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대담>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시대 변했어도…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3·1운동 100주년 행사가 전국서 열렸다. 3·1운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독립 의지에 불을 붙인 민중저항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친일 청산과 독립운동가 예우를 출범 초기부터 강조한 문재인정부의 기조에 따라 3·1운동은 또 한 번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을 만나 그 의의에 대해 들어봤다.
 

▲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서 현장 국무회의를 개최했다.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공공청사가 아닌 곳에서 국무회의를 연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부 최고 심의·의결기관인 국무회의를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투사들의 높은 이상과 불굴의 의지가 서린 뜻깊은 장소서 하게 되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의미 
대대적인 행사

특히 독립운동 역사와 관련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뿌리라며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유공자 서훈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는 3·1독립운동의 상징이라며 유관순 열사가 3·1독립운동의 표상으로 국민들 속에 각인돼있다는 사실만으로 1등급 서훈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일요시사>는 백범기념관서 국무회의가 열린 지난달 26일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 소장의 부친은 1948년 남북회담 당시 인천지역 민족진영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하상령 선생이다.

201612월 향년 100세의 나이로 작고한 하상령 선생은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과 조소앙(조용은) 선생 등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 두 인물과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

건국운동가 하상령 선생 장남
인천 지역에서 사회활동 매진

1917년 인천 동구 화평동서 태어난 하상령 선생은 인천공립보통학교(창여초등학교)와 인천상업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챙겨야 했던 하상령 선생이 선택한 사업은 서점.

하상령 선생은 위문당이라는 서점을 냈다. 당시 이름은 하연숙으로, 남자아이에게 여자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집안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상령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상령 선생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인천지회 선전부장을 맡으면서 사회운동에 첫발을 내딛었다. 대한건국 인천청년회를 조직했고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 조소앙 선생 등이 건국요원 양성을 위해 학교 형식으로 조직한 건국실천원양성소 1기 학생회장과 동창회장도 맡았다.

<백범일지> 초판본이 나왔을 때 김구 선생이 직접 겉표지에 친필사인을 해서 건네줄 정도로 친밀했다.
 

▲ 백범 김구 선생이 하상령 선생에게 전달한 &lt;백범일지&gt; 초판본

이후 조소앙 선생과 함께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대중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505302대 국회의원 선거서 조소앙 선생이 조병옥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을 때 조직과 선전을 총괄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조소앙 선생이 납북되면서 사회대중당은 자연스레 해체의 길로 들어섰고, 당시 정권으로부터 척결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하 소장은 아버님의 일생은 독립운동가보다는 건국운동가의 삶이었다고 생각한다정치적으로 패배한 건국운동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님은 남북협상에 참여한 용공분자라는 낙인을 평생 안고 살았다그 낙인은 평생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고 전했다.

부친 사회활동
평생 낙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노동현장에 뛰어든 하 소장은 시멘트 벽돌 제조공을 시작으로 전공보조원, 선박 로프회사 점원, 하역회사 경비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전역 후에는 시험을 거쳐 공무원이 됐지만 그동안에도 하석용의 부 하상령은 김구와 남북협상에 참여한 용공분자이고 조소앙과 사회대중당 창당을 주도한 자로서로 전개되는 소위 요시찰 대상자 인사자료가 시종 그를 따라다녔다.

이후 그는 아내의 권유로 한국방송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57세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얻어 13년간 인천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날 때부터 줄곧 인천에서 살아온 그는 인천지역 환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현재는 인천환경운동연합의 공동 대표서 물러나 고문을 역임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활동도 했으나 지난 고희(70) 축하회 때 썼던 글을 묶어 <문답, >로 출판한 후 쉬고 있다.

그럼에도 하 소장은 여전히 바쁘다. 유네스코 인천광역시협회장을 맡아 회원들과 문화재 답사에 나서고 작은 문화제를 주최하는 일을 직접 이끈다. 인천 소재 대학 교수들이 모여 만든 인천학회 공동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공익법인 홍익경제연구소의 이사장과 소장으로 일하면서 세무사 사무실도 운영한다. 건국운동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생 다양한 사회활동에 투신해온 하 소장에게 3·1운동과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현 사회의 시각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하 소장과의 일문일답.

