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대담>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시대 변했어도…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3·1운동 100주년 행사가 전국서 열렸다. 3·1운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독립 의지에 불을 붙인 민중저항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친일 청산과 독립운동가 예우를 출범 초기부터 강조한 문재인정부의 기조에 따라 3·1운동은 또 한 번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을 만나 그 의의에 대해 들어봤다.
 

▲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서 현장 국무회의를 개최했다.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공공청사가 아닌 곳에서 국무회의를 연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부 최고 심의·의결기관인 국무회의를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투사들의 높은 이상과 불굴의 의지가 서린 뜻깊은 장소서 하게 되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의미 
대대적인 행사

특히 독립운동 역사와 관련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뿌리라며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유공자 서훈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는 3·1독립운동의 상징이라며 유관순 열사가 3·1독립운동의 표상으로 국민들 속에 각인돼있다는 사실만으로 1등급 서훈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일요시사>는 백범기념관서 국무회의가 열린 지난달 26일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 소장의 부친은 1948년 남북회담 당시 인천지역 민족진영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하상령 선생이다.

201612월 향년 100세의 나이로 작고한 하상령 선생은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과 조소앙(조용은) 선생 등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 두 인물과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

건국운동가 하상령 선생 장남
인천 지역에서 사회활동 매진

1917년 인천 동구 화평동서 태어난 하상령 선생은 인천공립보통학교(창여초등학교)와 인천상업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챙겨야 했던 하상령 선생이 선택한 사업은 서점.

하상령 선생은 위문당이라는 서점을 냈다. 당시 이름은 하연숙으로, 남자아이에게 여자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집안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상령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상령 선생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인천지회 선전부장을 맡으면서 사회운동에 첫발을 내딛었다. 대한건국 인천청년회를 조직했고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 조소앙 선생 등이 건국요원 양성을 위해 학교 형식으로 조직한 건국실천원양성소 1기 학생회장과 동창회장도 맡았다.

<백범일지> 초판본이 나왔을 때 김구 선생이 직접 겉표지에 친필사인을 해서 건네줄 정도로 친밀했다.
 

▲ 백범 김구 선생이 하상령 선생에게 전달한 &lt;백범일지&gt; 초판본

이후 조소앙 선생과 함께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대중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505302대 국회의원 선거서 조소앙 선생이 조병옥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을 때 조직과 선전을 총괄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조소앙 선생이 납북되면서 사회대중당은 자연스레 해체의 길로 들어섰고, 당시 정권으로부터 척결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하 소장은 아버님의 일생은 독립운동가보다는 건국운동가의 삶이었다고 생각한다정치적으로 패배한 건국운동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님은 남북협상에 참여한 용공분자라는 낙인을 평생 안고 살았다그 낙인은 평생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고 전했다.

부친 사회활동
평생 낙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노동현장에 뛰어든 하 소장은 시멘트 벽돌 제조공을 시작으로 전공보조원, 선박 로프회사 점원, 하역회사 경비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전역 후에는 시험을 거쳐 공무원이 됐지만 그동안에도 하석용의 부 하상령은 김구와 남북협상에 참여한 용공분자이고 조소앙과 사회대중당 창당을 주도한 자로서로 전개되는 소위 요시찰 대상자 인사자료가 시종 그를 따라다녔다.

이후 그는 아내의 권유로 한국방송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57세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얻어 13년간 인천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날 때부터 줄곧 인천에서 살아온 그는 인천지역 환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현재는 인천환경운동연합의 공동 대표서 물러나 고문을 역임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활동도 했으나 지난 고희(70) 축하회 때 썼던 글을 묶어 <문답, >로 출판한 후 쉬고 있다.

그럼에도 하 소장은 여전히 바쁘다. 유네스코 인천광역시협회장을 맡아 회원들과 문화재 답사에 나서고 작은 문화제를 주최하는 일을 직접 이끈다. 인천 소재 대학 교수들이 모여 만든 인천학회 공동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공익법인 홍익경제연구소의 이사장과 소장으로 일하면서 세무사 사무실도 운영한다. 건국운동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생 다양한 사회활동에 투신해온 하 소장에게 3·1운동과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현 사회의 시각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하 소장과의 일문일답.

