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데뷔 60주년’ 이미자가 걸어온 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3.04 09:58:28
  • 호수 1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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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고 배고픈 설움 노래로 달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올해로 노래 인생 60년을 맞은 가수 이미자. 인생의 8할을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렸다. 길었던 세월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의 노래 인생을 돌아봤다. 
 

▲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이미자가 지난달 21일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을 발표했다. 1959년 열아홉에 데뷔, 어느덧 가수 생활 ‘환갑’을 맞이하면서 한 데 모은 60곡이다. 이번 기념 앨범은 ‘감사, 공감, 순수’의 타이틀을 붙인 3개의 CD로 나왔다. 이미자의 대표곡과 신곡에 전통가요를 버무렸다.

노래인생 
어느덧 환갑

가장 눈에 띄는 건 1번 CD의 첫 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이다. 이 노래는 60주년을 기념해 새로 만든 곡이다. 60년간의 활동을 지지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50주년 기념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을’, 45주년 기념곡 ‘내 영혼 노래가 되어’ 등이 수록돼있다. 물론 국민적 사랑을 받은 대표곡도 포함돼있다. 

이미자는 “50주년 기념곡이 마지막인 줄로만 알았는데 운 좋게 6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며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처럼 라이브 연주에 맞춰 10여곡을 새로 녹음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성량이 예전만 못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20대부터 70대까지 목소리를 통해 지나온 세월과 변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흑산도 아가씨’를 듣고 눈물 한 번 훔치지 않았던 청춘이 있었을까. 그는 “다 같이 어렵던 시절과 노랫말 및 목소리가 잘 맞아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오늘 여기 온 기자들보다 그 부모님 세대의 사랑이 더 컸기에 이런 뜻깊은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역시 이 같은 감정의 연장선에 있다. 50주년 기념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을’을 만든 김소엽 시인, 장욱조 작곡가와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이미자가 소회를 밝히면 김 시인이 노랫말로 다듬는 식이었다.

59년 19세 데뷔해 무수한 히트곡
2000여곡 부른 ‘엘레지의 여왕’ 

다만 10년 전 노랫말이 설움이 굽이굽이 맺혀있었다면 이번엔 “우리의 눈물은 이슬 되어 꽃밭에 내리고/우리의 아픔은 햇빛 되어 꽃을 피웠네” 등 한결 온화해졌다.   

그 시절 이미자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3대 히트곡이 금지곡으로 묶였을 때를 꼽았다. 각각 ‘왜색이 짙다’, ‘다른 노래와 몇 소절이 같다’, ‘너무 처량해서 비탄조다’ 등의 이유였다.

“1964년 ‘동백 아가씨’가 KBS 음악방송서 35주간 1위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차트서 없어졌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고, 무대서 부를 수도 없었다. 목숨을 끊어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팬들께서 한사코 불러주신 덕분에 큰 힘이 됐다.”   

이미자는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1959년 데뷔, 1973년 베트남 위문 공연, 2002년 평양 단독 공연 등 최초의 순간을 꼽았다. 하지만 이미자 앞에는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아픔이 있다. 이미자는 “가장 기뻐야 했을 때 역시 항상 붙어 다니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이미자의 노래가 ‘천박하다’ ‘술집에서나 부르는 노래다’ 등 세간의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자는 소외감을 느꼈으며, 서구풍 발라드 노래를 불러 볼까도 생각했었다. 이미자는 “당시 참았다. 견뎠다. 60년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절제하면서 잘 지내왔구나 하는 마음에 자부심까지 갖고 있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앨범은 감사·공감·순수를 테마로 3장의 CD에 각 20곡씩 눌러 담은 앨범이다. 그간 발표된 560장의 앨범과 2100여 곡 중에 추리는 것만도 대작업이다. 첫째 둘째 CD가 기념곡과 히트곡 위주라면, 세 번째는 온전히 가요계 선배들을 위한 장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등을 담았다.

가요계 전설
애절한 울림

이미자는 “우리 가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노래를 들으며 나라 잃은 설움, 배고픔의 설움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 시절 고마운 곡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자는 후배들을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가요의 뿌리가 사라져 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사 전달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슬프면 슬픔을 전달해주고, 기쁘면 기쁨을 전달해줄 수 있는 게 가요”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서구풍이 많이 몰려오다 보니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발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도 없다. 그 부분이 제일 안타깝다. 우리 가요의 뿌리가 남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자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국보급 가수’다. 그가 활동한 기간이 고스란히 한국 가요계의 역사와 포개진다. 작은 체구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애절하면서도 고운 음색은 연구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부르는 것 같지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관객의 마음을 울고 웃게 했다. 

이미자는 1941년 10월30일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서 아버지 이점성과 어머니 유상례 사이서 2남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미자가 2살이 되던 1943년에 아버지가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됐다. 
 

