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농가 지원’ 농림부 혈세 낭비 의혹

에어컨 실외기에 4000억 예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0여년 동안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간 농가 지원사업에 대한 타당성 문제가 불거졌다.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홍보하면서 지원·보급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주무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 최근 신재생에너지가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한 농가에 태양열 발전 설비가 설치돼있다.

조상들은 24절기에 따라 계절을 구분했다. 농경사회서 절기는 농민들에게 일종의 시간표였다. 따뜻한 봄에 씨를 뿌려 뜨거운 여름에 가꾸고, 서늘한 가을에 수확해 추운 겨울에 저장하는 과정은 절기에 맞춰 진행됐다. 가을에 수확한 새 곡식으로 올리는 차례는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해준 조상과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여름·겨울
온도 유지

농민들은 날씨에 따라 울고 웃었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를,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을 걱정했다.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작물이 타 죽지는 않을까, 온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얼어 죽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 날씨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농민에게 숙명이나 다름없다. 특히 여름과 겨울철, 농작물에 맞는 온도 유지는 농민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정부는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농가 지원사업의 방향은 전기와 유류 난방기기 중심서 신재생에너지 설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재활용하거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2010년부터 지열냉난방 시설을, 2012년부터 공기열냉난방 시설을 지원하는 농업 에너지 이용 효율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위탁받아 시행한다.


농림부는 이 사업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의 이용 기술을 농업시설에 적용하고 확대 보급해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친환경 녹색성장을 선도해 온실가스의 절감을 꾀하고 있다. 또 국제유가와 농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농가의 경영비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이용 효율화 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시설과 에너지 절감시설을 설치지원 중이다.

지열냉난방 시설인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도 그 일환이다. 지열냉난방은 지하수나 지열 등 지열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여름에는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냉기를, 겨울에는 온기를 뽑아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지열히트펌프는 땅속의 연중 일정한 온도(1215)를 이용해 난방과 냉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신재생에너지 시설 보급
지열냉난방 설비 활성화

지열히트펌프의 원리는 냉장고와 에어컨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다. 압축, 응축, 팽창, 증발의 단계를 거쳐 열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냉방모드의 경우 실내의 열교환기서 열을 흡수한 뒤 실외의 열교환기인 히트펌프를 이용해 열을 방출한다. 난방모드는 반대 과정을 거친다.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과정서 냉매가 사용된다. 냉매는 시간에 따라 공기 중으로 방출되므로 주기적으로 보충해야 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국내의 지열에너지 개발은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2000년에는 지열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학교나 레저시설, 병원 등에 적용했다. 2004년 공공기관의 건물을 신축할 때 공사비의 일부를 대체에너지 설치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서 지열냉난방 설치가 크게 늘었다.

2008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농촌진흥청, 에너지관리공단은 시설원예 지열난방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지열난방 시스템 교육을 진행했다. 이후 2010년 농림부서 사업을 이어받아 지열히트펌프 보급에 나섰다. 냉난방이 필요한 고정식 시설서 채소·화훼·과수·버섯류를 재배·생산하거나 돼지··오리 가축사육업을 허가 또는 등록한 농가가 대상이다.
 

농림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하 신재생에너지법) 4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의 촉진에 관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정부는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기업체 등의 자발적인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을 장려하고 보호·육성해야 한다를 근거로 지열히트펌프 사업을 추진 중이다.


농가의 자가부담 비율은 20%(융자 10%, 현금 10%)이며, 나머지 80%는 국고서 60%, 지방자치단체서 20%를 지원한다. 설치비는 3.3(1)38~50만원 정도로 3300(1000)에 지열히트펌프를 설치한다면 약 4억원이 든다. 이때 농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8000만원가량이다.

2010년부터
지열냉난방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약 4200억원에 이른다. 농림부 각 연도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20101200억원, 20111004억원, 2012744억원, 2013500억원, 2014361억원, 2015196억원, 2016137억원, 2017113억원이 지열히트펌프 농가 보급에 사용됐다.

지열히트펌프 보급 사업은 올해도 계속된다. 농림부는 지난해 1219일 세종컨벤션 센터서 한국전력공사,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농업분야 에너지 이용 효율화 및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업무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 기관이 시설원예 농가를 대상으로 지열·공기열냉난방 시설 보급 사업을 공동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농림부는 지열·공기열냉난방 시설은 기존 유류난방기 대비 6078%, 전기난방기 대비 5070%까지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욱 농림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이번 협약으로 농가는 경영비의 3040%를 차지하는 난방비 부담을 덜고, 국가 차원에서는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거둬 모두 윈윈하는 협업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농림부서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홍보하면서 보급하고 있는 지열히트펌프가 실제로는 신재생에너지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에 들어간 최소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효용성 없이 낭비됐다는 주장이다. 또 프레온가스를 사용하는 지열냉난방 시설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완화한다는 농림부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친환경?
환경 파괴?

