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추락한 항공재벌 조양호·박삼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4.01 09:47:51
  • 호수 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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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고, 밀려나고…땅을 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항공재벌 대한항공과 금호아시아나의 총수들이 경영 일선서 전격 물러났다. 한 명은 경영권이 박탈됐고, 한 명은 자진사퇴했다. 국내 항공업계의 양대 축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대표이사직서 내려오게 됐다. 국내서 최초로 주주권 행사에 따라 오너 총수가 물러났으며, 오너리스크에 따른 경영권 약화가 현실화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파란의 주총
결국 물러나

대한항공은 지난 27일 오전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이 중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은 표 대결서 찬성 64.1%로 참석 주주 3분의 2(66.6%)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결국 부결됐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4월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 20년 만에 대표직서 물러나게 됐다.

앞서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조 회장의 연임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대한항공의 지분을 11.56%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33.35%)에 이은 2대 주주다. 예상대로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고 뜻을 이뤘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는 전날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수탁위는 조 회장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업가치의 훼손과 주주권의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조 회장은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내 면세품에 대한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수탁위에서는 조 회장의 부인과 세 자녀에 대해서도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내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등이 이미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를 권고했고, 국민연금도 이 같은 기류에 동참했다.

결국 참석 주주들의 의향도 조 회장의 연임 반대로 기울면서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에 대한 오너일가의 지배력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사내이사로 남아 있지만, 대한항공에 대한 오너 일가의 영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한진(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 주요 외신도 주목했다. 재벌 중심의 한국 재계에 경종을 가하는 이정표적인 사건이라는 점은 물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보도 의미 있는 대목으로 꼽았다. 국민연금은 뉴욕 월스트리트서도 큰손으로 꼽힌다.

경영권 박탈, 자진 사퇴…2세 시대 저물어
날개 꺾인 대한·아시아나항공 ‘어디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7일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문화서 이정표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이어 재벌 총수 일가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으로 기업 경영에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해왔다고 덧붙였다. ‘행동주의 투자’의 승리라는 의미에도 초점을 맞췄다. 


대한항공은 지난 20년 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조 회장은 1999년 부친 고 조중훈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물려받은 뒤 줄곧 경영 일선에 있었다. 

그동안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한항공 이사회가 경영진 감시·견제라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이전보다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할 권한과 실력을 갖추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8일 인천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경복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진정보통신의 사장을 거쳐 1992년 대한항공 사장이 됐다. 1996년에는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에는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거쳐 2003년에는 한진그룹 2대 회장을 지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조 회장의 작은아버지,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지낸 이태희 대한항공 법률고문이 자형이다.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동생이다. 동생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은 지병으로 고인이 됐다.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제수다. 

조 회장은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의 이사에 올라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장녀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장남,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 차녀다.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남편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성형외과 전문의 박종주씨로 현재는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원태 사장은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녀인 김미연씨와 결혼했다.

복귀는 언제?
다음 카드는?

현재 조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갑질 횡포와 비리 의혹으로 사정당국의 전면적 압박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5월14일 해외 재산 은닉과 세금 포탈 등을 뿌리 뽑기 위해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해외범죄수익환수 합동조사단을 설치해 추적 조사와 처벌, 수익 환수까지 공조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재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한진그룹 오너 일가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돌았다. 검찰은 2018년 5월10일경부터 조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 배임·횡령 혐의와 상속세 500억원 포탈 혐의 등을 놓고 수사에 들어갔다. 조 회장은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걷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13년부터 2018년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기내 면세품을 사들이며 ‘트리온무역’ 등의 명의로 196억원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챙겨 대한항공에 손해를 끼쳤다. 

검찰조사에서 드러난 조 회장의 횡령과 배임 혐의 규모는 모두 270억원가량이다. 2010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인천 중구 인하대학교 병원 근처서 고용 약사 명의로 약국을 운영하고,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와 의료급여를 부정 수급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조 회장은 약사 면허가 없기 때문에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조 회장 일가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2014년 12월에는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한항공 KE086편을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게이트로 되돌리는 일)하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여객기서 내리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조 회장이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5년 5월 항소심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에는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일었다. 조 전 전무가 던졌다는 물컵은 검찰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내외에 쌓여 있던 한진 오너 일가에 분노가 폭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조 회장 부인 이명희 이사장도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 갑질 횡포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두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지난해 7월10일 이 이사장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조 회장은 2016년 11월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압박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서 물러났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조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2016년 5월 조직위원장서 물러나던 시기에 일어난 각종 상황의 사실관계를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리스크
예견된 결과

조 회장은 그해 5월 위원장 자리서 돌연 물러나며 한진해운의 정상화에 힘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조 회장이 2년 넘게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을 쏟아왔던 만큼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최씨와 연관된 평창동계올림픽 관련한 각종 이권사업을 거부해 위원장 자리서 밀려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조 회장에 이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그룹 경영서 완전히 손을 뗀다. 전격적인 용퇴다. 지난 28일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감사보고서 문제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책임을 지고 퇴진을 결정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이 현 사태에 책임을 지고 그룹 경영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박 회장이 대주주로서 그동안 야기됐던 혼란에 대해 평소의 지론과 같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차원서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물론, 대주주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그룹은 일단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비상 경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비상위에는 각 계열사 사장단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그룹의 비상 경영을 이끌게 된 이원태 부회장은 지난 1972년 금호그룹에 입사해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거쳤다. 특히 1993년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북경 대표처서 근무하며 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끈 ‘중국통’으로 알려졌다. 

그룹은 빠른 시일 내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회장 후보군에 대한 윤곽은 공식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외부 인사를 영입한다는 점에서 전문경영인을 검토할 것이란 관측이 이어진다. 

박 회장은 이번 결정에 따라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조 회장과 마찬가지로 항공 계열사의 경영 일선서 물러나게 됐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직 상실은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이뤄졌지만, 박 회장은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주총을 앞두고 이 같은 결심을 내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그에 따른 주주들과 여론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자진 퇴진이라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오너 비리·갑질 주주들 제동
남아있는 두 아들 역할에 주목

지난 25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감사 의견 한정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회사와 대주주가 보다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성의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점도 박 회장의 자진 퇴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최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오너 박 회장이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에 대한 여론 악화 등과 같은 재계의 상황도 박 회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박 회장도 지난해 이른바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논란’에 휘말리며 비난을 받았다. 

한편 그룹에 따르면 박 회장은 사퇴 발표 전날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금융시장 조기 신뢰 회복을 위해 협조를 요청했다. 박 회장은 그룹 회장서 물러나기 전 이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진정성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1945년 3월19일 광주서 태어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한국합성고무 창업회장인 박인천 명예회장과 한국부인회 광주전남지부 이사장인 이순정씨의 5남3녀 가운데 삼남이다. 위로 두 명의 형과 두 명의 누나가 있다. 박성용 2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경애씨, 박정구 3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이 그들이다.

아래로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가 있는데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현주 대상홀딩스 부회장,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다. 배영환 삼화고속 회장이 자형,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매제다.

박 회장은 이정환 전 재무부장관의 차녀 이경렬씨와 결혼했으며, 자녀로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 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이정환 전 장관은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며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광주제일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고려대학교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을 졸업했다.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전무이사, 부사장을 거쳐 금호실업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위기냐
기회냐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지냈다. 대우건설 등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바람에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그룹 경영에 시련을 겪었다.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에게 배임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다.

금호산업을 되찾는 데 성공하고 박 회장도 소송을 취하하는 등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완전한 재건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금호타이어 인수서 자금력 부족으로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내식 대란과 성추행 의혹 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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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