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부 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3.11 09:42:06
  • 호수 1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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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김신혜씨의 재심이 열렸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19년 동안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그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을까. 
 

▲ 김신혜씨

지난 6일 오후 3시55분 무기수 김신혜씨가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를 타고 광주지법 해남지원에 들어섰다. 김씨는 베이지색 코트 차림에 2개의 서류봉투를 가슴에 안고 차에서 내렸다. 19년 만에 하이힐을 신은 탓인지 호송차량서 내리면서 발을 삐끗하기도 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용자는 원하면 사복을 입고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반인권적 수사
법원 결정 영향

김씨에 대한 재심은 2000년 3월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지 19년 만, 2015년 1월 청구한 재심이 확정된 지난해 9월 말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한 김씨는 이제 40대가 됐다. 취재진이 ‘한마디만 해달라’고 요구하자 “네, 이기겠습니다”라는 짧은 심경을 전했다. 그동안 김씨가 느낀 고통과 분노, 억울함과 절망이 이 한마디에 함축돼있었다. 그는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이날 해남지원 제1호 법정서 형사합의 1부 심리는 비공개로 50여분간 진행됐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 절차에 앞서 주요 쟁점과 입증 계획 등을 정리하는 절차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첫 준비기일을 마친 김씨는 재판서 진실을 꼭 밝히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김씨는 부당한 수사로 수집된 증거를 재판에 사용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모두 배척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또 방어권 보장을 위해 석방 상태서 재심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김씨 측은 아버지의 수면제 30알 복용 과정과 정확한 사인 등을 놓고 다퉈야 할 쟁점이 있다는 입장이다. 영장 범죄사실 기록에는 수면제를 갈아서 먹였다고 적시됐으나 검찰 기소 단계에서는 알약 30알을 먹였다고 바뀐 점에 주목했다.

수사기관 감정 결과 알약을 갈았다는 그릇과 그 그릇을 닦았다는 행주서 약물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점, 술 취한 사람이 알약 30알을 한 번에 털어 넣는 것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재심 결정 4년 만에 법정에
19년 동안 무죄 주장 받아져 

김씨는 2000년 3월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2001년 3월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거짓 자백을 했다며 2015년 1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한 점, 압수수색에 참여하지 않은 경찰관이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점, 김씨의 거부에도 영장 없이 현장검증을 한 점을 강압수사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열심히 해서 재심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재심을 준비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억울한 옥살이가 계속되지 않도록 열심히 싸워서 꼭 이기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변호인인 김학자 변호사는 “재판부가 재심 결정을 하면서 형 집행정지를 하지 않아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공판 과정서 다시 형 집행정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염된 증거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기 때문에 수사기관 측 증거는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25일 오후 2시 한 차례 더 비공개로 공판준비기일을 갖고 쟁점을 정리하기로 했다.

'김신혜 사건'은 지난 2000년 3월7일 오전 5시50분쯤 전남 완도군 정도리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은 전남 완도의 바닷가 작은 시골마을을 발칵 뒤집었다. 죽은 남성이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나 시신에는 아무런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약물에 의한 사망’이었다.

시신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과 알코올이 검출됐다. 이틀 후 범인이 검거됐는데 놀랍게도 사망한 남성의 친딸 김씨였다. 그는 수면제 30알을 양주에 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아빠 죽은 그날
존속살해로 체포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가 성추행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하기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씨의 이복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자신이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한 기억을 떠올리고 살인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살해 목적은 사망 보험금. 김씨가 사망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살해계획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도 발견됐다. 증거도 증언도 확실했다.