-3·1운동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1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100주년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99주년, 101주년이라고 해서 그 의미가 달라지겠나. 다만 역사의 의미있는 대목을 한 번쯤 끄집어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 속에 우리의 오늘을 풍요롭고 의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 진지하게 반성해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3·1운동이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3·1운동은 당시 국내외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국민이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협을 무릅쓰고 나선 사실은 일본인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또 세계만방에 일제 침탈의 불법성과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선전한 운동이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지사들이 탈출해 중국을 거점으로 임시정부와 항일조직을 결성하는 동기가 됐다.
 

▲ ▲▲ (사진 왼쪽부터)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조소앙 선생

-3·1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명칭이나 명분에 매달리기를 좋아하는지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3·1혁명이라고 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혁명은 사회 지배이념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지배 정체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 용어다. 중국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두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3·1운동의 민족사적 가치 분석에 더욱 충실해야 할 때라고 본다.

-3·1정신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소장님이 생각하는 3·1정신은 무엇인가요.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나 하나만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우리 민족의 정신은 조선시대 의병들의 활약과 동학농민전쟁 등을 통해 면면히 확인된다. 우리는 이런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불의를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경험을 누적해왔다.


다른 말로 하면 경위(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이러하고 저러함에 대한 분별) 없는 경우를 당했을 때 자신에 대한 이익계산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즉각 행동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경위를 헤아리는 밑바탕에 홍익사상, 예와 경의 사상, 인내천과 인간최귀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3·1정신은 인간의 질서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체의 존립은 기꺼이 생사를 걸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립운동가가 많다는 언론보도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식들을 돌보고 키울 여력도 없고 시속에 밝지 못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도 몰랐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국가가 알아서 도왔어야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판단에 좌우돼왔다. 하 소장 역시 어린 시절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하상령 선생은 이승만정권부터 군사정권 시대까지 줄곧 요시찰 대상자 등의 명단에 쫓겨 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하 소장은 사흘씩 굶고 학교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기와 수도가 없는 수봉산 꼭대기 토담집서 4이상 떨어진 학교로 걸어서 통학해야 했다. 비가 오면 쓸 우산도 없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제 독립운동가라고 할 만한 분들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들의 후손에게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 말라. 너의 불행만 가중될 뿐이다라는 인식은 남지 않게 해줘야 한다.

3·1운동에 대한 가치 분석 충실해야
‘3·1정신’ 개인 이익보다 조국 위해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정부와 정치가 들어선 적이 없지 않은가. 광복 이후 이 나라는 오로지 색깔 논쟁으로 날을 지새워왔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세력들에게 우선적으로 떡을 나눠주기 바빴다. 독립운동가에게 지금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현대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채우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살고 있다. 인간은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이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공부해봤자 거의 대부분이 좌우 논리로 점철된 논쟁들이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실익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겠나.
 

▲ 3·1절 행사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우리 근현대사가 재미있고 그 속에서 오늘에 되살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적 자산이 풍요롭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연구자들의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 정부가 독립운동사까지 분파적 논쟁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삼균학회나 광복회 등을 통해 상당량 축적돼있다. 이를 소재로 한 석·박사 논문도 많다. 문제는 이런 연구들이 정부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서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도 정치가 과잉 개입하는 바람에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정치권 개입
연구에 한계

하 소장은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Carr) 교수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역사 속에 불변하는 실체적인 진실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유용한 지혜를 끌어낼 수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1운동이라는 역사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려내야 할 민족의 철학적 DNA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벤자민 프랭클린은 ‘Join or Die’라고 외쳤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 말은 3·1운동이 끝나고 난 뒤 우리 지도자들이 명심했어야 하는 아픈 말이었다. 오늘 우리가 무엇보다도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경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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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