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회담 결렬> 한반도 운명은?

결국 다시 문이 나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결국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두 번째 세기의 담판은 결렬됐다. 북미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김정은 두 정상이 하노이에 도착해 연출한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북미는 회담 마지막 날 어긋났다. 북미의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북미의 비핵화 방정식이 점차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 악수 나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동신문

2차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선점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하늘길이 아닌 60시간에 이르는 육로 대장정을 선택했다. 열차의 경적소리를 시작으로 2차 북미회담의 막이 올랐다. 김 위원장은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3일 오후 4시30분경 북한 평양역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종단했다. 열차는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각) 새벽 중국 난닝역서 잠시 멈춰 섰다.

육로 대장정
회담 신호탄

김 위원장은 역에 하차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크리스털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손에 들고 그를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한 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65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8시10분경 베트남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매우 행복하며 베트남에게 감사하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동당역서 대기 중이던 전용차에 올라 오전 8시30분경 하노이로 출발했다. 하노이 도착 전 박닌성에 있는 삼성공장을 시찰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중간 경유지는 없었고 오전 11시경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김 위원장은 도착 6시간 만에 외부 일정에 나서 수행단과 함께 오후 5시경 전용 리무진을 타고 오후 5시7분경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북한 대사관에선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김 위원장은 50분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날 김 위원장의 수행단도 이목을 끌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튿날 “김정은 동지가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 제2차 조미 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사업 정형을 보고받으셨다”고 보도했다.

김-트, 260일 만에 베트남서 재회
초반 분위기 청신호, 기대감 높여

<중앙통신>의 보도로 미뤄봤을 때, 김 위원장은 전날 오전 11시 숙소에 도착한 뒤 북한 대사관을 찾은 오후 5시 사이에 실무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후 9시경 하노이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20여시간의 비행 끝에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해 숙소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엔 오후 9시40분경 도착해 짐을 풀었다. 북미 정상은 정상회담 하루 전 모두 하노이에 입성했다.

이튿날 2차 북미회담 일정이 시작됐다.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서 적막을 깬 건 북한 측이었다. 북한 수행단은 오전 8시경 멜리아호텔을 나왔다.
 

▲ 회담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오수용 경제담당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외교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이 모습을 비췄다. 이들은 오전 9시45분경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인 할롱베이에 도착했다. 현지 매체 등은 북한 수행단이 할롱베이서 유람선을 타고 이곳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북한 수행단은 할롱베이에 이어 베트남 북부 최대 항구도시인 하이퐁도 시찰했다. 하이퐁은 외국인직접투자 기업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베트남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북한 수행단은 이곳에서 대규모 산업단지 등을 방문했다.

이들의 일정은 김 위원장의 경제성장 의지를 반영한다. 북한 수행단은 관광지구와 개발경제지구를 시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성장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 바 있다.

외부일정 적극
경제성장 의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경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15분경, 김 위원장은 오후 6시20분경 각각 전용차를 타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기와 성조기가 교차된 회담장서 만나 악수를 했다. 지난 1차회담 후 260여일 만의 재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상으로 성공적이고 더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는가 하면 “김 위원장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 적대적인 것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는 잘 극복했다”며 “보다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40분부터 약 20분간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북미 핵담판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 이후 친교 만찬에 나서기 전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주 특별한 관계”라고 호응했다.

북미 정상의 단독회담 이후 시작된 만찬은 북미의 신뢰를 반영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서 만찬은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새로 포함된 것이다.

만찬에는 북미 참모가 각각 2명씩 배석했다. 북한 쪽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 쪽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북미는 만찬 뒤에도 실무 접촉을 통해 합의문 조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훈훈 분위기
돌연 급반전

북미 회담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핵담판을 위한 채비에 나섰다. 회담 장소는 두 정상이 전날 만났던 메트로폴 호텔이었다. 먼저 길을 나선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그는 오전 8시25분경 JW메리어트 호텔을 나서 오전 8시40분경 회담장에 먼저 도착했다. 뒤이어 김 위원장도 멜리아호텔을 출발해 회담장으로 이동, 오전 8시46분경 회담장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회담의 기대감을 키웠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우리의 노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최종적으로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합의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만남을 지속할 것”이라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북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 손 흔들어보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거듭 속도 조절론을 꺼내들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실험, 로켓 실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곧 단독회담을 시작했다.

이들은 오전 9시35분경 조그만 산책길을 통해 회담장 밖으로 나와 이동하면서 밝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곧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담소를 나눴다. 이들은 미소를 띠며 확대회담을 위해 실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훈훈했던 분위기는 확대회담서 급반전됐다. 확대회담에는 두 정상과 함께 북한 측 인사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 미국 측 인사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확대회담 이후 북미 정상은 오찬을 함께하고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확대회담이 약 한 시간 넘게 지연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막판 핵담판 무산, 갑자기 왜?
추후 다자회담 가능성…시기는?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미 오찬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찬에 이어 북미 서명식도 취소됐다. 샌더스 대변인은 오후 4시 예정이었던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2시간 일찍 앞당겨져 진행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1시25분 기자회견을 위해 회담장을 떠났고 김 위원장도 회담장을 나서 숙소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지난 뒤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생산적인 시간을 가졌다”면서도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 것도 서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과 굳건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관계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북한은 대북제재 전체의 해제를 원했으나 우리는 제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핵 시설 폐기를 말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결국 북미는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에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모이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 프로세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언급하며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세스를 위해 오늘 합의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문재인정부의 움직임은 가빠질 예정이다. 당장 한미정상회담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차 북미회담 전후로 워싱턴과 평양을 방문했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는 현재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은 지난해 말 무산된 김 위원장의 답방과 맞물려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은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시기에 모두 열릴 공산이 크다. 시기는 오는 3월 말에서 4월 초로 점쳐진다. 

북미 합의 결렬
문 대통령 등판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협상 의지와 함께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다자 간 프로세스 역시 이 시기에 맞춰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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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