하지만 김씨는 현장검증을 앞두고 “절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돌연 범행을 부인했다. 무엇보다도 성추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의 무죄보다 아버지의 불명예를 벗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수사 과정서 “폭행, 폭언 등 자백을 강요하는 강압수사를 받았다” “사건 당시 범행을 자백했지만,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가 교도소의 모든 출역을 거부한 채 무죄를 호소한 사실은 <오마이뉴스>의 10만인리포트, 다음카카오 뉴스펀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로 당시 수사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경찰은 김씨가 자신의 고모부에게 자백했다는 사실을 범인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정작 김씨 본인은 자신은 고모부에게 자백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3월8일 밤 11시20분경 고모부가 자신을 불러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데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남동생이 큰일난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찰서로 갔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목적으로 보험금을 들었지만 그 8개의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였다. 범행 도구인 수면유도제와 양주 등의 물증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가 수면제를 갈 때 사용했다고 진술한 행주와 밥그릇서도 수면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시신서 독실아민 13.02㎍/ml이 검출됐다.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에 의하면 이 정도 양이 검출되려면 경찰이 발표한 30알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3배에 달하는 100알 정도를 먹어야 나오는 수치라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는 데 경찰 측의 강압수사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수면유도제나 양주 같은 결정적 물증도 없었을 뿐더러 수사 과정 중 김씨는 경찰로부터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누드사진을 퍼트리겠다는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증거
“인정 못해”

경찰은 영장도 없이 그의 집을 수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인 1조의 규칙도 어겼다. 하지만 정당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며 문서를 조작했다. 문제가 된 살해계획서는 김씨가 연극배우를 하며 써놓은 극 시나리오로 밝혀졌다. ‘완전’ 일치한다던 살해계획서는 어느샌가 ‘근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2014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김씨를 만나 들은 바에 의하면, 경찰이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과 수사과정서 억지로 현장검증을 시켜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도 드러났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이 종이 한 장을 자신 앞에 내놓더니 지장을 찍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를 치고 뺨을 막 때리면서 빨리 찍으라고 독촉했다. 당황한 김씨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경찰이 억지로 자신의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게 했다는 것이다. 서명을 하라고 닦달하는 과정서도 김씨의 머리와 뺨을 때렸다.

만약 김씨의 말이 사실일 경우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인정해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각각 기각되면서 2001년 3월23일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계속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교도소 내 기결수들이 하는 노역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서 “나는 죄가 없는데 나라서 시키는 노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 내에서는 그를 ‘독한년’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한국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살인사건의 재심은 가당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1월,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대한변호사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신혜 사건’에 대한 15년 전 재판기록과 증거 등을 검토한 결과,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경찰의 수사 위법성 인정 
사상 첫 무기수 재심 시작 

사건 당시 수사 경찰이 영장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과 수사과정에서 억지로 현장검증을 시켜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도 드러났다. 이에 대한변협은 김씨에 대한 재심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대한변협은 형사재판 과정서 제출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에 문제가 있고,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자백 진술 이외에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공소사실에 의문을 갖게 하는 증거가 존재함에도 이는 재판 과정서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서 피고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판결이 과연 실체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왜 피고인은 14년 넘게 홀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밝히겠다는 것이다.

김신혜 사건은 2001년 6월1일 SBS 시사프로그램 <뉴스추적>, 2003년10월21일 MBC <PD수첩>, <신동아> 2003년10월호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었다. 하지만 언론보도 이후에도 법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진 바 없이 십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에 대한변협은 법률적 지원의 필요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재판기록은 중요사건으로 분류됐고, 약품 처리되어 영구보존 중이다. 대한변협은 재판기록, 재판 이후 발견된 증거들, 재판 이후 보다 인권적으로 바뀐 적법절차와 관련된 판례 등을 검토했다. 

그 결과 15년 전 수사경찰의 반인권적인 수사가 형법상 직무상 범죄에 해당하고, 당시 재판 과정서 채택된 증거들이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 증거로 쓰여질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재심 청구를 한다고 전했다. 

지금의 교도소는 개인이 필요한 만큼 노트를 소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노트를 한 권밖에 소지할 수 없었고, 새 노트를 받으려면 다 쓴 노트를 가위로 잘라버리거나 찢어버리는 등 폐기처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김씨는 본인이 당했던 억울한 수사 및 재판을 속옷이나 양말 바닥 등에 기록해가며 쉼 없이 세상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꼭 이기겠다”
대장정 돌입

그리고 2015년 11월18일, 마침내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로 재심이 결정됐다. 국내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에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2017년 2월11일 광주고법서 항고를 기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3일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최종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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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