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총리-촛불총리’ 어색한 만남 풀스토리

얽히고설킨 기묘한 인연 ‘언제까지?’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전직 국무총리와 현직 국무총리의 만남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대표로 당선된 황교안 전 총리와 이낙연 총리는 묘하게 맞닿아 있다. 황 전 총리는 탄핵정국 당시 국무총리였다. 이 총리는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정부의 국무총리다. 동시에 이들은 각각 보수·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1위로 꼽힌다. 황 전 총리는 철저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국무총리 사이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모양새다.
 

▲ 황교안 신임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7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당대회(이하 전대)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 동안 황 대표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황 대표는 지난해 9월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정계진출에 군불을 지폈다. 황 대표는 지난 1월 한국당에 입당해 이른바 ‘친황(친 황교안)계’라 불리는 새로운 계파의 등장을 예고했다. 같은 달 전대 출마를 선언한 후 새로운 한국당의 대표가 된 그는 원외인사로 정치경력이 전무하다.

그러나 그의 파급력은 웬만한 중진 의원들을 뛰어넘었다.

정계 진출
파죽지세

황 대표의 당 대표 당선은 여러 후폭풍을 야기할 전망이다. 황 대표는 전대 과정서 ‘탄핵 불복’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전직 법무부장관이자 전직 국무총리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진 탄핵을 에둘러 부정한 셈이다.

지난달 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은 뒤 “특검서 1차 수사 이후 수사 연장을 요청했다”며 “제가 볼 땐 수사가 다 끝났으니 이 정도서 끝내야 한다고 봐서 수사 기간 연장을 불허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황 대표를 둘러싸고 ‘박근혜 배신 논란’이 있었던 때였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TV토론회서 황 대표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황 대표는 “헌재의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법원서 재판 중인데 탄핵이 결정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질문에 ‘X’ 팻말을 들들었던 그는 김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입장을 명확히 밝혀달라”며 협공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세모를 하려고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황 대표는 토론회서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느냐’는 김 의원의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황교안 전대 승리…당 대표로 우뚝
전대 과정서 탄핵 불복, 논란 거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은 황 대표의 탄핵 불복 발언을 일제히 규탄했다. 한국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비박(비 박근혜)계 좌장인 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지난달 26일 황 대표의 태블릿PC 발언에 대해 “잘못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황 대표의 당선을 두고 ‘박근혜 그림자’가 도래했다고 본다. 황 대표는 박근혜정부 당시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탄핵정국 때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는 전대를 치르면서 ‘특검 연장수사 불허’ ‘탄핵 정당성’ ‘태블릿PC 조작설’ 등을 언급했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하야를 야기한 일련의 과정들을 부정한 셈이다.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문재인정부와 대치되는 대목이다.


탄핵정국 국면서 촛불혁명은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촛불혁명은 황 대표가 부정한 탄핵 과정의 결정체다. 문재인정부는 박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던 촛불혁명 이후 집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 광화문 촛불집회

문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줄곧 ‘촛불혁명 정부’를 강조하는 한편 “촛불혁명을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이를 정권의 기치로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울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서 주재한 국무회의서도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여줬다”며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서 “3·1운동을 이끈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청년정신은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3년 차 징크스’에 맞닥뜨린 문재인정부를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황 대표는 강력한 대정부·대여 투쟁으로 존재감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불복
촛불 혁명

황 대표는 차기 대권 선호도 여론조사 등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로 지난달 25일 조사해 같은 달 27일 발표한 ‘차기 정치지도자 다자구도’에 따르면 황 대표는 18.6%로 1위를 기록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낙연 총리가 15.6%로 2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6%로 3위를 기록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7.4%로 그 뒤를 이었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7.1%, 바미당 유승민 전 공동대표가 5.7%,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4.1%, 바미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각각 3.7%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와 이 총리가 접점을 벌이는 건 주목할 만하다. 황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당시 국무총리였다. 이 총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국무총리다. 이들은 탄핵을 배경으로 한 전·현직 국무총리다. 또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를 통해 각각 1위를 기록했다.  

차기 대선이 2022년에 열리는 만큼 두 총리의 대권구도는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황 대표와 이 총리의 구도가 박정부와 문정부의 대결로 비춰지는 까닭에 관심을 끌고 있다.

