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면 터지는 재벌가 마약사

가족도 포기한 ‘뽕쟁이 도련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재벌가에 ‘마약 사정’이 몰아치고 있다. 남양유업 창업주의 손녀 황하나씨가 마약투여 혐의로 붙잡힌 데 이어 SK·현대가의 3세들까지 마약투여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파문은 커져만 가고 있다. 재계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전전긍긍하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과거 마약에 연루됐던 재벌들에게 쏠렸다. 
 

▲ 압송 중인 황하나씨

SK와 현대그룹 3세가 마약투약 혐의로 적발된 가운데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도 같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에게 마약을 전달하거나 함께 투약한 공범들도 속속 구속되거나 수사선상에 오르며 이번 파문이 ‘유학파 출신 재벌 3세’ 전반으로 퍼질지 관심이 커진다. 

계속되는 적발
또 누가 걸릴까?

인천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2일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정현선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여덟째 아들인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장남이다. 

정씨는 경찰이 마약 공급책인 이모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범행 정황이 드러나게 됐다. 정씨는 지난해 3∼5월 이씨로부터 대마를 수차례 구입하고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씨와 함께 자신의 차량 등에서 대마를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가 구매한 대마는 일반적인 대마가 아닌 대마 성분을 농축해 액상으로 만든 카트리지로 확인됐다.

정씨는 현재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데 경찰은 정씨의 해외 도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경찰은 지난 1일 성남시 분당구의 한 사무실서 대마 구입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SK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최영근씨를 긴급체포했다. 인천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2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의 외아들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5촌 조카와 당숙 사이다. 경찰이 최씨에 대해 간이시약 검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 반응이 확인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최씨에 대한 마약 정밀감정을 의뢰했다.

SK·현대·남양 줄줄이…환각 스캔들
수사 확대에 떨고 있는 재계 3·4세들

최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이모씨 등으로부터 18차례에 걸쳐 대마초와 고농축 액상대마를 구입해 18차례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1회당 적게는 2g서 4g의 대마 종류를 구입했으며 이모씨를 통해 최소 5번 이상 대마 종류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최씨는 “구입한 대마는 주로 집에서 피웠다”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마약투약 혐의로 체포된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에 대한 수사 역시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해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 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서 황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황씨가 2015년 여름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해 말 황씨를 입건했다. 또 지난해 초까지도 마약을 투약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2015년 11월 종로경찰서 수사 당시 황씨를 비롯해 7명이 수사선상에 오른 점과 당시 검경의 사건 처리 적절성에 대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의 내사가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하면 추가 연루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경찰이 황씨를 상대로 봐주기 수사 끝에 불기소 처분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황씨와 함께 사법 처리를 피한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한 재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과거 수면 위로
꾸준한 사건들

물론 과거에도 재벌들의 마약사건은 있었다.

현대 정현선씨의 마약투여 혐의로 현대가 3세들의 마약사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정현선씨의 여동생 정문이씨는 지난 2012년 8월 말 서울 성북동 골목길 주택가 골목길에 세워둔 차 안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대마초를 전해 받고 함께 피운 혐의가 적발돼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정문이씨의 나이는 20세. 

정문이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며칠 뒤 국외로 출국했지만, 보름이 지나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과정서 경찰에 붙잡혔다. 체포 직후 머리카락과 소변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물 분석 감정을 의뢰한 결과 대마초 양성반응이 나왔다.

정문이씨는 이듬해인 2013년 4월에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2013년에는 현대가 3세인 정광선씨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됐다. 정광선씨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고 정순영 성우효광그룹 회장의 3남인 정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아들이다. 당시 28세이던 그는 대마초를 수차례 흡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는 경기 오산시 미군 공군기지 소속 주한미군 군인이 군사우편을 통해 특송화물로 밀반입한 대마초를 브로커로부터 건네받아 수차례 흡입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주한미군 군인 2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인 대마초 944g을 들여온 경로를 확인하다 이 같은 혐의를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류도 여럿
대마에 코카인

2009년에는 정순영 회장의 또 다른 손자인 정인선씨가 부유층 자녀들의 대마파티에 연루돼 파문이 일었다. 정인선씨는 정몽용 현대성우홀딩스 회장의 아들이다. 정광선씨와 정인선씨는 사촌 지간이다.

당시 검찰에 따르면 대마파티에 참석한 이들은 세 차례에 걸쳐 각각 대마 1g을 종이에 말아 대마초를 만들어 흡입한 혐의를 받았다.
 


미국의 모 고교 동문 선후배 관계로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이던 이들은 한국에 왔을 때 이태원 클럽 등지서 함께 어울렸던 동년배의 제보로 범행이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당시 20세이던 정인선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씨는 지난 2014년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함께 약물치료 강의 수강 명령을 받았다. 

김씨는 2010∼2012년 주한미군 사병이 군사우편으로 밀반입한 대마초 가운데 일부를 지인에게 건네받아 네 차례 피운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그밖에도 2007년 유흥업소 종업원과 시비를 벌이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뺑소니 사고를 내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현재는 그룹 내 복귀해 경영수업 중이다.

두 명의 공급책 입 열면 ‘일파만파’
과거 연루 사건 재조명 ‘현대 3관왕’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장남이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조카인 고 신동학씨. 그는 1994년 집단폭행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신씨는 당시 지인들과 그랜저를 타고 달리던 중 소형차인 프라이드가 끼어들자 시비가 붙었다. 신씨 일행은 상대 운전자는 물론 동승자까지 무차별 폭행을 가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신씨는 1999년에 선영묘 도굴사건 현장검증 때 용의자들을 폭행해 논란을 일으켰고, 2000년에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후 단속 경찰을 매단 채 질주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역시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 1997년 코카인을 복용하고 대마초를 흡입하다 붙잡혀 마약법 및 대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국내 유명 출판사인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의 아들 우모씨도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피운 혐의로 지난 2013년 적발돼 인천지검으로부터 수사를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검찰 수사 대상에는 이들 외에도 재벌가 자녀와 유학생 등 부유층 자녀 10명 정도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바짝 긴장
“끝나지 않았다”

마약 파문이 일부 3세 등을 넘어 재벌가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재계는 바짝 긴장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재벌 일가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받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언론에 많이 노출되면서 일반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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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