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회담 결렬> 한반도 운명은?

결국 다시 문이 나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결국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두 번째 세기의 담판은 결렬됐다. 북미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김정은 두 정상이 하노이에 도착해 연출한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북미는 회담 마지막 날 어긋났다. 북미의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북미의 비핵화 방정식이 점차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 악수 나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동신문

2차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선점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하늘길이 아닌 60시간에 이르는 육로 대장정을 선택했다. 열차의 경적소리를 시작으로 2차 북미회담의 막이 올랐다. 김 위원장은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3일 오후 4시30분경 북한 평양역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종단했다. 열차는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각) 새벽 중국 난닝역서 잠시 멈춰 섰다.

육로 대장정
회담 신호탄

김 위원장은 역에 하차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크리스털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손에 들고 그를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한 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65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8시10분경 베트남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매우 행복하며 베트남에게 감사하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동당역서 대기 중이던 전용차에 올라 오전 8시30분경 하노이로 출발했다. 하노이 도착 전 박닌성에 있는 삼성공장을 시찰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중간 경유지는 없었고 오전 11시경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김 위원장은 도착 6시간 만에 외부 일정에 나서 수행단과 함께 오후 5시경 전용 리무진을 타고 오후 5시7분경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북한 대사관에선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김 위원장은 50분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날 김 위원장의 수행단도 이목을 끌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튿날 “김정은 동지가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 제2차 조미 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사업 정형을 보고받으셨다”고 보도했다.

김-트, 260일 만에 베트남서 재회
초반 분위기 청신호, 기대감 높여

<중앙통신>의 보도로 미뤄봤을 때, 김 위원장은 전날 오전 11시 숙소에 도착한 뒤 북한 대사관을 찾은 오후 5시 사이에 실무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후 9시경 하노이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20여시간의 비행 끝에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해 숙소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엔 오후 9시40분경 도착해 짐을 풀었다. 북미 정상은 정상회담 하루 전 모두 하노이에 입성했다.

이튿날 2차 북미회담 일정이 시작됐다.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서 적막을 깬 건 북한 측이었다. 북한 수행단은 오전 8시경 멜리아호텔을 나왔다.
 

▲ 회담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오수용 경제담당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외교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이 모습을 비췄다. 이들은 오전 9시45분경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인 할롱베이에 도착했다. 현지 매체 등은 북한 수행단이 할롱베이서 유람선을 타고 이곳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북한 수행단은 할롱베이에 이어 베트남 북부 최대 항구도시인 하이퐁도 시찰했다. 하이퐁은 외국인직접투자 기업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베트남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북한 수행단은 이곳에서 대규모 산업단지 등을 방문했다.

이들의 일정은 김 위원장의 경제성장 의지를 반영한다. 북한 수행단은 관광지구와 개발경제지구를 시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성장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 바 있다.

외부일정 적극
경제성장 의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경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15분경, 김 위원장은 오후 6시20분경 각각 전용차를 타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기와 성조기가 교차된 회담장서 만나 악수를 했다. 지난 1차회담 후 260여일 만의 재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상으로 성공적이고 더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는가 하면 “김 위원장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 적대적인 것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는 잘 극복했다”며 “보다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40분부터 약 20분간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북미 핵담판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 이후 친교 만찬에 나서기 전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주 특별한 관계”라고 호응했다.

북미 정상의 단독회담 이후 시작된 만찬은 북미의 신뢰를 반영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서 만찬은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새로 포함된 것이다.

만찬에는 북미 참모가 각각 2명씩 배석했다. 북한 쪽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 쪽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북미는 만찬 뒤에도 실무 접촉을 통해 합의문 조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훈훈 분위기
돌연 급반전

북미 회담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핵담판을 위한 채비에 나섰다. 회담 장소는 두 정상이 전날 만났던 메트로폴 호텔이었다. 먼저 길을 나선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그는 오전 8시25분경 JW메리어트 호텔을 나서 오전 8시40분경 회담장에 먼저 도착했다. 뒤이어 김 위원장도 멜리아호텔을 출발해 회담장으로 이동, 오전 8시46분경 회담장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회담의 기대감을 키웠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우리의 노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최종적으로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합의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만남을 지속할 것”이라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북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 손 흔들어보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거듭 속도 조절론을 꺼내들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실험, 로켓 실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곧 단독회담을 시작했다.

이들은 오전 9시35분경 조그만 산책길을 통해 회담장 밖으로 나와 이동하면서 밝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곧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담소를 나눴다. 이들은 미소를 띠며 확대회담을 위해 실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훈훈했던 분위기는 확대회담서 급반전됐다. 확대회담에는 두 정상과 함께 북한 측 인사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 미국 측 인사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확대회담 이후 북미 정상은 오찬을 함께하고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확대회담이 약 한 시간 넘게 지연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막판 핵담판 무산, 갑자기 왜?
추후 다자회담 가능성…시기는?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미 오찬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찬에 이어 북미 서명식도 취소됐다. 샌더스 대변인은 오후 4시 예정이었던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2시간 일찍 앞당겨져 진행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1시25분 기자회견을 위해 회담장을 떠났고 김 위원장도 회담장을 나서 숙소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지난 뒤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생산적인 시간을 가졌다”면서도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 것도 서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과 굳건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관계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북한은 대북제재 전체의 해제를 원했으나 우리는 제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핵 시설 폐기를 말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결국 북미는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에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모이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 프로세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언급하며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세스를 위해 오늘 합의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문재인정부의 움직임은 가빠질 예정이다. 당장 한미정상회담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차 북미회담 전후로 워싱턴과 평양을 방문했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는 현재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은 지난해 말 무산된 김 위원장의 답방과 맞물려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은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시기에 모두 열릴 공산이 크다. 시기는 오는 3월 말에서 4월 초로 점쳐진다. 

북미 합의 결렬
문 대통령 등판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협상 의지와 함께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다자 간 프로세스 역시 이 시기에 맞춰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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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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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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