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농촌진흥청 이상한 고위인사

음주운전 빨간줄…그래도 승진 이상 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음주운전 기록을 가진 정부부처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최종 임용됐다. 부처장의 1순위 추천을 받은 이 후보자는 청와대 검증을 통과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점차 강화되는 상황서 이 후보자가 신임 차장으로 낙점되자 부처 내부에선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1기 내각 구성 이후인 20171122‘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병역면탈과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 등 기존 5대 인사원칙에 음주운전과 성범죄가 추가됐다. 인사검증 기준 적용 대상도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포함한 장·차관은 물론 1급 이상 고위공직 후보자로 확대했다.

7대 검증 기준
음주운전 추가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최근 10년 이내 2회 이상 한 경우, 1회 한 경우라도 신분을 허위 진술한 경우 임용을 원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인사검증 기준이 발표되기 전 인사청문회를 치른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은 1991년 음주운전 무마 의혹으로 뭇매를 맞았다.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와 안경환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이력이 불거지면서 결국 낙마했다.

청와대는 음주운전 이력이 있더라도 검증 기간 이전에 일어난 일이면 임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6월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당시 내정자)의 두 차례 음주운전 이력이 문제로 떠올랐다. 201219대 총선과 201620대 총선서 서울 양천을에 출마했던 이 수석은 전과기록이 공개돼있다.


그는 20017월과 20049월 각각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벌금 100만원과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한 언론사에 현 시점서 이 수석(당시 내정자)의 음주이력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인사검증 기준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내정자를 인선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음주운전 적발 ‘경고’ 처분
16년 뒤 주요 보직 거쳐 차장 승진

그런데 이번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인사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기록이 있는 황규석 신임 차장이 최종 낙점되면서 입길에 올랐다. 황 차장의 음주운전 적발 시기는 20039월로 16년 전이다. 청와대 검증 기준에 따르면 임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황 차장과 함께 검증을 받은 또 다른 후보자는 전과기록이 전혀 없는데, 음주운전 기록이 있는 황 차장이 임용되자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11일 농진청은 황규석 연구정책국장을 신임 차장으로 승진 임명했다고 밝혔다. 1961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충남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 동 대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은 황 차장은 공직생활 30년 만에 농진청 27대 차장에 올랐다.

그는 1988년 농진청 농업연구사로 시작해 연구정책과장, 행정법무담당관, 축산과학원 기술지원과장, 농진청 수출농업지원과장, 연구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12일 별도의 취임식 없이 공식 업무를 시작한 황 차장은 결과보다는 일하는 과정서 즐거움으로 보상받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힘의 원천이라며 상생협력과 소통을 통해 농진청이 농업 현장과 국민 실생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보급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농진청은 농촌진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소속으로 농촌진흥청을 둔다는 정부조직법 제36조에 따라 설립됐다. 농업의 발전과 농업인의 복지 향상 및 농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도모하기 위한 농업·농업인·농촌 관련 과학기술의 연구개발·보급 등에 관한 사항을 추진해 농촌지역의 진흥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청장 다음∼
고위공무원단

황 차장이 승진 임용된 차장직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직위로, 농진청서 청장 다음으로 높은 자리다. 농진청 차장 임용 과정은 청와대 검증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일반적인 승진 임용의 경우 보통승진심사위원회를 열어 후보자를 선정한다. 하지만 보통승진심사위원회의 위원들이 국장급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차장 임용의 경우 청장이 후보를 정한다.

먼저 농진청 청장이 고위공무원단 역량평가를 통과한 직원을 대상으로 주변의 평가를 종합해 1·2순위 후보자를 선정한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실·국장급 공무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정관리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200671일부터 시행됐다. 고위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역량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2순위 후보자는 1순위 후보자가 청와대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예비후보다. 이번 임용서 2순위 후보자는 농진청 내부 다른 부서 국장 A씨로 알려졌다. 2배수 혹은 3배수로 후보군이 구성되면 농진청서 청와대에 검증을 요청한다.

