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000만 배우 류승룡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13:35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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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웃음은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우 류승룡이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부활했다. 4년의 침체기 끝에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더불어 대한민국 첫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 ▲최근 <극한직업>으로 400만 배우 반열에 선 배우 류승용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은 전날 17만1933명을 동원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관객수는 1342만3252명이다. <극한직업>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개봉 15일 만에 1052만9774명을 동원해 1000만 돌파의 쾌거를 이루었다. 

<극한직업> 대흥행 
특별한 이유는?

<극한직업>의 흥행세는 괄목할 만하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역대 1월 개봉영화 최고 오프닝(이상 36만8442명), 역대 1월 영화 최다 일일 관객 수(99만4577명), 역대 설 연휴 최다 관객 수(525만7243명) 등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200만 돌파 속도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2014·15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400만 관객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00만 고지를 밟은 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인 <명량>(1761만명)과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명), <국제시장>(2014·1426만명) 세 편뿐이다.

<극한직업>은 여타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대신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호흡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지며 시종 뚝심 있게 ‘웃음’을 던진다.


작품의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무게감 있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서 이 영화가 지닌 경쾌 발랄함이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관객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의 마약반 5인방의 활약과 팀플레이도 돋보인다. 이병헌 감독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치킨집 위장 창업을 시작한 마약반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200% 살린 배우들의 열연이 흥행에 한몫했다. 

고된 일상 속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웃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낮에는 치킨장사를 하고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장사를 하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들. 특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형사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기발한 설정은 웃음과 동시에 공감을 자아낸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그렇듯, 각자의 극한직업을 견뎌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건드린다.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 
극장가 코믹돌풍…코미디 영화 1위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 류승룡의 역할이 빛났다. 류승룡은 극중 고반장 캐릭터로 열연했다. 마약반 5형사 중 리더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찰진 대사 소화력과 좀비 액션으로 웃음을 이끌었다.


특히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고반장의 대사는 관객들 사이서 회자되며 숱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코미디 영화가 1000만 기록을 낸 건 6년 만이다. 지난 2013년 <7번방의 선물>이 역대 코미디 중 최초로 1000만을 찍었다. 최종 스코어는 1281만명. <7번방의 선물>과 <극한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 류승룡이 주연배우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류승룡은 6년 전 자신이 세웠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다. 최근 흥행 부진을 겪었던 터라 더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류승룡에게 최근 4년은 부진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명량>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품활동을 멈춘 건 아니었다. 천우희, 이성민과 함께한 <손님>(2015), 수지를 전면에 내세운 <도리화가>(2015),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2018), 장동건과 호흡한 <7년의 밤>(2018)까지 매해 한 편 이상의 신작을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작품이 <염력>으로 고작 99만111명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침체기가 계속되자 한 예능프로그램서 시작된 구설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2014년 대학동창인 배우 김원해, 이철민이 “(성공한 후)류승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게 논란이 됐다. 애당초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모든 건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미 ‘인성 논란’ 꼬리표가 붙은 후였다. 시기가 겹치다 보니 이 해프닝이 류승룡의 호감도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여론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보다 ‘작품’ 문제가 컸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서일까. 류승룡은 이상하리만큼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류승룡은 “그동안 대체로 신선한 걸 선택했다. ‘이걸 보면 깜짝 놀라겠지? 짠하고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한직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인 류승룡은 대한민국 최초로 ‘4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명량>(1761만명),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명) 등 3편의 1000만 영화에 주연배우로 참여했던 류승룡은 동률을 이루던 송강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를 제치고 1000만 영화 4편을 보유한 유일한 배우가 됐다.

류승룡표 코미디
관객들 사로잡아 

‘명절 불패신화’도 이어갔다. 설 연휴 기간 1000만 고지를 넘은 <극한직업>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은 모두 성수기로 분류되는 명절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작품이었다.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역대 한국 영화는 총 18편. 그중 명절에 맞춰 포문을 연 영화는 류승룡이 출연한 세 편뿐이다. ‘명절 = 류승룡’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탄생한 셈이다.

류승룡은 최근 공개된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서도 호평을 받으며 ‘쌍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한직업>에서는 코믹한 면모를 강조한 반면, <킹덤>에선 서슬 푸른 세도가 조학주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뽑냈다. 

