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0만 배우 류승룡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13:35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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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웃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우 류승룡이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부활했다. 4년의 침체기 끝에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더불어 대한민국 첫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 ▲최근 <극한직업>으로 400만 배우 반열에 선 배우 류승용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은 전날 17만1933명을 동원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관객수는 1342만3252명이다. <극한직업>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개봉 15일 만에 1052만9774명을 동원해 1000만 돌파의 쾌거를 이루었다. 

<극한직업> 대흥행 
특별한 이유는?

<극한직업>의 흥행세는 괄목할 만하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역대 1월 개봉영화 최고 오프닝(이상 36만8442명), 역대 1월 영화 최다 일일 관객 수(99만4577명), 역대 설 연휴 최다 관객 수(525만7243명) 등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200만 돌파 속도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2014·15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4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00만 고지를 밟은 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인 <명량>(1761만명)과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명), <국제시장>(2014·1426만명) 세 편뿐이다.

<극한직업>은 여타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대신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호흡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지며 시종 뚝심 있게 ‘웃음’을 던진다.

작품의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서 이 영화가 지닌 경쾌 발랄함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관객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의 마약반 5인방의 활약과 팀플레이도 돋보인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치킨집 위장 창업을 시작한 마약반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200% 살린 배우들의 열연이 흥행에 한몫했다. 

고된 일상 속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웃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낮에는 치킨장사를 하고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장사를 하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들. 특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기발한 설정은 웃음과 동시에 공감을 자아낸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그렇듯, 각자의 극한직업을 견뎌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건드린다.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 
극장가 코믹돌풍…코미디 영화 1위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 류승룡의 역할이 빛났다. 류승룡은 극중 고반장 캐릭터로 열연했다. 마약반 5형사 중 리더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찰진 대사 소화력과 좀비 액션으로 웃음을 이끌었다.

특히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고반장의 대사는 관객들 사이서 회자되며 숱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코미디 영화가 1000만 기록을 낸 건 6년 만이다. 지난 2013년 <7번방의 선물>이 역대 코미디 중 최초로 1000만을 찍었다. 최종 스코어는 1281만명. <7번방의 선물>과 <극한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 류승룡이 주연배우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류승룡은 6년 전 자신이 세웠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다. 최근 흥행 부진을 겪었던 터라 더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류승룡에게 최근 4년은 부진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명량>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품활동을 멈춘 건 아니었다. 천우희, 이성민과 함께한 <손님>(2015), 수지를 전면에 내세운 <도리화가>(2015),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2018), 장동건과 호흡한 <7년의 밤>(2018)까지 매해 한 편 이상의 신작을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작품이 <염력>으로 고작 99만111명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침체기가 계속되자 한 예능프로그램서 시작된 구설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2014년 대학동창인 배우 김원해, 이철민이 “(성공한 후)류승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게 논란이 됐다. 애당초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모든 건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인성 논란’ 꼬리표가 붙은 후였다. 시기가 겹치다 보니 이 해프닝이 류승룡의 호감도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여론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보다 ‘작품’ 문제가 컸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서일까. 류승룡은 이상하리만큼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류승룡은 “그동안 대체로 신선한 걸 선택했다. ‘이걸 보면 깜짝 놀라겠지? 짠하고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한직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인 류승룡은 대한민국 최초로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명량>(1761만명),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명) 등 3편의 1000만 영화에 주연배우로 참여했던 류승룡은 동률을 이루던 송강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를 제치고 1000만 영화 4편을 보유한 유일한 배우가 됐다.

류승룡표 코미디
관객들 사로잡아 

‘명절 불패신화’도 이어갔다. 설 연휴 기간 1000만 고지를 넘은 <극한직업>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은 모두 성수기로 분류되는 명절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작품이었다.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역대 한국 영화는 총 18편. 그중 명절에 맞춰 포문을 연 영화는 류승룡이 출연한 세 편뿐이다. ‘명절 = 류승룡’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탄생한 셈이다.

류승룡은 최근 공개된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서도 호평을 받으며 ‘쌍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한직업>에서는 코믹한 면모를 강조한 반면, <킹덤>에선 서슬 푸른 세도가 조학주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뽑냈다. 

류승룡은 “본의 아니게 출연작 2편이 동시에 공개돼 ‘피로도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두 작품의 결과 제가 맡은 캐릭터가 달라서 다행이었다”며 “사극에 좀비가 가미된 <킹덤>과 신파 없이 코믹 장르에 충실한 <극한직업> 모두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 대중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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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1순위로 류승룡을 원했다고 한다. “캐릭터끼리 화학작용을 빚어내면서도 밸런스를 맞출 줄 아는 배우는 류승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류승룡은 어깨에 힘을 빼고 밸런스를 고려하며 움직일 때 가장 쫄깃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서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왕 대신 저잣거리 천민에게 “왕 노릇을 하라”고 제안하는 신하 허균을 연기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전략가로 나오지만 중간중간 캐릭터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을 웃긴다. “적당한 선에서 유머를 주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서 나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서도 류승룡은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을 애써 웃기려 들지 않는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소젖을 짜는 일명 ‘핑거발레’ 같은 것으로 객석을 뒤집어놓을 뿐이다. 류승룡은 “터지기 직전까지만 갈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꼭짓점에 애써 오르려 하지 않을 때 가장 그다운 웃음과 긴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류승룡은 지난 10일 서울 CGV서 열린 <극한직업> 무대인사를 통해 “오랜 시간 많은 배우, 스태프들이 정성 들여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고 가족이 생겼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룡은 충청남도 서천군서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예전(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으로 같은 과 동기로는 안재욱, 정재영, 황정민, 신동엽, 임원희, 김현철(코미디언), 이철민 등이 있다. 그는 동랑극단을 통해 데뷔한 정통 연극파다. 