청와대 검증 결과가 나오면 농진청 청장이 최종 후보자를 낙점해 인사혁신처에 임용 제청을 요청한다. 인사혁신처는 대통령에게 임용 재가안을 올리고 대통령이 최종 임용을 결정하면 인사 절차가 마무리된다.

징계 기준
없었다지만…

청와대는 인사검증 단계를 거쳐 임용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농진청서 요청한 1·2순위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검증 결과는 모두 통과로 나왔다. 김경규 농진청 청장은 황 차장을 최종 후보자로 결정했고 인사혁신처의 재가안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임용을 결정했다.
 

▲ 황규석 농촌진흥청장

농진청 측은 황 차장의 음주운전 이력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그가 청와대 검증을 통과했다는 입장이다. 농진청 인사팀 관계자는 “20039월 황 차장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그때 황 차장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6%였다면서 농진청에는 2004년 황 차장의 음주운전 사실이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0.06%2003년 음주 단속 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위반한 수치다.

2003년 황 차장은 농진청 경영개선담당관실 농업연구관으로 근무 중이었다. 농진청 관계자는 당시 농진청은 황 차장에게 경고처분을 했다음주운전으로 인한 명확한 징계 기준이 만들어진 게 2011년이었다. 2004년에는 (음주운전 관련 기준이 없어)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적용해 (경고) 처분이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사회 분위기상 지금보다 음주운전에 관대했다고도 했다.

1순위 추천받아 검증 통과
“10년 이내만 문제된다?”

2011121일부터 시행한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처음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을 경우 혈중알코올농도가 0.1% 미만이면 감봉-견책 징계를 내릴 수 있다.


농진청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시민단체 회원은 음주운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악질 범죄라며 청와대가 검증 기준으로 내세운 10년의 의미를 모르겠다. 10년 이내에 했으면 나쁜 음주운전, 그 이전에 했으면 괜찮은 음주운전이라는 뜻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평생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운전자도 많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고위공직자라면 음주운전서 자유로워야 한다국민정서상 기간에 상관없이 음주운전 기록이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임용 배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최근 음주운전 사고가 자주 일어나면서 음주운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군대 휴가를 나왔다가 음주운전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윤창호씨 사건으로, 사고를 일으킨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연예인, 경찰, 검사 등이 일으킨 음주운전 사고가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음주운전자를 잠재적 살인자로 보는 부정적 여론이 높아졌다.

부정 여론↑
선임 강행

농진청 인사팀 관계자는 황 차장의 음주운전 이력은 16년 전 일이기 때문에 청와대서도 임용 제청이 안 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후보자인 A씨에게 전과기록이 없는데도 승진 임용이 안 된 점에 대해서는 그 순위(1·2순위)는 전과기록만 보고 정하는 게 아니다. 업무 추진능력이나 차장으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지도 살핀다물론 음주운전 기록이 치명타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다른 능력이 크기 때문에 청장님이 그분(황 차장)을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와대 음주운전 흑역사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서 김 수사관은 청와대가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 전력이 2회 있는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임명을 강행했다“20179월 감찰 보고서를 두 차례 올렸지만 임명을 취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임명을 강행했다면 조국 민정수석이 대통령께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이날 오후 염 부의장 관련 내용은 공직기강비서관실서 인사검증 시에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며 “(인사검증) 7대 기준 발표 이전 단순 음주운전이며 비상임위원인 점을 참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사검증 7대 기준은 청와대서 201711월 발표했다.

청와대의 음주 관련 논란은 지난해에도 불거졌다. 지난해 1123일 김종천 청와대 전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김 전 비서관은 이날 오전 030분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인근서 경찰 단속에 걸렸다.

그는 음주상태로 종로구 한 음식점 앞에서 적발지점까지 청와대 비서실 차량을 100m가량 몰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적발 당시 김 전 비서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특히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사고의 특성상 초범이라 할지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방지를 위한 대책을 더욱 강화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청와대 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서 기강해이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문 대통령은 김 전 비서관에 대해 직권면직조치를 내렸다. 직권면직은 임용권자가 대상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의 공무원 신분을 박탈하는 제도다. 본인이 원해서 퇴직하는 의원면직과는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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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