한 일처리 방식과 체불 임금, 강사 적립금, 퇴직금 등 그 어느 것 하나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소개비 역시 사적인 용도로 유용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뭘 노렸나?

A씨는 “이사장과 이사들은 이미 ‘파산’ 신청을 염두에 두고 고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등의 기만적 행동을 했던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학생 팔아넘기기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편취하려는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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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