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농가 지원’ 농림부 혈세 낭비 의혹

에어컨 실외기에 4000억 예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0여년 동안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간 농가 지원사업에 대한 타당성 문제가 불거졌다.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홍보하면서 지원·보급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주무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 최근 신재생에너지가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한 농가에 태양열 발전 설비가 설치돼있다.

조상들은 24절기에 따라 계절을 구분했다. 농경사회서 절기는 농민들에게 일종의 시간표였다. 따뜻한 봄에 씨를 뿌려 뜨거운 여름에 가꾸고, 서늘한 가을에 수확해 추운 겨울에 저장하는 과정은 절기에 맞춰 진행됐다. 가을에 수확한 새 곡식으로 올리는 차례는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해준 조상과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여름·겨울
온도 유지

농민들은 날씨에 따라 울고 웃었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를,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을 걱정했다.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작물이 타 죽지는 않을까, 온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얼어 죽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 날씨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농민에게 숙명이나 다름없다. 특히 여름과 겨울철, 농작물에 맞는 온도 유지는 농민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정부는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농가 지원사업의 방향은 전기와 유류 난방기기 중심서 신재생에너지 설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재활용하거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2010년부터 지열냉난방 시설을, 2012년부터 공기열냉난방 시설을 지원하는 농업 에너지 이용 효율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위탁받아 시행한다.


농림부는 이 사업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의 이용 기술을 농업시설에 적용하고 확대 보급해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친환경 녹색성장을 선도해 온실가스의 절감을 꾀하고 있다. 또 국제유가와 농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농가의 경영비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이용 효율화 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시설과 에너지 절감시설을 설치지원 중이다.

지열냉난방 시설인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도 그 일환이다. 지열냉난방은 지하수나 지열 등 지열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여름에는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냉기를, 겨울에는 온기를 뽑아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지열히트펌프는 땅속의 연중 일정한 온도(1215)를 이용해 난방과 냉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신재생에너지 시설 보급
지열냉난방 설비 활성화

지열히트펌프의 원리는 냉장고와 에어컨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다. 압축, 응축, 팽창, 증발의 단계를 거쳐 열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냉방모드의 경우 실내의 열교환기서 열을 흡수한 뒤 실외의 열교환기인 히트펌프를 이용해 열을 방출한다. 난방모드는 반대 과정을 거친다.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과정서 냉매가 사용된다. 냉매는 시간에 따라 공기 중으로 방출되므로 주기적으로 보충해야 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국내의 지열에너지 개발은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2000년에는 지열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학교나 레저시설, 병원 등에 적용했다. 2004년 공공기관의 건물을 신축할 때 공사비의 일부를 대체에너지 설치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서 지열냉난방 설치가 크게 늘었다.

2008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농촌진흥청, 에너지관리공단은 시설원예 지열난방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지열난방 시스템 교육을 진행했다. 이후 2010년 농림부서 사업을 이어받아 지열히트펌프 보급에 나섰다. 냉난방이 필요한 고정식 시설서 채소·화훼·과수·버섯류를 재배·생산하거나 돼지··오리 가축사육업을 허가 또는 등록한 농가가 대상이다.
 

농림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하 신재생에너지법) 4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의 촉진에 관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정부는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기업체 등의 자발적인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을 장려하고 보호·육성해야 한다를 근거로 지열히트펌프 사업을 추진 중이다.


농가의 자가부담 비율은 20%(융자 10%, 현금 10%)이며, 나머지 80%는 국고서 60%, 지방자치단체서 20%를 지원한다. 설치비는 3.3(1)38~50만원 정도로 3300(1000)에 지열히트펌프를 설치한다면 약 4억원이 든다. 이때 농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8000만원가량이다.

2010년부터
지열냉난방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약 4200억원에 이른다. 농림부 각 연도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20101200억원, 20111004억원, 2012744억원, 2013500억원, 2014361억원, 2015196억원, 2016137억원, 2017113억원이 지열히트펌프 농가 보급에 사용됐다.

지열히트펌프 보급 사업은 올해도 계속된다. 농림부는 지난해 1219일 세종컨벤션 센터서 한국전력공사,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농업분야 에너지 이용 효율화 및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업무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 기관이 시설원예 농가를 대상으로 지열·공기열냉난방 시설 보급 사업을 공동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농림부는 지열·공기열냉난방 시설은 기존 유류난방기 대비 6078%, 전기난방기 대비 5070%까지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욱 농림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이번 협약으로 농가는 경영비의 3040%를 차지하는 난방비 부담을 덜고, 국가 차원에서는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거둬 모두 윈윈하는 협업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농림부서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홍보하면서 보급하고 있는 지열히트펌프가 실제로는 신재생에너지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에 들어간 최소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효용성 없이 낭비됐다는 주장이다. 또 프레온가스를 사용하는 지열냉난방 시설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완화한다는 농림부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친환경?
환경 파괴?

