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3)소나기

장기적인 방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장기적이라 하면.”

“백제야 어차피 망한 나라고. 그런데 그 백제를 신라에게 넘겨줄 수는 없고.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고구려의 문제가 겹쳐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터이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오. 다만.”

“말씀하세요.”

“인문에 관한 이야기요.”

은근한 협박


인문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문희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문무왕은 가볍게 혀를 찼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먼저 당의 입장을 봅시다.”

“당의 입장이라면?”

“당이 전하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인문을 내세우는 이면에는 여차하면 신라의 왕을 교체하겠다는 협박이 숨어 있는 게요.”

“신라를 일개 도독부(계림도독부)로 격하시킨 것도 부족해서.”

문무왕이 은근히 이를 갈았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여하한 경우라도 인문을 해할 수 없소.”

“그야 당연하지요.”

문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외숙, 그 문제도 결국 길게 보아야 합니까?”

“바로 그 이야기요. 모든 문제가, 특히 나라 간의 문제는 반드시 힘의 논리에 저촉됨을 명심하기 바랄 뿐이오.”

“결국 이번 일에 일언반구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소나기가 내릴 때 잠시 피했다 가는 것도 방편이라오.”

문무왕과 문희가 소나기를 되뇌었다. 

“아울러 나의 파면을 서두르시오.”

연개소문은 부여 풍을 구하면서 당을 끌어들여 일전을 불사하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잠시 상실감에 빠져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버지 계세요?”

그날도 국정에 관해 소소한 사항을 챙기고 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 중에 아들 남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며 남건과 함께 온사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멈칫하며 온사문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손을 잡았다.

“어디를 떠돌다 이제 오는 게요.”      

“소승이 어디를 갔다고 그러십니까. 이렇게 대감 앞에 있는데.”

온사문의 얼굴을 바라보던 연개소문이 웃음을 터트렸다.

“스님 말이 맞소.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데 말이오.”


연개소문이 자리를 안내하고 남건에게 눈치를 주었다.

“대감, 곡차라 그냥 말씀하세요.”

“그럴까요. 남건아, 가서 곡차 내오라 이르거라.”

남건이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물렸다.

“그동안 어디를 다니셨습니까?”

“그 일을 마무리하고 당나라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소일했습니다.”

“허허, 당나라를 점령하셨다는 말씀으로 들리오.”

온사문이 연개소문의 말을 되뇌다가는 박장대소했다.

“왜요, 틀린 말이오?”

인문을 내세운 이유는?…파면을 서두르다
연개소문과 온사문 당나라 점령을 논하다

“틀린 말이 아니오라 실은 그 때문에.”

“시원하게 말씀하시오.”

“소승 혼자 그 재미를 느낄 게 아니라 대감과 함께 느끼면 훨씬 좋을 것이란 생각에 이리 찾아뵈었습니다.”

연개소문이 온사문의 얼굴을 주시하며 가만히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른바 당나라 점령을 위한 여행이로세.”

“그렇지요, 여행이지요.”

여행이라는 말을 뱉어내고는 연개소문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온사문은 그저 미소만 짓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럽시다, 스님. 우리 함께 여행 떠나봅시다.”

온사문이 가볍게 합장했다.

“스님은 이미 알고 계셨지요?”

“무엇을 말입니까.”

“아무리 당을 점령하려 해도 점령되지 않으리란 사실 말입니다.”

“허허, 이미 대감께서는 오래전에 당나라를 점령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마음만으로지요.”

“그러면 된 게 아닙니까?”

연개소문이 온사문의 얼굴을 가만히 주시했다.

비록 스님의 입장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은근히 나이가 들어보였다.

“왜 그리 유심히 바라보시는지요?”

“스님의 속세 나이가 궁금하여 그럽니다.”

“대감 모시고 당나라 정도는 점령할 수 있습니다.”

“하기야 나이가 무슨 소용 있다고. 여하튼 이번에는 마음만이 아니라 반드시 몸으로 당나라를 점령해야겠소.”

“당연히 그리하셔야지요.”

“그런데 스님. 내가 왜 그리도 당나라를 멸하려, 아니 멸하려한 게 아니고, 그들을 몰아내려 했는지 아십니까?”

“그야 우리의 뿌리를 찾으려 하신 게지요.”

“그런 측면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하오면?”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그를 통해 우리 민족이 대동단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백제와 신라에 대해서는 관대했고요.”

“관대라기보다도. 여하튼 신라가 그를 무시하고 알량한 이익을 추구하는 통에 가끔 심술을 부리기는 했습니다.”

“일전에 신라의 김유신 대장군을 살려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살려주었다기보다 그저 노인네 둘이 허심탄회하게 시간을 가졌다 함이 옳은 표현이겠지요.”

“여하튼 잘하신 일입니다.”

“무슨 의미요?”

“살려줌으로 인해 항상 대감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갈 것 아닙니까?”

“그런가요.”

연개소문이 답하고 웃는 순간 남건이 조촐하게 상을 보아 직접 들고 들어왔다.

“스님, 천천히 드시고 가세요.”

“그러리다. 그런데 장군도 함께하지 않고.”

“두 분께서 오붓하게 시간 보내십시오. 소장은 자리를 물리렵니다.”

남건이 가볍게 고개 숙이고 자리를 물리자 연개소문이 두 개의 잔을 채웠다.

“대감, 자식이라고 다 똑같을 수는 없지요?”

돌아온 온사문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바로 하세요.”

“대감의 아들들 중에서 유독 남건 장군이 대감을 빼닮은 듯해서 그럽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소이다.”

온사문이 잔을 비우자 연개소문도 잔을 비워내면서 여운 대신 말을 건넸다.

“그런가요?”

“흡사 도를 깨우친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그야말로 땡중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까?”

“그런가요?”

연개소문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대감, 결국 부처에 이르는 길은 깨달음이지요.”

“그야 말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해서 깨달음이 얻어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며 그런 차원에서 진정한 의미의 깨달음을 찾아야지요.”

“하기야, 부처님도 주색에 빠져 있다 깨달음을 찾았다고 하니.”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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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