논란은 히트펌프의 정의서 출발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서 히트펌프를 검색하면 냉매가 증발기 내에서 증발하고 주위의 열을 빼앗아 기체가 되며 다시 응축기에 의해 주위에 열을 방출해 액화하는 냉동사이클로서, 방출된 열을 난방이나 가열에 이용하는 경우의 냉동기를 말한다. 열을 저온부서 고온부로 빨아올린다는 의미서 열펌프(heat pump)라고 한다. 열원은 공기, 우물물, 태양열, 지열 등이 이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법 시행규칙 2(신재생에너지 설비)에서는 여러 신재생에너지의 설비와 부대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중 지열에너지 설비는 , 지하수 및 지하의 열 등의 온도차를 변환시켜 에너지를 생산하는 설비라고 정의했다.
 

▲ 신재생에너지 중 하나로 꼽히는 풍력발전

여기서 온도차를 변환시켜라는 부분이 문제로 떠올랐다. 히트펌프는 열을 교환하는 열교환기의 역할을 할 뿐 온도차를 만드는 온도차변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는 A씨는 히트펌프는 에어컨 실외기와 작동원리가 비슷하다 에어컨 실외기가 흡수한 뜨거운 열을 배출하는 기능을 하듯 히트펌프는 열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열을 생산해내는 설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씨는 2010년 농림부서 지열히트펌프 보급을 본격화하기 전 농촌진흥청서 발행한 교육 교재를 근거로 들었다. ‘시설원예 지열난방 보급사업 지열난방 시스템 교육교재에는 지열히트펌프를 이용한 시설원예 냉난방 기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교재에는 히트펌프에 대해 열을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라고 쓰여 있다. 히트펌프도 에어컨과 동일하게 사이클 내 냉매가 들어있으며, 냉매가 압축, 응축, 팽창, 증발 과정을 거치면서 열원으로부터 열을 흡수 또는 방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2008년 교육했는데
2015년 관련 토론회?

A씨는 교육 과정서 히트펌프가 온도변환과 관련된 역할을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국회서 진행된 토론회도 언급했다. 201556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강후 전 의원(당시 새누리당)히트펌프, 신재생에너지원 지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토론회서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절약 수단으로 히트펌프가 주목받고 있다우리나라가 히트펌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히트펌프에 대한 올바른 인식확산과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A씨는 국회의원, 대학 교수,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 민간사업체 관계자가 토론회에 참석했다당시 토론회서조차 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원인지, 신재생에너지 설비인지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농림부의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은 2010년부터 시행됐지만 2015년에도 히트펌프와 신재생에너지 간의 상관관계가 불분명했다는 주장이다.
 

A씨는 청와대, 농림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기획재정부, 감사원, 국민신문고 등에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과 관련해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매번 답변을 준 것은 농림부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농림부는 A씨가 문제 삼은 변환에 대해 변환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 가능한 에너지로 바꾼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법률전문가의 의견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난방시스템의 효율은 대기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난방시스템보다 높은 것이 학술적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열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 설비며 그 효율이 우수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지열냉난방 시설에 대한 지원을 예산낭비로 보기는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낭비 아니다
효율도 높다”

농림부 원예경영과 관계자는 산자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 내에 신재생에너지 센터라는 별도의 조직이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설비 KS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신재생에너지 설비 KS인증을 받은 제품에 한해 지열냉난방 시설 지열히트펌프를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한 교재에 대해서는 농림부가 이 사업을 산자부(당시 지식경제부)로부터 받은 게 2010이라며 교재 내용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지열냉난방 안전성은?

20171115일 경북 포항서 발생한 5.4 규모의 지진은 인근에 지어진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가 나왔다. 당시 포항지진은 대입 수능시험을 1주일 미룰 정도로 전국적 여파가 컸다.

정부조사단의 발표 이후 지열발전 관련 사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열냉난방 시설은 지진에 대한 위험보다 환경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진은 지난 2012지열에너지의 환경성 평가 및 환경친화적 이용방안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지열히트펌프 이용에 따라 천공과정과 지열공의 부실관리에 따른 오염물질 유입, 재주입 지하수에 의한 수질오염, 지반침하, 소음·진동 발생 등의 환경적 영향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토양과 지하수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오염이 누적되고, 일단 오염이 되면 장기간 지속될 수 있고 복원이 어려운 만큼 설치에서부터 폐쇄 이후까지 환경 관리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