1945년에는 힘든 생활고 때문에 어머니 유상례에 의해 외할머니 댁에서 형제들과 떨어져 외롭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던 이미자는 1957년에 방송하던 노래자랑 프로그램 KBS의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해 1위를 차지했다. 1958년 이미자는 HLKZ TV 방송이 개최한 아마추어 노래 콩쿨인 예능 ‘로타리’에 출전해 1등에 선정됐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 나화랑에게 스카우트된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으로 가수로 첫발을 내디뎠다.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주목받았다. 

1960년 어려운 시절에 함께 알고 지내던 연주자 정진흡과 첫 번째 결혼을 했다. 1964년 이미자가 부른 영화 주제가 ‘동백아가씨’가 대히트를 쳤다. 당시 스카라 극장 근처 목욕탕 건물 2층서 방음장치는 물론, 얼음물에 발을 담가가며 임신 9개월인 상태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군정 시절 
금지되기도


국내가요 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 25만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당시 대한민국 음반업계가 불황을 겪던 그 해, ‘동백 아가씨’는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왜색조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령을 선고받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남편 정씨와 이혼하게 된다. 

이미자는 1965년에 평생의 콤비가 된 작곡가 박춘석과 만나게 됐다. 박춘석은 패티 김, 최양숙, 남진 등 당대 스타들을 발굴한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다. 박춘석과 이미자는 KBS 라디오 연속극 <진도아리랑>의 주제가로 첫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뗄 수 없는 콤비로 손을 잡게 만든 노래는 ‘흑산도 아가씨’였다. 박춘석은 이미자의 천재적 가창력에 감탄했다.

이어 1966년 KBS라디오 주제가 ‘섬마을 선생님’도 발표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빅히트를 기록했다. 이미자가 스스로 3대 히트곡으로 꼽는 노래 가운데 ‘기러기 아빠’도 박춘석이 작곡한 노래이다. 한창 전성기를 누비던 1966년 2월5일에 강릉서 공연을 하던 이미자는 자신을 찾아온 생모를 22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하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이미자와 어머니의 몇 시간의 짧은 만남이 끝난 후 어머니는 영주로 이미자는 다음 공연을 위해 묵호로 떠났다. 이것이 이미자와 어머니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박정희정부가 들어서고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이미자의 히트곡 대부분이 금지곡으로 분류됐다. 왜색이나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비탄조의 노래라는 이유에서였다. 히트할 때마다 줄줄이 금지곡 낙인을 받자 그녀는 노래를 그만두려고 했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기념앨범 ‘나의 노래 60곡’
신곡, 히트곡, 애창곡 등
20대부터 70대 목소리 담아  

기회 있을 때마다 해금을 요청했고, 결국 전두환정부인 1987년이 돼서야 금지곡의 족쇄가 풀렸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이미자는 1967년부터 영화 주제가로 발표된 ‘그리움은 가슴마다’ ‘아네모네’ ‘여자의 일생’ 등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며 대한민국의 대표가수의 맥을 이어가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이미자와 함께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하던 패티 김과 함께 196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이미자를 따라다니는 애칭(엘레지(悲歌)의 여왕)은 1967년에 박춘석이 작곡한 이미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 주제가 ‘엘레지의 여왕’을 히트시키면서 얻었다.

1970년에는 TBC 동양방송 드라마의 주제가였던 ‘아씨’가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해 KBS 방송위원이었던 김창수와 결혼했다. 

1979년에는 대한극장서 데뷔 20주년 기념공연을 개최했다. 1985년 (주)민주음악협회의 초청으로 일본 도쿄, 오사카서 공연을 개최, 공연에 앞서 한일(韓日)공동기획으로 ‘한국연가(戀歌)의 계보를 듣는다’는 2장짜리 독집 음반을 출판했다. 1989년에 뉴저지 등에서 미국공연을 가졌다.

가수생활 30년 기념으로 ‘노래는 나의 인생’을 발표,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서 데뷔기념 30주년 공연을 개최했다. 북한의 초청으로 2003년, 평양 동평양대극장서 열린 MBC 평양특별공연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1970년부터 서서히 가요계의 주도권을 후배 가수 남진, 나훈아, 문주란, 하춘화에게 내주게 됐지만 지금껏 취입한 노래는 스스로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1960년대 내내 한해에 음반을 무려 10여장씩 발표, 데뷔 10년 만인 1969년 <1000곡 돌파 기념 리사이틀>을 가졌을 정도다.

1991년 KBS자료실은 그녀가 취입한 노래를 2064곡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국내 가수들 가운데 누구도 견줄 사람이 없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적인 숫자다. 