한동안 실패
부진 싹 씻어

대중에게 그가 알려진 것은 <난타>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였다. 그는 대학 동기인 김원해와 함께 <난타>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주방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소동을 그린 <난타>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대사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퍼포먼스’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를 넘어 영국, 미국서도 호평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류승룡 역시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난타>로 입지를 다진 류승룡은 2004년 장진 연출, 정재영 주연의 <아는 여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강도 1.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대출을 받는 은행에 침입하는 캐릭터다. 다만 제대로 된 강도가 아니라 단순히 ‘8인조 강도’라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 9명의 회원들이 뭉친 것이다.

분홍색 복면을 쓰고 어설프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를 자아냈다. 그의 첫 영화 캐릭터는 코미디인 셈. 이후로도 류승룡은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 연달아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7급 공무원>의 코믹한 요원, 기이한 사건들로 혼란스러워하는 <불신지옥>의 형사 등 류승룡은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영화 속 이미지 중 하나는 거친 인상의 악역이다. 그 시작점은 2008년 개봉한 느와르 스릴러 <시크릿>. 류승룡이 맡은 역할은 폭력 조직의 보스  '재칼'로 역할의 설정과 이름부터가 ‘나는 악역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인공 성열 형사(차승원)와 대립하는 인물이다. 외관은 물론 표정, 대사 등으로 느와르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캐릭터. 류승룡은 ‘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연기할 때 거의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류승룡은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초창기 장진 감독의 작품 등에서 쌓아올렸던 코미디 감각의 ‘포텐’을 터트렸다.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온몸에 버터를 바른 듯한 느끼함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온갖 오버스러운 표정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인물.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청스러움으로 과장된 연기와 생활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억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연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코미디를 보여줬다. 류승룡 역시 정극뿐 아니라 코미디서의 재능도 여실히 증명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계기로 류승룡에게는 ‘더티 섹시(더럽지만 섹시하다)’가 수식어처럼 붙기도 했다.

<7번방의…> <명량> 이어 세 번째
대한민국 유일의 4000만 배우 등극

같은 해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병헌과 함께 코미디와 진지함의 중도점을 맞추기도 했다. 두 배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함께 연출하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다. 그 결과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7번방의 선물>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룡은 ‘연기력과 티켓파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은 배우가 됐다.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 <명량>을 필두로 작품 속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시대극으로 흥행가도를 달린 김한민 감독은 두 작품서 류승룡을 청나라인, 일본인 악역으로 변신시켰다. 당연히 구사한 언어는 만주어, 일본어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선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해 변발로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는 북한 방언을 통해 고구려인을 표현, <고지전>에선 북한말을 구사하기도 했다. 국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유람한 과거가 있다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역에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아프리카어까지 보여줬다. 외국어, 사투리 대사의 경우 어색한 억양,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일기 쉽지만 류승룡은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으로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병기 활>서 만주어나 다른 작품서 스페인어, 불어, 일어 대사들도 무식하게 외웠다. 하도 많이 해서 매니저들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무식하게 한글로 써서 외웠다. 글씨 크기로 억양을 표현했다. 창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류승룡 하면 역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그는 팔도의 ‘남자라면’ 광고서도 이를 그대로 활용했다. 느끼한 표정으로 마늘을 부수고 도끼로 파를 자르는 등 특유의 코믹 연기를 1분30초 동안 쏟아부었다. 또 하이라이트인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은 “맛의 올가미”까지만 대본이고 뒤는 류승룡의 애드리브라고 한다.

장면·장면마다
독보적인 캐릭터

남자라면을 시작으로 류승룡은 아버지의 이미지, 호쾌한 이미지 등으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계 블루칩 배우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광고다. 그가 출연한 배달의 민족 광고만 해도 무려 7편이 넘는다. 풍속화를 이용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표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광고는 류승룡의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누구?

이병헌 감독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을 각색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냄새는 난다>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9년 제4회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서 최우수 국내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1년 영화 <써니> 스크립터와 각색에 참여했다. 

2013년 이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는 제9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은 스무살 청춘들의 찌질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낸 첫 상업영화 <스물>, 네 남녀의 좌충우돌 불륜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그리고 <극한직업>을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세계’를 구축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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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