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8)항복

남건의 결심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당나라가 신성을 점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본격적으로 고구려 침공을 개시했다.

당 고종은 이세적을 요동도 행군대총관 겸 안무대사로 삼고 남생을 길잡이로 해서 전군을 출정시켰다. 

소식을 접한 남건은 두방루, 검모잠, 뇌음신 등 장수들과 군사 5만명을 부여성(지린 성 눙안)으로 보내 당나라군의 침입을 저지토록 했다. 

그러나 기세 좋게 달려나갔던 고구려군은 이세적이 이끄는 당군에 패하고 많은 희생자를 내며 대행성(大行城, 압록강 연안)으로 후퇴하였고, 역시 그곳도 함락되자 압록수를 기점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펼쳤다. 

최후의 방어선


그러나 그곳에서도 고구려군이 패하고 이어 욕이성(辱夷城, 평양 서북 영유현)까지 함락되면서 평양성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남건이 급히 동생을 데리고 보장왕을 찾았다.

“전하, 부디 옥체 보전하소서.”

“그게 무슨 말이오?”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하오니 전하께서는 신하들과 당에 항복을 청하십시오.” 

보장왕이 항복을 되뇌며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산이 네가 먼저 당의 장수인 이세적을 만나 항복을 타진하거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님.”

“여러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그러면 형님은?”

“아직도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게냐?”

“그러면 형님은 결국 죽음으로써 끝까지…….”

남건의 제의에 따라 보장왕이 남산과 함께 나이 든 장군 등을 비롯하여 수령 98명으로 하여금 흰 기를 들고 이세적을 찾아 항복을 타진하도록 했다.

이세적이 남건의 예상대로 보장왕의 항복을 흔쾌히 수용하고 예로써 접대하였다. 

또한 성에 잔류하고 있는 병사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자 글필하력 등 수하 장수들에게 뒤를 부탁하고 보장왕과 왕자들, 그리고 대신과 고구려 백성들을 이끌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그를 확인한 남건이 병사들을 소집했다.

“고구려 병사들이여!”

남건의 외침에 병사들이 잠시 머뭇거리다 작은 소리로 답했다.

그 소리를 의식하며 다시 크게 외쳐대자 답하는 소리가 올라갔다.


“나, 고구려의 막리지 남건은 평양성과 함께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병사들 중에서 혹여나 당나라 군사들에게 항복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면 곧바로 성을 나가 당의 진으로 가라.”

잠시 말을 멈춘 남건이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누구 하나 선뜻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귀하들의 목숨은 귀하들이 판단하도록 하라. 나와 함께 평양성과 운명을 같이할 병사들만 남고 여의치 않은 병사들은 지금 당장 성을 나서도록 하라. 잠시 후 평양성의 성문은 굳게 닫힐 것이다.”

“막리지 대감!”

남건이 다시 병사들의 모습을 살피는 중에 성주인 술탈이 앞으로 나섰다.

“말해보시오!”


“저희는 오로지 막리지 대감과, 그리고 평양성과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하옵니다, 막리지 대감.” 

수인 신성과 소장(小將)인 오사와 요묘가 술탈의 뒤를 이었고 이어 모든 병사들이 창과 칼을 들어 올리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고맙다, 고구려 병사들이여.”

말을 마친 남건이 병사들 속으로 들어가 일일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기를 잠시 후 성문을 닫으려는 중에 검모잠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남건이 급하게 검모잠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장군, 살아있었소!”

“면목 없소, 막리지 대감.”

보장왕, 흰 기 들고 당나라에 항복
남건의 결사항전…따르는 고구려군

“두방루 장군과 뇌음신 장군은!”

검모잠이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결국.”

남건이 허탈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검모잠의 어깨를 껴안자 검모잠의 몸이 흔들렸다.

“돌아가신 연개소문 대감께 정말…….”

“장군이라도 살아있어 주어 다행으로 생각하실 게요.”

어렵게 말을 마친 남건이 즉시 수하들로 하여금 검모잠을 치료하라 지시하고 성루로 올라가 삼족오기를 걸고 그곳에 자리 잡았다. 

성루에서 당나라 진영의 움직임을 살피며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며 돌고 있는 중에 저만치에서 신라의 증원군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남건이 신라의 증원군을, 아니 그들의 앞에 펄럭이는 깃발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자세하게 살펴도 김유신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확인하고 김유신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다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군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이미 평양성을 포위한 당나라 군사에 신라군이 합류하자 그 위용이 자못 볼 만했다. 그를 바라보는 고구려 병사들의 얼굴에 수심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막리지 대감, 이 순간을 맞이하니 대감의 아버님이 생각나는군요.”

병사들의 근심을 달래주며 독려하는 남건에게 성주인 술탈이 다가섰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소.”

“그런데 형제분들이나 숙부는 모두 저 살려고 항복했는데 막리지 대감께서는…….”

“비록 한배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 속은 모르는 거 아니겠소.”

남건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만약에 막리지께서도 항복했었더라면 연개소문 대감 명성에 누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나마 막리지 대감의 충성이 있어 다행입니다.”

“아버지를 그리 생각해주시니 진정 고마울 따름입니다.”

“여하튼 대감과 함께 생사를 나눌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남건이 고개를 돌리자 술탈 역시 서둘러 입을 닫았다.

“진정 고마울 뿐이오.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여하튼 성주와 함께하는 나도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되어 병사들을 독려하는 중에 성의 북문 수비 임무를 맡은 신성과 오사, 요묘가 성루에서 세 사람만의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장군, 저들의 세를 보니 이거 정말 죽고 말겠습니다.”

얼굴 전체에 근심이 가득 찬 요묘가 떨리는 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야. 임금도 항복하고 당나라의 주력이 돌아가서 저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할 줄 알고 한번…….”

“저도 그리 생각하고 그저 객기를 부려보았는데 이러다가 정말 개죽음을 당하겠습니다.”

신성이 한숨을 내쉬자 오사 역시 거들고 나섰다.

“장군, 왕도 항복하고 말았는데 우리가 뭐라고. 특히 남건의 경우 저 혼자만 남고 가족들은 전부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뭐라고 개죽음을 맞이해야 합니까?”

살길을 찾아

요묘와 오사가 다시 간절하게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하자 신성이 저만치에 있는 당나라 깃발을 바라보았다.

“장군들의 생각이 그러하니 우리 방법을 모색해보세.”

“어떻게 말입니까?”

신성의 항복을 수용하겠다는 제안에 요묘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곧바로 항복할 수는 없고.”

“왜요, 오늘 해가 지면 어둠을 틈타 곧바로 당나라 진영으로 가면 될 거 아닙니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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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