전현직 총리 차기 대권주자로 만나
대권구도 지속? “변화 가능성 커”

당사자들은 대권에 대해 몸을 낮추고 있다. 황 대표는 출판기념회 당시 대권에 대해 “그런 말씀들을 잘 듣고 있다”고만 답했다. 이 총리는 지난 1월21일 C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이 총리는 차기 대권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총리도 굉장히 벅차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황 대표와 이 총리의 대권 경쟁 구도가 유력 잠룡들의 정치적 상흔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 영장실질심사 위해 법원 출석하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진보진영 대권 잠룡들은 하나같이 위기와 직면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 지사 그리고 김 지사가 대표적이다. 안 전 지사와 이 지사는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경선을 치렀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대선 기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선 이후에도 잠룡으로 꾸준히 언급됐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김 지사도 대권주자로서 차차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나 이들은 차례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안 전 지사는 미투 논란으로 충남지사직서 사퇴했다. 이 지사는 각종 구설수와 함께 친형 강제입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김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파문 등으로 법정 구속됐다. 결국 진보진영 대권 잠룡들이 잇따라 침몰하는 가운데 이 총리가 주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을 앞선 것도 유효했다. 

이 총리에게 쏠리는 관심은 그의 경력과도 관련이 있는데 대권 잠룡으로 언급될 만한 경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그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이며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을 지냈고, 전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보수·진보
대권잠룡들

보수진영도 진보진영의 상황과 대동소이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은 지리멸렬의 수순을 밟았다.

한국당은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홍 전 대표 체제로 6·13지방선거를 치렀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서 보수의 아성인 TK(대구·경북)를 지켜내는 데 그쳤다. 홍 전 대표는 6월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기 위해 물러났다. 이후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동됐다. 비대위 체제 하에 진행된 인적청산은 결정적이지 못했다. 보수진영 잠룡들의 존재감이 미미한 까닭이다.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황 대표를 제외하고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인물은 홍 전 대표와 오 전 시장, 바미당의 유승민·안철수 전 공동대표 등에 그치며 선호도 역시 높지 않다.

보수진영의 사분오열로 남은 자리를 황 대표가 대신하는 모양새다. 황 대표는 정계진출의 첫걸음을 제1야당 대표로 시작하게 됐다. 역대 대통령 중 대다수는 정당 대표를 지냈다. 황 대표에게 한국당 대표직은 차기 대권 잠룡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황 대표와 이 총리가 자신들의 의사와 달리 대권 잠룡의 선두에 선 이유로 해석된다.

한편 황 대표는 대권주자로서 검증 아닌 검증을 받게 됐다. 한국 갤럽이 지난달 19∼21일 조사해 같은 달 22일 발표한 ‘한국당 대표 경선 선호 후보, 후보별 호감도’에 따르면 황 대표의 지지율은 조사 대상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 지난달 27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서 열린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서 당 대표를 확정 짓고 당선 수락연설하는 황교안 신임 대표

여론조사 결과 전체 1위는 오 전 시장으로 37%를 기록했다. 황 대표는 22%, 김 의원은 7%였다. 33%는 ‘없음·모름·응답 거절’이었다. 

반면 한국당 지지자층에서 황 대표는 52%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오 전 시장은 24%에 그쳤다. 김 의원은 15%였다. 없음·모름·응답 거절은 9%였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가 한국당 대표로 당선됐지만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국당 내에서도 이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은 당장 내년에민심과 다소 거리가 있는 황 대표 체제 하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황 대표는 사실상 내년 총선을 통해 심사대에 오르며 총선 결과에 따라 대권 존재감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양강구도
변화 가능

최근의 여론조사는 황 대표와 이 총리 간의 대권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다만 양강구도 형성에 두 전·현직 총리의 직접적인 의지보다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이들의 경쟁구도를 형성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탄핵정국 국무총리와 촛불혁명 국무총리의 대결 형태는 일시적일 뿐, 언제든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총리 출신 대통령은?

황 대표와 이 총리 간의 대권구도가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총리 출신 대통령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총리 출신 대통령은 있었을까? 답은 '있었다.' 대한민국 10대 대통령인 최규하가 그 주인공이다. 총리직을 수행하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10·26사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최 전 대통령은 이른바 ‘체육관 선거’서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하야했다.

최 전 대통령은 처음이자 마지막 총리 출신 대통령이다. 오늘날까지 총리 출신 대통령은 헌정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다만 대권에 도전했던 총리는 있다.

이회창 전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 총리는 대선에 3번 출마했다. 그러나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전 총리는 15대 대선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1.5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16대 대선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2.33%포인트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17대 대선에서는 15.0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위에 머물렀다.

참여정부 당시 국무총리를 지냈던 고건은 대선 근처까지 가는 데 그쳤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에 놓였을 때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서울시장까지 역임했던 고 전 총리는 명실상부 대권주자로 꼽혔지만 끝내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이홍구·이수성·박태준·한명숙·이해찬·정운찬 전 총리 역시 대권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