-3·1운동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1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100주년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99주년, 101주년이라고 해서 그 의미가 달라지겠나. 다만 역사의 의미있는 대목을 한 번쯤 끄집어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 속에 우리의 오늘을 풍요롭고 의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 진지하게 반성해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3·1운동이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3·1운동은 당시 국내외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국민이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협을 무릅쓰고 나선 사실은 일본인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또 세계만방에 일제 침탈의 불법성과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선전한 운동이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지사들이 탈출해 중국을 거점으로 임시정부와 항일조직을 결성하는 동기가 됐다.
 

▲ ▲▲ (사진 왼쪽부터)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조소앙 선생

-3·1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명칭이나 명분에 매달리기를 좋아하는지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3·1혁명이라고 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혁명은 사회 지배이념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지배 정체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 용어다. 중국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두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3·1운동의 민족사적 가치 분석에 더욱 충실해야 할 때라고 본다.

-3·1정신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소장님이 생각하는 3·1정신은 무엇인가요.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나 하나만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우리 민족의 정신은 조선시대 의병들의 활약과 동학농민전쟁 등을 통해 면면히 확인된다. 우리는 이런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불의를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경험을 누적해왔다.

다른 말로 하면 경위(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이러하고 저러함에 대한 분별) 없는 경우를 당했을 때 자신에 대한 이익계산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즉각 행동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경위를 헤아리는 밑바탕에 홍익사상, 예와 경의 사상, 인내천과 인간최귀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3·1정신은 인간의 질서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체의 존립은 기꺼이 생사를 걸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립운동가가 많다는 언론보도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식들을 돌보고 키울 여력도 없고 시속에 밝지 못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도 몰랐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국가가 알아서 도왔어야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판단에 좌우돼왔다. 하 소장 역시 어린 시절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하상령 선생은 이승만정권부터 군사정권 시대까지 줄곧 요시찰 대상자 등의 명단에 쫓겨 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하 소장은 사흘씩 굶고 학교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기와 수도가 없는 수봉산 꼭대기 토담집서 4이상 떨어진 학교로 걸어서 통학해야 했다. 비가 오면 쓸 우산도 없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제 독립운동가라고 할 만한 분들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들의 후손에게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 말라. 너의 불행만 가중될 뿐이다라는 인식은 남지 않게 해줘야 한다.

3·1운동에 대한 가치 분석 충실해야
‘3·1정신’ 개인 이익보다 조국 위해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정부와 정치가 들어선 적이 없지 않은가. 광복 이후 이 나라는 오로지 색깔 논쟁으로 날을 지새워왔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세력들에게 우선적으로 떡을 나눠주기 바빴다. 독립운동가에게 지금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현대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채우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살고 있다. 인간은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이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공부해봤자 거의 대부분이 좌우 논리로 점철된 논쟁들이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실익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겠나.
 

▲ 3·1절 행사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우리 근현대사가 재미있고 그 속에서 오늘에 되살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적 자산이 풍요롭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연구자들의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 정부가 독립운동사까지 분파적 논쟁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삼균학회나 광복회 등을 통해 상당량 축적돼있다. 이를 소재로 한 석·박사 논문도 많다. 문제는 이런 연구들이 정부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서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도 정치가 과잉 개입하는 바람에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정치권 개입
연구에 한계

하 소장은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Carr) 교수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역사 속에 불변하는 실체적인 진실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유용한 지혜를 끌어낼 수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1운동이라는 역사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려내야 할 민족의 철학적 DNA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벤자민 프랭클린은 ‘Join or Die’라고 외쳤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 말은 3·1운동이 끝나고 난 뒤 우리 지도자들이 명심했어야 하는 아픈 말이었다. 오늘 우리가 무엇보다도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경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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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