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0만 배우 류승룡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13:35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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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웃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우 류승룡이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부활했다. 4년의 침체기 끝에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더불어 대한민국 첫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 ▲최근 <극한직업>으로 400만 배우 반열에 선 배우 류승용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은 전날 17만1933명을 동원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관객수는 1342만3252명이다. <극한직업>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개봉 15일 만에 1052만9774명을 동원해 1000만 돌파의 쾌거를 이루었다. 

<극한직업> 대흥행 
특별한 이유는?

<극한직업>의 흥행세는 괄목할 만하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역대 1월 개봉영화 최고 오프닝(이상 36만8442명), 역대 1월 영화 최다 일일 관객 수(99만4577명), 역대 설 연휴 최다 관객 수(525만7243명) 등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200만 돌파 속도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2014·15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4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00만 고지를 밟은 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인 <명량>(1761만명)과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명), <국제시장>(2014·1426만명) 세 편뿐이다.

<극한직업>은 여타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대신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호흡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지며 시종 뚝심 있게 ‘웃음’을 던진다.


작품의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서 이 영화가 지닌 경쾌 발랄함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관객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의 마약반 5인방의 활약과 팀플레이도 돋보인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치킨집 위장 창업을 시작한 마약반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200% 살린 배우들의 열연이 흥행에 한몫했다. 

고된 일상 속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웃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낮에는 치킨장사를 하고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장사를 하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들. 특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기발한 설정은 웃음과 동시에 공감을 자아낸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그렇듯, 각자의 극한직업을 견뎌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건드린다.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 
극장가 코믹돌풍…코미디 영화 1위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 류승룡의 역할이 빛났다. 류승룡은 극중 고반장 캐릭터로 열연했다. 마약반 5형사 중 리더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찰진 대사 소화력과 좀비 액션으로 웃음을 이끌었다.


특히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고반장의 대사는 관객들 사이서 회자되며 숱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코미디 영화가 1000만 기록을 낸 건 6년 만이다. 지난 2013년 <7번방의 선물>이 역대 코미디 중 최초로 1000만을 찍었다. 최종 스코어는 1281만명. <7번방의 선물>과 <극한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 류승룡이 주연배우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류승룡은 6년 전 자신이 세웠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다. 최근 흥행 부진을 겪었던 터라 더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류승룡에게 최근 4년은 부진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명량>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품활동을 멈춘 건 아니었다. 천우희, 이성민과 함께한 <손님>(2015), 수지를 전면에 내세운 <도리화가>(2015),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2018), 장동건과 호흡한 <7년의 밤>(2018)까지 매해 한 편 이상의 신작을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작품이 <염력>으로 고작 99만111명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침체기가 계속되자 한 예능프로그램서 시작된 구설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2014년 대학동창인 배우 김원해, 이철민이 “(성공한 후)류승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게 논란이 됐다. 애당초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모든 건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인성 논란’ 꼬리표가 붙은 후였다. 시기가 겹치다 보니 이 해프닝이 류승룡의 호감도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여론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보다 ‘작품’ 문제가 컸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서일까. 류승룡은 이상하리만큼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류승룡은 “그동안 대체로 신선한 걸 선택했다. ‘이걸 보면 깜짝 놀라겠지? 짠하고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한직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인 류승룡은 대한민국 최초로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명량>(1761만명),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명) 등 3편의 1000만 영화에 주연배우로 참여했던 류승룡은 동률을 이루던 송강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를 제치고 1000만 영화 4편을 보유한 유일한 배우가 됐다.

류승룡표 코미디
관객들 사로잡아 

‘명절 불패신화’도 이어갔다. 설 연휴 기간 1000만 고지를 넘은 <극한직업>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은 모두 성수기로 분류되는 명절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작품이었다.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역대 한국 영화는 총 18편. 그중 명절에 맞춰 포문을 연 영화는 류승룡이 출연한 세 편뿐이다. ‘명절 = 류승룡’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탄생한 셈이다.

류승룡은 최근 공개된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서도 호평을 받으며 ‘쌍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한직업>에서는 코믹한 면모를 강조한 반면, <킹덤>에선 서슬 푸른 세도가 조학주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뽑냈다. 

류승룡은 “본의 아니게 출연작 2편이 동시에 공개돼 ‘피로도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두 작품의 결과 제가 맡은 캐릭터가 달라서 다행이었다”며 “사극에 좀비가 가미된 <킹덤>과 신파 없이 코믹 장르에 충실한 <극한직업> 모두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 대중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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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1순위로 류승룡을 원했다고 한다. “캐릭터끼리 화학작용을 빚어내면서도 밸런스를 맞출 줄 아는 배우는 류승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류승룡은 어깨에 힘을 빼고 밸런스를 고려하며 움직일 때 가장 쫄깃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서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왕 대신 저잣거리 천민에게 “왕 노릇을 하라”고 제안하는 신하 허균을 연기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전략가로 나오지만 중간중간 캐릭터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을 웃긴다. “적당한 선에서 유머를 주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서 나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서도 류승룡은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을 애써 웃기려 들지 않는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소젖을 짜는 일명 ‘핑거발레’ 같은 것으로 객석을 뒤집어놓을 뿐이다. 류승룡은 “터지기 직전까지만 갈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꼭짓점에 애써 오르려 하지 않을 때 가장 그다운 웃음과 긴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류승룡은 지난 10일 서울 CGV서 열린 <극한직업> 무대인사를 통해 “오랜 시간 많은 배우, 스태프들이 정성 들여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고 가족이 생겼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룡은 충청남도 서천군서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예전(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으로 같은 과 동기로는 안재욱, 정재영, 황정민, 신동엽, 임원희, 김현철(코미디언), 이철민 등이 있다. 그는 동랑극단을 통해 데뷔한 정통 연극파다. 