가요계 주름
여전한 가왕

지난 1995년엔 화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흔히 그녀가 노래하는 장르를 트로트로 분류하고 트로트의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본인은 자신의 노래들이 트로트보다는 전통가요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까지도 뛰어난 가창력과 대중을 사로잡는 무대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4년에는 데뷔 55주년을 맞이해 전국 투어 콘서트, 디너쇼를 열었으며 이듬해에는 가수 장사익과 <이미자-장사익 특집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특집 콘서트는 KBS 1TV서 방영돼 20.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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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검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유통·공급책들의 진술도 뒤집혔다.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이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도 수년간 겪은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경찰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과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필로폰 74kg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내 기뻐하던 수사팀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실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고 개입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경찰도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과도한 의혹? 백 경정은 지금까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벌어진 원인으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검찰을 지목했다. 직접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통화했던 녹취를 언급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 경정 수사팀에 지휘권이 없는 인사들이 수차례 연락을 취한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비교해보면 ‘압력을 넣었다’는 맥락은 일치하지만 누가 압력을 행사했고 어떻게 대통령실과의 접촉 등이 이뤄졌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용산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백 경정 팀의 수사에 허점이 있던 걸까?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지원해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측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영등포서 마약수사팀 의견 통일 안 돼 운반책들 “세관 도움 없었다” 주장 번복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했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그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백 경정은 당시 전화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나?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뒤집힌 분위기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 유통·전달책의 첩보로 시작된다. 사정기관에 첩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야당’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형량 거래인 ‘플리바게닝’을 통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때가 있다. 베테랑 수사관들도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다가 헛수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마약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물적 증거가 부족할 때다. 실제 검찰이든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 또는 야당의 정보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 경정팀에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운반책 3명은 최근 급작스레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검경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백 경정이 주장해온 의혹의 뿌리가 흔들린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에 구성된 합동수사단도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재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경정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백 경정의 판단이 100%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이 많았던 건 사실 아니냐.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약 운반책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공항본부 세관 직원은 여러 명이다. 직원 대부분은 백 경정팀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약 공범? 익명을 요구한 세관 직원 A씨는 <일요시사>에 “공황장애에 걸린 직원도 있고 확실하지도 않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경찰도 있었다. 그 자체가 우리가 범죄자라고 전제한 수사”라며 “2년이 지나도 나오는 게 없지 않나. 운반책들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하는데 이젠 진상규명이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마약 운반책들은 백 경정팀 조사에서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진술에서 언급된 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출입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는 진술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관 직원 B씨는 “운반책들이 2023년 1월에 그린 라인을 따라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그린 라인은 그해 5월에야 생겼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수사했다면 운반책들의 진술 중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측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혀 왔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여러 번 초기화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때 수사했을 때 직원 폰을 압수해 분석했는데 초기화된 걸 확인했었고 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직접 초기화한 후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도 했다”며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주장하다가 세관과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관이 마약 운반책들을 뒤에서 은밀하게 도왔다는 의구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상황에 누가 의심을 안 하겠나”고 강조했다. 세관 직원들 “2년간 범죄자 취급···억울” 휴대전화 초기화는? 수상한 점 여전히 존재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은 본래 지난 14일까지였다. 그러다 전날인 13일, 경찰청은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백 경정의 파견 기간을 돌연 2개월 연장했다. 내년 1월14일까지로 늘린 것이다. 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찰청에 백 경정 파견의 연장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동부지검의 요청을 검토한 뒤 경찰청에 연장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했고 본인과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전결권을 부여했다. 그는 합수단에 합류한 지 약 한 달 만인 이날부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사용 권한을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의 바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수사관 4명 중 2명이 원대 복귀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백 경정은 “두 사람이 파견 기한 만료 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파견 만료로 원대 복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경정에게 “개인 사정이 있어 파견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경정은 “계속 수사에 차질을 겪어 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스무명이 넘게 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3명이 수사를 이어가겠나”라며 “팀을 꾸렸으면 적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어렵게 파견 인력을 확보했었다”면서 “백 경정의 충원 의사를 대검에 전달했지만 인력은 보내는 쪽인 경찰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 경정과 동부지검 간 갈등은 끝나지 않는 모양새다. 백 경정은 최근 14일 A4 용지 12장 분량의 자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개인 명의로 배포했다. 그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용 권한을 받았고 파견도 2개월 연장됐다”면서 “조만간 사건번호를 생성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도할 수사 범위에 ▲세관 마약 연루 의혹 ▲검찰의 마약 밀수 사건 은폐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 중 수사 외압 의혹은 합수단 지휘 책임이 있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난달 파견 온 백 경정에게 별도 수사팀을 내줄 당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분야다. 공중분해 위기 지속 영등포경찰서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캐던 백 경정이 스스로 외압 피해자라 주장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경찰 지휘부 등을 고발한 사건이라 직접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커서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며 기존 수사 범위에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상 경찰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회피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