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1)백제의 맥

연개소문의 약속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대감께서는 당나라 군사들에게 기습타격을 가하여 고구려 영토로 유인하여 몰살시키자는 말씀이십니다.”

가만히 뇌음신의 말을 되새기던 지수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고개 숙였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우리의 계책대로 움직여줄지는 장담할 수 없소. 그러나 여하한 경우든 장군과 부여 풍의 목숨은 반드시 유지할 수 있어야 하오.”

백제를 구하라


연개소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잠시 휴식을 취한 지수신이 뇌음신이 거느린 고구려의 정예병사 500명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와 시기를 같이하여 연개소문이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국경으로 이동했다.

뇌음신과 지수신이 백제 지역으로 들어섰을 때 부여 풍이 웅진강 전투에서 패하고 백강(白江)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급히 서둘러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백강 전투에서 패하고 당나라 군사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로 대처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삼족오가 그려진 깃발을 앞세운 고구려 병사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당나라 군사들이 일시적으로 공격을 멈추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부여 풍과 함께 주류성으로 퇴각했다.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전하를 뵙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패배의 고뇌를 삼키는 중에 지수신과 함께 뇌음신이 부여 풍을 찾았다.

그를 살피던 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뇌음신의 팔을 굳세게 잡았다.

“이 고마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소.”

잠시 상견의 예를 마치고 지수신과 뇌음신이 연개소문의 의중을 전했다.

그를 듣는 풍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고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해서 정녕 백제는 사라지고 마는가!”

한탄조에 가까운 풍의 말에 지수신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전하, 달리 생각하심이.”

뇌음신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말이오?”

“연개소문 막리지의 의도대로 된다면 백제의 구토는 당연히 풍 전하께서 유지토록 할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겠소?”


풍의 반문에 뇌음신이 당군에 포로로 잡혀가는 의자왕을 구출하기 위해 기벌포까지 다녀갔던 일, 그리고 당에 포로로 잡혀서 굴욕적인 삶을 영위하던 의자왕을 구출하기 위해 애를 썼던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그러니 현 상태에서는 연개소문 막리지의 의중에 따라 움직여주심이 타당하리라 사료됩니다.”

풍이 답을 하지 않고 지수신의 얼굴을 주시했다.

“비록 소장이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지만 연개소문 대감의 의지는 전하의 의지처럼 확고했습니다. 절대로 오랑캐인 당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는, 아니 반드시 당나라를 쳐서 우리의 뿌리를 확고히 하자는 생각이셨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운명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지수신의 말이 끝나자 뇌음신이 덧붙였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풍과 지수신의 시선이 뇌음신에게 집중되었다.

“일단 중요한 건 전하의 옥체입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지수신, 고구려군과 부여 풍 구하러…
고구려에 당한 당나라, 신라만 닦달

지수신이 추임새를 놓듯 말을 받았다.

“하여 전하께서는 측근들과 함께 고구려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먼저 고구려 국경으로 이동하십시오. 그곳에서 연개소문 대감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두 분은?”

“당나라 놈들을 끌고 가도록 해야지요.”

“그럴 수는 없소. 짐도 장군들과 함께하겠소.” 

“전하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여타의 전투와는 다릅니다. 그야말로 기습공격과 그에 합당한 효과를 노려야 하기에 속전속결이 중요합니다.”

“전하, 뇌음신 장군의 의견에 동조해주십시오.”

지수신이 가세하자 풍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 뇌음신이 지수신과 함께 당나라 병사들의 동태를 살피고 부하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명을 내렸다.

한편으로는 풍이 그날 저녁 고구려를 향해 이동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주류성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뇌음신이 자신의 수하 100여명으로 풍의 고구려행을 호위하도록 지시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지수신이 거느리는 백제 군사들과 함께 야음을 틈타 웅진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웅진성에 다다르자 전날 승리의 감흥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경비가 허술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성으로 들어간 뇌음신이 동정을 살피고는 지수신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어 곧바로 장군기가 펄럭이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곳곳에 밝혀놓은 불빛에 ‘郎將曺秉錫(낭장 조병석)’이란 글귀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를 확인하며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어둠을 틈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다행스럽게 막사 앞에는 시위하는 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막사의 문을 조심스럽게 젖히자 일찌감치 잠에 빠져든 조병석이 코를 골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서자마자 칼을 뽑아 들었다.

이어 조병석의 심장에 칼을 맞추고 힘차게 내리 찔렀다.  

코 고는 소리인지 숨을 고르는 소리인지 분간 못 할 소리가 잠시 일더니 그대로 조용해졌다.

그를 살피던 뇌음신이 품에서 ‘고구려 막리지 연개소문’이라 쓰인 종이를 꺼내서 조병석의 배위에 올려놓고는 곁에 놓여 있던 조병석의 칼로 배에 고정시켰다. 

순식간에 피가 종이로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종이가 피에 젖지 않도록 위로 치켜 올리고는 들어올 때처럼 조심스럽게 막사를 벗어났다.

막사를 벗어나자 지수신이 불화살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뇌음신이 눈짓을 보내자 지수신의 고함이 어둠속에 울려 퍼졌다.

순간 불화살이 어두움만큼이나 고요한 밤하늘을 가르고 당나라 군사들의 막사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당나라 진영은 화염에 휩싸여갔다. 

고구려군에게 기습공격을 당한 당나라 군사들이 이전의 경험을 이유로 추격을 포기하고 그를 빌미로 은근히 신라에 압력을 가하고 나섰다.

신라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하여 그런 일이 발생하였다는 이유였다.

그를 빌미로 유신이 문무왕을 찾았다.

무리한 요구

“전하, 소장 이만 물러날 수 있도록 윤허 바랍니다.”

“대장군께서 물러나신다니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는지 문무왕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소신 이제 너무 나이가 차고 몸이며 정신이 예전 같지 못하여 전하를 올바로 보필할 수 없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려 합니다.”

“절대로 아니 될 말입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대장군, 아니 외숙부께서 저를 돌보아주지 않으면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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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