논란은 히트펌프의 정의서 출발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서 히트펌프를 검색하면 냉매가 증발기 내에서 증발하고 주위의 열을 빼앗아 기체가 되며 다시 응축기에 의해 주위에 열을 방출해 액화하는 냉동사이클로서, 방출된 열을 난방이나 가열에 이용하는 경우의 냉동기를 말한다. 열을 저온부서 고온부로 빨아올린다는 의미서 열펌프(heat pump)라고 한다. 열원은 공기, 우물물, 태양열, 지열 등이 이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법 시행규칙 2(신재생에너지 설비)에서는 여러 신재생에너지의 설비와 부대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중 지열에너지 설비는 , 지하수 및 지하의 열 등의 온도차를 변환시켜 에너지를 생산하는 설비라고 정의했다.
 

▲ 신재생에너지 중 하나로 꼽히는 풍력발전

여기서 온도차를 변환시켜라는 부분이 문제로 떠올랐다. 히트펌프는 열을 교환하는 열교환기의 역할을 할 뿐 온도차를 만드는 온도차변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는 A씨는 히트펌프는 에어컨 실외기와 작동원리가 비슷하다 에어컨 실외기가 흡수한 뜨거운 열을 배출하는 기능을 하듯 히트펌프는 열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열을 생산해내는 설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씨는 2010년 농림부서 지열히트펌프 보급을 본격화하기 전 농촌진흥청서 발행한 교육 교재를 근거로 들었다. ‘시설원예 지열난방 보급사업 지열난방 시스템 교육교재에는 지열히트펌프를 이용한 시설원예 냉난방 기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교재에는 히트펌프에 대해 열을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라고 쓰여 있다. 히트펌프도 에어컨과 동일하게 사이클 내 냉매가 들어있으며, 냉매가 압축, 응축, 팽창, 증발 과정을 거치면서 열원으로부터 열을 흡수 또는 방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2008년 교육했는데
2015년 관련 토론회?

A씨는 교육 과정서 히트펌프가 온도변환과 관련된 역할을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국회서 진행된 토론회도 언급했다. 201556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강후 전 의원(당시 새누리당)히트펌프, 신재생에너지원 지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토론회서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절약 수단으로 히트펌프가 주목받고 있다우리나라가 히트펌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히트펌프에 대한 올바른 인식확산과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A씨는 국회의원, 대학 교수,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 민간사업체 관계자가 토론회에 참석했다당시 토론회서조차 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원인지, 신재생에너지 설비인지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농림부의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은 2010년부터 시행됐지만 2015년에도 히트펌프와 신재생에너지 간의 상관관계가 불분명했다는 주장이다.
 

A씨는 청와대, 농림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기획재정부, 감사원, 국민신문고 등에 지열히트펌프 지원사업과 관련해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매번 답변을 준 것은 농림부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농림부는 A씨가 문제 삼은 변환에 대해 변환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 가능한 에너지로 바꾼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법률전문가의 의견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난방시스템의 효율은 대기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난방시스템보다 높은 것이 학술적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열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 설비며 그 효율이 우수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지열냉난방 시설에 대한 지원을 예산낭비로 보기는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낭비 아니다
효율도 높다”

농림부 원예경영과 관계자는 산자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 내에 신재생에너지 센터라는 별도의 조직이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설비 KS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신재생에너지 설비 KS인증을 받은 제품에 한해 지열냉난방 시설 지열히트펌프를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한 교재에 대해서는 농림부가 이 사업을 산자부(당시 지식경제부)로부터 받은 게 2010이라며 교재 내용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지열냉난방 안전성은?

20171115일 경북 포항서 발생한 5.4 규모의 지진은 인근에 지어진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가 나왔다. 당시 포항지진은 대입 수능시험을 1주일 미룰 정도로 전국적 여파가 컸다.

정부조사단의 발표 이후 지열발전 관련 사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열냉난방 시설은 지진에 대한 위험보다 환경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진은 지난 2012지열에너지의 환경성 평가 및 환경친화적 이용방안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지열히트펌프 이용에 따라 천공과정과 지열공의 부실관리에 따른 오염물질 유입, 재주입 지하수에 의한 수질오염, 지반침하, 소음·진동 발생 등의 환경적 영향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토양과 지하수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오염이 누적되고, 일단 오염이 되면 장기간 지속될 수 있고 복원이 어려운 만큼 설치에서부터 폐쇄 이후까지 환경 관리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