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추락한 항공재벌 조양호·박삼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4.01 09:47:51
  • 호수 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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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고, 밀려나고…땅을 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항공재벌 대한항공과 금호아시아나의 총수들이 경영 일선서 전격 물러났다. 한 명은 경영권이 박탈됐고, 한 명은 자진사퇴했다. 국내 항공업계의 양대 축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대표이사직서 내려오게 됐다. 국내서 최초로 주주권 행사에 따라 오너 총수가 물러났으며, 오너리스크에 따른 경영권 약화가 현실화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파란의 주총
결국 물러나

대한항공은 지난 27일 오전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이 중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은 표 대결서 찬성 64.1%로 참석 주주 3분의 2(66.6%)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결국 부결됐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4월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 20년 만에 대표직서 물러나게 됐다.

앞서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조 회장의 연임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대한항공의 지분을 11.56%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33.35%)에 이은 2대 주주다. 예상대로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고 뜻을 이뤘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는 전날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수탁위는 조 회장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업가치의 훼손과 주주권의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조 회장은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내 면세품에 대한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수탁위에서는 조 회장의 부인과 세 자녀에 대해서도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내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등이 이미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를 권고했고, 국민연금도 이 같은 기류에 동참했다.

결국 참석 주주들의 의향도 조 회장의 연임 반대로 기울면서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에 대한 오너일가의 지배력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사내이사로 남아 있지만, 대한항공에 대한 오너 일가의 영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한진(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 주요 외신도 주목했다. 재벌 중심의 한국 재계에 경종을 가하는 이정표적인 사건이라는 점은 물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보도 의미 있는 대목으로 꼽았다. 국민연금은 뉴욕 월스트리트서도 큰손으로 꼽힌다.

경영권 박탈, 자진 사퇴…2세 시대 저물어
날개 꺾인 대한·아시아나항공 ‘어디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7일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문화서 이정표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이어 재벌 총수 일가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으로 기업 경영에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해왔다고 덧붙였다. ‘행동주의 투자’의 승리라는 의미에도 초점을 맞췄다. 


대한항공은 지난 20년 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조 회장은 1999년 부친 고 조중훈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물려받은 뒤 줄곧 경영 일선에 있었다. 

그동안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한항공 이사회가 경영진 감시·견제라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이전보다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할 권한과 실력을 갖추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8일 인천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경복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진정보통신의 사장을 거쳐 1992년 대한항공 사장이 됐다. 1996년에는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에는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거쳐 2003년에는 한진그룹 2대 회장을 지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조 회장의 작은아버지,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지낸 이태희 대한항공 법률고문이 자형이다.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동생이다. 동생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은 지병으로 고인이 됐다.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제수다. 

조 회장은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의 이사에 올라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장녀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장남,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 차녀다.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남편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성형외과 전문의 박종주씨로 현재는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원태 사장은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녀인 김미연씨와 결혼했다.

복귀는 언제?
다음 카드는?

현재 조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갑질 횡포와 비리 의혹으로 사정당국의 전면적 압박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5월14일 해외 재산 은닉과 세금 포탈 등을 뿌리 뽑기 위해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해외범죄수익환수 합동조사단을 설치해 추적 조사와 처벌, 수익 환수까지 공조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재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한진그룹 오너 일가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돌았다. 검찰은 2018년 5월10일경부터 조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 배임·횡령 혐의와 상속세 500억원 포탈 혐의 등을 놓고 수사에 들어갔다. 조 회장은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걷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13년부터 2018년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기내 면세품을 사들이며 ‘트리온무역’ 등의 명의로 196억원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챙겨 대한항공에 손해를 끼쳤다. 

검찰조사에서 드러난 조 회장의 횡령과 배임 혐의 규모는 모두 270억원가량이다. 2010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인천 중구 인하대학교 병원 근처서 고용 약사 명의로 약국을 운영하고,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와 의료급여를 부정 수급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조 회장은 약사 면허가 없기 때문에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조 회장 일가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2014년 12월에는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한항공 KE086편을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게이트로 되돌리는 일)하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여객기서 내리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조 회장이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5년 5월 항소심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에는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일었다. 조 전 전무가 던졌다는 물컵은 검찰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내외에 쌓여 있던 한진 오너 일가에 분노가 폭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조 회장 부인 이명희 이사장도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 갑질 횡포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두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지난해 7월10일 이 이사장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조 회장은 2016년 11월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압박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서 물러났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조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2016년 5월 조직위원장서 물러나던 시기에 일어난 각종 상황의 사실관계를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리스크
예견된 결과

조 회장은 그해 5월 위원장 자리서 돌연 물러나며 한진해운의 정상화에 힘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조 회장이 2년 넘게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을 쏟아왔던 만큼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최씨와 연관된 평창동계올림픽 관련한 각종 이권사업을 거부해 위원장 자리서 밀려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조 회장에 이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그룹 경영서 완전히 손을 뗀다. 전격적인 용퇴다. 지난 28일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감사보고서 문제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책임을 지고 퇴진을 결정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이 현 사태에 책임을 지고 그룹 경영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박 회장이 대주주로서 그동안 야기됐던 혼란에 대해 평소의 지론과 같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차원서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물론, 대주주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그룹은 일단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비상 경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비상위에는 각 계열사 사장단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그룹의 비상 경영을 이끌게 된 이원태 부회장은 지난 1972년 금호그룹에 입사해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거쳤다. 특히 1993년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북경 대표처서 근무하며 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끈 ‘중국통’으로 알려졌다. 

그룹은 빠른 시일 내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회장 후보군에 대한 윤곽은 공식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외부 인사를 영입한다는 점에서 전문경영인을 검토할 것이란 관측이 이어진다. 

박 회장은 이번 결정에 따라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조 회장과 마찬가지로 항공 계열사의 경영 일선서 물러나게 됐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직 상실은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이뤄졌지만, 박 회장은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주총을 앞두고 이 같은 결심을 내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그에 따른 주주들과 여론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자진 퇴진이라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오너 비리·갑질 주주들 제동
남아있는 두 아들 역할에 주목

지난 25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감사 의견 한정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회사와 대주주가 보다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성의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점도 박 회장의 자진 퇴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최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오너 박 회장이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에 대한 여론 악화 등과 같은 재계의 상황도 박 회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박 회장도 지난해 이른바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논란’에 휘말리며 비난을 받았다. 

한편 그룹에 따르면 박 회장은 사퇴 발표 전날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금융시장 조기 신뢰 회복을 위해 협조를 요청했다. 박 회장은 그룹 회장서 물러나기 전 이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진정성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1945년 3월19일 광주서 태어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한국합성고무 창업회장인 박인천 명예회장과 한국부인회 광주전남지부 이사장인 이순정씨의 5남3녀 가운데 삼남이다. 위로 두 명의 형과 두 명의 누나가 있다. 박성용 2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경애씨, 박정구 3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이 그들이다.

아래로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가 있는데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현주 대상홀딩스 부회장,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다. 배영환 삼화고속 회장이 자형,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매제다.

박 회장은 이정환 전 재무부장관의 차녀 이경렬씨와 결혼했으며, 자녀로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 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이정환 전 장관은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며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광주제일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고려대학교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을 졸업했다.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전무이사, 부사장을 거쳐 금호실업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위기냐
기회냐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지냈다. 대우건설 등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바람에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그룹 경영에 시련을 겪었다.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에게 배임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다.

금호산업을 되찾는 데 성공하고 박 회장도 소송을 취하하는 등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완전한 재건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금호타이어 인수서 자금력 부족으로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내식 대란과 성추행 의혹 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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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