류승룡은 “본의 아니게 출연작 2편이 동시에 공개돼 ‘피로도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두 작품의 결과 제가 맡은 캐릭터가 달라서 다행이었다”며 “사극에 좀비가 가미된 <킹덤>과 신파 없이 코믹 장르에 충실한 <극한직업> 모두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 대중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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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1순위로 류승룡을 원했다고 한다. “캐릭터끼리 화학작용을 빚어내면서도 밸런스를 맞출 줄 아는 배우는 류승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류승룡은 어깨에 힘을 빼고 밸런스를 고려하며 움직일 때 가장 쫄깃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서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왕 대신 저잣거리 천민에게 “왕 노릇을 하라”고 제안하는 신하 허균을 연기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전략가로 나오지만 중간중간 캐릭터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을 웃긴다. “적당한 선에서 유머를 주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서 나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서도 류승룡은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을 애써 웃기려 들지 않는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소젖을 짜는 일명 ‘핑거발레’ 같은 것으로 객석을 뒤집어놓을 뿐이다. 류승룡은 “터지기 직전까지만 갈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꼭짓점에 애써 오르려 하지 않을 때 가장 그다운 웃음과 긴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류승룡은 지난 10일 서울 CGV서 열린 <극한직업> 무대인사를 통해 “오랜 시간 많은 배우, 스태프들이 정성 들여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고 가족이 생겼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룡은 충청남도 서천군서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예전(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으로 같은 과 동기로는 안재욱, 정재영, 황정민, 신동엽, 임원희, 김현철(코미디언), 이철민 등이 있다. 그는 동랑극단을 통해 데뷔한 정통 연극파다. 

한동안 실패
부진 싹 씻어


대중에게 그가 알려진 것은 <난타>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였다. 그는 대학 동기인 김원해와 함께 <난타>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주방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소동을 그린 <난타>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대사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퍼포먼스’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를 넘어 영국, 미국서도 호평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류승룡 역시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난타>로 입지를 다진 류승룡은 2004년 장진 연출, 정재영 주연의 <아는 여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강도 1.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대출을 받는 은행에 침입하는 캐릭터다. 다만 제대로 된 강도가 아니라 단순히 ‘8인조 강도’라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 9명의 회원들이 뭉친 것이다.

분홍색 복면을 쓰고 어설프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를 자아냈다. 그의 첫 영화 캐릭터는 코미디인 셈. 이후로도 류승룡은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 연달아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7급 공무원>의 코믹한 요원, 기이한 사건들로 혼란스러워하는 <불신지옥>의 형사 등 류승룡은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영화 속 이미지 중 하나는 거친 인상의 악역이다. 그 시작점은 2008년 개봉한 느와르 스릴러 <시크릿>. 류승룡이 맡은 역할은 폭력 조직의 보스  '재칼'로 역할의 설정과 이름부터가 ‘나는 악역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인공 성열 형사(차승원)와 대립하는 인물이다. 외관은 물론 표정, 대사 등으로 느와르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캐릭터. 류승룡은 ‘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연기할 때 거의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류승룡은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초창기 장진 감독의 작품 등에서 쌓아올렸던 코미디 감각의 ‘포텐’을 터트렸다.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온몸에 버터를 바른 듯한 느끼함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온갖 오버스러운 표정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인물.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청스러움으로 과장된 연기와 생활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억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연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코미디를 보여줬다. 류승룡 역시 정극뿐 아니라 코미디서의 재능도 여실히 증명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계기로 류승룡에게는 ‘더티 섹시(더럽지만 섹시하다)’가 수식어처럼 붙기도 했다.

<7번방의…> <명량> 이어 세 번째
대한민국 유일의 4000만 배우 등극

같은 해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병헌과 함께 코미디와 진지함의 중도점을 맞추기도 했다. 두 배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함께 연출하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다. 그 결과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7번방의 선물>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룡은 ‘연기력과 티켓파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은 배우가 됐다.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 <명량>을 필두로 작품 속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시대극으로 흥행가도를 달린 김한민 감독은 두 작품서 류승룡을 청나라인, 일본인 악역으로 변신시켰다. 당연히 구사한 언어는 만주어, 일본어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선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해 변발로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는 북한 방언을 통해 고구려인을 표현, <고지전>에선 북한말을 구사하기도 했다. 국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유람한 과거가 있다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역에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아프리카어까지 보여줬다. 외국어, 사투리 대사의 경우 어색한 억양,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일기 쉽지만 류승룡은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으로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병기 활>서 만주어나 다른 작품서 스페인어, 불어, 일어 대사들도 무식하게 외웠다. 하도 많이 해서 매니저들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무식하게 한글로 써서 외웠다. 글씨 크기로 억양을 표현했다. 창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류승룡 하면 역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그는 팔도의 ‘남자라면’ 광고서도 이를 그대로 활용했다. 느끼한 표정으로 마늘을 부수고 도끼로 파를 자르는 등 특유의 코믹 연기를 1분30초 동안 쏟아부었다. 또 하이라이트인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은 “맛의 올가미”까지만 대본이고 뒤는 류승룡의 애드리브라고 한다.

장면·장면마다
독보적인 캐릭터

남자라면을 시작으로 류승룡은 아버지의 이미지, 호쾌한 이미지 등으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계 블루칩 배우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광고다. 그가 출연한 배달의 민족 광고만 해도 무려 7편이 넘는다. 풍속화를 이용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표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광고는 류승룡의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누구?

이병헌 감독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을 각색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냄새는 난다>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9년 제4회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서 최우수 국내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1년 영화 <써니> 스크립터와 각색에 참여했다. 

2013년 이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는 제9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은 스무살 청춘들의 찌질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유쾌하게 담아낸 첫 상업영화 <스물>, 네 남녀의 좌충우돌 불륜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그리고 <극한직업>을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세계’를 구축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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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