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28하노이선언

이번에 톡 까놓고 툭 터놓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두 번째 세기의 만남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장소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변경됐지만 의제는 동일하다. 북미는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두고 다시 한 번 맞붙을 예정이다. 미리 보는 하노이선언.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될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서 오는 27일부터 28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연방의회서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2차 북미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모두 공개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협상 의제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비핵화 조치
제재 완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제1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1차 북미회담 이후 발표된 합의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합의 사항은 선언적 수준에 그쳤고,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양국은 1차 북미회담이 열리기까지 팽팽하게 맞붙었다. 과거부터 지속된 양국 간 불신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앞두고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지만 북미 간 불신은 공동합의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1차 북미회담 이후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됐다. 다만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북미는 ‘선 비핵화 조치’와 ‘선 대북제재 완화’의 순서를 두고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후 약 8개월 만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양국이 정상회담을 개최할 만한 접점을 찾았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관건은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다. 상응조치는 대북 경제제재 해제로 수렴한다. 북미가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라는 큰 그림 속에서 무엇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을지가 이번 2차 북미회담의 의의를 결정짓게 된다.

북미정상 재회…센토사서 하노이로
비핵화-상응조치, 얼마나 주고받나

북미는 두 가지 관건에 도달하기 위해 싱가포르선언 당시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6·25전쟁 전사자 유해송환 등에 공동 합의했다. 북미는 4개 항을 뼈대로 2차 북미회담서 구체적인 내용물을 채운 뒤,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를 향해 한 걸음 진보할 전망이다.

2차 북미회담에 앞서 북미는 실무협상에 나섰다. 1차 실무협상은 지난 6∼8일 평양서 열렸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2박3일간 방북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벌였다. 이날 북한은 비건 특별대표에게 미국의 상응조치로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그리고 종전선언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문희상 의장과 여야 5당 대표단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10여개 이상의 문제를 논의했고, 싱가포르선언 이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가 2차 북미회담서 완전한 비핵화 등 4가지 공동합의사안이 담긴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10개 이상의 문제는 싱가포르선언이라는 뼈대 안에 채워질 구체적인 내용물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튿날 대표단은 워싱턴DC 인근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했다.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은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등 4가지 아니냐고 묻자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4가지 상응조치는 경제발전과 체제안정,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으로 압축된다.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은 경제발전에,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는 체제안정에, 그리고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4가지 사안
비핵 로드맵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은 경제 분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대단한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며 “북한은 다른 종류의 로켓이 될 것-경제로켓!”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 칭했다. 당시 북미는 전쟁설이 거론될 정도로 첨예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경제로켓을 언급한 것은 북미 관계의 변화와 함께 비핵화 조치의 원동력이 경제가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의 우선순위로 거론된다. 김 위원장 역시 개성공단 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신년사에서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 등의 재개를 위한 일련의 비핵화 조치를 내세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경제제재 완화의 가능성이 돋보이는 이유로 회담 장소의 상징성이 지목되기도 한다. 2차 정상회담은 베트남서 열린다. 베트남과 미국은 과거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시작된 양국 간 화해무드는 원조와 관계 정상화, 개혁·개방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이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이 베트남서 열리는 만큼 미국서도 북한 경제와 관련된 사안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다.

