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회담 결렬> 한반도 운명은?

결국 다시 문이 나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결국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두 번째 세기의 담판은 결렬됐다. 북미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김정은 두 정상이 하노이에 도착해 연출한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북미는 회담 마지막 날 어긋났다. 북미의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북미의 비핵화 방정식이 점차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 악수 나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동신문

2차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선점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하늘길이 아닌 60시간에 이르는 육로 대장정을 선택했다. 열차의 경적소리를 시작으로 2차 북미회담의 막이 올랐다. 김 위원장은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3일 오후 4시30분경 북한 평양역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종단했다. 열차는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각) 새벽 중국 난닝역서 잠시 멈춰 섰다.

육로 대장정
회담 신호탄

김 위원장은 역에 하차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크리스털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손에 들고 그를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한 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65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8시10분경 베트남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매우 행복하며 베트남에게 감사하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동당역서 대기 중이던 전용차에 올라 오전 8시30분경 하노이로 출발했다. 하노이 도착 전 박닌성에 있는 삼성공장을 시찰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중간 경유지는 없었고 오전 11시경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김 위원장은 도착 6시간 만에 외부 일정에 나서 수행단과 함께 오후 5시경 전용 리무진을 타고 오후 5시7분경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북한 대사관에선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김 위원장은 50분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날 김 위원장의 수행단도 이목을 끌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튿날 “김정은 동지가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 제2차 조미 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사업 정형을 보고받으셨다”고 보도했다.

김-트, 260일 만에 베트남서 재회
초반 분위기 청신호, 기대감 높여

<중앙통신>의 보도로 미뤄봤을 때, 김 위원장은 전날 오전 11시 숙소에 도착한 뒤 북한 대사관을 찾은 오후 5시 사이에 실무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후 9시경 하노이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20여시간의 비행 끝에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해 숙소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엔 오후 9시40분경 도착해 짐을 풀었다. 북미 정상은 정상회담 하루 전 모두 하노이에 입성했다.

이튿날 2차 북미회담 일정이 시작됐다.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서 적막을 깬 건 북한 측이었다. 북한 수행단은 오전 8시경 멜리아호텔을 나왔다.
 

▲ 회담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오수용 경제담당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외교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이 모습을 비췄다. 이들은 오전 9시45분경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인 할롱베이에 도착했다. 현지 매체 등은 북한 수행단이 할롱베이서 유람선을 타고 이곳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북한 수행단은 할롱베이에 이어 베트남 북부 최대 항구도시인 하이퐁도 시찰했다. 하이퐁은 외국인직접투자 기업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베트남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북한 수행단은 이곳에서 대규모 산업단지 등을 방문했다.

이들의 일정은 김 위원장의 경제성장 의지를 반영한다. 북한 수행단은 관광지구와 개발경제지구를 시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성장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 바 있다.

외부일정 적극
경제성장 의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경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15분경, 김 위원장은 오후 6시20분경 각각 전용차를 타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기와 성조기가 교차된 회담장서 만나 악수를 했다. 지난 1차회담 후 260여일 만의 재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상으로 성공적이고 더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는가 하면 “김 위원장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 적대적인 것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는 잘 극복했다”며 “보다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40분부터 약 20분간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북미 핵담판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 이후 친교 만찬에 나서기 전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주 특별한 관계”라고 호응했다.

북미 정상의 단독회담 이후 시작된 만찬은 북미의 신뢰를 반영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서 만찬은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새로 포함된 것이다.

만찬에는 북미 참모가 각각 2명씩 배석했다. 북한 쪽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 쪽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북미는 만찬 뒤에도 실무 접촉을 통해 합의문 조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훈훈 분위기
돌연 급반전

북미 회담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핵담판을 위한 채비에 나섰다. 회담 장소는 두 정상이 전날 만났던 메트로폴 호텔이었다. 먼저 길을 나선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그는 오전 8시25분경 JW메리어트 호텔을 나서 오전 8시40분경 회담장에 먼저 도착했다. 뒤이어 김 위원장도 멜리아호텔을 출발해 회담장으로 이동, 오전 8시46분경 회담장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회담의 기대감을 키웠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우리의 노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최종적으로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합의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만남을 지속할 것”이라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북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 손 흔들어보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거듭 속도 조절론을 꺼내들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실험, 로켓 실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곧 단독회담을 시작했다.

이들은 오전 9시35분경 조그만 산책길을 통해 회담장 밖으로 나와 이동하면서 밝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곧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담소를 나눴다. 이들은 미소를 띠며 확대회담을 위해 실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훈훈했던 분위기는 확대회담서 급반전됐다. 확대회담에는 두 정상과 함께 북한 측 인사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 미국 측 인사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확대회담 이후 북미 정상은 오찬을 함께하고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확대회담이 약 한 시간 넘게 지연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막판 핵담판 무산, 갑자기 왜?
추후 다자회담 가능성…시기는?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미 오찬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찬에 이어 북미 서명식도 취소됐다. 샌더스 대변인은 오후 4시 예정이었던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2시간 일찍 앞당겨져 진행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1시25분 기자회견을 위해 회담장을 떠났고 김 위원장도 회담장을 나서 숙소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지난 뒤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생산적인 시간을 가졌다”면서도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 것도 서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과 굳건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관계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북한은 대북제재 전체의 해제를 원했으나 우리는 제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핵 시설 폐기를 말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결국 북미는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에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모이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 프로세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언급하며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세스를 위해 오늘 합의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문재인정부의 움직임은 가빠질 예정이다. 당장 한미정상회담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차 북미회담 전후로 워싱턴과 평양을 방문했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는 현재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은 지난해 말 무산된 김 위원장의 답방과 맞물려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은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시기에 모두 열릴 공산이 크다. 시기는 오는 3월 말에서 4월 초로 점쳐진다. 

북미 합의 결렬
문 대통령 등판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협상 의지와 함께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다자 간 프로세스 역시 이 시기에 맞춰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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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