한동안 실패
부진 싹 씻어


대중에게 그가 알려진 것은 <난타>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였다. 그는 대학 동기인 김원해와 함께 <난타>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주방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소동을 그린 <난타>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대사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퍼포먼스’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를 넘어 영국, 미국서도 호평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류승룡 역시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난타>로 입지를 다진 류승룡은 2004년 장진 연출, 정재영 주연의 <아는 여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강도 1.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대출을 받는 은행에 침입하는 캐릭터다. 다만 제대로 된 강도가 아니라 단순히 ‘8인조 강도’라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 9명의 회원들이 뭉친 것이다.

분홍색 복면을 쓰고 어설프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를 자아냈다. 그의 첫 영화 캐릭터는 코미디인 셈. 이후로도 류승룡은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 연달아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7급 공무원>의 코믹한 요원, 기이한 사건들로 혼란스러워하는 <불신지옥>의 형사 등 류승룡은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영화 속 이미지 중 하나는 거친 인상의 악역이다. 그 시작점은 2008년 개봉한 느와르 스릴러 <시크릿>. 류승룡이 맡은 역할은 폭력 조직의 보스  '재칼'로 역할의 설정과 이름부터가 ‘나는 악역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인공 성열 형사(차승원)와 대립하는 인물이다. 외관은 물론 표정, 대사 등으로 느와르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캐릭터. 류승룡은 ‘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연기할 때 거의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류승룡은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초창기 장진 감독의 작품 등에서 쌓아올렸던 코미디 감각의 ‘포텐’을 터트렸다.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온몸에 버터를 바른 듯한 느끼함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온갖 오버스러운 표정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인물.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청스러움으로 과장된 연기와 생활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억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연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코미디를 보여줬다. 류승룡 역시 정극뿐 아니라 코미디서의 재능도 여실히 증명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계기로 류승룡에게는 ‘더티 섹시(더럽지만 섹시하다)’가 수식어처럼 붙기도 했다.

<7번방의…> <명량> 이어 세 번째
대한민국 유일의 4000만 배우 등극

같은 해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병헌과 함께 코미디와 진지함의 중도점을 맞추기도 했다. 두 배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함께 연출하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다. 그 결과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7번방의 선물>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룡은 ‘연기력과 티켓파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은 배우가 됐다.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 <명량>을 필두로 작품 속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시대극으로 흥행가도를 달린 김한민 감독은 두 작품서 류승룡을 청나라인, 일본인 악역으로 변신시켰다. 당연히 구사한 언어는 만주어, 일본어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선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해 변발로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는 북한 방언을 통해 고구려인을 표현, <고지전>에선 북한말을 구사하기도 했다. 국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유람한 과거가 있다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역에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아프리카어까지 보여줬다. 외국어, 사투리 대사의 경우 어색한 억양,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일기 쉽지만 류승룡은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으로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병기 활>서 만주어나 다른 작품서 스페인어, 불어, 일어 대사들도 무식하게 외웠다. 하도 많이 해서 매니저들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무식하게 한글로 써서 외웠다. 글씨 크기로 억양을 표현했다. 창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류승룡 하면 역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그는 팔도의 ‘남자라면’ 광고서도 이를 그대로 활용했다. 느끼한 표정으로 마늘을 부수고 도끼로 파를 자르는 등 특유의 코믹 연기를 1분30초 동안 쏟아부었다. 또 하이라이트인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은 “맛의 올가미”까지만 대본이고 뒤는 류승룡의 애드리브라고 한다.

장면·장면마다
독보적인 캐릭터

남자라면을 시작으로 류승룡은 아버지의 이미지, 호쾌한 이미지 등으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계 블루칩 배우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광고다. 그가 출연한 배달의 민족 광고만 해도 무려 7편이 넘는다. 풍속화를 이용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표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광고는 류승룡의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누구?

이병헌 감독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을 각색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냄새는 난다>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9년 제4회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서 최우수 국내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1년 영화 <써니> 스크립터와 각색에 참여했다. 

2013년 이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는 제9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은 스무살 청춘들의 찌질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낸 첫 상업영화 <스물>, 네 남녀의 좌충우돌 불륜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그리고 <극한직업>을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세계’를 구축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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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