북미 상호 연락사무소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은 과거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수전 셔크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와의 인터뷰서 “미국은 몇 년 전,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며 “미국과 북한이 개설에 합의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호 연락사무소는 양국 간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평가된다.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는 대목에 따르면 이번엔 북한이 먼저 북미 상호 연락소를 제안한 셈이다. 공동합의문에 상호 연락소가 담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미 간 종전선언도 조명을 받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불발되면서 이른바 ‘4자(남북미중) 종전선언’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북미회담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위해 베트남행을 계획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북미 간 종전선언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 스티븐 비건 미국 대표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지난 13일 BBS 불교방송 <BBS 뉴스파노라마>에 출연, “북미 간 종전선언을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홍 실장은 “미중 간에도 수교는 했다. 북미 간 종전선언을 하면 매듭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작년에 평양서도 남북군사합의서로 (우리도) 종전선언으로 넘어갔다”며 4자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북미의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입장차는 첨예하다. 북미 종전선언은 북미관계를 넘어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지만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다.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을 위해 UN군사령부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지난 14일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와 감축은 논의하거나 계획된 바 없다”고 밝혔다. 우리 국방부도 전날 주한미군 주둔과 종전선언, 평화협정과 관계가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개성, 금강산
영변 핵시설…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한 4가지 상응조치에 따라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영변 핵시설 폐기 및 검증,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또는 반출,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사찰 등이 언급된다. 북미가 2차 북미회담서 해당 조치에 모두 합의한다면 사실상 비핵화 로드맵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셈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영변 핵시설 폐기서 시작한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시작으로 북한은 기존의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신고하게 된다. 이후 신고내역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증과 사찰이 진행되고, 완전한 핵 폐기로 나아가게 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폐기 등과 풍계리, 동창리에 대한 사찰은 비핵화 로드맵의 과정 중 하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합의 사항이 나온다면 비핵화 로드맵에 시동이 걸리게 될 공산이 크다.

비건 특별대표는 김 특별대표와 함께 이번 주 2차 실무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2차 실무협상에선 하노이선언의 초안을 작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지난 12일 “(비건 특별대표가)다음 실무 협상서 합의문 작성에 들어간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2주밖에 남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차 회담 뼈대…하노이 선언문 작성
촉박한 협상 시간, 회의론도 고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같은 날 “(비건 특별대표가) 2차 북미회담 이후에도 실무 회담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비건 특별대표가 ‘특별대표가 된 이후 6개월 만에 북측을 처음 만났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 말에 따르면 비건 특별대표는 “내용상으로 다룰 시간이 없다. 실무 협상 뒤 2차 북미회담을 진행하고 협상을 더 해나가야 한다”고 털어놨다.

결국 비건 특별대표는 북미 간 의제 협상에 있어 큰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북미는 2차 북미회담 일정이 못 박힌 상황서 물리적인 한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모양새다. 당장 다음주에 2차 북미회담이 열리게 되지만 시간은 촉박하다. 북한이 요구한 4가지 상응조치와 비건 특별대표가 언급한 10여개의 의제는 2차 북미회담서 전부 논의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접점을 찾은 몇몇 의제만이 합의문에 담길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서 이번 2차 북미회담 결과를 싱가포르선언과 대동소이할 것이라 예상하는 까닭이다.

한편 2차 북미회담이 개최될 경우 예상하지 못했던 사안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선언했고 경제발전을 언급하는 등 정상국가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불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정상회담을 거친 두 정상이 이번 2차 북미회담서 돌발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선 2차 북미회담의 불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 개최 과정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북미회담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

담을 수 있는
만큼 담는다

2차 북미회담도 지난번과 같이 갑작스럽게 취소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관건은 이번 주 선언문 초안을 작성할 것으로 예정된 2차 북미 실무협상이 될 공산이 크다. 북미는 각각 상응조치와 비핵화 조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부단계를 하노이선언문에 담을 전망이다. 이후 북미 간 실무협상을 지속하면서 3차, 4차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하노이 산책회동
속 깊은 대화는 걸으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서 산책회동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그간 1차 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서 각국 정상과 산책을 한 바 있다. 1차 남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도보다리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다. 또 김 위원장은 1차 북미회담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벼운 산책을 했다.

김 위원장은 산책회동을 선호하는 모양새다. 정상국가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그간 ‘은둔의 지도자’로 불렸지만 잦은 노출을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2차 북미회담은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하노이호텔서 열릴 공산이 크다. 해당 호텔은 여러 호텔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JW메리어트 하노이 호텔은 인공호수가 호텔을 둘러싸고 있어 안보에 있어서도 최적의 장소로 거론된다.

정상국가 이미지 극대화
1차보다 많은 시간 할애

인공호수와 함께 호텔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호수나 공원 주변을 거닐며 비공개 회동을 통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책회동은 지난 1차 북미회담의 산책보다 길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1차 북미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시간은 1차 남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도보다리서 함께한 시간보다 짧았다. 북미 정상은 전례가 없던 만남이었던 만큼 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후 친서를 주고받는 등 서로에 대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표했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양국 정상은 지난 1차 회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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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